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조산본적의 생애와 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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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4 년 4 월 [통권 제132호] / / 작성일24-04-05 10:05 / 조회2,664회 / 댓글0건본문
중국선 이야기 39 | 조동종의 선사상 5
조동종은 동산양개洞山良价가 동산洞山에서 종지宗旨, 종풍宗風을 확립하였으며, 그의 법을 계승한 조산본적曹山本寂(840~901)이 조산曹山에서 더욱 활발하게 펼쳐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조동종의 설립
이러한 상황은 송대 지소智昭의 『인천안목人天眼目』 권3에서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동산화상洞山和尙은 휘諱가 양개良价이고, 회계會稽에서 태어났으며, 유兪 씨이다. 오설산五洩山 영묵靈默선사에게 예참禮參하여 삭발하였으며, 운암담성雲巖曇晟 선사의 법을 얻었다. 처음에 균주筠州(지금의 강서성江西省 고안시高安市) 동산洞山에 주석하였다. 권도權道(方便)로 오위五位를 열어 삼근三根을 제접提接하였고, 일음一音을 크게 열어 만품萬品을 널리 홍법弘法 하였으며, 보검寶劍을 뽑아 들고 빽빽한 숲과 같은 여러 견해를 잘라 버리고, 묘하게 합하여 널리 통하게 하며, 이단異端의 천착穿鑿을 끊어 버렸다. 만년에 조산탐장曹山耽章을 얻으니, (동산의)적지的旨를 깊이 밝히고, 가유嘉猷(나라를 다스리는 뛰어난 계책)를 미묘하게 창도하여 도는 군신君臣에 합하고 편정偏正을 회호回互하니, 그에 따라 동산의 현풍玄風이 천하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제방의 종장宗匠들이 모두 따르고 존경하여 조동종曹洞宗이라고 칭하였다.(주1)
여기에서 ‘오위’는 바로 조동오위曹洞五位를 가리킨다. 조동에서 설하는 오위는 정편오위正偏五位로부터 공훈오위功勳五位, 군신오위君臣五位, 왕자오위王子五位 등 다양하게 전개되는 것으로 조동종의 핵심적인 선사상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하는 ‘삼근’은 삼로접인三路接人인 조도鳥道·현로玄路·전수展手를 의미하고, 혹은 삼종타三種墮의 류타類墮·수타隨墮·존귀타尊貴墮를 의미한다. 이는 양개의 핵심적인 제접법提接法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 만년에 조산탐장을 얻었으며, 조산이 동산의 법을 더욱 잘 펼쳐서 조동종이 세상에 알려졌음을 알 수 있다.
왜 동조종洞曹宗이 아니고 조동종曹洞宗인가?
그러나 조산본적의 법맥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단절되었고, 동산양개의 또 다른 제자인 운거도응雲居道膺 계열이 조동종의 법맥을 계승하면서 ‘오가’ 가운데 임제종과 함께 가장 전승이 오래되었다. 그런데 ‘조동종’이라는 명칭에 당시 사람들이 많은 의문을 제기하였다. ‘오가’ 가운데 사제를 병칭竝稱하는 경우는 ‘위앙종’이다. 여기에서 위산영우와 그의 제자인 앙산혜적의 명칭을 따서 ‘위앙종’이라고 칭명하는 바와 같이 스승을 먼저 칭하는 것이 당연하므로 ‘동조종洞曹宗’이라고 칭명하는 것이 옳다고 하거나, 아니면 ‘조동’의 조曹는 조산본적이 아니라 조계曹溪 혜능慧能을 뜻한다고 보는 경우도 나타났다. 그에 따라 『조정사원祖庭事苑』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명하고 있다.
조산曹山은 바로 동산의 사법嗣法 제자인데, 지금 동조洞曹라고 칭하지 않고 조동曹洞이라고 칭하는 것은 또한 마치 혜원慧遠은 혜지慧持의 친형인데, ‘지원持遠’으로 칭하지 ‘원지遠持’로 칭하지 않는 것과 같다. 대체로 말하기 편함을 말미암은 것이지 다른 뜻은 없는 것이다. 총림叢林에서 혹은 ‘조曹’를 가리켜 조계曹溪라고 하는데, 대체로 세예世裔(전법의 전승) 내력의 멀고 가까움을 알지 못하고 망령되이 스스로 끌어다 합친 것이니, 이에 아는 이들은 들을 필요가 없는 일이다.(주2)
이로부터 그저 말하기 편하므로 조동종이라고 칭한 것이고, 그리고 전법傳法의 전통으로는 직
접 가르침을 받은 경우를 인정한다는 점으로부터 ‘조曹’는 ‘조계曹溪’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조산본적을 가리킴을 밝히고 있다.
