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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간화선과 위빠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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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16 년 11 월 [통권 제4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16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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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와 간화선은 성성적적 삼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위빠사나 명상붐이 일고 있습니다. 위빠사나는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 인도 등 남방불교권의 주된 수행법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북방 대승불교권의 주된 수행법인 조사-간화선에 비견되는 대표적인 참선법입니다.

 

남방의 위빠사나 명상은 학자들에 따라 다양한 주장이 있는데, 어떤 이들은 부처님 당시부터 전해온 전통, 정통 수행법이라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근대에 와서 미얀마정부 차원의 지원으로 체계화된 현대적인 수행법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위빠사나가 정통이고 간화선은 중국에서 나온 것이니 부처님 법이 아니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수행법이 얼마나 부처님 법에 부합하여 생로병사의 문제를 잘 해결하느냐?이지 정통이냐 아니냐 시비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도 아니고 아무 이익도 없습니다. 간화선은 간화선 나름대로 전통과 역사를 통해 정립되어 전승된 것이고, 위빠사나도 나름대로 역사에서 정립된 수행법입니다.

 

저는 간화선이나 위빠사나나 다 같은 부처님 법에 근거한 수행법이라 보고 위빠사나도 인정합니다. 위빠사나도 부처님이 말씀하신 사성제, 팔정도, 무아에 입각한 수행체계를 정립하고 있으니 불교 수행법입니다. 간화선도 부처님의 깨달음인 중도, 연기, 무아, 공에 입각하고 있으니 불교 수행법입니다. 다 같은 불교 수행법이니 시비 갈등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간혹 자기 수행법에 집착하여 옳다고 주장하고 남의 수행법을 무시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실제 북방 전통에도 위빠사나 전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관법(觀法)’ 수행이 바로 위빠사나입니다. 사람의 해골 같은 것을 지켜보아 무아를 깨치는 백골관(白骨觀)이 그런 방법 중 하나입니다. 백골이나 호흡 등 자기가 마주 하는 경계를 지켜보아 무아, 무상으로 깨어 있는 선정으로 들어가 삼매를 완성하여 아라한과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빠사나는 관법 수행을 더 체계화하고 발전시킨 수행법이며 『대념처경』 같은 경전과 『청정도론』 등이 이론적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남방의 위빠사나나 북방의 간화선도 성성적적(惺惺寂寂) 삼매를 성취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즉, 간화선이 화두의심이 또렷또렷 성성(惺惺)하게 지속되면 번뇌망념이 저절로 사라져 성성적적 삼매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위빠사나도 호흡에 집중한다든가 어떤 대상에 집중하여 알아차리거나 깨어 있다는 것이 바로 성성(惺惺)한 것이고 그러면 동시에 번뇌망념이 사라져 적적이 되니 성성적적 삼매가 되는 것입니다. 위빠사나나 간화선은 대상이나 방법은 좀 다르지만 원리는 같습니다. 불교의 성성적적이라는 선정삼매를 완성하는 것은 똑같기 때문에 저는 같은 불교 수행법이라 합니다.

 

이 불교 삼매 원리를 모르고 이름이나 방법이 다르다고 간화선이 옳으니, 위빠사나가 옳으니 하는 양변에 집착하여 시비 갈등하는 것은 정견이 서지 못한 것으로 잘못된 공부 안목을 드러내는 것이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에 앞서 불교에 정견을 세우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신문을 보니 지금 미국 등 서양에서도 위빠사나 붐이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위빠사나를 공부하고 온 스님들이나 얼마 전 유럽과 미국의 명상센터를 답사하고 온 분의 말을 들어보니 대부분 위빠사나 명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미국의 의사들이나 심리학자들이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다가 참선 명상에 주목하고 이를 연구하여 치료와 접목시켜 상당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든 불교 수행이 의학, 과학과 만나 인간의 문제에 대안을 제시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은 좋은 현상이고 인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간화선과 위빠사나의 만남과 소통

 

