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손가락 사이]
오늘 밥 먹으며 외
페이지 정보
최재목 / 2019 년 5 월 [통권 제7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235회 / 댓글0건본문
최재목 | 시인 · 영남대 철학과 교수
오늘 밥 먹으며
오늘 밥 먹으며
꽃잎 지는 소릴 듣는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밥을 먹는지, 꽃잎이 지는지
숟가락을 놓았다
몇 자 고치다 만 글자들도
잔밥 속에 함께 버린다
밥이 법法이라, 법도 버린다
한 때, 저 흩날리는 불두佛頭를 따라, 왔다 갔다
맨발로 탁발하러 떠난 1,250 송이의 희망이, 고요히 시드는데
부디 양지바른 먼지 위에
묻어다오
하마터면 너무 또렷했을 실망을
가려워도 긁을 수 없는 등처럼 그냥 그대로 눈감아다오
끄덕끄덕 수긍하며, 차량에 차량을 달고 가는 밤 열차의
쓸쓸한 탁발 행렬처럼
자칫 내 실수로 오늘은
꽃이 나를 창가에 포박해두고,
대신 밥을 먹고 있었다
혼자만 다 먹은 죄 때문
산골짜기 밭에다 감나무를 심어 두 번째 수확을 했다
지난 해 열 개, 올 해는 열일곱 개
책장 위 끄트머리에다 쭈-욱 널어놓고
홍시가 될 때마다 먹었다
감은 마음속으로, 마음과 함께 익어 홍시가 되어갔다
하루에 하나씩…, 일주일, 이주일…
먹어도 먹어도 아, 끝이 없는 홍시를
나는 아마 수 백 개는 더 먹었을 거다
마음속으로 쳐다보는 그것은 안 먹어도 늘 먹은 것이다
그 많던 감을 몰래, 혼자 다 먹은 죄 때문에
올해는 혹시나 감이 열리지 않을까
솔직히 쪼매 두렵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지리산 무쇠소 사찰음식 일기
지리산 무쇠소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입니다. 소처럼 묵묵히 땅을 일구는 성실함, 무쇠처럼 꺾이지 않는 의지, 지리산처럼 깊고 넉넉한 품이 그 안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수행자의 …
박성희 /
-
동안상찰 선사 『십현담』 강설⑥ - 환향곡還鄕曲
성철스님의 미공개 법문 10 환향곡還鄕曲이라. 불교에서는 대개 본래 자기의 근본 마음을 고향이라 합니다. 그래서 환향은 본 고향에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타향에서 타향살이 하고 …
성철스님 /
-
현대불교가 잃어버린 사문 전통의 메아리
베트남의 거리 수행자 틱민뚜에[釋明慧]가 남긴 질문들 어느 종단에도 소속되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걷고, 탁발하는 모습을 통해 대중에게 발견된 한 수행자가 베트남 불교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
유권준 /
-
화엄학적 사유를 받아들여 일체현성의 선리 제창
중국선 이야기 55_ 법안종 ❷ 중국이 오대·십국으로 남방과 북방으로 분열된 시기에 조사선 오가五家 가운데 마지막인 법안종이 문익에 의하여 출현하였다. 법안종의 명칭…
김진무 /
-
선과 차의 결합으로 탄생한 선원차
거연심우소요 60_ 대흥사 ❽ 우리나라 차문화를 이해하는 데는 일본 차 문화의 역사도 알 필요가 있다. 일본식민지 시기에 일본식 다도가 행해진 적이 있고, 요즘에는 일본차도 많이 마시고, …
정종섭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