『경덕전등록』 권17에는 동산양개의 사법제자 26인을 언급하고 있는데(주3) 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양개의 법을 적전嫡傳한 조산본적이다. 본적의 전기는 『경덕전등록』, 『조당집』, 『송고승전』 등 대부분의 전등사서傳燈史書에 실려 있으며, 그의 어록(주4)에도 전기가 실려 있다.
본적의 생애와 동산 참알
『경덕전등록』 권17에 실려 있는 전기에서는 본적이 천주泉州 포전莆田(현복건성福建省 보전현莆田縣) 출신이며. 속성은 황黃 씨라고 한다. 어려서 유학儒學을 흠모했지만, 19세에 출가하여 복주福州의 복당현福唐縣에 있는 영석산靈石山에 들어가 25세에 구족계를 받았다.(주5) 그리고 『조당집』 권8에 실려 있는 전기에서는 “어려서부터 구경九經을 익혀 출가할 뜻을 가졌는데, 19세가 되어서야 부모의 허락을 받고 복당현 영석산에서 수업하였다.”(주6)라고 한다.
여기에서 ‘구경’은 시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유학에서 중시하는 『주역』, 『상서』, 『시경』, 『주례』, 『의례』, 『예기』, 『춘추좌전』, 『춘추공양전』, 『춘추곡량전』 등을 말하니, 본적이 어려서 유학의 경전을 공부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송고승전』 권13에 실려 있는 전기에서는 “그 고을은 당唐 시절에 관직을 많이 내었고, 선비들이 머물러 유풍儒風이 일어나 소직하小稷下라고 불렀다. 본적은 어려서 노풍魯風(선비의 기풍)에 물들어 많은 공부를 하였다.”(주7)라고 본적이 유학을 공부한 배경을 기술하고 있다.
『조당집』의 전기에는 “25세가 되자 은사가 비로소 수계受戒를 허락하였고, (구족계를 받은 후엔) 앉고 눕는 위의威儀가 마치 오랫동안 익힌 것과 같았다. 바로 방외方外로 행각을 나서서[雲遊] 처음 동산의 법연法筵을 만났다.”(주8)라고 한다. 이로부터 본적은 구족계를 받고 바로 동산에 주석하는 양개를 참알했음을 알 수 있다. 『경덕전등록』의 전기에서는 이 시기를 함통咸通 연간(860~874)이라고 하는데,(주9) 이로부터 본적이 양개를 참알한 것은 865년쯤이고, 양개의 입적(869) 몇 년 전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본적이 양개를 처음 참알하여 나눈 대화는 거의 모든 전기의 내용이 비슷하다. 일본 혜인慧印이 교정한 『무주조산원증선사어록撫州曹山元證禪師語錄』에는 다음과 같이 기재하고 있다.
