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산책]
“한 마디 개구리 소리가 천지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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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제원 / 2018 년 7 월 [통권 제6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169회 / 댓글0건본문
해마다 6월 하순부터 한 달가량 장마철(rainy season)이 찾아온다. 여름철 대표적인 기후인데, 절기상 하지(夏至. 6월 21일)와 대서(大暑. 7월 23일) 사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 기간 날씨는 변동성이 커서, 맑은 하늘에 소나기가 쏟아지는 등 지역에 따라 수시로 ‘청담晴曇’을 달리한다. 장마 어원을 찾아보니, ‘댱長’과 ‘마ㅎ’를 합친 16세기 고어古語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음운변화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내리는 강우현상’으로 의미가 굳어졌다. 그래서, ‘장맛비’ 단어를 따로 만들었다. 짧게는 열흘 남짓 일찍 마감되기도 하지만, 길게는 30일 가량 수시로 내린다. 장마철 별칭도 20여개나 된다. 요즘엔 양력 5월 하순부터 출하되지만, 예전엔 장마철에 매실이 생산돼 ‘매우梅雨’라고 불렀고, 매미 소리가 터지기 시작해, ‘명조鳴蜩’라고도 불렀다. 또, 석류꽃이 피어 ‘유하榴夏’ 또는 ‘유화월榴花月’의 이칭異稱도 생겼다.
春天月夜一聲蛙(춘천월야일성와)
달 밝은 봄날 밤에 한마디 개구리 소리가
撞破乾坤共一家(당파건곤공일가)
천지를 온통 깨워 하나로 만드네!
正恁麽時誰會得(정임요시수회득)
이럴 때의 소식을 그 누구 알랴!
嶺頭脚痛有玄沙(영두각통유현사)
잿마루에서 다리 다친 현사玄沙가 있네
- 장구성(張九成. 1092~1159), 개구리 한 소리[一聲蛙]
현사玄沙는 복건성福建省의 성도省都인 복주福州에 있는 산이름이다. 당나라 사비 스님은 현장 포교를 펼친 현사산이라는 산의 이름[山名]을 법호로 삼았다. 현사사비(玄沙師備. 836~908)는 ‘비두타備頭陀, 즉 두타제일’라고 부를 정도로, ‘집중수행의 선봉’으로 꼽혔다. 4구句엔 깨달음의 동기를 담았다. 현사가 스승인 설봉선사 문하에서 공부하다 여의치 않아 행각行脚에 나섰다. 그런데, 길 가던 도중 돌뿌리를 걷어차는 과정에서 ‘서슬(sharp edge)’에 다리를 다쳤다.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터진 ‘고통 소리’에 번개 같은 깨달음이 일었다. 작가인 장구성張九成은 송나라 때, 시랑侍郞 즉 차관급 인사였는데 ‘뜰 앞 잣나무[庭前柏樹子]’를 화두로 공부했다. 앉으나 서나 늘 생활 참선을 하던 중 화장실에서 ‘개구리 소리(蛙聲)’를 듣고 깨우쳤다. 현사와 장구성의 깨침 동기는 ‘소리sound’에 있다. ‘성문성각聲聞醒覺’이다. 현사는 자신의 통증소리에, 장구성은 개구리 소리에 홀연忽然 득도했다.
通身是口掛虛空(통신시구괘허공)
온 몸 입이라 허공에 걸려
不管東西南北風(부관동서남북풍)
동서남북 어느 바람 가리지 않고
一等與渠談般若(일등여거담반야)
한결 같이 그를 위해 반야를 설하니
滴丁東了滴丁東(적정속적정속)
땡그랑 땡! 땡그랑 땡!
- 천동여정(天童如淨. 1163~1228), 풍경風鈴
색청色聽, 즉 색채청각이 있다. 음파가 귀를 자극할 때, 소리뿐 아니라 색상을 함께 느끼는 공감각共感覺이다. ‘감각전이感覺轉移’라고도 하는데, 환각幻覺과는 전혀 다르다. 환각은 외부 자극이 없는데도 마치 어떤 사물이 있는 것처럼 지각하는 것을 말한다. ‘공감각 현상’은 ‘현대 뇌과학’이 입증하고 있다. 통상 시각은 ‘2차 감각’인 경우가 많다. 청각과 후각, 촉각, 미각 등이 ‘1차 감각’을 일으키고, 연쇄작용으로 ‘2차 시각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는 실험결과가 있다. ‘공감각 능력’은 성인 보다 연소자가 더 예민하고 강하다는 연구도 있다. 그런데, ‘근根 · 식識 · 경境’ 역시 ‘뇌인식’을 반영한다. ‘근根 · 식識 · 경境’이 스스로 상호 작용한다는 일반인식과는 다르다. 눈으로 직접 봤다고 하지만, 정작 눈은 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눈은 창문窓門에 불과하고, ‘뇌가 인식한 이미지’를 ‘눈으로 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청각 역시 마찬가지다. 풍경소리를 들었다고 하지만, 귀가 들은 것은 없고 ‘뇌가 인식한 것’을 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남송의 천동여정天童如淨 선사는 65세의 일기로, 당시 기준으로는 비교적 장수했다. 선시禪詩 ‘풍령風鈴’은 선시 중 백미로 꼽힌다. 반야송般若頌이라고도 부르는데, 무정설법無情說法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생명이 없는 중생이 설하는 진리의 소리가 오롯하다. 정취靜趣를 보면, 풍향과 풍속에 따르는 금속 발성金屬發聲이 허공에 향해 샘물처럼 음향音響을 뿜고 있다. 제 호흡 한 자락 없어도, 하늘과 땅 사이에 숨결을 새기는 ‘기연機緣’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풍령風鈴의 속성엔 ‘언어의 의미’와 같은 ‘바람과 교감력’이 있는지, 매 순간 마다 그 소리를 그대로 공감하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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