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아프냐 … 나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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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5 년 10 월 [통권 제3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445회 / 댓글0건본문
9월 13일 서울, 하고도 강남 땅에 약사대불 점안식이 있었다.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으나 암튼 38m의 길이, 총 공사비 120억 원에 100톤 가량의 청동이 들어간 여래상이라고 한다. 금빛 찬란하게 현신하신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 운집한 대중 가운데, 약사여래라는 명호에 어울리게 역시 아픈 중생이 많았다고 한다. 방송국마다 뉴스에서 이 행사를 비중 있게 다루었는데, 그 아프다는 사람들이 여당대표였고 야당대표였고 서울시장 등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뉴스를 통해 본 장면은 이랬다. jtbc의 보도다.
먼저 사위가 ‘약’을 해서 심란한 여당대표가 나와서 축사의 말문을 열었다. “저도 지금 마음이 많이 아픈 상태입니다. 약사대불께, 약사대불께 불공을 많이 드리겠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맥락을 아는 대중이 와르르 웃고 박수를 보냈다. 다음은 조직 내에서 부대끼느라 힘에 겨운 야당대표 차례였다. “약사대불은 저를 비롯해서, 아까 우리 김무성 대표님 비롯해서 몸과 마음이 아픈 이 시대 중생들에게 가장 절실한 도움을 주는 부처님입니다.…” 역시 무슨 말인지 속내를 아는 대중이 이번에도 한바탕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또 한명의 초청인사로, 아들의 병역기피 문제가 다시 들먹여져 괴로운 서울시장은 “아픈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라고 정리했다.
서울 강남에 조성된 초대형 약사대불 모습
뉴스를 보는 내내 속이 편치 않았다. 뭘 잘했다고 박수를 받는담. 책임이 무거운 자리니 만큼 아픔도 크겠지 하고 이해해보려 했으나 속에서 깊은 ‘빡침’이 올라왔다. 신심의 크기가 불상의 크기라고 좋게 생각해보려 했으나 역시 원래 꼬여 있던 마음이 한 가닥 더 꼬이는 기분이다. 약사여래는 어디에 계시는지, 도대체 계시기나 한 건지….
전하는 말에, 약사여래는 열두 가지 원을 세워 발심한 뒤로 겁나게 긴 세월을 닦아 성도하고 현재 아픈 중생을 건지고 계신다고 한다. 중생의 아픔이 종류가 많기 때문에 그의 원에는 아픔의 형태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두 가지만 예로 들자면, 이렇다.
“내가 다음 세상에 보리를 얻을 때, 불구가 되었거나 못생겼거나 어리석거나, 눈이 멀었거나 말을 못하거나 앉은뱅이, 곱사등이, 문둥이, 미치광이 등 갖은 병고에 시달리는 중생이 있다면, 그가 나의 이름을 진심으로 부르고 생각한다면, 누구나 멀쩡한 몸을 얻고 모든 병이 소멸되기를 바라옵니다. 내가 다음 세상에 보리를 얻을 때, 가난하고 곤궁하여 의지할 데가 없고 온갖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약과 의사를 만나지 못하는 중생이 있다면, 그가 나의 이름을 듣기만 해도 모든 병이 나아서 몸과 마음이 편해지고 마침내 보리를 성취하기 바라옵니다.”
이 부처님의 원력을 읽어보면 앓고 있는 병에 따라 맞춤형 약을 주실 것만 같다. 이를테면 여당대표에게는 사위의 건강을, 한 라디오 프로(그것은 알기 싫다) 진행자의 말을 빌자면 ‘새롭지도 않고 정치도 못하고 민주적이지도 않고 연합도 못하는’ 야당의 대표에게는 통솔력을 주실지도 모르겠다.
뉴스로 돌아가, 1부가 끝나고 2부 앵커브리핑 시간이다.
설사 무슨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무한히 용서해주고 싶게 생긴 손석희 앵커가 이 사안에 대해 논평을 했다. 진짜 아픈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그의 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프다”
한 사찰의 약사여래상 점안식에 참석한 여야 대표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한 말입니다. 그들의 몸과 마음이 아픈 이유는 제각각이었습니다. … 이들을 초청한 스님마저 “나라의 거목이 다 아프니 나도 아프다”고 답했다니, 오늘 앵커브리핑의 키워드는 이렇게 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정치권이 병 나음을 갈구했던 약사여래불은 병을 치유하는 ‘의사 부처님’입니다. 몸이든 마음이든, 치유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가장 친근한 부처님의 현신 중 하나입니다.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사찰에 이 약사여래불이 세워진 이유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아픔과 치유’를 상징하는 약사불을 세우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지요. 지금은 모두가 아픈 세상이니까요.
그리고 여야의 대표는 그 앞에서 모두 아픔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아프다’는 말은 세간의 이야깃거린 되었을지언정 공감의 대상은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 그들이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쓰다듬는 동안 정작 보듬어야 할 국민의 아픔은 뒤쪽으로 비켜나게 된 것은 아니었는지.
경기도 용인시 미평리에는 ‘의왕불’이라 불리는 약사여래불이 서 있습니다. 온화한 미소가 절로 웃음을 자아내는 이 석불은 발이 보이지 않습니다. 왜 발이 보이지 않을까. 그저 추측해 보건대, 혹시 이런 의미는 아닐까요.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 모두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 속에서 공존한다는 의미. 그래서 저토록 따뜻한 미소로 바라보는 많은 이들을 위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프냐? 나도 아프다!” 오늘의 키워드였습니다.
세부 사진을 검색해보니 용인 약사불은 받쳐주는 연화대도 없이, 발이 깨져 몸체에서 분리된 채, 땅바닥에 맨몸으로 서 있다. 높이 4.05m, 두께 0.5m, 가슴너비 1.3m. 강남좌불 십분의 일도 되지 않아 보이는 입상(立像)으로, 스스로가 병신이 되어 온몸으로 아픔을 표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약사여래를 찾아내서 뉴스를 만든 사람들, 참 눈도 밝다 하겠다. 끝으로 그 앵커의 여러 말을 한마디로 번역하자면, 이렇게 되겠다.
“아프다고? 감히, 어따 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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