동산이 “사리闍黎의 이름이 무엇인가?”라고 묻자 본적은 “본적本寂입니다.”라고 하였다. 동산이 “향상向上을 다시 말하라!”라고 하자 본적은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하였다. 동산이 “어째서 말하지 못하는가?”라고 묻자 본적은 “이름이 본적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동산이 깊은 그릇[深器]이라고 보고, 이로부터 (본적을) 입실入室하게 하였다.(주10)
여기에서 말하는 ‘향상’은 바로 향상사向上事를 말하며, 흔히 조사선의 핵심을 의미한다. 그에 대한 물음에 본래공적本來空寂하다는 ‘본적’은 명언名言에 지나지 않는다는 본적의 대답은 어쩌면 양개의 선리禪理와 계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이로부터 본적은 몇 년 동안 양개의 문하에서 머물렀다. 그러나 본적이 양개를 참알한 것을 865년이라고 한다면, 양개는 869년에 입적했으니 최대한으로 산정해도 3, 4년 정도 양개 문하에 머물렀다고 추정할 수 있다. 본적이 양개의 입적을 지켰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조산어록』에서는 본적이 양개를 떠나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여러 해를 (양개 문하에서) 머뭇거리다가 떠나겠다고 하직하자 동산은 드디어 동산의 종지宗旨를 은밀히 전수하였다. 다시 묻기를, “그대는 어디로 가려는가?”라고 하자 본적은 “변하고 바뀌지 않는[不變異] 곳으로 가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동산은 “변하고 바뀌지 않는 곳에 어떻게 가는 것[去]이 있겠는가?”라고 하자 본적은 “가는 것도 역시 변하고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주11)
앞에서 양개는 ‘불병不病’이나 ‘일물一物’, ‘무일물無一物’ 등을 본체本體로 운용하여 다양한 선리를 전개했음을 논했는데, 여기에서 본적은 ‘불변이不變異’로 화답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종지를 은밀히 전수’했다는 점으로부터 이때 양개는 본적에게 『보경삼매寶鏡三昧』 혹은 『보경삼매가寶鏡三昧歌』(주12)를 전해 주었다고 추정된다.
조산에서의 개당
이렇게 양개의 문하를 떠난 후에 본적은 조계曺溪로 가서 조탑祖塔에 참배하고 길수吉水로 돌아오자, 대중들은 선사의 이름을 알리며 개법開法을 청하였다. 본적은 육조의 유풍遺風을 추념追念하였기에 머무는 산을 조산曹山으로 개명하였다.(주13) 이러한 까닭에 세상에서는 ‘조산본적曹山本寂’이라고 칭하였다. 어쩌면 이러한 기사記事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조동종의 ‘조’를 ‘조계’로 인식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 후에 도적들이 난립하여 의황宜黃으로 옮겼다. 그곳의 청신사 왕약일王若一이 하왕관何王觀을 희사하여 본적을 주지로 청했는데, 본적은 ‘하왕何王’을 ‘하옥荷玉’으로 개명하였다. 이로부터 법석法席은 크게 흥성하였으며, 공부하는 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동산洞山의 종宗은 본적에 이르러 성행하게 되었다.(주14)
조산본적의 입적
혜인이 교정한 『조산어록』의 마지막에 본적의 입적을 다음과 같이 논술하고 있다.
선사는 천복天復 신유년辛酉年(901) 밤에 지사知事한테 묻기를, “오늘이 몇월 며칠인가?”라고 하자 지사는 “6월 15일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선사는 “조산은 평생 행각行脚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90일로 한 철[一夏]을 삼았을 뿐이다. 내일 진시辰時에 나는 행각을 떠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시각이 되자 분향焚香하고 명좌冥坐하여 천화遷化하니 세수世壽 62세, 법랍法臘은 37세였다. 전신全身을 서쪽 산비탈에 안장하고, 시호諡號는 원증선사圓證禪師, 탑명은 복원福圓이라 하였다.(주15)
이로부터 62세에 입적하였으며, 원증선사라는 시호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송고승전』에서 찬녕贊寧은 본적을 평가하여 “오위五位를 헤아리고 저울질하여 구역區域에 배대하여 그 분제分齊를 다하지 않음이 없었고, 다시 한산寒山의 시詩를 주석하여 세상에 유행하게 하였다. 대개 본적은 평소 닦음을 중시함이 뛰어난 점으로 평가되었고, 문사文辭가 훌륭하여 법재法才가 풍부하다고 칭하였다.”(주16)라고 하였다. 이로써 찬녕은 본적이 평소에도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을 견지하였고, 그의 문장이 선리禪理를 밝히는데 뛰어남을 찬탄했다고 하겠다.
