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백세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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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6 년 1 월 [통권 제3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556회 / 댓글0건본문
한해 또 한해, 아리랑고개 넘듯 잘도 넘어간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백세인생이라는 노래가 장안에 떠서 화제다. 들어보니 가락이 친숙하고 노랫말이 와 닿는다.
육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팔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구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 전해라
백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또 넘어 간다
팔십 세에 저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자존심 상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구십 세에 저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텐데 또 왔냐고 전해라
백세에 저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극락왕생 할 날을 찾고 있다 전해라
백 오십에 저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나는 이미 극락세계 와 있다고 전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살아가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뜬금없이 이런 농담이 병치되었다. 50대 남자는 마눌님 외출할 때 어디 가느냐고 묻다가 맞고, 60대는 밥 달라고 보채다 맞고, 70대는 안 씻어서 더럽다고 맞고, 80대는 아침에 눈떴다고 매일 맞는다는 얘기다. 이 웃픈 농담을 떠올리면 백세인생이 그리 축복은 아니련만, 이 노래에는 개똥밭이라도 좋으니 어떻게든 저승길을 미뤄보려는 마음이 담겼다. 이 노래가 그만큼 공감을 얻는 이유는 지금이 백세시대이기도 하고 또 누구나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맞는 남편도 때리는 아내도 수행자도 무지한 중생도 금수저도 흙수저도 죽음만은 어김없이 평등하게 다가온다. 몇날 몇시에 저승사자를 만날지는 몰라도 착실히 그 길로 향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기 전에 이미 안다는 것이 중생의 신통이라면 신통이다. 반면 언제 죽을지 알고서 죽는 날을 잠시 보류하는 신통을 보이신 분이 있으니, 바로 부처님이다. 이것을 부처님의 유수행(留壽行)이라고 한다.
『장아함경』「유행경(遊行經)」에는 부처님 열반하실 즈음의 상황이 자세히 전한다. 깨닫고 전법한 지 45년, 머물던 동네에 마침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죽을 판이었다. 대중이 함께 안거하면 흉년에 민폐가 되리라 염려한 부처님은 우선 제자들을 먹을 것 있는 동네로 다 보냈다. 남은 제자는 달랑 아난뿐이었다. 이렇게 둘만 남아 안거하다가 그만 병이 나셨다. 부처님이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것을 본 아난은 당황했고 두려워했고 걱정이 되어 어쩔 줄 몰라했다.
부처님은 속으로‘병이 나서 온몸이 매우 아프지만 제자들이 없을 때 열반에 드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이제 정근을 해서 자력(自力)으로 수명을 잠시 붙잡아 두어야겠다.’하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 나이 팔십, 낡은 수레와 같다. 그러나 방법을 써서 고치면 목적지까지 갈 수 있듯이, 내 몸도 방편을 써서 잠시 명을 머물려 둘 수 있다.” 그리고는 서늘한 곳에 조용히 앉아 고통을 참으며 한 생각도 떠올리지 않고 무상정(無想定)에 드셨다. 그러자 몸이 편안해졌다.
안거가 끝나고 부처님은 타지에 보냈던 제자들을 바이샬리로 불러 모아놓고 공개적으로 알렸다. 석 달 뒤에 열반에 들겠다고. 남은 석 달 동안 마지막까지 탁발해서 먹고 제자들에게 의심나는 것을 물으라 하고 법을 설했다. 하루는 탁발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언덕에서 몸을 천천히 돌려 바이샬리를 돌아보며, 이 아름다운 성을 보는 것도 마지막이구나 하셨다. 아난은 그 모습이 마치 코끼리 같았다고 전한다.
그리고는 쿠시나가라를 향해 열반의 길을 떠나셨다. 강을 건널 때 강가에 남아 못내 아쉬워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을 본 부처님은 당신의 발우를 물에 동동 띄워 보내는 매너를 보이시기도 했다. 가는 길에 목이 말라 아난에게 물을 떠오라 시키기도 하고 다리가 아파 쉬어가기도 했다. 파바에 들러 춘다의 공양을 받고 배탈이 나서 심하게 앓다가 죽을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도 춘다를 비난하지 말라고, 그가 먹을 욕을 미리 막아주시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수행한 힘으로 고통을 참아내며 명을 연장하고, 어떤 인연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살뜰하게 보살피셨다. 이래서 부처님이 초인이지만, 이 경에서 또 한편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부처님도 여느 노인처럼 배고프고 목마르고 아팠다는 사실이다.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임박해서 온몸으로 보여주신 아픈 모습이 마지막 가르침이다. 희유하다면 이것이 희유하다.
백세시대라 그런지 내 스승은 부처님의 세수를 훌쩍 넘기셨다. 지난 번 찾아뵈었을 때 거처하시는 다경실 앞마당에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저쪽을 보고 계셨다. 뒤에서 “스님!” 하고 부르자, “어? 누가 왔어?” 하고 천천히 몸을 돌리셨다. 순간 불경스럽게도 부처님이 바이샬리를 돌아보던 모습이 겹쳐졌으나 깡말라서인지 그 모습이 코끼리 같지는 않았다. 아직은 너무 쓸 만하시지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이젠 단번에 획 돌아보지 못 하시네 하는 안타까움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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