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
산은 산이어서 좋고 물은 물이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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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8 년 11 월 [통권 제6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351회 / 댓글0건본문
중도中道,
반대로 가는 길
생生하려니까 멸滅하고
멸하려니까 생한다.
살고 싶으니까 죽고 싶은 것이고
죽자니 또 아깝다.
아까워서 다시
죽으러 간다. 그러나
높이 올라간 만큼 오래 내려간다.
나를 아낀 크기만큼 내가 짓눌린다.
없으면 없는 대로 성질나고
있으면 있는 대로 불안하다.
목녀木女가 석남石男을 낳아
하버드에 보내려는 꼴이구나.
중도,
반대로 가서
돌아오는 길
생하지 않으려니까 멸하지 않고,
멸하지 않으려니까 생하지 않는다.
물론 그냥 입으로 하는 소리이지만
입만이라도 깨달아야지.
안 그러느냐, 입간판들아 입지전들아
좋은 사람들과는 술을 마시고
싫은 사람들과는 일을 한다.
좋은 사람들에게는 돈을 쓰고
싫은 사람들에게선 돈을 번다.
쩨쩨하다고?
요란할 바엔
차라리 옹색하리라.
태어나면서부터 울었는데
살면서 어찌 울음을 피할까.
나만큼이 번뇌이고
너만큼이 망상인 걸.
세상 사람들아,
나는 조금만 일해도 쉬고 또 쉬는데
너희들은 무럭무럭 자라는구나.
무엇이든 깔고 앉아버리는구나.
조계종 제6대 종정 추대법회가 1981년 1월15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렸다.
= 한겨울에 침엽수는 옷 입은 채로 살고, 활엽수는 옷 벗은 채로 산다.
법회의 주인공이었던 퇴옹성철退翁性徹은 정작 참석하지 않았다. 해인사 백련암에서 법어만 올려 보냈다.
= 죽은 나무는 땔감으로 쓰고, 산 나무는 그늘로 쓴다.
“원각圓覺이 보조普照하니 적寂과 멸滅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놈 바깥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시회(時會, 여기 모인) 대중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 낙조落照 안에선 산도 물도 돌도 시체도 반짝인다.
원래 불교는 내게 참 멀었다. 하기야 초등학교 6학년 때 경주 불국사에 가보기는 했다. 그러나 그때의 불교는 철저히 관광지였다. 종교로서의 불교를 처음으로 접한 사건은 아마도 ‘성철 스님의 열반’일 거다. 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존경받던 당신은 1993년 11월4일 천화遷化했다. 그즈음의 일간지들은 스님의 그 소식을 대개 2개면에 걸쳐 지면에 깔았다. 시신을 다비하자 100개 이상의 사리가 나와서도 다들 놀랐다. 개인적으로는 고3의 절정기였고 바빴는데, 신문사진으로 박힌 불에 탄 석면 조각 같은 사리를 참 신비롭게 봤었다. ‘아무도 못 오게 철조망을 치고 10년을 수행했다거나 절대 눕지 않고 수행했다(장좌불와)’는 일화도 흥미로웠다. 니체를 자주 읽던 나는 당시 요절한 예술가들만 골라서 좋아했고 초인超人이 되고 싶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어른의 고독에 끌렸다. 이제는 그 인내 앞에 부끄럽다.
사리가 노옹의 신비한 몸이었다면 ‘산은 산, 물은 물’이란 법문은 신비한 말이었다. 고요한 산중의 음어陰語는 강력한 전설과 추모를 발판 삼아 더 넓은 세상에까지 퍼졌다. 모두가 그 의미를 궁금해 했다. 그리곤 이해하지 못해서 더욱 추앙하거나 이해하지 못해놓고 비난했다. 스님이 같이 데모를 해주지 않는다고 툴툴대던 80년대 학번 대학생들도 개똥철학을 풀고 싶을 때에는 유행어처럼 썼다. 요즈음의 어느 부동산 관련 인터넷카페에서는, 주택 입지의 중요성에 관한 선견지명이었다고 평가한다. 이들에겐 물이 산보다 우위에 있다. 이른바 ‘숲세권’이라봐야 산지의 아파트는 가격상승에 한계가 있고 한강변 아파트는 영원히 유망하리라는 둥….
내게도 인생은 문제였다. 돈이 아까워서 대학원에 진학하지는 않았으나 나도 나름 철학을 했을 것이다. 옛날에 낸 어느 책에 “산은 산이어서 아름답고 물은 물이어서 그윽하다”고 썼다. 성철 스님은 생전에 “불교의 근본은 중도中道”라며 ‘쌍차쌍조雙遮雙照’를 누누이 강조했다. 양변兩邊을 동시에 버림으로써 양변을 동시에 비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거’ 아니면 ‘저거’ 사이에서 선택하거나 비교하거나 방황하거나 후회하다가 종치는 게, 일체중생의 하나같은 세상살이다. 서로의 단점들을 포용하면 장점들만 드러나는 법이다. 산은 산이어서 좋고 물은 이하동문.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또한 빛나지 않을 영혼이 어디 있으랴. 죄다 자기만 빛나고 싶으니까, 남의 빛을 빼앗으면서 번번이 빚지고 사는 거지.
그리하여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사는 것처럼 참답고 복된 삶이 있을까. 친한 사람끼리는 절대로 동업하지 말아야 한다. 상처는 언제나 그대와 가까운 이들의 몫이다. 산은 물의 윗사람이 아니므로, 나는 너를 따라야 할 필요가 없다. 물은 산의 아버지가 아니므로, 너는 내가 될 필요가 없다. 우리 사이에 돈이 놓여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이렇게 다행이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래갈래 찢어진 길을 걸으며 너는 화성이 되고 나는 금성이 된다. 우리가 따로 떨어져 어디에 있든, 태양은 똑같이 공평하구나. 볕이나 쬐자. 다시는 만나지 말자.
●
화사한 꽃밭 가운데에
돌멩이 하나
친목회 사람들이 실컷 놀다가 심어놓고 간
기념식수 하나
자기만을 위해 사는 자들 속에
자기만으로 사는 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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