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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한 생각 속에 3천 가지 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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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16 년 4 월 [통권 제3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03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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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과 알파고

 

최근 인공지능 알파고가 프로 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을 꺾으면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바둑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려 10의 170제곱으로 온 우주의 원자 수보다도 많다고 한다. 바둑은 그와 같은 경우의 수를 읽어내는 계산능력은 물론 전체를 꿰뚫는 통찰력과 직관이 필요해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지 못한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알파고는 내리 3승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도대체 알파고는 어떤 성능을 지녔기에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인간을 이길 수 있었을까? 보도에 따르면 구글은 무려 33조원이 넘는 엄청난 돈을 투자하여 알파고를 개발했다고 한다. 초고속 네트워크로 연결된 분산형 컴퓨터인 알파고에는 중앙처리장치(CPU)가 1202개, 개인용 컴퓨터에 비해 8배나 빠른 성능을 자랑하는 그래픽연산장치(GPU)가 176개나 달려 있다고 한다. 이런 첨단의 물리적 조합을 바탕으로 알파고는 초당 10만 개에 달하는 경우의 수를 검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여기에 16만 건에 달하는 바둑 고수들의 기보가 입력되어 있고, 이들 정보에 담긴 착점 정보는 무려 3천 만 건에 달한다고 한다.

 


 


문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알파고는 셀프러닝, 딥러닝, 강화학습 같은 알고리즘을 직접하여 스스로 학습하고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덕분에 알파고는 엄청난 스펙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3만 시간에 걸쳐 무려 10만 회에 달하는 컴퓨터 대국을 되풀이 했고, 이로 인해 애초 설계된 것보다 훨씬 강력한 지능을 갖추게 되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알파고와 인간의 대결은 애초 매우 불공정한 대결인 셈이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엄청난 정보와 성능을 지닌 인공지능에 맞서 대등한 게임을 했고, 심지어 4번째 대국에서는 불계승을 거두기까지 했다. 인공지능에 동원된 엄청난 물리적 장치와 놀라운 성능, 입력된 정보의 양과 셀프러닝을 통한 자기강화 훈련 등을 고려하면 실로 놀라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기계가 마침내 인간을 이겼다며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알파고의 스펙과 성능을 고려한다면 정작 놀라운 것은 알파고의 승리가 아니다. 오히려 엄청난 성능을 지닌 컴퓨터와 맞서 승리를 따낸 인간의 정신과 마음의 무한성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경기는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무궁무진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광대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광대한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인간을 이기기 위해 얼마나 방대한 자원과 정보가 동원되었는가를 돌이켜보면 마음의 광대함과 무한한 능력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일체유심조와 마음의 무한성

 

돌아보면 인간이 축적한 어마어마한 지식정보와 첨단의 물질문명 등은 모두 인간의 지적 능력이 만들어 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삼라만상은 모두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화엄경』의 말씀을 새삼 주목하게 된다. 『화엄경』의 가르침 중에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라는 게송이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보아야 하나니,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법계란 지구와 같은 시공을 넘어 광활한 우주와 삼라만상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와 같이 광활한 법계의 모든 존재와 물리적 현상들이 모두 마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화엄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체유심조’란 가르침에 대해 인식론적으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세상사가 모두 마음먹기 달렸으니 비록 상황이 나쁘고, 삶에 위기가 닥쳐도 마음을 잘 써야 한다는 의미로만 받아들인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는 인공지능을 보면 일체유심조의 가르침에 대해 다시 음미해 보게 된다.

 

머지않아 알파고보다 몇 천배 성능이 뛰어난 인공지능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런 인공지능들이 갖가지 기계와 물리적 존재를 만들어내고, 삶의 공간을 설계하고 세상자체를 창조할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창조된 물리적 존재와 세계의 근원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마땅히 엄청난 성능과 정보처리 능력을 지닌 인공지능이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삼라만상은 모두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화엄의 가르침은 문학적 수사에 그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알파고 역시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인공의 마음이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 자회사의 이름도 ‘DeepMind’ 즉 ‘심층의 마음’이다. 인공지능을 설계한 엔지니어들도 알파고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인공의 마음’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갖고 있는 엄청난 정보와 능력을 인간의 마음도 갖고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천태학에서 말하는 ‘일념삼천(一念三千)’설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념삼천이란 ‘한 생각 속에 삼천 가지 법(法)이 갖추어져 있다’는 교설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3천이라는 수는 교학적 근거를 통해 도출된 숫자이다. 하지만 3천이라는 숫자는 반드시 3천이라는 수학적 의미가 아니라 ‘모든 것’, ‘전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3천이 도출된 과정을 살펴보면 ‘3천’이란 숫자는 온 법계가 동원되어 만들어진 숫자이기 때문이다.

