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혐오 + 공포 = 살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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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6 년 7 월 [통권 제3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193회 / 댓글0건본문
며칠 전 티셔츠에 붙은 바퀴벌레 때문에 혼절 직전까지 갔던 일을 계기로, 오래 시달려온 벌레 공포증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처음에 무슨 계기로 이렇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 그랬던 것 같다. 증세는 이렇게 반복된다. 가까운 거리에서 벌레를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다. 금세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다리에 힘이 빠진다. 얼마나 무서우면 예불시간에 ‘반야심경’을 외울 때 ‘무유공포원리…’에서 벌레가 떠오를 지경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주위에 특정한 것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길을 가다 다가오는 비둘기를 보고 기겁하는 후배를 위해 그들을 쫓아준 일도 있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는 친구와 8층을 함께 걸어 올라간 적도 있다. 공포도 가지가지다.
심리학 책 많이 읽은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진짜 공포는 따로 있는데 정면으로 대면할 힘이 없기 때문에 좀 덜 무서운 상대로 치환하여 공포를 쏟아 붓는다는 것이다. 끝없이 겪으면서 끝없이 도망가는 식으로. 그럴 듯도 하지만 그게 왜 벌레인지는 답이 되지 않는다. 피할 수 있는 한 피하는데, 혼자 있는 방에 들어왔을 때는 절대로 공존할 수 없다. 혐오스럽고 무섭기 때문에 기어코 죽이게 된다. 혐오+공포=살생. 히틀러가 이러지 않았을까. 자비 문중의 제자가 되어 이 나이 먹도록 이러고 산다는 게 한심하고 쪽팔린다.
벌레가 왜 무서운지는 알 수 없다. 피를 나눈 식구 중에 벌레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 유전은 아닌 듯하다. 나만 왜 이런지, ‘부모미생전’ 소식을 벌레에게 물어야 할 판이다. 부모님이 계실 때는 벌레가 나타나면 비명을 지르고 발광을 하면서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면 두 분이 턱으로 서로 떠밀다가 진 사람이 휴지 한 장 뽑아들고 가서 살짝 잡아 문밖에 놓아주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존경할 만했다. 문제는, 이제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은 걸 후회할 때는 딱 이때뿐이다. 지금이라도 할까. 지역신문에 구인광고를 낸다면 이럴 것이다. ‘남편 구함. 돈도 사랑도 필요 없고 벌레만 잡아주면 됨.’
독거노인으로 혼자 살게 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원치 않는 공포와 맞닥뜨렸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집에 들어가 방에 불을 켜자마자 방바닥에 있던 바퀴벌레 한 마리가 잽싸게 장롱 밑으로 달아났다. 아주 큰 놈은 아니었으나 공포증에게는 장수하늘소만큼 커 보였다. 잠시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하며 예의 증상이 시작되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채, 숨었던 그놈이 다시 나올까봐 장롱 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겨우 혼을 수습하고 때려잡을 채비를 했다. 행여 발에 붙기라도 하면 어쩌나, 양말 한 겹 더 신고 그 위에 슬리퍼를 신었다. 목장갑을 낀 위에 고무장갑을 끼고 파리채를 찾아 손에 들었다. 이렇게 해서 완전무장하고 전투에 임하는 병사가 되었다.
