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원효 혜능 성철에게 묻고 듣다 ]
이해의 두 길 - 이해와 마음 그리고 돈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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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 2025 년 6 월 [통권 제146호] / / 작성일25-06-04 10:29 / 조회225회 / 댓글0건본문
〈우리 마을 사람은 선하다〉라든가 〈저 마을 사람은 악하다〉라는 것은 집단에 대한 선악 규정이다. 중생 인간은 사람과 집단의 차이를 ‘선’이나 ‘악’이라는 개념으로 묶어 동일시하거나 타자화한다. 개념적 규정의 이 ‘동일시’와 ‘타자화’야말로, 인간의 생존과 이익을 확보하거나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을 것이다.
중생 언어인간의 생존 전략과 동일성 관념
언어 집짓기의 1차 건자재인 개념은, 그것에 담긴 것들에 동일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담기지 않은 것들을 배제함으로써 건축 자재의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라는 명칭은 그것으로써 지칭되는 대상에 동일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우리에 속하지 않는 것들을 타자로 배제함으로써 명칭의 기능을 발휘한다. 이러한 언어 개념의 ‘동일시와 타자화’는 인간의 생존과 이익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소가족 규모이건 대가족 규모이건, 아니면 사회적 집단이건, 인간은 애초부터 군집 생활을 선택해야 생존할 수 있었다. 군집한 인간은 생존과 이익을 위해 집단으로 방어하거나 공격해야 할 상황에 수시로 노출된다. 그럴 때는 구성원들의 결집력이 강할수록 유리하다. 소속 집단의 구성원들을 묶는 힘은 ‘동일시’에서, 대적해야 할 상대에 대한 전투력은 ‘타자화’에서 극대화된다. 그런 점에서 언어는 매우 효과적이다. 언어와 개념은 동일성과 차별성을 명백히 구획함으로써 분류와 비교, 선택을 수월하게 한다. 언어의 이러한 속성은 생존의 강력한 도구가 된다. 혈연이나 지연, 국가나 민족, 집단을 언어로 묶어 동일시함으로써, 방어와 공격의 동력인 ‘같음의 결집력’과 ‘다름에 대한 배타력’을 극명하게 확보할 수 있다.

생존 이익의 확보를 위한 또 하나의 언어적 전략은, 판단·평가·견해를 ‘무조건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비 판단이나 선악 평가는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과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 견해의 수립은 진실을 온전히 포착하고 구현하기 위한 ‘진리 탐구의 의지’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개인과 소속 집단의 이익을 구현하려는 ‘이익 의지’가 판단과 평가를 지배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진실에 반하더라도 이익 확보에 유리한 판단과 평가를 선택하려는 이익 의지가 일상을 주도한다. 만약 〈우리는 선이고 정의, 저들은 악이고 불의〉라는 견해를 조건적/상대적으로 수용한다면,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집단 응집력과 배타의 전투력은 원천에서부터 희석되고 만다. 조건적/상대적 이해가 사실에 부합하고 합리적이지만, 이익 의지는 진실과 합리성을 얼마든지 외면한다.
언어를 통한 ‘동일시의 결집력’과 ‘타자화의 배타력’, 견해의 ‘무조건화와 절대화’는, 이처럼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관철하는 강력한 기능을 수행한다. 붓다는 인간이 이익의 배타적 관철을 위해 언어적 허구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동시에, 그 언어 환각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일러준다. 연기緣起(조건에 의한 발생)의 도리로 ‘언어·개념은 동일·독자·불변의 것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견해의 조건적 성립’을 밝혀, ‘동일성 관념이라는 언어 주술’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연다.
이해 능력에서 생겨난 두 길 – 이해의 두 계열
인생을 낙관적으로 보거나 비관적으로 보는 것은 관점이나 견해의 차이다. 그리고 관점·견해는 이해에서 생겨난다. 또한 인생에 대한 이해는 삶을 보는 관점·견해에 따라 달라진다. 관점·견해와 이해는 이처럼 서로 영향을 준다. 그러나 이해가 더 근원적이다. 관점·견해는 이해에서 생겨나 다시 이해 형성에 개입한다. 그래서 삶의 내용을 결정하는 내면의 관건은 결국 이해다.
