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로 읽는 서유기 ]
돼지 요괴, 저팔계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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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2025 년 6 월 [통권 제146호] / / 작성일25-06-04 11:08 / 조회187회 / 댓글0건본문
삼장법사 서천여행단의 구성은 손오공, 용마, 저팔계, 사오정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이제 저팔계가 입단할 차례다. 저팔계는 서천여행단 3형제 중의 둘째로서 탐·진·치의 차원으로 보면 탐욕을 상징하고, 계·정·혜의 차원에서 보면 계율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는 욕망의 화신으로서 여행단에서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 탐욕이므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그것을 더 키우는 역할을 한다. 둘째, 수행의 에너지 역시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여행단의 저하된 분위기를 진작시키는 역할을 한다. 저팔계의 귀순 에피소드에는 이러한 저팔계의 모순적 정체를 밝히는 장치들이 시설되어 있다. 그의 돼지 형상, 그가 사는 오사장국烏斯藏國, 손오공과의 관계 등에 담긴 상징을 통해 그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저팔계의 돼지 형상
저팔계는 원래 천상의 옥황상제를 호위하는 천봉원수였는데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 과보로 돼지로 태어나 요괴로 살고 있는 존재다. 삼장법사와 손오공을 만날 때는 취란에게 장가들어 데릴사위로 살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 그는 준수한 용모에 어두워지면 나갔다가 밝으면 돌아오는[昏去明來] 바른 생활을 하는 청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긴 주둥이에 부채 같은 귀, 억센 갈기털까지 갖춘 돼지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리하여 이제 밝으면 나갔다가[眀去] 어두워지면 돌아오는[昏來] 생활을 한다.
그 폐해 또한 막대해서 어마어마하게 먹는 데다가, 온통 구름안개를 피우고, 돌멩이와 모래를 날리며 출입하는 통에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된다. 더구나 아내 취란을 뒤채에 가둬 놓고 식구들과도 만나지 못하게 한다. 이에 요괴의 피해를 견딜 수 없게 된 취란의 아버지가 그것을 물리칠 방도를 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준수하고 부지런한 청년이 나중에 흉악한 돼지 요괴가 되었다는 얘기부터 보자. 그것은 깨달음을 대상화하여 나의 것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수행에 임할 때, 돼지가 된다는 얘기다. 뚜렷한 관찰의 대상을 설정하면 수행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이때 돼지 요괴는 어두울 때 나가[昏去] 밝을 때 돌아오는[眀來] 바른 생활을 한다고 묘사된다. 왜 어두울 때 나가 밝을 때 돌아오는 것이 바른 삶이 되는가? 이 혼거명래昏去明來라는 표현은 중의적이다. 어둠이 가고[昏去] 밝음이 온다[眀來]는 뜻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밝음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구체적 관찰 대상을 설정하는 수행의 일시적 효과에 해당한다.
그런데 문제가 일어난다. 그것이 데릴사위 살림이기 때문이다. 데릴사위는 삶의 주도권을 아내에게 맡기는 결혼이다. 사위로 들어가는 입장에서 보면 외적 대상에 휘둘리는 삶이 되는 것이다. 대상에 집중하는 수행이 그렇다. 그것은 결국 관찰의 주체와 관찰의 대상을 세워 둘로 분별하는 일에 속한다. 그래서 돼지 요괴의 삶(수행)은 도로 어두워지는 길로 들어선다. 점차 돼지의 탐욕스런 모양이 드러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게 되자 생활이 바뀐다.
밝으면 나갔다가[眀去] 어두워지면 돌아오게 되었다[昏來]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극히 정상적인 삶으로 보인다. 그런데 『서유기』에서는 이것을 요괴의 삶으로 규정한다. 왜 이 명거혼래眀去昏來의 생활이 잘못인가? 그래서 살펴보면 이 역시 중의적 표현이다. 밝음이 사라지고[眀去] 어두움이 찾아온다[昏來]는 의미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대상에 집중하는 수행은 밝아지는 듯하다가 도로 어두워지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법집이 강화되어 사라졌던 아집이 권토중래한다. 그래서 준수했던 청년이 추악한 모습의 돼지 요괴로 변하는 것이다.
