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초파일, 교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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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6 년 6 월 [통권 제38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153회 / 댓글0건본문
초파일 며칠 전에 정심사에 가서 연등을 달았다. 부처님 덕분에 밥도 먹고 법도 먹는 불제자로서, 돈 내고 연등 달기는 난생 처음이라 감회가 깊었다. 그렇다고 신심이 장해진 건 아니고 형편이 좀 나아진 것이다. 이 또한 부처님 덕분이라 감사하고 감사했다. 연등 접수번호가 333인데, 그 숫자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냥 기분이 좋았다.
초파일 하루 전에 동네 친구의 청으로 집에서 가까운 절에 갔다. 절은 행사 준비로 한창 바쁜 중이었다. 마당을 지나 법당으로 올라가다가 친구가 머리 위에 달린 연등 꼬리표를 보고 물었다. “헉! 2547번이야. 그럼 이 절은 초파일에 얼마를 버는 거야?” “절에 다녀도, 거기까진 나도 몰라. 계산하기 복잡하니까 그냥 2천 명이라 치고, 등 하나에 5만원이면 1억, 10만원이면 2억이겠네.” “암튼 억 소리 나는구나.”
법당에 들어가 절하고 불단 앞으로 가서 부처님을 우러러보며 복전함에 돈을 넣었다. 돈이 복전함에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 나의 옥체보전과 지금 하는 알바가 잘 끝나기를 빌었다. 돌아서며, 아참, ‘남을 위해 기도하라’ 그러셨지. 참 어려운 일이구나 했다. 친구도 지갑에서 돈을 꺼내 복전함에 넣으며 나보다 몇 배 많은 찰나를 부처님과 대화하는 듯했다. 이십대 자녀가 둘이나 있으니 그 기도에 얼마나 절절한 마음을 담았겠는가. 그러나 친구는 연등을 달지 못했다. 고단한 노동으로 버는 적은 수입에, 초파일 연등은 문턱이 높은 것이다.
초파일에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벼르던 책을 읽었다. 어느 방송 인터뷰에서 저자를 보고 관심이 쏠려 그의 책을 사놓고 읽지 못했다가, 흐르는 침을 닦으며 책뚜껑을 열었다.
지은이는 박성수, 책 제목은 『둥글이의 유랑투쟁기』(한티재, 2014), ‘자발적 가난과 사회적 실천의 여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둥글이는 그의 필명이다.
그는 길바닥 떠돌이다. 2006년 8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10년을 떠돌고 있다. ‘산천경개 좋고 바람 시원한 곳’이 아니라 방방곡곡 크고 작은 도시를 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배우고 전단지를 나눠주며 일인 캠페인을 벌인다. 그는 집도 절도 없다.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없고 오직 걸어서 이동하고 텐트치고 자며, 구걸도 한다. 그가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한 이유는 중생이 아프고 지구가 아프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사회복지사로, 환경운동가로 일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복지관 난방비 7백억 삭감’,
위정자들이 단번에 이런 결정을 내리면 겨울 내내 추위에 떨어야 하는 많은 장애인들을 보고, 일개 복지사로 활동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아무리 아껴 쓰고 분리수거를 잘하고 화학제품을 쓰지 않아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앙은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그는 70억 인구 하나하나가 ‘잘 먹고 잘 살려는’ 일상적 욕망으로부터 지구의 모든 문제가 시작되고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고,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음을 깨닫고, 무엇보다도 70억 인구 중 하나인 자신의 ‘일상적 야만’으로부터 벗어나야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혼자서 길을 나선 것이다.
유랑의 삶에서 매일매일 텐트 칠 곳과 물과 먹을 것을 구해야하는 그도 절과 교회와 성당의 문턱이 높음을 절감했다.
수차례 문전박대를 당한 그는 오히려 무덤 옆이 야영하기 좋다고 한다. 자기를 쫓아내는 민가의 정착민과는 달리, 무덤 주인들 중에는 문 열고 나와 쫓아낸 귀신은 아직 없다고 한다. 그가 둥글교를 창시하고 교주가 된 사연과 함께 그의 사상을 들어보자.
종종 예외는 있었지만, 나그네를 박대하는 절과 교회, 성당의 모습은 일반적인 것이었다. 유랑 초반에는 예수의 사랑과 부처의 자비를 구하러 절이나 교회, 성당을 찾아다녔지만, 반복되는 박대를 버티지 못하여 그 후로는 아무리 잘 곳이 없어도 교회와 절, 성당은 찾아가지 않았다. 가진 것 없는 나그네는 더 이상 그런 곳에서 예수와 부처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렇다면 재산이라고는 배낭 하나밖에 없는, 말 그대로 ‘길을 떠도는 거지’가 이 시대 예수의 사랑과 부처의 자비를 느낀 곳이 어디였을까? … 둥글이가 체험한 그곳은 바로 ‘공중화장실’이다.
많은 교회와 절이 재력에 비례해 사람을 대우한다. 하여 나처럼 가진 것 없는 유랑자에게는 텐트 칠 주차장 공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와 달리 공중화장실은 사람들을 오는 순서대로 받아들이고, 차별 없이 싸게 하며, 필요한 만큼 머물게 한다. 이 시대 예수의 사랑과 부처의 자비가 머무르는 거의 유일한 곳. 그렇게 유랑자 둥글이에게 공중화장실은 축복이 넘치는 성전이 되었다. 둥글이의 이러한 화장실에 대한 찬양은 화장신을 모시는 ‘둥글교’를 창시하게 했고, 둥글이는 그 둥글교의 1대 교주이다.
그래서 그는 공중화장실을 ‘화장성전’이라 부른다. 한번은 배탈이 나서 찾아간 공중화장실 문이 닫혀 있어서 이런 신음을 토해냈다고 한다. “화장신이시여! 당신의 성전을 찾지 못하게 막는 저들(공원관리자)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스스로가 무엇을 했는지 모르나이다!” 고통에 신음하던 그가 마을회관 화장실까지 오리걸음으로 오백 미터를 가서 일을 보고 나니, 그 화장실 위로 서광이 비치면서 화장신이 현신해서 이런 법음을 남겼다고 한다. “아침 먹고 배불러 뒤가 무거운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싸게 하리니…” 그리고 둥글이는 서원을 한다. “부디 공중화장실처럼만 살게 하소서… 화장렐루야~, 나무화장보살~.”
명랑하다 못해 경박하게 보이는 그의 행동은, 그러나 그 속에 깊은 자기반성과 사회에 대한 통찰과 생명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담겨 있다. 이렇게 사무량심을 실천하는 그가 불교인들에게 주는 일침이 있다. ‘모든 법이 마음으로부터 나온다.’는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여 사회 현실에 철저히 무관심한 채 마음공부만 편안히 읊조린다는 것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면이 있는 것이 우리 불교계의 현실이다. 그의 일침을 듣고, 멈추지 않아도 빤히 보이는 것들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눈감으며, 일체유심조라는 말속에 숨어살지나 않았는지, 돌아보고 부끄러웠다.
개인의 자발적 가난으로 지구의 몸살이 해결될 수 있을까. 이미 늦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둥글이처럼, 견딜 수 없어서 뭐라도 해야 한다면, 둥글이처럼 해야 하지 않을까. 부처님이 계셨다면, 그를 보고 선재, 선재라 하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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