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화두 참선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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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15 년 6 월 [통권 제2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434회 / 댓글0건본문
「고경」에서는 ‘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고우 스님은 출가 후 평생 선원에서 정진해 오셨으며, 지금도 참선 대중화를 위해 진력하고 계십니다. 화두 참선의 의미와 방법, 그리고 효과에 이르기까지 고우 스님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독자 여러분들께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 편집자 -
중도 정견과 화두 참선
지금까지 우리는 참선을 잘하기 위해 불교를 바르게 알아 정견을 세우는 것에 대하여 공부했습니다. 이것을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불교란 무엇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부처님은 누구냐? 깨달은 분이다. 무엇을 깨달았는가? 우주 만물의 존재원리인 중도를 깨쳤다, 우리 마음이 중도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도란 무엇인가? 내 마음에서 대립하는 양변에 집착을 떠나 가운데도 집착하지 않는 것을 중도라 한다.
중도를 다른 말로 지관, 쌍차쌍조, 살활, 이사, 체용, 색즉시공 공즉시색, 진공묘유, 초기불교의 사마타-위빠사나 등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나 모두 부처님이 깨달은 세계, 중도를 말합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중도를 언어와 문자로 설명하면 교(敎)라 하고, 실천하고 체득하는 것을 선(禪)이라 합니다. 역대 모든 부처와 조사 선지식들이 모두 중도를 깨쳐서 생로병사를 해탈하고 영원한 행복을 성취하였습니다.
이것은 병을 치료하는 처방전과 약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중도로 존재하는 본래 부처이나 ‘내가 있다’는 착각에 빠져 중생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 존재원리인 중도를 알아 실천하고 체득하면 본래 부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생이라는 착각을 깨쳐 부처로 돌아가는 길을 아는 것은 처방전과 같고, 그 처방대로 약을 지어 먹는 실천을 선이라고 합니다.
이 화두 참선, 즉 간화선은 바로 중도를 화두 참선해서 깨치는 것입니다. 간화선도 중도를 성취하는 것이지 다른 세계를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화두 참선을 잘하려면 바로 불교, 즉 중도에 대하여 바른 안목을 갖추는 정견(正見)을 세워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 글을 공부하여 온 분이라면 중도 중견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고, 정견도 세우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중도 정견이 서게 되면 부처님이 깨달은 중도 세계의 가치를 알게 되어 자기와 세상 만물을 보는 지혜가 나옵니다.
정견 즉, 바른 견해가 나오는 것은 정(正)과 사(邪)를 구분하는 안목을 말합니다. 삿됨을 말하는 사(邪)란 양변에 집착하는 것, 어리석음, 욕심, 화, 분별, 멸시, 차별 등의 번뇌망념을 가리킵니다. 바름을 말하는 정(正)이란, 양변에 집착을 떠남, 아우름, 통찰, 화합, 배려, 존중 등의 지혜를 말합니다.
우리가 중도를 이해해서 중도 정견이 서게 되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면서 지혜가 나와서 마주 하는 모든 일을 걸림없이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중도 정견이 100% 실천된다면 그런 사람을 부처나 도인(道人)이라 합니다. 부처와 도인은 100% 자동으로 지혜와 평화의 마음으로 모든 일을 원만하게 처리합니다. 영원한 행복을 성취한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이 중도 정견을 이해해서 일상에서 그렇게 실천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100% 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중도를 생활에서 실천하면서 화두 참선을 규칙적으로 해서 중도삼매를 자꾸 체험할수록 중도를 실천하는 힘이 커지고 강해집니다. 한마디로 영원한 행복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선지식을 찾아 가서 화두를 받아라
그런데, 이 화두 참선이 쉽지 않습니다. 화두 참선인 간화선 공부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가 바로 화두 일념(一念)이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 이래로 많은 이들이 화두 참선에 도전했으나 실패하고 간화선이 너무 어렵다, 상근기나 하는 공부다, 스님들이나 하는 공부라는 잘못된 인식이 확산되어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생각을 하고 사는데 화두 하나에 생각을 몰입하라 하니 쉽지 않습니다. 이치를 모르고 사는 삶이 고달프듯이 이 참선도 반드시 배워서 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그렇지만, 이 생사를 해탈하는 지름길인 간화선은 그냥 해서는 잘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느냐? 지금까지 누누이 말씀드려 왔습니다만, 다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불교가 무엇인지? 부처님이 누구인지? 부처님의 깨달은 중도에 대하여 바르게 공부해서 정견(正見)을 세워야합니다. 불교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것은 팔만대장경을 다 읽어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어려우니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 상권을 몇 차례 읽어 중도연기를 이해하면 불교의 가치를 알게 되고 정견이 서게 됩니다. 이 중도 정견이 서면 마음에 변화가 오면서 이를 실천하고 체험하는 길[道]을 확신하게 됩니다.
