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참선하는 근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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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16 년 5 월 [통권 제37호] / / 작성일20-05-29 12:44 / 조회7,227회 / 댓글0건본문
참선은 상근기만 하는 공부인가?
참선에 입문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참선은 상근기가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상근기(上根機)란 근기가 높은 사람을 말하는데, 반대는 하근기(下根機)가 됩니다. 그렇다면 근기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과연, 상근기와 하근기가 따로 있을까요? 근기(根機)란 무엇일까요? 육조혜능 스님 당시에도 이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지 『육조단경』 “근기”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근기가 약한 사람은 단박 깨치는 가르침을 들으면, 마치 뿌리가 약한 초목이 큰비를 맞아 모두 스스로 넘어져 자라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근기가 약한 사람도 이와 같다. 반야 지혜가 있는 점은 근기가 큰 사람과 차별이 없는데, 무슨 까닭에 법을 듣고도 바로 깨치지 못하는가? 삿된 견해의 장애가 두텁고 번뇌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마치 큰 구름이 해를 가려, 바람이 불지 않으면 해가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다 ……
그러나 하근기라도 단박 깨치는 가르침을 듣고 밖으로 닦는 것을 믿지 않고, 오직 자기 마음에서 스스로 본성으로 하여금 항상 정견을 일으키면 번뇌 진로의 중생이 모두 다 깨치게 된다. 큰 바다가 여러 가지 흐르는 물을 받아들여 작은 물과 큰물이 하나 되어 한 몸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 『고우스님 강설 육조단경』, 조계종출판사, 227쪽.
육조 스님은 모든 사람에게 지혜가 있는 것은 똑같아 차별이 없는데, 삿된 견해와 번뇌의 뿌리가 깊은 까닭에 하근기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佛性)이 있다 하셨고, 선(禪)에서는 중생이 모두 본래 부처라고 합니다. 성철 스님은 인간이 본래부터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백일법문』에서 늘 강조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이 스스로 근기가 낮다 하고 본래 부처인데 중생이라 생각하고 살아가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육조 스님은 근기가 낮은 사람은 정(正)과 사(邪)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상(四相,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는 뿌리가 깊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왜, 삿됨과 바름, 아상과 중생상을 벗어나지 못할까요? 바로 내가 중도연기, 무아공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내가 있다고 착각하여 집착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생로병사가 있고, 근심 걱정이 끝이 없습니다. 이렇게 ‘있다’에 집착하여 착각 속에 살아가니 스스로 중생이라 생각하여 생사고해(生死苦海)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근기라도 자기가 중도연기, 무아공으로 존재한다는 정견을 세우고 선지식으로부터 돈오 법문을 듣고 자기 생각에서 늘 지혜를 일으키면 누구라도 깨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부처인데, 단지 중생이라 착각하며 살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있다’는 그 착각만 깨면 단박에 부처로 돌아가 영원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상근기와 하근기가 따로 없다
상근기든 하근기든 본래 부처고, 절대적이고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다 갖추고 있는 존재입니다. 단지, 하근기라 함은 자신의 부처인 줄 모르고 중생이라 착각에 빠져 양변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이를 말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상근기란 자기가 본래부처라는 것을 믿고 실천하는 이를 말합니다. 상근기와 하근기 사이에는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똑같은 존재이나 단지 착각 속에 사느냐, 자기 자신을 믿고 사느냐는 생각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이 생각의 차이가 실제 화두 참구하는 데에도 크나큰 영향을 줍니다. 참선 초심자들이 좌선할 때, 화두 일념이 되지 않고 번뇌망상이 오락가락해서 참선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제 화두 삼매를 한 번이라도 체험하게 되면 참선에 확신이 서서 공부가 순일하게 됩니다.