2011년 4월에 3일 동안 공주 한국문화연수원에서 ‘간화선과 위빠사나 국제연찬회’가 열린 적이 있습니다. 미얀마 위빠사나 수행자인 파욱 스님과 간화선 입장에서는 제가 나가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말했지만, 간화선과 위빠사나는 깨달음을 향한 같은 불교 수행법이고 성성적적 삼매원리도 같습니다. 다만, 빨리 가고 늦게 가는 차이는 있습니다. 간화선은 곧장 질러간다면, 위빠사나는 좀 둘러가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조사선-간화선은 부처님의 깨달음 입장에서 수행을 봅니다. 중생이란 본래는 부처인데 착각에 빠져 부처니 중생이니 하며 분별망상에 집착하고 있으니 그 착각을 몰록 깨쳐 부처로 돌아가는 입장입니다. 본래부처가 부처되는 것이니 단박에 깨치는 돈오(頓悟)고 단박에 닦는 돈수(頓修)이니 빠른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가리키는 직지(直指)라고도 하고, 찰나에 여래의 경지에 이른다 하여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본래부처이니 들어가고 나가는 깨달음의 문이 없다하여 대도무문(大道無門) 등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이처럼 조사–간화선은 질러가는 수행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위빠사나는 중생이라는 입장에서 번뇌망상을 점점 비워서 『금강경』에 나오는 것처럼 수다원–사다함–아나한–아라한과를 성취하는 수행체계입니다. 점수돈오(漸修頓悟)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학에서도 우리가 중생이니 열심히 수행해서 깨달음을 성취하여 부처가 된다는 것처럼, 위빠사나도 중생에서 출발해서 깨치면 아라한이 된다고 말합니다. 깨달으면 부처가 되어야지 왜 아라한이냐고 물으니 부처님은 교조(敎祖)이니 유일한 분이고 부처님 가르침으로 깨치면 그 제자인 아라한이 되는 것이라 합니다. 아라한은 우리나라 절에 가면 나한전, 응진전에 모셔져 있는 그 나한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이 남방과 북방 불교 전통이 좀 다른 면입니다.

 

또, 남방 위빠사나에서는 중생이 깨쳐 아라한이 되는 기간을 삼아승기겁이라 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을 반복해서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도 간화선의 본래부처, 돈오와는 입장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위빠사나와 간화선은 부처님의 깨달음에 근거하니 같은 불교 수행법입니다. 다른 면에만 집착하여 서로 차별하고 부정하면 그것은 양변에 집착하는 것이니 정견이 아닙니다. 단지, 중생의 입장에서 닦아 가느냐, 부처 입장에서 보느냐 그런 차이입니다.

 

그래서 저는 간화선과 위빠사나를 이렇게 비유합니다. 만약 우리가 설악산 정상을 올라간다면 가장 빨리 정상에 도달하는 코스가 있고 좀 시간이 걸리지만 평탄한 코스가 있습니다. 가장 빠르게 정상으로 가나 힘이 드는 길이 간화선이라 한다면, 위빠사나는 좀 느리지만 힘이 덜 드는 길을 가는 것이라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설악산 정상에 이르는 것은 똑같습니다. 어느 길이 옳고 그른 것은 없습니다. 자기 체력과 여건에 맞춰 가면 됩니다. 다 같이 설악산, 깨달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다툴 이유가 없습니다.

 

국제연찬회가 열린 당시에는 처음 열린 것이라 일간 신문 기자들이 공주까지 와서 마지막 날 파욱 스님과 제가 같이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느 신문 기자가 제게 물었어요. “만약 스님 제자가 위빠사나 공부를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하길래 저는 “아, 좋다. 다 같은 불교 수행이니 열심히 하라고 할 것이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파욱 스님한테도 제자가 간화선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파욱 스님은 “나에겐 그런 제자가 없다.”고 답했어요. 그 대답을 듣더니 한 기자가 “게임 끝났네.”라는 말을 하더군요.

 

간화선의 가치

 

간화선과 위빠사나는 같은 불교 수행법인 점에서는 평등한데, 다만, 간화선은 본래부처, 직지, 돈오라는 특색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본래부처이고 절대적이고 무한한 지혜와 복덕을 본래 다 갖추고 있으니 단박에 깨치는 돈오, 직지의 길을 제시하는 까닭에 앞으로 세계에 명상이 늘어날수록 간화선이 더 주목을 받을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간화선 수행자들의 준비가 부족하고, 수행자의 모델이 많지 않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다행히 수좌회와 봉암사가 직접 봉암사 앞에 명상마을을 세우고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지도자도 양성하여 간화선을 대중화, 국제화하겠다고 나섰으니 기대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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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에서 20여 년간 종무원 생활을 하다가 고우 스님을 만나 성철스님 『백일법문』을 통독하고 불교의 핵심인 중도에 눈을 뜬 뒤 화두를 체험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불교인재원에서 생활참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유튜브 생활참선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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