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어록의 뒷골목]
이면서’ 그리고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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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5 년 9 월 [통권 제2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263회 / 댓글0건본문
기간제 교사로 잠깐 일할 때 자폐증을 앓는 중학생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 잠자코 수업을 듣다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는 행동이 인상적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짝꿍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제 분을 못이겨 씩씩거렸다. 대인관계를 거부하기에 앞서 아예 이해하지를 못하는 아이는, 자아의 과잉 속에서 흥분하거나 자해했다.
자아는 흔히 부정적인 조건 속에서 나타난다. 예컨대 산골의 새 소리를 ‘무심히’ 들을 때라면 자아는 느껴지지 않는다. 문득 새 소리가 시끄럽게 들릴 때 슬며시 고개를 쳐든다. ‘아, (나는) 괴롭다!’ 상황이 계속 거슬리면 속히 자리를 피하거나 새를 잡을 꾀를 낸다. 자아는 고통의 다른 이름이지만, 고통의 해법이기도 하다.
경제적 불황이 장기화되면 마음도 황량해진다. 자존심을 중시하고 자신감이 강조되는 사회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개인의 정서가 불안하고 위축돼 있음을 시사한다. 더불어 오로지 뜨면 그만이고 이기면 장땡인 세태다. ‘잘난 척’과 ‘있는 척’이 곳곳에서 마시고 떠든다. 신의와 원칙을 믿지 않는 부모는 자녀를 인간이 아닌 전사(戰士)로 키운다.
무아(無我)는 이론적으로는 옳지만 실존적으로는 헛것임을 자주 경험한다. 내가 살아있는 한 ‘나’는 어디 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래야만 근근이라도 내가 살 수 있다. 저자거리에서 경쟁은 운명이요 갈등은 순리다. 사회적 삶이란 결국 자아의 통제와 조절이 관건이다. 자아가 치솟으면 살인과 연을 맺고, 자아가 무너지면 자살이 그 자리를 메운다.
자아를 부릴 수 있으면 바로 도인이다. 현실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만 매진하는 게 그의 패턴이다. 내 몫을 지키되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 견딤에 능하다. ‘나’를 인정함으로써 얻는 ‘나’로부터의 자유로움. 깨달음은 구태여 심오하달 것 없이 심심하다. 담백한 인생에 대한 꿈은 아주 오랜 생각이다.
자폐증 소년의 엄마는 아들과 함께 등교했고 종례시간이면 다시 학교에 왔다. 아무 말이 없었고 그러므로 혼내지도 탓하지도 않았다. 단지 손을 꼭 잡는 선에서 애정표현을 절제하던 뒷모습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남들에겐 골칫거리이고 천벌일지언정 그녀에겐 선물이었던 모양이다. ‘나’와 자아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제25칙
염관의 무소 뿔 부채(鹽官犀扇, 염관서선)
염관제안(鹽官齊安)이 어느 날 시자(侍者)를 불러 무소 뿔 부채를 달라고 말했다. 시자가 “부채는 부서졌다.”고 답하자 “부채가 망가졌거든 무소라도 돌려달라.”고 다시 일렀다. 무슨 소린가 싶은 시자는 말문이 막혔다. 자복여보(資福如寶)가 나타나 땅에 일원상(一圓相)을 그린 뒤 그 안에 ‘牛(우)’라고 썼다.
선어록에 수록된 언설들은 대부분 대화다. ‘불법(佛法)은 일상에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다. 그렇다고 아무 대화나 가져다 바르는 것은 아니다. 선지식(善知識)들은 말 속에 칼을 담는다. 알아보는 자들은 그 칼을 꺼내 휘두른다. 염관이 요구한 ‘무소 뿔 부채’는 단순히 부채가 아니라 불성(佛性)을 가리킨다. “무소라도 돌려 달라.”는 건 너의 부처다움을 일껏 드러내 보이라는 뜻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법구경』의 유명한 구절이 겹치는 대목이다.
