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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사상]
부처님의 성불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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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  2024 년 3 월 [통권 제131호]  /     /  작성일24-03-04 12:53  /   조회1,35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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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종교학자의 불교 이야기 3 

 

지난번에는 부처님이 궁궐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심하고 떠나려는 순간 아내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는 그 소식을 듣고 “걸림이 생겼구나!” 하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걸림’이라는 말이 산스크리트어로 ‘라훌라(Rahula)’여서 그것이 그대로 아기의 이름이 되었다는 설도 있고, 일식이나 월식 때 해나 달을 잡아먹는 신의 이름이 ‘라훌라’인데 아기가 일식이나 월식 때 태어나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출가 전 아들의 출생

 

보름달이 뜬 밤이었습니다. 싯다르타는 부인과 아들을 보기 위해 부인의 처소로 갔습니다. 환한 달빛을 받으며 엄마 품에서 잠들고 있는 아들을 안아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엄마도 아기도 깨서 울고불고 할 것 같아 그런 일을 피하려고 조용히나오면서 속으로 말했습니다. ‘성불하고 돌아오리라.’ 

 

싯다르타는 말을 타고 마부를 앞장세워 잠든 성을 뒤로 했습니다. 신들은 말발굽에 손을 대어 말발굽 소리가 나지 않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성문도 열어주고, 싯다르타가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마다 땅을 뒤로 돌려 돌아보는 일이 없도록 해주었습니다.

사진 1.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 간다라(2~3세기), 콜카타인도박물관. 사진 유근자.

이렇게 시작한 구도의 삶이 6년 정도 계속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라자그라하에 있는 샹카 계통의 ‘칼라마’라는 스승을 찾았습니다. 스승이 가르쳐주는 수행을 다 이루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경지에 이를 수 없음을 발견하고 미련 없이 그를 떠났습니다. 다음으로 만난 스승은 ‘라마푸트라’였습니다. 여기서도 만족스러운 가르침을 얻지 못하여 그를 떠났습니다. 

 

고행과 중도

 

결국 네란자라 강변 아름다운 곳에 자리를 잡고 고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다른 고행자 다섯 명이 합류했습니다. 얼마나 이를 악물고 고행을 했는지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귓전에는 광풍이 몰아치는 소리가 맴돌았습니다. “배를 쓰다듬으면 등뼈가 잡히고, 다리를 쓰다듬으면 털이 저절로 떨어져 내렸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몇 년 동안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고행하고 있었는데, 이제 더는 육체적으로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릴 때 건강한 몸으로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다가 황홀경을 경험한 일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극도의 고행으로서는 뜻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른바 ‘중도中道’를 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진 2. 고행하는 태자(오른쪽), 고행의 멈춤과 목욕(가운데), 수자타의 공양(왼쪽). 간다라(2~3세기), 베를린아시아박물관. 사진 유근자.

 

그때 마침 그 부근 마을에 아기를 낳지 못해 애를 쓰다가 나무 신에게 빌면서 아기를 낳게 되면 그 나무 신에게 매년 제사를 지내겠다고 서원한 수자타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아기를 낳자 서원한 대로 나무 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준비차 미리 가본 여종이 나무 밑에 앉아 있는 싯다르타를 나무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수자타는 금 대접에 쌀과 우유로 만든 죽을 준비해 대접했습니다. 싯다르타는 49일 만에 첫 음식으로 우유죽을 받아먹고 기운을 차렸습니다.

 

함께 고행하던 다섯 친구는 싯다르타가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그가 고행을 포기하고 사치스런 생활로 돌아간 것이라 여겨 싯다르타의 곁을 떠나가고, 싯다르타는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숲속 깊이 있는 ‘보리수’ 밑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는 동쪽을 향해 앉아 성불하기 전에는 결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결심했습니다.

 

마라의 시험


이때 죽음의 신 마라가 접근해서 싯다르타를 유혹해 그의 마지막 구도의 길을 포기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본이 있지만 보통 세 가지로 유혹했다고 합니다. 첫째, 마라는 무시무시한 마군을 이끌고 와서 이런 고행을 포기하고 궁궐으로 돌아가 선업을 쌓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싯다르타는 지금까지 쌓아온 선행과 선업의 힘으로 자기 주위에 보호막을 쳐서 마군이 싯다르타의 머리카락 하나도 흩트리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사진 3. 항마성도, 간다라(2~3세기), 독일 국립베를린아시아박물관. 사진 유근자.

