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어록의 뒷골목]
그대만, 남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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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6 년 3 월 [통권 제3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352회 / 댓글0건본문
인생은 여행 혹은 게임이다.
여행이므로, 모험을 즐겨도 괜찮다.
게임이므로, 질 수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끝은 죽음.
멀리 가도 좋고
돈을 잃어도 좋다.
그대만, 남겨라.
제42칙
남양의 물병(南陽淨甁, 남양정병)
어떤 스님이 남양 혜충(南陽慧忠) 국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본래의 몸인 노사나불(盧舍那佛)입니까?” 국사가 말했다. “내게 저 물병을 가져다 다오.” 스님이 물병을 가져다줬다. “다시 본래 있던 곳에다 둬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본래의 몸인 노사나불입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옛 부처님이 이미 지나가신 지 오래다.”
눈앞에 사과가 있었다. 그래서 먹었다. 창자 속에서 흐르는 목숨. 나는 그가 만든 강물 위에 누워 또다시 다가올 내일을 염려하고 있다. 허기를 삼킨 식욕은 머지않아 또 다른 허기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만다.
앞으로도 무수한 생명들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가, 달래었다가, 똥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살아있으라 살아있으라… 별로 살고 싶지 않는 나의 입을 억지로 벌려, 자신의 몸을 으깨어가며 재촉한다.
안타깝지만 그리 미안하지는 않다. 나 역시 누군가의 오징어다리가 되어 잘근잘근 씹히고 있으니까. 어제 먹은 그 사과가 훗날 다시 나의 표적이 되더라도, 걱정 마라. 이미 나는 복숭아나 쇠고기가 돼버린 채여서, 내게는 입이 없을 것이다.
만유(萬有)의 쉴 새 없는 먹음과 먹힘 속에서, 결국은 본전이라고 자위한다. 너도 보살 나도 보살. 너도 개새끼 나도 악마. 물병의 위치를 옮기듯, 죽음이란 그저 이 방에 있다가 저 방으로 들어가는 일. 옛 부처님이란, 방금 전에 먹었던 사과 또는 욕설.
돌이킬 수 없고 앞질러야만 하는 1차선 위에서, 나는 조금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속절없이 뒤처지다 보면, 본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으리라.
※노사나불 : 비로자나(毘盧遮那佛) 부처님이다. 궁극의 진리를 의미하는 법신불(法身佛)이다. 진리 그 자체이므로 형체가 없으며 관념을 초월해 있다. 법신불이 정신으로 나타나면 보신불(報身佛)이 되고(수행) 육체로 나타나면 응신불(應身佛)이 된다(자비). 이른바 삼신불(三身佛) 사상이다.
오랜 고행으로 부처가 되어 서방정토에 머무는 아미타(阿彌陀) 부처님은 보신불이다. 진리가 인격화되어 이 땅에 온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은 응신불이다. 불자들은 대개 응신불에게선 현실의 고통을, 보신불에게선 죽음의 공포를 위로받는다. 결국엔 생사가 본래 없음을 일깨워 달관과 초연의 마음가짐을 선사하는 것이 법신불의 역할이다. 살아도 한 세상, 죽어도 한 세상. 이리 살아도 죽고, 저리 죽어도 산다.
※남양 혜충(南陽慧忠, ?~775) : 중국 당대(唐代) 스님. 어려서 6조 혜능에게 수학하고 그의 법을 이었다. 숙종과 대종 두 황제가 극진히 모셨으나 환대에 연연하지 않았다. 혜능 문하의 5대 종장(宗匠) 가운데 하나다. 마조 도일의 남종선에 맞서 하택 신회와 더불어 북종선의 창달에 힘썼다. 경전을 공부하지 않던 남종선과 달리 교학을 중시했으며 반드시 부처님의 말씀을 근거로 수행하라 가르쳤다. 시호는 대증(大證).
제43칙
나산의 일어나고 멸함(羅山起滅, 나산기멸)
나산이 암두에게 물었다. “일어나고 멸함이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암두가 “돌(咄)!”하고 외쳤다. 그리고 말했다. “누가 일어났다 멸했다 하는가?”
자유로우려면, 조금은 포기해야 하고. 조금은 양보해야 하고. 일단은 내려놓아야 하고. 단칼에 잘라야 하고. 평판으로부터 초연해져야 하고. 사람을 가려 사귈 줄 알아야 하고. 돈을 모아두어야 하고. 일은 필요 없지만, 돈이 없다면 일이 있어야 하고. 혼자 있을 때도 즐거워야 하고. 죽음 앞에서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 아, 드디어 끝났구나!
그러나 지금은 무한증식의 후기자본주의 시대. 좀 더 높은 차원의 자유를 원한다면, ‘자유’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돌(咄) : 선문답을 하거나 선지(禪旨)를 펼 때에 말과 행동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를 표현하기 위해 쓰는 의성어. 혀를 차는 모양의 ‘쯧쯧’과 비슷하다.
※암두 전활(巖頭全豁, 828~887) : 중국 당대(唐代) 스님. 앙산 혜적(仰山慧寂)의 문하에서 수행하다가 ‘몽둥이 교육법’으로 유명한 덕산 선감(德山宣鑑)의 법을 이었다. 은둔하던 와룡산(臥龍山)에 학인들이 운집하면서 문중을 이뤘다. 시호는 청엄(淸儼).
※나산 도한(羅山道閑, ?~?) : 중국 당나라가 멸망한 직후 열린 5대(代)10국(國) 시대를 살았다. 구산(龜山)에서 출가해 수계한 뒤 전국을 유행했다. 석상 경저(石霜慶諸)에게 법을 물었으며 암두 전활(巖頭全豁)에게서 법을 얻었다. ‘나산기멸’이 그가 깨닫게 된 일화다.
제44칙
흥양의 묘시(興陽妙翅, 흥양묘시)
어떤 스님이 흥양 청부(興陽靑剖)에게 물었다.
“사갈(沙竭) 용왕이 바다에서 나오니, 건곤(乾坤)이 고요한데 마주 보면서 다가설 때의 일이 어떠합니까?”
흥양이 일렀다. “묘시조(妙翅鳥)가 우주에 나섰으니, 거기에 머리를 내밀 자 누구인가?”
스님이 다시 물었다. “홀연히 머리를 내미는 자를 만날 때는 어떠합니까?”
흥양이 다시 일렀다. “새매가 비둘기를 덮치듯 하리라. 그대 보지 못했는가? 어루(御樓) 앞에서 시험하고서야 비로소 참됨을 아느니라.”
스님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세 걸음 물러서야 되겠습니다.”
흥양의 마지막 대답이다. “눈먼 거북(烏龜子, 오구자)이 (부처님이 앉은) 수미좌 밑에 두 번 머리 찧게 하지 마라.”
흥양의 탱천하는 법력(法力)을 추켜세우는 글이다. ‘사갈’은 범어(梵語)의 음역(音譯)으로, 바다를 가리킨다. 용왕은 바다의 지배자다. 그러나 용을 잡아먹는다는 금시조 앞에선 고양이 앞의 쥐새끼다. 객승은 그래도 흥양에게 슬금슬금 다가서는데, 판판히 두들겨 맞는 모양새다. ‘오지 마라. 다친다.’ ‘두 번 다시 오지 마라. 죽는다.’ 포식자가 피식자를 덮치듯, 번뇌를 잔인하게 뜯어먹으라. 자비광명이 어둠을 태워죽이듯.
※흥양 청부(興陽靑剖, ?~?) : 중국 송대(宋代) 스님. 기걸(奇傑)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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