돼지 요괴의 나라, 오사장국烏斯藏國
다음으로 돼지 요괴가 살고 있는 오사장국烏斯藏國이라는 나라 역시 저팔계의 정체를 밝히는 장치에 해당한다. 오사장국은 ‘태양[烏]이 이곳[斯]에서 잠기는[藏] 나라’라는 뜻이다. 이 오사장국은 명나라 때 티베트를 부르던 이름이다. 그것은 현재의 서장西藏이라는 이름으로 계승된다. 서장 역시 서쪽[西], 태양이 지는 곳[藏]이라는 뜻이다. 티베트는 중국의 서쪽에 있다. 태양이 지는 나라로 불리는 이유다. 사실 현장법사는 티베트 지역을 지나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오사장국을 끌어들인 것은 돼지 요괴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돼지 요괴는 원래 하늘에서 옥황상제를 호위하는 천봉원수였는데, 달나라의 항아를 희롱한 죄로 이 땅에 유배된 존재다. 그는 돼지로 살면서 여러 명의 여자에게 빌붙어 산다. 관음보살을 만날 때에는 묘이저卯二姐라는 여자 신선과 살다가 여자가 죽고 혼자 지낼 때였다. 이 항아나 묘이저는 모두 달과 관련된 인물이다. 항아는 월궁의 선녀이고, 묘이저의 묘는 토끼 묘卯 자니까 역시 달나라의 옥토끼를 가리킨다.
또 삼장 일행을 만날 때 함께 살고 있던 취란 역시 달과 관련된 여인이다. 취란의 취翠는 활의 명인으로서 태양을 쏘아 떨어뜨렸던 예羿와 문자적으로 통한다. 그러니까 취란은 예의 아내라는 뜻이 된다. 그 예의 아내가 바로 항아로서 불사약을 먹고 달나라로 올라가 달의 여신이 된다. 이처럼 항아→묘이저→취란의 순서로 돼지 요괴는 달을 좇아다닌다. 그러니까 오사장국은 해가 진 뒤에 나타나는 달의 나라라는 뜻이고, 달이라는 대상을 좇는 돼지 요괴가 사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항아와 같은 실체를 밖에서 찾아 나의 것으로 소유하려는 살림이 오사장국의 요괴 살림이 되는 것이다.
돼지 요괴의 에피소드에서는 깨달음을 향한 욕망을 여성에 대한 욕망으로 환치한다. 그러니까 취란 등에 대한 집착이 성욕의 표현이 아니라 깨달음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비유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추구가 밖을 향하고 있다는 데 있다. 묘이저와 살 때에도 그 동굴에 빌붙어 살았고, 취란의 집에서도 데릴사위로 살고 있었다. 데릴사위 전문인 것이다.

여기에서 데릴사위가 상징하는 바는 뚜렷하다. 원래 진리는 돌이켜 비추어보기를 통해서 드러난다. 그래서 수행에서는 밖으로 달려나가는 시선을 되돌리는 일을 요체로 삼는다. 그런데 돼지 요괴는 오로지 밖으로 찾아다닌다. 그것은 수행의 이름을 빌리고 있지만 완전한 욕망의 살림이다. 이렇게 밖에서 찾는 수행을 데릴사위 결혼에 비유한 것이다. 옛날의 일반적 결혼은 남편이 아내를 데리고 들어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거꾸로 남자가 여자의 집에 들어가 사는 경우가 있었다. 이 데릴사위 결혼을 ‘거꾸로 문에 처박힌다[倒插門]’고 표현한다. 밖으로의 두리번거리기를 내용으로 하는 수행 또한 ‘거꾸로’라는 점에서 데릴사위와 같다.
돼지 요괴와 손오공의 만남
손오공은 취란의 아버지에게 돼지 요괴의 얘기를 듣고 이상할 정도로 반가워한다. “넷을 얻어다 여섯에 합하는 장사”, 즉 6+4=10이 되어 완전수를 성취하는 장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손오공은 “불의 눈, 황금 눈동자[火眼金睛]”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 묘사대로 그림을 그려보면 태양[日]이 된다. 또한 돼지 요괴는 달[月]에 대한 집착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이 둘이 함께하면 “해[日]+달[月]=밝음[明]”이 되어 수행의 공식이 완성되는 것이다.

마음은 외부의 형상, 혹은 추상적 관념을 좇아 끝없이 옮겨다닌다. 항아에서 묘이저로, 묘이저에서 고씨 노인의 딸(취란)로 그 집착의 대상을 옮겨다니는 저팔계가 이것을 상징한다. 이 옮겨다니는 저팔계를 놓치지 않는 것이 손오공의 장사다. 6+4=10의 셈법이 성립하는 지점이다. 돼지 요괴가 귀순하여 저팔계로서 서천여행단의 일원이 된 뒤에도 이 일은 계속된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저팔계가 앞으로 나설 때마다 손오공은 저팔계의 귀나 목덜미에 붙어 해[日]+달[月]=밝음[眀]의 계산식을 유지한다. ‘염불하는 자 누구인가[念佛者誰]’, ‘소리를 듣는 그것을 들어라[反聞聞性]’는 등으로 표현되는 수행의 요체와 통하는 계산식인 것이다.
