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 길라잡이 ]
향상일로, 한 길로 올곧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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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스님 / 2025 년 6 월 [통권 제146호] / / 작성일25-06-04 10:50 / 조회280회 / 댓글0건본문
수행 방법은 다양하게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기도수행을 하시는 분들이 상황에 따라 어떤 때는 이 기도를 하고 어떤 때는 저 기도를 합니다. 기도 방법이 다양하게 있는 만큼, 한 사람이 하는 기도의 종류도 많은 편입니다.
기도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기도 주제에 집중함으로써 의식을 모아 자신의 심리상태를 느끼고 관찰하여 그릇된 심리작용을 바로 잡기 위함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렇게 그때마다 이것저것 하는 기도가 효과가 있겠는가 하는 점에서는 우려스럽습니다.
중국의 운서주굉雲棲袾宏(1535~1615) 스님은 일찍이 이런 폐단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군사가 오랑캐를 토벌함에는 진을 치고 싸워 도적을 죽임으로써 전승全勝을 거둘 수 있다. 도적을 죽이는 데는 칼이나 큰 창을 쓰기도 하고, 혹은 추錘나 창, 심지어 활이나 도끼, 돌 등 갖가지 무기를 사용하곤 한다. 오직 중요한 것은 한 무기를 얼마나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가 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을 도道를 배우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무명혹장無明惑障은 저 도적과 같고, 갖가지 법문은 칼이나 창 따위와 같으며. 혹장惑障을 파破한 것은 전승全勝을 거둔 것이다. 이로써 어떤 무기를 사용하느냐 하는 것보다는 도적을 죽이는 일이 더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다. 도적을 죽이고 나면 큰일이 모두 끝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무기는 강을 건너는 뗏목에 불과하다 할 것이니, 만약 근본을 힘쓰지 않고 경망하게 칼은 사람을 죽일 수 있고 창은 죽이지 못한다고 한다면 어찌 이치에 옳겠는가? 참선參禪하는 자가 염불念佛하는 자를 희롱하여 상相에 집착한다 하거나, 염불하는 자가 선정禪定을 익히는 자를 공空에 떨어졌다고 꾸짖는 것도 이와 같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경經에서 “근원에 돌아가면 두 길이 없으나 방편으로 많은 문門이 있다.” 하시고, 선덕善德은 “사람이 먼 길을 감에 그곳에 도착하는 것으로 목적을 삼을 뿐, 도중에서 굳이 쉽고 어려운 것을 따질 것은 아니다.” 하였다. - 『죽창수필』(불광출판부, 2014)
위의 글에서 운서주굉 스님이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요? “전장에 나간 병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듯, 공부하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내 안의 도적, 즉 무명혹장을 퇴치하는 것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일대사인연을 해결하려면
왜냐하면 무명혹장을 퇴치하면 바로 내 안의 보물인 ‘진여자성眞如自性’이 확연히 드러날 것이요, 그렇게 되면 모든 근심 걱정은 말할 것이 없고 나고 죽는 생사의 속박으로부터도 벗어나는 대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위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해결한 깨달은 사람[覺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와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명혹장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까요?
운서주굉 스님은 다시 비유로써 말씀하십니다.
병사가 도적을 죽이는 데는 칼이나 창, 활, 도끼, 돌 같은 갖가지 무기를 사용한다. 하지만 오직 중요한 것은 한 무기를 얼마나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가 하는 것일 뿐이다.
여기서 칼이나 창 등의 무기는 갖가지 법문이나 수행 방법 등을 비유한 것입니다. 전장에 나가 전투에 임하는 병사에게 눈앞에 제공된 갖가지 다양한 무기가 있다고 해서 그 모든 무기를 지니고 가서 싸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많은 무기들 가운데 자기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무기 한두 가지를 가지고 싸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안의 물든 마음을 개선하여 순수하고 청정한 본래마음을 회복하고자 하는 사람이 즉 공부수행을 하려는 사람이 마음 닦는 공부 방법이 많다고 해서 그 모든 방법을 다 익힐 필요도 없고 그 렇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수행법이 있고 그중 해보고 싶은 수행법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중에서 주主 수행법 하나, 보조補助 수행법 하나를 택해 자나 깨나 오로지 그 방법을 수행함으로써 무명혹장을 타파打破하려는 승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명혹장을 타파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분열되어 있는 내 의식을 모아서 내 마음 세계로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며 집중해 들어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즉 삼매三昧를 닦아 삼매에 드는 힘을 키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하지 말고 주 수행법으로써(경우에 따라서 보조수행법의 도움을 받으며), 깊게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이 점이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중요합니다.
