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물에 빠진 개는 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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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7 년 1 월 [통권 제4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452회 / 댓글0건본문
요즘 청와대 관련 소식은 나의 상식과 상상력이 미치는 범위를 넘어서 있다. 약에 의지한 육신, 미신에 점령당한 정신. 어쩌다가 우리는 ‘혼이 비정상’인 그 사람에게 4년이나 국정을 맡겼는지, 개돼지의 한 마리로서 짖을 기운도 없다. 그저 언론에서 들려주는 뉴스를 얻어듣고 역겨움을 소화하느라 애쓰는 중이다. 나도 프로포 뭐라나 하는 주사를 맞고 일곱 시간쯤 잠들어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처음부터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고 지난 대선에서는 2번에게 표를 주었다. 2번 후보의 공약 중에 의료비 환급금을 1년에 3백만 원 더 주겠다는 항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3백이 아니라 백만 원만 올려준다 해도 크게 보탬이 될 거라는 기대를 품고 투표를 했으나 나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고, 당선된 그녀는 되레 환급금을 백만 원이나 깎았다. 돈 백만 원을 내 동의도 없이 뺏어간 그녀를 처음부터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보건복지부나 청와대에 항의글 한편도 올리지 않았다. 그래도 2백 넘게 환급을 받지 않았느냐, 이런 제도가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하면서 정신승리로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阿Q가 되었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밝히는 시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 있으니, 이화여대 학생들이다. ‘내 돈 왜 뺏어가냐’로 화가 났던 나처럼, 이들도 ‘내 학점 왜 뺏어가냐’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신승리로 얼버무리지 않고 끝까지 싸워서 다른 결말을 이끌어냈다. 총장을 쫒아내고 부당함을 언론에 알림으로써 진실을 밝히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매일같이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면서 나라가 이 지경인데도 어떻게 망하지 않을 수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렇게 나서서 행동하는 사람들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서 11월 언제부턴가 자의반타의반으로 촛불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2016년 12월 31일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시민들
별 생각 없이 친구 따라 나가서 촛불과 함성의 장관 속에 압도되어 있노라니, 어쩌다가 혁명의 대열에 동참한 阿Q가 된 느낌이다. 그래도 친구가 마련해준 꺼지지 않는 LED촛불을 치켜들고 ‘물러나라’ ‘구속하라’를 열심히 따라한다. 백만이 넘는 촛불이 파도를 타는 광경은 『법화경』 첫머리에 부처님이 광명을 놓아 천지를 비추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한 목소리로 외치는 구호는 시방 부처님이 이구동음으로 증명하는 소리를 연상케 한다.
이렇게 민심을 보여준 결과로 국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이제 겨우 첫 발자국을 내 디뎠다. 작은 소득을 얻어냈을 뿐인데 승리감이 만만치 않다. 아직 해결된 건 없고 더 큰 문제가 뒤에 층층이 버티고 있는데도 말이다. 대통령은 물러나야 하고 그녀를 조종하여 권세를 부리고 이득을 챙긴 자들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기필코 벌을 주어 다시는 악을 저지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하고 앞으로도 가장 깊은 독을 뿜을 세력은 역시 돈을 쥔 세력이다. 그들은 몇 %도 안 되는 지분으로 온갖 수를 써서 기업 전체를 지배하고 정치권을 조종하고 언론과 검찰까지도 쥐고 흔드는 무지막지한 힘을 행사한다. 이번에도 청와대에 돈을 뺏겼다면서 피해자인양 하는 걸 보면 교활하기 그지없다. 그들이 나쁜 줄 알면서도 우리는 이제껏 어쩌지 못했다. 이런 악한들이 최소한 눈치라도 보게 될 때까지 촛불을 놓을 수가 없다.
지금 이 상황을 예견했는지, 90년 전인 1926년 1월에 노신은 ‘페어플레이는 뒤로 미루어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써서 악랄한 세력가가 잠시 실각했을 때 여지를 두고 봐줘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글은 임어당이 한 달 전에 발표한 ‘페어플레이에 대하여’라는 글을 반박하기 위해 쓴 것이다. 1920년대 중국의 문단과 언론계는 진영을 이루고 공방전을 치르느라 매우 시끄러웠다. 그중에서도 노신은 가장 날카로운 논객이었고 상대 진영을 심히 몰아붙였다. 그의 비수에 찔린 반대편 논객들은 사납게, 혹은 점잖게 욕하며 그에게 반격을 가했다. 임어당은 페어플레이 운운하면서 좀 젊잖게 에둘러 말한 셈인데, 이에 대해 노신이 다시 이의를 제기한 것이 이 글이다. 그 속에 ‘물에 빠진 개는 … 대부분 때려야 할 부류에 속한다’는 소제목이 있는데 이 글이 요즘 우리 상황을 대변한다. 그는 “물에 빠진 개를 때리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논설을 펼친다. 여기서 개는 악랄한 세력가를 비유한다. 물에 빠진 것은 내가 그 개와 싸우다가 겨우 물에 처넣은 경우를 말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다시 나오지 못하도록 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 이유를 들어 보자.
“듣건대 용감한 권술가는 이미 넘어진 적수를 절대 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실로 우리의 모범으로 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한 가지 더 부언해야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적수 역시 용감한 투사여서 패배한 후에는 참회를 느끼고 다시 덤벼들지 않거나 또는 정정당당하게 달려들어 복수하는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다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개에 대해서 이런 실례를 적용하여 대등한 적수로 간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개는 아무리 미친 듯이 짖어대어도 기실 ‘도의’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황차 개는 헤엄칠 줄 아는지라 꼭 언덕에 기어 올라올 것이며 주의하지 않으면 몸을 부르르 떨어 사람들의 얼굴과 몸에 물방울을 덮씌워놓고는 꼬리를 끼고 뺑소니쳐버릴 것이다. 그러나 연후에도 본성은 의연히 변하지 않는다. 성실한 사람들은 그놈이 물에 빠진 것을 세례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잘못을 뉘우쳤을 것이니 다시는 사람을 물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것은 대단한 오산이다. 모두어 말해서 나는 사람을 무는 개라면 그놈이 언덕위에 있거나 물에 빠졌거나를 막론하고 다 때려야할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노신전집』2, 1991, 여강출판사)
우리는 촛불혁명으로 이제 겨우 개를 물가에 끌고 가려고 분전하고 있는 중이다. 노신은 또한 『阿Q정전』을 통해 현실을 일깨우고 혁명을 그렸다. 어쩌다가 분위기에 휩쓸려서 혁명당의 대열에 동참하게 된 바보 阿Q. 그는 곧 사형장에 끌려갈 운명인 줄도 모르고 ‘이것들을 몽땅 혁명해치워야 해.’하면서 혁명을 떠들고 다닌다. 비극적인 장면이다. 그런데 노신은 왜 좀 더 괜찮은 사람, 이를테면 용감한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 깨어있는 혁명당 지식분자의 입을 빌어 혁명을 왜치지 않고 하필 阿Q같은 자를 등장시켜 그의 입에서 혁명을 부르짖게 했을까. 거기에서 작가의 숨은 의도를 엿본다.
그나저나 阿Q같은 나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대통령께 감사를 드려야겠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 남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국정을 맡으면 모두에게 재앙이 된다는 교훈을 얻었고, 뭉쳐서 발언을 하면 우주의 기운이 돕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축원을 한마디 드린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은 뒤에 올린 머리를 풀고 그 좋아한다는 드라마나 실컷 즐기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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