바르게 알기로 시작되는 요괴 잡기
손오공이 취란 집안의 고충을 풀어주겠다고 나선다. 어두운 방에서 취란을 구해낸 손오공이 밤이 되어 취란으로 변신해 요괴를 기다린다. 얼마 지나 돌과 모래를 날리는 광풍과 함께 흉악한 요괴가 나타난다. 요괴는 손오공이 취란인 줄 알고 입을 맞추려 한다. 그러자 손오공이 요괴를 내동댕이친다. 그런 뒤 요괴에게 옷을 벗고 침대에 들어가라 하고는 자신은 요강에 앉아 대변을 보는 척한다. 그렇게 손오공은 취란인 척하며 요괴의 이름과 사는 곳을 알아낸다. 요괴는 복릉산福陵山 운잔동雲棧洞에 살며 이름이 저강렵猪剛鬣이라고 자기의 정체를 알려준다. 손오공은 이것으로 문제가 풀리게 되었다고 기뻐하면서 본모습을 드러내어 저팔계를 잡으려 한다.

손오공이 취란으로 변신한 이유부터 살펴보자. 손오공에게 저팔계는 서천행을 함께해야 할 중요한 반려이다. 본래의 밝음(태양=손오공)과 대상에 집중하는 밝음(달=저팔계)이 만나 진정한 밝음[明]을 성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돼지 요괴가 집착하는 취란을 먼저 밝음 아래 내놓아야 한다. 매미를 노리는 사마귀가 있고, 사마귀를 노리는 참새가 있다고 하자. 매미는 취란이고, 사마귀는 돼지 요괴고, 참새는 손오공이다. 이 이중삼중의 노림을 놓치지 않는 일이야말로 『서유기』의 여행 테마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 손오공은 우선 취란을 어두운 방에서 태양 빛 밝은 곳으로 이끌어 낸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취란은 항아와 묘이저의 계보를 잇는 달의 상징이다. 달은 태양 빛 속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돼지 요괴는 취란이라는 대상에게 입을 맞추거나 동침할 수 없게 된다.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문제의 절반이 해결된다. 소설에서는 이것을 똥을 누는 취란으로 묘사했다. 관념의 불순물이 떨어져 나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돼지 요괴가 사는 곳과 이름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그것이 어두움 속의 달(취란)을 태양 빛(손오공) 아래 내놓는 일을 완성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취란에게 집착하는 내 속의 이 돼지 요괴는 무엇인가? 이렇게 묻는 것이다. 원래 돼지 요괴는 태어난 뒤 어미돼지와 형제들을 물어 죽였다. 그리고 자신의 추악한 용모를 감추고 살았다. 자기부정이 행해진 것이다. 그것은 수행의 진전이다. 아상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대신 새로운 집착의 대상이 세워진다. 달나라의 선녀 항아다. 대상에 집착하면 자아의 강화가 일어난다. 돼지 요괴는 항아에 집착하며 거기에 자기를 투사해 왔다. 형식으로는 자아를 부정하면서 실제로는 자아를 강화하는 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것은 저강렵猪剛鬣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되어 있다. 돼지[猪]의 형상이 대상을 소유하는 방식의 수행을 상징한다는 것은 살펴본 바와 같다. 그 이름인 강렵은 뻣뻣한[剛] 갈기털[鬣]이라는 뜻이다. 수행을 한다고 하면서 자아를 뻣뻣한 갈기털처럼 강화하는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자아 강화의 길은 진리를 보는 눈을 어둡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돼지 요괴가 나타날 때 천지가 어두워지는 바람을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돼지 요괴가 사는 곳이 왜 복이 넘치는 산, 복릉산福陵山이 되는가? 한자문화권에서 돼지는 복의 상징이 된다. 돼지를 뜻하는 저猪의 발음이 축복 축祝과 같기 때문이다. 축祝은 한 글자만 가지고도 축복祝福의 뜻을 갖는다. 그러니까 복의 상징인 돼지 요괴가 사는 곳이 복이 넘치는 산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복은 쌓아서 산을 이루는 방식으로 행해지지만, 도는 줄여 나가 없음에 이르는 길을 걷는다. 대상이 없고 나가 없어 오직 알아차림만 있는 자리에 이르고, 그것조차 투과하여 큰 거울의 비춤만 있는 지혜[大圓鏡智]에 도달하는 것이 서천에 이르는 대강의 약도다.
그런데 이 돼지 요괴는 대상(취란)을 애착하고, 씩씩한 나(강렵)를 키우면서 도를 구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것은 허황된 꿈이다. 그래서 그는 운잔동雲棧洞, 즉 구름[雲]의 판자[棧] 위에 산다. 허상의 세계에 사는 것이다. 손오공은 이처럼 돼지 요괴와 그 거처가 허망한 세계임을 바로 아는 것으로 싸움을 시작한다. 그 흥미로운 싸움과 돼지 요괴의 귀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호에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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