그런데, 화두삼매 체험이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내가 있고, 번뇌망상이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면 망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망상에서 망상으로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하지만, 내가 본래 무아공이니 실체가 없다, 내가 없으니 번뇌망상도 실체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정견을 세워 지혜로 비춰보면 그 번뇌망상이 다 허깨비요, 꿈 같은 것이니 신경 쓸 게 없고 오직 화두에만 집중할 수가 있습니다. 정견이 서면 화두삼매가 쉽게 성취됩니다.
그래서 참선에 입문하는 이들은 부처님이 깨친 중도연기, 무아공을 철저히 공부해서 정견을 갖추고 화두 공부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철 스님은 참선하려면 먼저 사상 정립을 하고 화두는 배워서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참선하는 사람들 가운데에 불교에 바른 안목을 갖추는 사상 정립을 하고 화두를 제대로 배워서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참선에 입문하면 공부 도중에 여러 장애나 경계를 만나면 ‘아, 나는 참선 인연이 안되는구나!’ ‘참선은 상근기나 하는 것이라더니 나 같은 하근기 중생은 안되는구나!’ 하고 퇴굴(退屈)심으로 쉽게 물러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면, 참선 도중에 신비한 경계를 체험하고는 거기에 집착하여 스스로 깨쳤다거나 이상한 길로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참선을 몇십 년을 해도 공부에 진척이 없고 앉으면 졸거나 적적삼매에 빠져 공부를 그르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평생 참선을 해도 정견을 모르거나 성성적적한 화두삼매를 체험하지 못하면 화내거나 인색한 마음이 줄어들지 않아 자기 마음도 선방도 늘 시비 갈등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 선방에는 이렇게 공부하는 이가 없는지 스스로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처음 참선에 입문하는 이는 물론이거니와 참선을 오래 한 사람도 반드시 불교에 정견을 세우고 선지식에 의지해서 화두 참선을 해나가야 합니다. 특히, 참선을 오래 했는데도 화두의 성성적적삼매를 체험하지 못하는 분들은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 상권을 반복해서 읽어 불교의 중도연기를 확실히 이해해서 중도 정견을 갖추고 화두 참선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정견을 갖추고 자기 마음을 믿으면 상근기
거듭 말하지만, 상근기 하근기가 따로 없습니다. 『백일법문』을 반복해서 읽거나 다른 경전이나 선어록, 또는 선지식의 돈오 법문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중도연기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면 정견이 서고 자기 자신이 절대적이고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다 갖추고 있다는 믿음과 그것을 체험하고 실천해야겠다는 발심이 납니다. 이런 사람이 상근기입니다. 무엇보다 불법을 믿고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근기로 불리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자기 밖의 선지식이나 다른 무엇을 믿습니다. 늘 자기를 중생이니 하근기니 공부가 부족하니 능력이 없다고 상대 분별심으로 봅니다. 이런 분은 늘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부족합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이는 먼저 부처님 법을 이해해서 믿으면서 자기 자신 또한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와 깨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단박 깨치는 돈오선(頓悟禪), 화두참선을 하려는 이는 자기 자신이 본래 부처이고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님 마음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정견과 믿음이 굳건 할수록 화두 참선이 잘 되며 공부가 빠릅니다. 반대로 삿된 견해에 집착하고 자기 마음과 능력에 믿음이 약할수록 화두참선이 어렵고 공부가 흔들립니다.
그래서 박산무이 선사는 『참선경어』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선종(禪宗)에서는 범부(凡夫)에서부터 완전히 부처와 똑같다고 한다. 이 말은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데가 있겠으나, 믿는 사람은 선(禪)을 할 수 있는 그릇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이 근기가 아니다. 모든 수행자가 이 방법을 택하려 한다면 반드시 믿음으로부터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믿음’이란 말에도 그 뜻이 얕고 깊은 차이와 바르고 삿된 구별이 있으므로 가려내지 않으면 안된다.
믿음이 얕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불교에 입문한 이라면 뉘라서 신도(信徒)가 아니라고 자처할까마는 그런 사람은 단지 불교만을 믿을 뿐 자기 마음을 믿지 않으니 이것을 말한다.”
- 『참선경어』, 장경각,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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