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법문 해설]
진공관(眞空觀)의 네 가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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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17 년 6 월 [통권 제5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720회 / 댓글0건본문
진공관의 두 가지 의미
지난 호에서는 법계삼관의 개요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호에는 법계삼관 중에서 공(空)에 대한 바른 안목을 밝히고 있는 ‘진공관(眞空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법계를 바라보는 첫 번째 안목은 ‘모든 것은 공하다’는 진공관이다. 흔히 진공관이라고 하면 속이 텅 빈 ‘진공관(眞空管)’을 떠올리기 쉽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공(眞空)’ 역시 같은 한문으로 표기되기 때문이다.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진공관의 ‘진공[vacuum]’이란 ‘물질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법계삼관에서 말하는 진공관 역시 물질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비물질의 상태이자 절대 무(無)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불교에서 말하는 진공에 대해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진공이라는 한문의 표기는 같지만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공에 대해 ‘물질이 전혀 없는 완전히 텅 빔’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진공을 절반만 이해하는 변견(邊見)이며, 공의 의미를 왜곡하는 안목이다.
공(空)의 의미에 대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관점을 ‘단멸공(斷滅空)’ 또는 ‘악취공(惡取空)’이라고 부른다. 단멸공이란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악취공은 공의 의미를 나쁘게 이해했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악취공에 빠지면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선도 없고 악도 없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모든 것을 이렇게 생각하면 당연히 선행을 행할 필요도 없고, 열심히 살아갈 필요도 없다. 그 결과 도덕이 무너지고,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법계삼관에서 말하는 진공관이란 오디오 앰프에 쓰이는 진공관처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빔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철 스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진공의 바른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화엄법계현경(華嚴法界玄鏡)』의 내용을 인용한다. 『화엄법계현경』은 청량국사 징관이 쓴 주석서로 ‘화엄법계의 깊은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뜻이다. 이 책에서 징관은 진공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설명한다. 즉 ‘회색귀공관’, ‘명공즉색관’, ‘색공무애관’, ‘민절무기관’이다. 징관이 말하는 진공의 네 가지 의미를 음미해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진공이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색을 알면 공이 드러난다
진공의 네 가지 의미 중에 첫째는 회색귀공관(會色歸空觀)이다. 색을 모아 공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색(色)이란 삼라만상의 모습으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현상적 존재들을 말한다. 우리들은 육안(肉眼)으로 눈앞에 펼쳐진 존재를 보고 객관적으로 있는 실재라고 받아들인다. 우리가 현상적 존재들을 실재한다고 믿는 근거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주는 분별의식이다. 하지만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인지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실재는 아니다. 감각기관이 보는 세계는 마치 VR 헤드셋을 쓰고 체험하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 유사한 것이다. 가상현실은 분명히 가짜임에도 불구하고 감각은 그것을 실재보다 더욱 실재 같이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감각의 눈이 아니라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보는 법안(法眼)으로 보면 어떻게 될까? 법안으로 보면 실재라고 생각했던 현상들이 마치 가상현실과 같이 실체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눈, 귀, 코, 혀, 몸, 의식이라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은 밖으로 존재하는 빛, 소리, 향기, 맛, 촉감, 사물을 보면서 실재하는 것이라고 분별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根]이 여섯 가지 대상[六境]을 만나 생성시킨 일종의 가상적 이미지일 뿐 존재의 실상 자체는 아니다.