자복의 그림은, 훈수다. 구도의 과정은 으레 심우(尋牛)로 표현된다. ‘마음이 곧 부처’이니, 마음 내키는 대로 한번 질러보란다. 그러나 선문답에서 법명이 아닌 직함으로 불리는 자들은 하나같이 미련하다. 말길을 못 알아들은 시자는 부채에서 부채만 보는 계급주의자다. 본래는 절을 하거나 한방 먹였어야 했다. ‘내 부처는 내가 알아서 챙길 테니 당신은 당신의 부처나 신경 쓰라’는 독존(獨存)의 몸짓. 어떻게 살아있든 순간순간이 삶의 진면목이다. 남의 삶을 살려니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제26칙
앙산이 눈을 가리키다(仰山指雪, 앙산지설)
앙산혜적(仰山慧寂)이 눈송이로 만든 사자(獅子)를 가리키며 일렀다. “이것보다 흰 것이 있겠는가?” 이에 운문문언(雲門文偃)은 “그때 문득 밀어 쓰러뜨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설두중현(雪竇重顯)은 “다만 밀어 쓰러뜨릴 줄만 알았지 붙들어 일으킬 줄은 모르는 구나.”라고 말했다.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됐다. 세계 최초란다. 일부 미성년자들의 ‘싸가지 없음’을 나라가 관리하면서 왕따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어른보다 영리하고 악랄한 아이들이 부지기수인 세태이니, 자못 이해가 되는 입안(立案)이다. 반면 비판도 만만치 않은데 일단 인성(人性)의 실체에 대한 의구심이다. 계측할 수 없는 인성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보인다. 다수가 어리둥절한 가운데 사교육이 분주하다.
눈처럼 순수한 마음은 절대적으로 순수한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흰색보다 더 하얀 흰색을 요구받고 강요하게 될 것 같다. 협동과 배려에 점수를 매기면 필연적으로 경쟁과 위선으로 변질되게 마련이다. 평생 남의 눈치나 보고 슬금슬금 뒤통수나 치는 군상들만 양산하지 않을까 싶은 게, 신법(新法)의 전망이다. 권력자가 툭하면 도덕을 들먹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헛소리 집어치우라’는 운문과 같은 학생이 나타난다면? 좋은 대학 가긴 다 글렀다.
체제가 이야기하는 사람다움이란 결국 순종과 야합이다. 사람다워야만 윗선에 잘 보일 수 있고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아울러 사람다워야만 사람답지 못하다고 지목된 것들을 합법적으로 괴롭힐 수 있다. 부속품의 길이고 양아치의 길이다. 세상의 질서는 상식이면 족하다. 어쩌면 ‘사람다움’에 연연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개같이 살아도 당당히 살라는 무위진인(無位眞人)은, 사람을 붙들어 일으키는 말이다.
제27칙
법안이 발을 가리키다(法眼指簾, 법안지렴)
법안문익(法眼文益)이 손가락으로 발을 가리키니 두 명의 스님이 가서 동시에 발을 걷어 올렸다. 법안이 말했다. “하나는 얻고 하나는 잃었구나.”
광화문광장을 지나쳐야 하는 퇴근길이다. 지하철역으로 들어갈 때면 원전(原電) 건립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눈에 밟힌다. 누군가 “우방인 줄 알았는데 무기장사꾼”이라 적힌 피켓을 들었다. 미국을 겨냥한 비난일 터인데, 마음속으로 정정해줬다. ‘우방이면서 무기장사꾼이겠지.’ 우방이니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대신 우방이니까 물건도 팔아줘야 하는 것이다. 힘센 친구가 가끔은 서운하겠으나, 혼자 다니면 또 불안한 게 약골의 처지다. 대륙과 해양의 깡패를 동시에 마주한 한반도에 요구되는 자세는, 기생충과 변덕쟁이의 처세다. 간과 쓸개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최대한 영양분을 뜯어내는 일이다.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일은 삶의 내구성을 높인다. 중도(中道)란 그늘을 살필 줄 아는 지혜다. 이것이 감추고 있는 저것을 보고, 사태의 표면만이 아니라 선후(先後)와 인과(因果)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오판과 실수가 적다. 전화위복과 새옹지마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지만 불교적이다. 또한 ‘굴러가는 개똥도 약이 된다’고 했다. 주변의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작전의 기본이다. 기대야 할 때는 툭 까놓고 기대야 한다. 최고보다는 최선이, 최선보다는 최적이 더욱 합리적인 법이다.
“하나를 얻었다.”는 건 시야가 확 트였다는 것이고, “하나를 잃었다.”는 건 땡볕을 맨몸으로 맞아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읽었다. 법안은 기회비용이란 개념을 알고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며 살아있다면 살아서 먹은 밥만큼의 값을 치러야 한다는 걸, 지렴(指簾)은 가르치고 있다. 가령 창문을 열면 바람과 함께 파리도 들어온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으로 억압한다. 질투는 독이면서 힘이다. 가족은 나를 위로해주고, 적(敵)은 나를 위로가 필요 없는 존재로 발전시킨다. 세월은 젊음을 빼앗는 대신 욕정도 덜어준다. 죽음은 소멸이면서 평안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죽겠기에 봐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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