둘째, 정견이 서면 불교를 믿는 신심(信心)이 나오고 이를 체험하려는 발심(發心)이 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신심은 이웃종교처럼 신에 대한 무조건적 절대적인 믿음이 아니고, 부처님의 깨달음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말합니다. 즉, 부처님이 중도를 깨치고 영원한 행복의 길을 제시한 것처럼 자기 자신이 본래 부처라는 것을 이해하고 믿어야 하며, 우주만물의 존재원리인 중도에 대한 믿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불교의 신심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믿음입니다. 맹목적인 믿음은 신을 믿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것은 불교의 깨달음의 길과는 다릅니다. 부처님이 자기 자신을 깨달아 생로병사를 해탈하여 영원한 자유와 행복을 누렸듯이 우리도 부처님이 제시한 길을 가겠다고 마음 내는 것을 발보리심(發菩提心, 보리는 깨달음이니 그것을 향한 마음)이라 합니다. 발보리심을 줄여서 ‘발심(發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불교에 정견과 신심, 그리고 발심이 나야 비로소 화두 참선을 할 기본이 갖춰진 것입니다.
물론, 이 길 이외에 다른 길도 있습니다. 즉, 정견과 신심, 발심이 단박에 되는 경우입니다. 가령, 육조혜능 대사처럼 여관에서 『금강경』의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이 난다”는 말을 듣고는 그대로 신심과 발심이 나서 오조사로 출가해 8개월 만에 확철대오합니다.
고려시대에 나옹 대사 같은 경우는 젊은 시절 가까운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보고는 생사의 길을 알고자 바로 출가해서 도를 깨칩니다. 우리 조계종의 초대 종정을 지내신 효봉 스님도 일제강점기에 판사를 하다가 어떤 사람을 재판해서 사형을 시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진범이 나타나 당신이 죄가 없는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알고는 충격을 받아 판사직을 그만두고 출가해서 바로 참선해서 깨칩니다.
이와 같이 어떤 처절한 사건을 경험하거나 가까운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하거나 하면 인생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아 생사를 해탈하는 구도의 길로 바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불교를 공부해서 정견을 세우고 신심, 발심을 일으켜 참선을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철 스님도 이와 비슷한 과정으로 참선을 시작했습니다.
혼자서 『채근담』이란 책을 보다가 한 구절에 마음이 와 닿아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하여 선어록인 『증도가』를 읽고는 마음이 밝아져서 참선하고 싶은 마음이 났습니다. 그래서 고향인 산청에 가까운 지리산 대원사로 가서 요양하다가 화두참선 지침서인 『서장』을 보고 ‘조주무자’ 참선하는 법을 익혀 혼자서 참선을 시작한 지 42만에 동정일여에 이르렀습니다. 성철 스님도 출가 전 재가자로서 혼자 화두 공부를 시작해서 동정일여를 체험하고는 한 번도 방황하지 않고 영원한 자유와 행복의 길로 가셨습니다.
셋째, 불교를 공부해서 정견이 서고 신심과 발심이 된 사람은 선지식을 찾아가 공부 점검을 받는 문답을 하면서 화두를 받습니다. 이때 선지식은 반드시 가장 신뢰할 만한 분을 찾아가야 합니다. 선지식은 화두를 제시하고 공부 길을 점검해줍니다. 조계종 총림의 방장스님이나 선원의 조실, 유나, 선원장 스님들이 선지식으로 모실 만한 분들입니다.
요즘, 주변에 스스로 깨쳤다고 큰소리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만,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엉터리가 많습니다. 정견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공부하다가 뭔가 조금 체험을 하면 깨쳤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분을 선지식으로 알고 공부하게 되면 잘못된 공부를 할 수 있으니 반드시 선원에 검증된 선지식을 찾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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