중생 인간의 이해는 ‘동일성 관념’에 물들어 있다. 그래서 대상이 지닌 차이/특징들을 ‘불변의 내용을 유지하는 독자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궁극 실재’, ‘본질’, ‘실체’, ‘본체’ 등은 ‘동일성 관념에 따른 이해’를 담아낼 때 흔히 채택되는 용어다. 그러나 동일성 관념에 따라 차이/특징을 이해하는 것은 ‘차이/특징의 사실 그대로’를 왜곡하는 것이다. 인간의 지성은 이 ‘동일성 관념에 의한 사실 왜곡 문제’를 꾸준히 성찰해 왔다. 인간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방식으로 성찰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보를 이어 왔다. 인간 세상이 이 정도로 유지되는 것은 그 성과 때문이다. 만약 ‘동일성 관념에 의한 차이/특징의 사실 왜곡’을 그대로 방치했더라면, 인간은 진작에 자신과 세상을 파멸시켜 버렸을 것이다.
언어능력을 확보하여 고도화시킨 이후, 언어인간의 행보는 크게 두 길 위에서 펼쳐졌다. 하나는, ‘동일성 관념으로 차이/특징의 사실을 왜곡하는 길’을 만들어 질주하는 행보다. 인간들에서 나타나는 특징과 차이들을 불변의 본질로 간주하여 수직 위계적 질서와 권력을 구축하는 행보다. 〈유색 인종은 모두 열등하다. 이 특징은 불변의 인종 본질이다. 따라서 하인과 노예로 부려도 정당하다〉, 〈백색 인종은 모두 우월하다. 이 특징은 불변의 인종 본질이다. 따라서 열등한 인종 위에 군림해도 된다〉라는 등의 신념과 견해로, 차이를 차별하고 억압하는 관습·문화·제도를 그 길에 구축한다. 이 길에서는, ‘차이들에 대한 부당하고 억압적인 차별 질서’, ‘강자들의 약탈적 권력 제도’,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노골적 혐오와 폭력’, ‘부당한 성차별 문화와 제도’ 등이 위세를 부린다. 동일성 관념에 기초한 ‘자기화의 소유욕’(탐욕)과 ‘배제적 혐오와 폭력’(분노), 이를 정당화시키는 ‘견해·이론·사상, 종교와 문화, 관습과 제도’(무지)가 이 길에서 번성한다. 삼독三毒의 길이다.
다른 하나는, ‘동일성 관념에 의한 차이/특징의 사실 왜곡을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길’에서의 행보다. 이 행보는 동일성 관념에 의한 허구와 그 해로움을 다양한 내용과 수준의 성찰로 폭로하는 한편, 그 치유의 대안 역시 다양한 영역에서 여러 방식으로 제시하며 구현해 왔다. 인문학에서의 행보가 특히 돋보인다. 이 행보는, 〈인종·민족·신분·성 등의 차이에 대한 동일성 관념의 왜곡과 그에 수반하는 현실적 차별은 불합리한 사실 왜곡이고 폭력이다〉라는 점을 구체적 근거와 이론으로 비판하면서 대안을 제시한다.
이러한 성찰을 관통하는 것은 ‘관계와 섞임 및 변화에 대한 통찰’과 ‘차별된 차이들의 가치 복원’이다. 〈불변의 동일한 순수 본질을 지닌 차이는 원래 없고, 모든 차이는 역동적으로 서로 섞여 있다. 따라서 인종이나 민족, 종교나 성별 등의 차이를 불변하는 동일 본질의 차이로 간주하여 우열 질서를 수립하는 것은 허구이며 폭력적이다〉라는 통찰이 관통하고 있다. 이런 통찰로써 차이들을 보는 관점과 관계를 재정립하는 노력이 이 길의 행보를 이끌고 있다. ‘차이의 상호이해’와 ‘차이들의 호혜적 어울림’이 펼쳐지는 지혜와 자비의 길이다.
동일성 관념에 의한 차이 왜곡과 차별을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길은, 흥미롭게도 붓다와 그의 통찰을 이어가는 불교 전통의 길과 겹친다. ‘동일성 관념과 그에 의한 차이/특징의 왜곡 및 차별’을 가장 근원적 수준에서 통찰하면서 그 치유의 사유와 방법을 펼치는 것이 붓다의 길이기 때문이다. 〈불변·독자의 자아는 없으며, 자아 현상은 여러 신체적·정신적 조건들이 역동적으로 얽혀 발현하는 것이다〉(오온무아), 〈모든 현상은 조건들의 인과적 연관에 따라 발생·유지·변화·소멸한다〉(연기), 〈모든 현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무상), 〈무아·연기·무상한 현상을 동일성 관념으로 채색하여 불변·독자·절대의 것으로 본다면, ‘사실 그대로’와의 충돌로 인한 개인적·사회적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라는 ‘고통에 관한 진리[苦諦]’, 무아·연기·무상의 도리를 삶과 세상에 구현하여 ‘사실 그대로에 의거한 이로움’을 누리게 하는 팔정도 설법, 〈차이[相]들에 대한 시선과 관계 방식에 따라 삶과 세상의 이로움과 해로움이 결정된다〉라는 육근수호 설법.-동일성 관념이라는 원초적 무지[無明]와 그에 따른 허구 및 고통을 치유하는 붓다 가르침의 핵심이다.