『반야심경』에서는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고 했다. 나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가 모두 공하다는 것이다. 색이 공함으로 강이나 대지, 태양이나 바람 같은 것들도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모든 생명의 삶의 터전인 지구 역시 처음부터 존재했던 불변의 실체가 아니다. 강도, 대지도, 태양도, 바람도 그 스스로 존재하는 실체란 없다. 지구를 포함해 모든 존재들은 우주적 관계의 산물이자 끊임없이 변해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진 대상이자 물질인 색(色)을 하나씩 따져보고, 색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회색(會色)’ 즉 ‘색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색을 바로 이해하면 결국 모든 존재들은 실체가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데, 그것이 ‘귀공(歸空)’ 즉 ‘공으로 돌아감’이다. 따라서 ‘회색귀공’이란 색의 실상을 깊이 알면 색의 본질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공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명공즉색관(明空卽色觀)이다. 공의 의미를 밝혀보면 공이 곧 색이라는 뜻이다. 공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것이 아니다. 공의 의미를 깊이 밝혀보면 ‘공즉시색(空卽是色)’, 즉 공은 텅 빈 허공이 아니라 곧 물질[色]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법안으로 보면 모든 존재는 개별적 존재의 실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눈앞에는 무수한 존재들이 펼쳐져 있다. 연기적 관계 속에서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고,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나고 있다. 그런 관계성은 빗물과 토양 속의 자양분과 같은 직접적 관계는 물론 바람과 구름처럼 대기의 순환과 태양과 별과 같은 우주적 에너지의 관계로 확장된다.
결국 진공에서 말하는 공이란 개체적 존재의 허구를 밝히는 동시에 존재의 우주적 관계성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개별적 존재를 있게 만드는 ‘관계의 맥락’이 곧 진공의 의미인 것이다. 그런 관계의 맥락을 이해하면 무수한 관계가 만나는 교차점에 색, 즉 무수한 존재들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존재의 근원을 밝혀보면 공이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진공관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눈앞에는 무수한 관계적 맥락으로 얽혀 있는 수많은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공(明空)’ 즉 공의 의미를 밝혀보면 눈앞에 펼쳐진 무수한 존재들이 곧 공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색과 공의 중도
셋째는 색공무애관(色空無礙觀)이다. 색과 공이 걸림 없이 서로 소통한다는 뜻이다. 앞서 색을 바로 이해하면 공으로 돌아가고, 공을 밝혀보면 공이 곧 색임을 알게 된다고 했다. 색은 공으로 전환되고, 공은 색으로 전환된다. 이는 색과 공이 겉보기에는 상호 대립적으로 보이지만 이 둘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개별적 존재인 색은 모두 공이라는 관계적 맥락 속에 있다. 또 모든 개별적 존재의 이면에 숨어 있는 관계적 맥락인 공은 무수한 색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색과 공의 관계는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므로 색과 공은 ‘둘이 아님’ 즉 ‘불이(不二)’로 귀결된다. 대립하는 두 명제가 걸림 없이 상호 소통하고 전환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는 개별적 실체가 없음으로 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도 아니다. 그러면서 또한 색은 색대로 존재하고, 공은 또 공대로 존재함으로 색과 공은 모두 긍정된다. 이처럼 색과 공이 모두 긍정되는 것을 천태학에서는 ‘쌍조(雙照)’라고 했다. 대립되는 두 명제가 모두 드러나고 전체가 긍정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민절무기관(泯絶無寄觀)이다. 모든 것이 끊어져 붙을 때가 없다는 뜻이다. 공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색은 실체가 없음으로 색이 부정된다. 반대로 색의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는 천차만별의 존재들이 펼쳐져 있음으로 공이 부정된다. 공의 관점에서 보면 색이 사라지고, 색의 관점에서 보면 공이 사라진다. 따라서 공의 실체성은 색에 의해 부정되고, 색의 실체성은 공에 의해 부정된다. 이를 천태학에서는 ‘쌍차(雙遮)’라고 했다. 대립되는 두 명제[二諦]인 색과 공이 모두 사라져서 전체가 부정되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진공의 네 가지 의미에서 보면 모든 존재는 ‘있다[色]’거나 ‘없다[空]’는 범주를 넘어서 있다. 그리고 존재의 이와 같은 특성을 ‘쌍현쌍민(雙現雙泯)’, ‘구존구민(俱存俱泯)’, ‘쌍차쌍조(雙遮雙照)’로 표현된다. 색과 공이 동시에 모두 긍정되지만 또 색과 공이 함께 부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다운 공, 즉 진공은 존재의 중도적 특성을 말하는 것이지 진공관처럼 어떤 물질도 없는 텅 빈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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