자기 안으로 집중하는 수행
요즘 우리 불자佛子들의 신행信行 형태를 보면 참 다양하게 기도를 하는구나 싶습니다. 예를 들면, 극락왕생이나 영가천도를 위해서는 아미타불기도나 지장기도를 하고, 건강 쾌차를 위해서는 약사여래기도를 하고, 사업이 잘 되고 가족의 평안을 위해서는 관음기도 혹은 신중기도나 산신기도를 하고, 입시기도 때는 또 무슨 기도를 하고…. 이 절 가면 이 기도 하고, 저 절 가면 저 기도 하고, 이것이 영험 있다고 하면 이것 하고, 저런 것에는 저 기도가 좋다고 하면 하던 것 내던지고 그것 하고….
이런 식으로 영험을 좇는 마음은 자기 안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 밖으로 향하는 마음이 됩니다. 자기 안으로 집중이 되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기도 생활을 하면 내 안의 무명혹장이 타파될 수 있을까요? 산만하고 분열된 의식을 모아서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심리현상을 제대로 관찰해서 개선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이 기도 저 기도를 좇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그릇된 정보에 휘둘려서 잘못된 견해를 갖기도 합니다. ‘참선이 최고다’, ‘기도로는 공덕을 쌓을 수는 있어도 마음을 찾을 수는 없다’, ‘이것에는 이 기도보다는 저 기도가 좋다’, ‘능엄주는 귀신을 쫓는 주문이기에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등등,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참 분별도 많고 말도 많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운서주굉 스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여러 가지 무기는 강을 건너는 뗏목에 불과하다 할 것이니, 만약 근본을 힘쓰지 않고 경망하게 칼은 사람을 죽일 수 있고 창은 죽이지 못한다고 한다면 어찌 이치에 옳겠는가? 참선하는 자가 염불하는 자를 희롱하여 상相에 집착한다 하거나 염불하는 자가 선정을 익히는 자를 공空에 떨어졌다고 꾸짖는 것도 이와 같다 할 것이다.
무명혹장을 깨뜨려 내 안의 진여자성을 확연히 보게 되면 그 어떤 수행법도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됩니다. 참선이든 기도든 그 어떤 것도 깨달음에 도달한 사람에게는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수행법은 꼭 필요합니다.
가벼운 지식으로 그 많은 수행법을 함부로 거론하며 경망하게 분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수행법에 대한 강한 신뢰와 자부심을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한 마음자세입니다. 하지만 이 신뢰와 자부심으로 인해 다른 기도법은 한 수 아래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면 그건 스스로 공부하는 자기 마음에 오만傲慢과 자만自慢이 있다는 반증이 됩니다. 공부수행을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허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줄기차게 한 길로
참선이든 기도든 내가 하고 있는 공부로 인해 산만해진 내 정신이 얼마나 모아지고 집중이 되어 내 마음이 얼마나 정화되어 가고 있는지, 내 의식이 얼마나 또렷하게 늘 자각이 되고 있는지 등의 여부에 따라 내가 공부를 잘 하고 있는지가 판단되어야 하며, 이렇게 할 경우 내가 하고 있는 수행법이 내게는 가장 뛰어나고 맞는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운서주굉 스님은 갖가지 가르침이나 수행법은 ‘뗏목’에 불과하다고 하셨습니다. 때문에 중요한 점은 뗏목을 타고 생사生死라는 거친 물살을 헤치며 ‘저 언덕’(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것이지, 뗏목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를 분별하는 것으로써 시간과 노력을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뗏목을 잘 저을 수 있도록 애쓰고 노력하는 쪽으로 관심을 두는 것이 휠씬 나을 것입니다.
산의 정상은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그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길을 택해 올라가든 일단 길을 정했으면 그 길을 계속해서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정상에 가까워지면 다른 길로 올라온 사람과도 가까워지게 되고 결국은 정상에서 서로 만나게 됩니다.
“어느 길이 더 편하고 좋을까, 어느 길이 더 유리할까?”라는 것으로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고 일단 한 길을 택하여 줄기차게 올라가는 것에 마음을 써야 할 것입니다.
연재를 마치며
『고경』지에 ‘신행 길라잡이’ 코너가 신설되면서 글을 싣게 되는 설레는 인연을 갖게 되었습니다. 살뜰한 『고경』지에 글이 실리는 경험을 안고 18번째의 글로써 마무리합니다.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쓰는 걸 번잡스러워하는 제 글을 받아서 정리해 실어준 실무자님에게도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언제 어디서나 늘 계신 곳에서 평안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정림사 일행스님의 글을 더 보실 분은 https://cafe.daum.net/jeonglimsarang을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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