도구들을 챙기러 욕실에 갔다 오는 사이 그놈이 자리를 옮기지나 않았을까 의심하며 장롱 쪽만이 아니라 온방을 두루 훑어가며 기다렸다. 그러기를 삼사십 분 쯤, 장롱 밑에서 불쑥 튀어나와 책장 밑으로 쏙 들어 가버렸다. 예상했던 바인데도 워낙 순식간인 데다 너무 놀라서 손을 쓸 수 없었다. 있는 줄 아는데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이 증폭된다. 두려움에 떨며 선 채로 책장 밑을 주시한 지 한참 만에 그놈이 다시 나왔다. 이번엔 방바닥 쪽이어서 들고 있던 파리채로 힘껏 내리쳤다. 그 순간 파리채 모가지가 딱 하고 부러졌다. 나도 모르게 힘을 너무 준 것이다. 그 소리에 놀라서 주저앉고 말았다. 겨우 시선을 주어 그놈 생사를 확인하니 약간 빗맞았는지 반쯤 죽어있었다. 그게 더 끔찍하다. 얼른 일어나서 잡히는 대로 제일 무거운 책을 들고 서류봉투를 그 밑에 대고 위에서 조준하여 떨어뜨렸다. 확인사살을 한 셈이다. 그 무거운 책이 하필이면 『한국불교전서』 7권이었다. 불조의 힘을 빌려 살생하는 데 썼으니 염라국에서 가중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제 이걸 어떻게 치운단 말인가. 한 시간 넘게 서서 시달리고 나니 기운이 쪽 빠졌다. 일단 쉬자 하고는 옆방으로 가서 누워 잠을 청했다. 날이 밝으면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치울 참이었다. 그러나 자꾸 신경이 쓰이고 증세가 가시지 않았다. 줄담배를 피운 뒤 심호흡을 하고 다시 일어나, 한번 쓰고 버릴 걸레 감을 두 개나 찾았다. 대면하기 전에 우선 안경부터 벗었다. 그 형체가 눈에 자세히 들어오는 걸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검은 비닐봉투에 쓸어 담고 10ℓ 쓰레기봉투에 즉시 옮겨 담고 나서 방바닥에 남은 흔적을 덜덜 떨면서 닦아냈다. 그러고도 며칠 그곳을 밟지 못했다. 벌레와 걸레가 담긴 쓰레기봉투를 안에 둘 수 없어 문 밖에 내놓고나니 새벽 4시였다. 벌레 하나 때문에 무려 네 시간을 떨다가 결국 살생으로 끝을 맺었다.
잠시 눈 붙이고 일어나 믹스 세 개 뜯어 넣고 커피를 달달하게 마신 뒤에 나와서 처음 간 곳이 동네 ‘다이소’였다. 어제 부러뜨린 파리채를 사기 위해서다. 손잡이가 길어 거리를 유지한 채 벌레를 때려잡을 수 있기 때문에, 그건 단순한 플라스틱이 아니라 내게는 심리적 도구이다. 그렇기에 자끈동 부러지는 순간 깜짝 놀라워서 ‘弔파리채文’을 쓸 지경이었던 것이다. 다섯 개를 한꺼번에 사서 쟁여놓고 나니 신경안정제를 먹은 거나 다름없었다.
며칠 뒤에 길에서 우연히 동네 의사를 만난 김에 붙들고 물어보았다. 벌레공포증이 뭐냐고, 왜 그런 거냐고. 그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 벌레가 누구냐?’를 찾아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누구냐, 넌?’ 어릴 때부터 지금껏 살아오면서 무서웠던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엄마, 오빠, 선생, 생계에 대한 불안, 죽음에 대한 공포……. 특정할 수 없었다. 이걸 화두로 공부를 지어갔으면 지금쯤 ‘한소식’ 할 때가 되었을 텐데, 여전히 나아진 것이 없다.
며칠 전 공포증이 도진 일을 친구에게 말하다가 화제가 ‘누구냐, 넌?’에 이르자 신심 깊은 그 친구가 이런 법문을 해주었다. 그 벌레는 보살이다. 전생에 맺힌 업을 풀 기회를 주려고 그런 모습으로 왔는데 몰라보고 그냥 놓쳤다면서, 다음에 보거든 대접을 잘 해드리라고 한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니 『능엄경』에서 읽었던 것이 생각난다. 같은 때 같은 곳에 태어나 살다가 만나는 중생은 어느 전생에든 서로 빚을 진 관계이다. 재물이나 노동력이나 목숨을 빚지고 그 빚을 갚다가 다 갚지 못했거나 초과해서 갚았을 경우, 다음 생에 빚을 갚으러 다시 만난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만치 갚아야 연말정산이 끝날지, 업의 잔고를 볼 수 없는 중생은 계속 윤회하면서 죄를 짓게 마련이다. 삼매를 닦으면 죄업이 고속으로 녹는다고 하는데 그럴 힘은 없으니, 이미 지은 죄를 참회하고 더 이상 짓지 않고자 다짐하는 수밖에 없다. 언제쯤 되어야 공포에 질려 살생을 저지르는 대신 관세음바퀴보살, 곱등이세지보살, 돈벌레지장보살……. 이렇게 명호를 붙여놓고 반려동물로 삼아, 친구 말대로 잘 대접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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