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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명절 즈음에 경에서 본 여인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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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7 년 10 월 [통권 제5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44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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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가까워 온다. 명절을 떠올리면 어린 시절 말고는 힘들었던 기억이 많다. 명절 뒤에 근육통은 기본이고, 어김없이 눈에 다래끼가 나든지 입술이 부르트곤 했다. 명절에 여자들 고생하는 이야기야 너무 지겹고 뻔해서, 꺼내놓고 보니 도로 입을 닫고 싶다. 그러다가 요즘 읽는 『잡보장경』과 『비화경』이 떠올라서, 들어가던 이야기가 다시 목구멍으로 기어 나왔다. 이 경들에서는 여자가 사람취급 못 받는 사례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꺼내야 할지 목구멍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날 지경이다. 하여, 지금은 좀 달라졌다지만 아직도 명절에 고생할 여자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하며, 『잡보장경』에 나오는 여인 잔혹사 몇 토막을 소개한다.

 

#이야기 1 

 

파사익왕에게 못생긴 딸이 있었다. 얼마나 못생겼냐 하면, 열여덟 가지로 추한 꼴을 하고 있어 도무지 사람 같지가 않았기에 사람들이 보기만 하면 모두 무서워했다. 이 딸이 자라서 시집갈 나이가 되자 왕이 대신들을 모아놓고 대책회의를 한다. 그리하여 신분은 괜찮으나 가난하고 의지가지가없는 남자를 물색해오라 명하여 거지같은 사람이 불려온다. 왕이 이 사람에게 물었다.

“나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아주 못생겨서 사람들에게 보일 형편이 못된다. 그대에게 아내로 주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이렇게 답했다.

“왕이 요청하시니 설사 그것이 개라 하더라도 사양하지 않겠는데 하물며 왕의 딸을 사양하겠습니까.”

이 뒤로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공주는 밖에 한 번 못나오고 꼭꼭 숨어 살다가 부처님께 간절히 빌어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단번에 선녀 같은 여인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남편과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

 

■댓글 예나 지금이나 여자를 평가하는 기준은 역시 외모이다. 비렁뱅이나 다름없는 남자가 무려 공주를 개에 빗대고 있다.

 

#이야기 2 

 

바라내국 한 수행자에게 예쁜 딸이 있었는데 왕이 사냥을 나왔다가 보고 반하여 제2왕비로 삼는다. 때가 되어 임신을 하고 연꽃 천 송이를 낳았는데 송이마다 아들이 들어 있었다. 제1왕비는 질투가 나서 계략을 꾸민다. 해산하느라 정신없는 작은 왕비의 눈을 가리고, 썩어서 악취 나는 말의 허파를 대신 가져다 놓았다. 연꽃 천 송이는 상자에 담아 강물에 내던졌다. 그러고는 왕에게 상서롭지 못한 썩은 물건을 낳았다고 보고하여 정적을 제2왕비의 자리에서 내쫓은 다음, 다시는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한편 천 명의 연꽃왕자들은 강물에 떠내려가다가 인접국 왕에게 구출되어 힘센 장사로 성장한다. 그 나라는 약소국이라 바라내국에 매년 조공을 바쳤는데 장사로 성장한 아들들이 더 이상 조공을 바칠 수 없다며 바라내국을 치려고 한다. 다급해진 바라내국은 막아낼 방도를 찾았으나 별 도리가 없었다. 이때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나선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유폐되었던 연꽃부인이다. 천 명의 아들이 활을 들어 쏘려는 순간, 자신이 친모임을 밝힌다. 아들들은 무엇으로 당신이 어머니라는 것을 알겠느냐며 증명을 요구한다. 연꽃부인이 즉시 손으로 유방을 누르니, 한쪽에 오백 줄기씩 젖이 뿜어져 나와 천 명의 아들 입으로 들어갔다. 이것으로 전쟁을 막고 두 나라는 화해하고 모두가 참회한다.

 

■댓글 천 명의 아들을 낳고 천 줄기 젖을 뿜어낸 연꽃부인, 불성과 인격을 가진 존재이지만 이 여자는 자궁과 유방뿐이다.

