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로 만나는 스님 이야기]
선종 제2조 혜가(慧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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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 2018 년 2 월 [통권 제58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284회 / 댓글0건본문
신광(神光)은 자주(磁州) 사람으로 마음이 넓고 뜻이 높은 사람이었다. 유학(儒學)을 하면서 많은 책을 널리 읽었고 현묘한 도리를 잘 논하였는데 한번은 이렇게 탄식하였다.
“공자와 노자의 가르침은 법도와 규범에 관한 것이며 불교의 경론도 묘한 도리를 다하지는 못했다. 요즘 듣자니 달마(達磨)대사가 소림사(少林寺)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는데, 도인이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거기 가서 현묘한 경계에 도달해야 되겠다.”
마침내 그곳으로 가서 새벽에서 밤까지 찾아뵈었으나 대사는 단정히 앉아서 벽만 마주보고 있을 뿐이었다. 스승의 가르침이라고는 한마디도 듣지 못하자 신광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옛사람은 도를 구하기 위해 뼈를 두들겨 골수를 냈고 몸을 내던져 게송을 들었다 하니 옛사람도 이렇게까지 했는데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그 해 12월 9일 밤에는 큰 눈이 내렸다. 신광은 뜰 가운데서 있었는데, 새벽이 되자 눈이 무릎까지 쌓이니 달마 대사가 가엾게 생각하여 물었다.
“그대는 눈 속에 서서 무슨 일을 구하느냐?”
신광은 슬픈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오직 자비로 감로문을 열어 널리 중생을 제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묘한 도는 오랜 겁을 부지런히 구해야 한다. 하기 어려운 것을 해내야 하고 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내야 하는데 그대는 어찌 작은 덕과 작은 지혜, 경망스런 마음과 오만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진실된 가르침을 엿보려 하느냐?”
이에 신광은 가만히 날카로운 칼을 꺼내서 스스로 자기 왼팔을 잘라 스승 앞에 갖다 놓으니 달마는 그의 근기를 알아보고 마침내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도 처음 도를 구할 때는 법을 위해 자기 몸을 잊어버렸다. 너도 지금 내 앞에서 팔을 잘랐으니 그 구도심은 옳구나[可].”
그리하여 이름을 ‘혜가(慧可)’라고 바꾸게 하였다.
신광이 물었다.
“모든 부처님의 법인(法印)에 관해 말씀해 주십시오.”
“모든 부처님의 법인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저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스님께서 마음을 편하게 해주십시오”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편안케 해주마.”
“마음을 찾아보아도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벌써 너의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다.”
신광은 여기서 깨달았다. <사명담수(四明曇秀), 『인천보감(人天寶鑑)』>
몽당담악(夢堂曇噩) 스님이 진(晋)・당(唐)・송(宋) 삼대의 『고승전』을 다시 편수하면서 종전의 십과(十科)를 육학(六學)으로 바꾸었다.
그 중 ‘선학(禪學)’의 이조 혜가조사가 팔을 끊고 법을 구했다는 고사가 기재되어 있는 선종의 서적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유독 도선(道宣) 율사만은 이렇게 말했다.
“혜가 스님이 도적을 만나 팔을 잘린 것인데 함께 살았던 임(琳) 법사마저도 오히려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임 법사 또한 도적에게 팔을 잘리자 혜가 대사는 그를 감싸안고 치료했는데 그의 몸 움직임이 불편한 것을 보고서 임 법사가 이상하게 여기자 이 일로 혜가 조사는 ‘네가 어떻게 나에게도 팔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느냐’고 하였다.”
몽당 스님이 이 말을 『고승전』에 인용하려고 하자, 그 당시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혜가 대사는 불법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깊은 눈 속에서 시체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그는 목숨도 아끼지 않았는데 더구나 한쪽 팔이겠는가? 참으로 팔을 자르는 일이란 사람으로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요즘 세상에서도 거친 성깔을 지닌 졸장부들도 이따금씩 자기의 팔을 자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대사께서는 법을 위하여 일신을 잊고 마음가짐이 간절했는데 이것쯤이야 하지 못할 턱이 있었겠는가. 설령 모든 사실이 율사의 말대로라고 한다면 어떻게 도적이 사람을 살상하는 데 팔뚝 하나만을 자르는 데 그쳤겠는가? 그리고 이미 팔이 잘렸다면 함께 사는 사람마저 이 사실을 모를 턱이 있었겠으며, 또한 어떻게 잘린 팔을 가지고서 다른 사람을 감싸주고 치료할 수 있었겠는가? 이는 결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도선 율사는 살아 있는 보살이랄 수 있는데 그가 어찌 거짓말을 했겠는가?”
“도선 율사가 전하는 『인물전』이란 도선 율사 자신이 낱낱이 그들의 행적을 목격한 것이 아니라 필시 다른 사람이 채록한 사적에 근거한 것이다. 이로 미루어볼 때 남이 채록하는 과정에서 와전될 수 있다는 것이지 도선 율사가 선종과 율종이 다르다 하여 거짓을 조작한 것은 아니다. 내 말이 틀림없을 것이다. 또한 확신할 수 있는 일은 확신 있게 전하고 의심스러운 일은 의심스러운 대로 전하자는 뜻도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후세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이 함부로 뜯어 고치고서 율사의 말을 빌려 세인의 믿음을 얻으려고 들 것이다.”
몽당 스님은 이 말을 수긍하고 이 이야기를 『전등록』에 근거
하여 『고승전』에 수록하였다. <서중무온(恕中無慍), 『산암잡록(山庵雜錄)』>
도선(道宣, 596~667) 율사가 이조 혜가 스님의 전기를 쓰면서,
“혜가 스님은 도적을 만나 팔을 잘렸지만 불법으로 마음을 다스려 조금도 아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다” 하였는데 촉승(蜀僧) 신청(神淸) 스님은 그의 말을 인용하여 잘못된 글을 썼다.
나는 그 글을 읽고 언제나 허탈한 웃음을 지었으며, 또한 시비를 가리는 데 어두운 도선 스님의 안목을 한탄하였다.
앞에서 이미 담림(曇林) 스님과 이조 혜가 스님의 전기를 함께 소개하였다. 담림 스님의 전기에 의하면, “담림 스님은 도적을 만나 팔을 잘렸는데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소리가 끝이 없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를 ‘팔 없는 담림[無臂林]’이라 하였다”고 되어 있다.
담림 스님과 혜가 스님은 절친한 사이로 하루는 함께 밥을 먹게 되었는데 혜가 스님도 한쪽 손으로 식사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 까닭을 물으니, “나도(혜가) 한 팔이 없은 지 오래되었다.”고 하였다 한다. 그렇다면 친한 사이로서 도적을 만나 팔을 잘렸는데도 그렇게 오랫동안 모르고 있다가 그때서야 물을 수 있겠는가?
이조 스님은 불법을 구하기 위하여 팔을 잘랐기 때문에 세상에서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담림스님은 도적을 만나 잘렸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도선스님이 부질없이 이에 부화뇌동하여 선대의 성인을 거짓 모욕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리고 저 신청이라는 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기에 이처럼 터무니없는 말에 근거하여 글을 썼는지, 또 한 번 웃음이 나올 뿐이다.
그러나 맹자가 말하기를, “모든 글을 다 믿는다면 차라리 글이 없느니만 못하다.”고 하였으니, 학자들은 과연 이 말을 거울 삼아야 할 것이다. <혜홍각범(慧洪覺範), 『임간록(林間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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