본적은 양개의 종지를 계승하여 조동종을 선양하였으며, 그의 어록에는 조동종의 핵심적인 선사상인 군신오위君臣五位의 설법과 다양한 선화禪話들이 실려 있다. 그에 따라 이에 이어서 『조산어록』에 나타난 선사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각주>
(주1) [宋]智昭集, 『人天眼目』 卷3(大正藏48, 313c), “洞山和尙, 諱良价, 生會稽兪氏. 禮五洩山默禪師披剃, 得法雲巖曇晟禪師, 初住筠州洞山. 權開五位善接三根, 大闡一音廣弘萬品, 橫抽寶劍, 剪諸見之稠林, 妙叶弘通, 截異端之穿鑿. 晩得曹山耽章禪師, 深明的旨, 妙唱嘉猷, 道合君臣, 偏正回互, 繇是洞上玄風播於天下. 故諸方宗匠, 咸共推尊之, 曰曹洞宗.”
(주2) [宋]善卿編正, 『祖庭事苑』 卷7(卍續藏64, 414c), “曹山卽洞山之嗣子, 今不言洞曹, 言曹洞者, 亦猶慧遠卽慧持之的兄, 但言持遠而不言遠持. 蓋由語便而無它. 叢林或指曹爲曹溪, 蓋不知世裔來歷之遠近, 妄自牽合, 迺絶知者之聽.”
(주3)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17(大正藏51, 334a), “袁州洞山良价禪師法嗣二十六人.”
(주4) 『대정장大正藏』 47책에는 일본 혜인慧印이 교정한 『무주조산원증선사어록撫州曹山元證禪師語錄』과 역시 일본 현계玄契가 편차編次한 『무주조산본적선사어록撫州曹山本寂禪師語錄』 상·하 등 두 판본이 실려 있다.
(주5) 앞의 책(大正藏51, 336a), “泉州莆田人也, 姓黃氏. 少慕儒學, 年十九出家, 入福州福唐縣靈石山, 二十五登戒.”
(주6) 靜, 筠編, 『祖堂集』 卷8(補遺編25, 455a), “少習九經, 志求出家, 年十九父母方聽, 受業於福唐縣靈石山.”
(주7) [宋]贊寧, 『宋高僧傳』 卷13(『大正藏』50, 786b), “其邑唐季多衣冠, 士子僑寓, 儒風振起, 號小稷下焉. 寂少染魯風率多强學.”
(주8) 靜, 筠編, 『祖堂集』 卷8(補遺編25, 455a), “年二十五, 師方許受戒, 而擧措威儀, 皆如舊習. 便雲遊方外, 初造洞山法筵.”
(주9)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17(大正藏51, 336a), “唐咸通初禪宗興盛, 會洞山价禪師坐道場, 往來請益.”
(주10) [日本]慧印校訂, 『撫州曹山元證禪師語錄』(大正藏47, 526c), “山問: 闍黎名甚麽? 師曰: 本寂. 山曰: 向上更道? 師曰: 不道. 山曰: 爲什麽不道? 師曰: 不名本寂. 山深器之, 自此入室.”
(주11) 앞의 책. “盤桓數載, 乃辭去. 山遂密授洞山宗旨. 復問曰: 子向甚麽處去? 師曰: 不變異處去. 山曰: 不變異處豈有去耶? 師曰: 去亦不變異.”
(주12) [日本]慧印校訂, 『筠州洞山悟本禪師語錄』(大正藏47, 515a), “寶鏡三昧歌”
(주13) 앞의 책(大正藏47, 527a), “遂往曹谿禮祖塔回吉水, 衆嚮師名, 乃請開法, 師志慕六祖, 遂名山爲曹.”
(주14) 앞의 책. “尋値賊亂, 乃之宜黃. 有信士王若一, 捨何王觀, 請師住持, 師更何王爲荷玉. 由是法席大興, 學者雲萃, 洞山之宗至師爲盛.”
(주15) 앞의 책(大正藏47, 531b), “師, 於天復辛酉夏夜問知事曰: 今日是幾何日月? 對云: 六月十五. 師曰: 曹山平生行脚, 到處秖管九十日爲一夏. 明日辰時吾行脚去. 及時焚香宴坐而化, 閱世六十二, 臘三十七. 葬全身於山之西阿, 諡元證禪師, 塔曰福圓.”
(주16) [宋]贊寧, 『宋高僧傳』 卷13(『大正藏』50, 786b), “排五位以銓量區域, 無不盡其分齊也. 復注對寒山子詩流行寓內. 蓋以寂素修擧業之優也, 文辭遒麗號富有法才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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