 

#이야기 3 

 

오백 명의 도적을 교화하여 나라를 안정시킨 힘센 장사가 있었다. 그 나라 남자들은 결혼을 하게 되면 신부를 먼저 장사에게 바치기로 결정했다(헉! 충격!). 장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느냐면서 거절했다. 그러나 남자들은 좋은 씨를 얻을 겸 은혜를 갚는다면서 간곡히 청했다. 장사가 마지못해 받아들이자 그게 법으로 시행되었고 오랜 시일이 지났다. 그게 죽도록 싫었던 한 여자가 길에서 벌거벗고 오줌을 누었다. 장사 하나 빼고 온 나라에 남자가 없는데 당신들 앞에서 뭐 부끄러울 게 있느냐면서. 이 사건이 있고 나서 이 여자의 말이 맞는다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었고, 바뀐 여론의 향방을 타고 이번에는 남자들이 장사를 태워 죽였다.

 

■댓글 온 나라 남자들에게 일침을 가한 이 여자는 가장 불리한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을 하였다. 지혜롭고 용감한 이 여자의 극약처방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튀어 장사를 태워 죽이는 사태에 이른 걸 보면, 당시 그 동네 남자들은 수선 불가능한 존재였던가 보다. 그러면, 여자들에게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요즘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아마도 남자들이 판을 주도하는 언론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헐~ 大박!” 아니면 “헉! 충격! 숨 막히는 뒤태…” 이렇게 쓰고 버리지 않았을까.

 

#이야기4 

 

『비화경』에서는 보살이 “내가 이룩할 정토에는 온갖 더러운 것들이 없게 해달라.”고 발원한다. 그 온갖 더러운 것에는 여자도 포함되어 있다. 여자가 하나도 없게 해달라면서, “여자라는 명칭조차 들리지 않게 해달라.”는 말을 덧붙여 관 뚜껑에 못질까지 한다. 이런 발원이 여러 군데 나온다.

 

■댓글 이건 여자에 대한 모독일 뿐만 아니라 부처님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중생과 부처가 차별이 없다고 하신 게 바로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정토라면 사절이다. 사람들에게 여자 없는 정토에 가고 싶으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남자들부터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 밖의 이야기

 

왕이 바라문에게 선물을 줄 때 집, 말, 코끼리, 보석 등과 함께 여자도 선물목록에 들어가 있다. 여자가 물건취급 받은 사실을 보여주는 문장들은 관용구처럼 많이 나온다. 그밖에 며느리 잘못 들어와 형제간에 우애가 깨진 이야기, 늙은 남자에게 시집간 젊은 여자가 남편을 속이고 바람피운 이야기, 정욕이 강한 여자가 시어머니 때문에 욕심을 채우지 못해서 남편을 꾀어 시어머니를 죽인 이야기, 첩과 놀던 남편이 먹다 남은 술을 보내 모욕하자 분을 이기지 못해 아들의 목을 딴 여자 이야기 등등이 있다.

 

■댓글 폭력과 패륜이 많아서, 드라마로 만든다면 등급심위에서 불가판정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상의 이야기들이 전하려는 취지는 원래 여인 잔혹사가 아니다. 대부분이 잘못을 뉘우치고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고 선을 닦아 하늘에 태어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다만 이런 취지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불러온 막장드라마 속에서 당시 여자들의 처지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야기 속 여인들은 욕심이 많거나 포악하거나 음란하거나 인간관계 파괴자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없이 물목단자에 올라서 원치 않는 사람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기거나 선택의 여지없이 시앗을 보아야 하는, 여자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은 단 한 줄도 없다. 이 경의 주제가 그게 아니지 않느냐, 혹시 독해력이 딸리는 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두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해도, 여자 입장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불편하고 씁쓸하다. 

 

이제는 명절증후군에 시달릴 일이 없는데도 명절을 앞두고 옛 생각이 나서 여자 이야기를 써 보았다. 추석에 차례 지내러 절에 가면 경전 속에 등장했던 여자들에게도 잔을 올려야겠다. 지옥이나 다름없었을 세상을 견디며 살아간 것을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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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불교학을 전공하였고, 봉선사 월운 스님에게 경전을 배웠다. <선림고경총서>편집위원을 역임했고 『승만경』, 『금강경오가해설의』, 『송고백칙』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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