 

천태 대사의 『마하지관』에 따르면 “한 마음[一心]이 십법계를 구비하고, 한 법계가 또 십법계를 갖추니 백 법계이며, 한 세계가 삼십 가지 세간을 갖추어 백 법계가 곧 삼천 가지 세간을 갖춘다. 이 삼천법계가 모두 한 생각의 마음에 있다[三千在一念心].”고 했다. 천태학에서 설명하는 십법계(十法界)란 중생이 살아가는 세계가 열 가지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이라는 6도윤회의 세계와 성문・연각・보살・불이라는 네 가지 성인의 세계가 바로 십법계다.

 

흥미로운 것은 십법계를 구성하는 각각의 세계에도 역시 십법계가 구비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인간계에도 지옥계에서 불계까지 있고, 지옥계에도 지옥계부터 부처님 세계까지 있고, 부처님 세계에도 지옥부터 불계까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각의 십법계에 십법계가 구족되어 있음으로 전체적으로 보면 백 법계가 된다.

 

찰나의 생각에 담긴 3천 가지 법

 

그렇다면 백법계는 어떻게 삼천법계로 확장될까? 『법화경』에 따르면 법계는 ‘십여시(十如是)’라는 열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현상적으로 나타난 모든 존재의 형상인 여시상(如是相), 모든 법에 구비된 내적 특성인 여시성(如是性), 법계의 실질적 체성이 되는 여시체(如是體), 제법이 갖고 있는 힘과 능력인 여시력(如是力), 제법의 힘에 의해 나타나는 작용인 여시작(如是作), 여시작에 따라 나타나는 근본원인으로써 여시인(如是因), 여시작에 따라 나타나는 조건인 여시연(如是緣), 근본원인에 따라 나타나는 여시과(如是果), 조건에 따라 나타나는 여시보(如是報), 이상 아홉 개의 여시가 모두 평등하다는 여시본말구경(如是本末究竟)이 그것이다.

 

이상과 같은 법계의 열 가지 특징을 백법계에 곱하면 천 법계로 확장된다. 이와 같은 천 가지 법계에 다시 세 가지 세간이 곱해진다. 『대지도론』에 따르면 세간에는 오음세간(五陰世間), 국토세간(國土世間), 중생세간(衆生世間)이라는 삼종세간이 있다고 했다. 따라서 천태학에서 말하는 삼천세계란 ‘십법계×십법계×십여시×삼종세간=삼천법계’라는 교리적 내용에서 도출된 개념이다.

 

그런데 일념삼천설의 핵심은 이와 같이 광대한 삼천법계가 사실은 우리들의 ‘한 생각(一念)’ 속에 모두 들어 있다는 것이다. 번쩍하고 사라지는 찰나의 생각 속에 아득한 시간이 함축되어 있고, 광활한 법계가 펼쳐져 있다. 성철 스님은 “중생심에서도 여래의 지혜와 덕성이 구비되어 있으니, 한 생각 마음의 번뇌가 일어나는 것에 십법계・백법계・삼천세계가 그대로 구비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찰나의 생각 속에는 번뇌에서 열반까지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천태 대사는 “마음이 곧 일체법[心是一切法]이고, 일체법이 곧 마음[心是一切法]”이라고 했다. 마음 밖에 삼라만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일체법 밖에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알파고의 메모리에는 바둑에 관한 모든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한 순간에 10만에 달하는 경우의 수를 계산한다. 마찬가지로 그 앞에 앉아 있는 이세돌 9단의 뇌리에서 순간순간 명멸하는 찰나의 마음에도 삼천법계가 담겨 있다. 따라서 그와 같은 마음을 꿰뚫어보면 삼라만상과 삼천법계를 알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여기서 불교는 삼천법계를 하나하나 연구하는 대상에 대한 탐구에서 마음에 대한 성찰로 전환한다. 삼라만상의 근원이 마음이라면 그 마음을 깨닫는 것이 곧 모든 존재의 근본[法性]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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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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