인간의 이해 능력은 이처럼 상반된 두 길을 열었다. ‘동일성 관념으로 차이/특징의 사실을 왜곡하는 길’과 ‘동일성 관념에 의한 차이/특징의 사실 왜곡을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길’이 그것이다. 전자의 길에서는, ‘차이 왜곡의 차별’ ‘차이들의 상호 배제적 다툼’을 부추기는 다양한 관점과 사상 및 신념, 관습·문화·제도가 번성한다. ‘차이들에 대한 폭력적 차별’이 다양한 방식으로 기승을 부린다. 이기적 유전자가 형성되어 그 지배력을 행사하는 길이다. 이 길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생겨난 후자의 길. 그 위에서는 차이/특징들에 대한 왜곡과 폭력적 차별을 비판하고 극복해 가는 성찰과 혜안, 실천들이 아름답게 피어난다. 언어인간의 사유와 욕망, 감정과 행위를 ‘차이들의 상호이해와 호혜적 어울림’의 통로로 바꾼다. 이기적 유전자를 치유하고 바꾸는 길이다.
12연기와 ‘이해의 두 계열’ 그리고 ‘이해 돈오’
12연기는 ‘이해의 두 계열’과 ‘마음의 두 계열’ 모두에 관한 설법으로 읽을 수 있다. 12연기를 ‘이해의 두 계열’에 관한 설법으로 보면, “무명을 조건으로 (무명에 매인) 의도 작용[行]이, (무명에 매인) 의도 작용[行]을 조건으로 (무명에 매인 의도 작용을 조건으로 삼는) 알음알이[識]가 발생한다. …”(주1)라는 ‘무명 연기[無明緣起]’는, ‘동일성 관념에 매인 이해’(무명)에 의한 삶과 세상의 인과적 전개에 관한 설법이다. ‘동일성 관념으로 차이/특징의 사실을 왜곡해 가는 이해의 길’을 설하고 있다.
이에 비해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무명에 매인) 의도 작용[行]이 소멸하고, (무명에 매인) 의도 작용[行]이 소멸하기 때문에 (무명에 매인 의도 작용을 조건으로 삼는) 알음알이가 소멸한다. …”라는 ‘지혜 연기[明緣起]’는, ‘사실 그대로 보는 이해’(지혜)에 의한 삶과 세상의 인과적 전개에 관한 설법이다. 〈‘동일성 관념에 의한 차이/특징의 사실 왜곡’을 비판하고 극복해 가는 이해의 길〉을 설하고 있다. (12연기는 ‘마음의 두 계열’에 관한 설법이기도 하다. 이 점은 이어지는 다른 글에서 거론하겠다.)
‘동일성 관념에 매인 이해의 길[無明緣起]’을 걷는 행보는, ‘차이/특징의 사실 그대로를 왜곡하는 사유·감정·욕망·행위’를 펼친다. 그 길에서는 왜곡된 차이로 인해 겪는 인위적 괴로움[苦]들이 난무한다. 이에 비해 ‘사실 그대로 보는 이해의 길[明緣起]’을 걷는 행보는, ‘차이/특징의 사실 그대로에 상응하는 사유·감정·욕구·행위’를 전개한다. 그 길에는 ‘사실 그대로에 상응하는 갖가지 이로움[樂]’이 가득하다.
돈오에는 ‘이해 돈오’와 ‘마음 돈오’의 두 측면이 있다. 이해 돈오는 ‘동일성 관념에 따라 차이/특징의 사실을 왜곡해 가는 이해 계열’에서 ‘한꺼번에 빠져나오는 이해 국면’이다. 이해수행 길의 요목要目이고 관문關門이다.
<각주>
(주1) 『상윳따 니까야』 「연기 경(Paṭiccasamuppāda-sutta)(S12:1); 「분석 경(Vibhaṅga-sutta)」(S12:2) 등. 괄호의 내용은 맥락을 반영하여 필자가 삽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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