 

둘째는 싯다르타의 공덕을 부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앉아 있어도 성불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니 차라리 포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라의 군대가 마라의 증인이었지만 싯다르타에게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싯다르타는 “오, 마라여, 만물의 공평한 어머니이신 이 대지가 나의 증인이로다.”하며 오른손 손가락 끝을 땅에 댔습니다. 그러자 괴성과 지진이 나고 땅이 갈라지며 대지의 어머니가 증인이 되었습니다. 마라와 마군은 혼비백산 도망쳤습니다. 불상 중 오른손 손끝을 땅에 대고 있는 ‘항마촉지인상降魔觸地印像은 이때의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셋째는 마라 자신이 불만, 쾌락, 욕망이라는 이름의 세 딸을 데리고 와서 싯다르타를 유혹해 구도의 길에서 넘어뜨리려 했지만 역시 실패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예수님이 받은 시험에 대해 언급하고 지나가고 싶습니다. 성경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이 침례를 받고 성령의 인도로 광야로 나가서 40일간 금식과 기도로 보낸 다음 사탄이 다가와 세 가지로 시험했다고 합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돌덩이들을 떡덩이로 만들어 보라는 것이고, 둘째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아래로 뛰어내려 보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산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며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그 모든 것을 그에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요즘 말로 고치면 첫째는 경제적 유혹, 둘째는 초자연적 능력에 대한 유혹, 셋째는 정치적 유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 모든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사진 4. 신화학자 조지프 존 캠벨(Joseph John Campbell, 1904~1987).

 

신화학자 조셉 캠벨에 의하면 영웅들의 여정에는 반드시 이런 시험이 따르는데 이것은 모험을 감행한 사람들이 겪는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자기가 추구하는 것이 추구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데 대한 불안감,” “자신이 과연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등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두려움이나 불안감이나 의구심을 떨치고 이겨낼 수 있는 이만이 참된 정신적 영웅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깨침을 이루다

 

보름달이 밝은 날, 싯다르타는 보리수 밑에서 네 단계의 선정(dhāna)을 지나 세 가지 앎(abhijňā)을 얻었다고 합니다. 첫째에서 세 단계를 지나 넷째 단계에 이르렀을 때 마음의 평정, 마음 다함, 맑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로 초야에 이르렀을 때 첫째 앎, 숙명통宿命通을 얻어 전생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영원한 현재’·‘무시간성’을 체험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중야에 이르렀을 때 둘째 앎, 천안통天眼通을 얻어 모든 중생의 죽음과 태어남의 원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후야에 이르러서는 누진통漏盡通을 얻어 중생에게서 흘러내리는 쾌락과 욕망과 무지와 삿된 생각이라는 네 가지 누漏를 어떻게 멸할 수 있을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강 너머로 먼동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무지는 사라지고 앎이 떠올랐다. 어두움은 사라지고 빛이 떠올랐다.” 6년의 고행 끝, 35세의 나이로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이제 문자 그대로 붓다, ‘깨친 이’가 되었습니다. 성불이요 대각이요 활연대오요, 확철대오였습니다. ‘대웅大雄’이 된 것입니다. 이런 우주적 사건을 경축하기 위해 땅은 흔들리고, 마른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나고, 철도 되지 않았는데 나무에 꽃이 피고, 하늘에서는 온갖 꽃이 쏟아졌습니다. 이 사건은 그야말로 불교의 태반이요 심장이요 불교의 존재 이유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교 창시자들의 체험

 

붓다는 이런 체험을 통해 불교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세계 종교 창시자들을 보면 이런 강력한 체험을 하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몇 가지 대표적인 예를 들면, 유대교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모세도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었는데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에 나타난 야훼 신이 “모세야! 모세야!” 부르고 모세가 이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는 응답을 시작으로 유대교의 창시자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30세가 되었을 때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실제로는 온몸이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는데,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도 40세 때 동굴에서 명상을 하는 중 “읽으라, 알라께서 사람들에게 계시한 것을.” 하는 소리를 세 번이나 계속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동굴 밖으로 나왔는데, 같은 목소리로 “그대는 알라신의 사자使者로다.”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진 5.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재우(1824~1864).

 

우리나라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 대신사도 경주 구미산 용담에서 수행하는 중 “두려워 말고 저어하지 말라. 세상 사람이 나를 상제라 이르나니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하는 소리에 이어 “너를 세간에 내어 사람들에게 이 법을 가르치게 하나니 의심치 말고 의심치 말라.”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37세 때의 일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런 창시자들이 모두 초월적인 존재와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체험을 통해 창시자들이 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부처님은 초월적 존재자와 직접적인 관계없이 스스로 깨침을 얻고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불교의 특이점이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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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서울대학교 종교학 석사,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 종교학과에서 ‘화엄 법계연기에 대한 연구’로 Ph.D. 학위취득.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 저서로는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도덕경』, 『장자』, 『세계종교 둘러보기』,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종교란 무엇인가』, 『예수는 없다』,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오강남의 생각』 등. 번역서로는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예수』, 『예수의 기도』, 『예언자』 등.
soft10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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