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는 연등회를 기대하며 > 월간고경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월간 고경홈 > 월간고경 연재기사

월간고경

[목탁소리]
발전하는 연등회를 기대하며


페이지 정보

원택스님  /  2015 년 5 월 [통권 제2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295회  /   댓글0건

본문

이제는 “거기가 어디더라?”고 생각해봐야 할 정도로 기억이 희미해졌습니다만 외할머니 손에 잡혀, 또 어느 해에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초파일 행사에 따라 갔던 추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초등학생 때 갔던 절은 시끌벅적하고 마당에 연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풍경이 신기하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불교학생회에 가입하고 나서 절집에서 초파일을 맞이하는 바쁜 나날들을 조금은 익힐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백련암으로 출가하게 되고 초파일이 다가오면서 행자였던 저는 무척 바쁜 나날이 될 것이라며, 그야말로 발을 동동거리며 뛰어다녀야 할 것만 같은 걱정 아닌 걱정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조바심이 나서 어느 날 원주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백련암은 초파일 등을 준비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연등을 큰절(해인사)에서 가져옵니까?” “그 행자 초파일이 되게 기다려지는 모양이네요. 여기는 암자인데 어떻게 큰절 등을 가져온다는 발상을 다 할 수 있소? 백련암은 초파일 등을 달지 않아요!”

 


연등행렬 만국기등 행렬 

 

원주스님의 날카로운 눈빛에서 나오는 말을 듣는 순간 무척 무안했습니다. 저는 방장스님이 계시는 곳이니 연등을 만들지 않아도 큰절에서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원주스님은 상당히 기분 상해하는 눈치였습니다. 앞뒤 사정을 알지도 못하는 갓 출가한 행자의 섣부른 걱정이 원주스님에게 무안을 당했습니다. 백련암에 살면서 “내가 해인사 방장인데, 이곳 백련암에 등을 다는 것은 어른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백련암에 초파일 등을 달고 싶다는 신도는 다 큰절로 보내라.”는 큰스님의 당부 말씀이 있어서 백련암에서는 연등행사가 없었고 지금까지도 백련암은 초파일 등 없이 적막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 해인가, 여의도 연등축제에 참가했습니다. 초파일 연등행사를 마치고 여의도부터 조계사까지 제등행렬이 있었습니다. 선두그룹이 출발하고 나서 한참 지나서 제가 속한 그룹의 출발 차례가 되었습니다. 마포대교를 지나고 아현동 고가 차도까지 오는 동안 환하던 가로등도 희미해지고 대오는 점차 흩어져 사람들은 삼삼오오 제등행렬을 따랐습니다. 이렇다 보니 축제분위기는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종근당 앞을 지나고 서대문 네거리를 지나니 몸은 지칠 대로 지쳐가고 있는데 제 앞에 어느 노스님께서 연등을 들고 휘적휘적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다시 힘을 내어 걸어가며 “어떤 노스님께서 이 긴 제등행렬의 길을 걸어가실까?”하는 의심이 들면서 대단한 신심이시라는 생각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저도 힘을 내 빠른 걸음으로 그 노스님 뒤를 좇았습니다. 다가가서 그 노스님을 뵈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원로의원으로 계시며 모든 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시던 석주 큰스님이셨습니다. “큰스님! 저는 백련암의 아무개 중입니다. 어떻게 큰스님께서 몸소 걸으셔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고 감격스러운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래! 백련암 스님께서는 잘 계시는가? 나야 정정하니 대중과 함께 걸어야지. 이제 다 왔잖아. 허허.” 저만치 광화문 로터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여의도에서 조계사까지의 제등행렬에 참가하고 연등축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입니다.

 

그 뒤 세월이 흘러서 1999년 1월에 고산 큰스님을 총무원장으로 모시고 총무부장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연등축제행사를 주관하는 봉축위원회가 있는데, 바로 총무부장이 책임자라고 했습니다. 담당자가 “연등축제 준비는 지금부터 서둘러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봉축위원회 사무실에 곧 들를 것이니 그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읍시다.”고 했는데 예전에 제등행렬에서 뵀던 석주 큰스님의 모습과 성철 큰스님 다비식 때의 전경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성철 스님 다비식에 운집한 대중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큰스님 다비식 때의 모습은 해인사IC에서부터 차가 밀려 30여리의 길을 걸어 걸어 다비장으로 와야 하는 기나긴 행렬과 수십 만의 인파를 다비장에서 지켜보는 저는 감동과 긴장과 안전사고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무사히 다비식을 마친 후 오라고 강제한 일도 없는데 떠나시는 스님을 애도하려고 자발적으로 밀려드는 그 많은 군중들 자체가 큰스님에 대한, 불교에 대한 크나큰 애정임을 통감한 감정은 지금도 가슴을 감동케 합니다.

 

봉축위원회에 가서 여러 가지 보고와 준비 상황 등을 듣고 난 후 질문했습니다. “제등행렬 할 때 연도에 불자들이 얼마나 나와 축하합니까?” “전에는 여의도에서 조계사까지 제등행렬을 했습니다. 그 길이 너무 멀고 산만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월주 큰스님이 총무원장을 하실 때 총무국장이던 지현 스님이 주장하셔서 최근에는 동대문운동장에서 조계사까지 여법하게 제등행렬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연도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제등행렬에 박수를 보냅니다.”

 

총무부장으로 취임하여 처음 연등축제를 진행하는 책임을 맡게 되니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그 해 처음 연등축제를 마치고 며칠 뒤 봉축위원회 직원들이 모여 평가회의를 하고 나서 한 마디 했습니다.

 

“저번에 제등행렬 때 연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오느냐고 물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고 답을 들었습니다. 많이 나온다는 그 사람들이 올해 다 어디 갔습니까? 주의를 기울여 주변을 살펴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내 눈에는 동대문 앞도 캄캄하고 종로 5가, 4가도 캄캄하고 종로 3가에 오니 겨우 극장에서 영화 관람을 마친 사람들이 길 건너기를 멈추고 제등행렬을 바라볼 뿐이고 화신 앞에 와서야 시끌벅적한 그것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야 국민들과 불자들에게 무슨 감동을 주겠습니까? 내년에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연도에 10만명은 모여서 연등축제를 모든 국민과 불자들이 함께 즐기며 감동하는 행사로 만들어야 합니다. 군중의 모임은 그 자체로 감동을 주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부장스님! 지금까지 우리들의 고민도 그것입니다. 제등행렬의 수준은 해마다 높아지는데 연도에 불자들을 모으는 것은 서울지역사찰 주지스님들의 협조가 없어서 되지를 않습니다.”
“주지스님들 타령만 해서는 안 되고 연등축제에 올 수 밖에 없도록 분위기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해가 지나고 다시 연등축제가 열렸습니다.
제등행렬이 동대문 앞을 돌아 나오니 징과 북과 장구와 꽹과리를 앞세운 사물놀이패들이 종로5가까지 늘어서 신나게 춤을 추니 행렬하는 본진들도 여태까지 없던 모습에 반가워하고 놀라면서 모두들 손을 흔들고 흥이나 예전에 볼 수 없던 활기와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종로 4가로 다가가니 주위가 예전처럼 적막했습니다.

 

평가회의에서 “어찌돈 영문이냐?”고 물었습니다.
“부장스님의 뜻을 따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대중동원은 어렵고 해서 동대문운동장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대중이 1만 5000여명 됩니다. 그 인원을 5개로 나누는데 끝 순번인 5번 출발인원을 본진보다 먼저 출발시켜 종로5가까지 늘어서게 했습니다. 내년에는 4번 순번까지 종로4가에 늘어서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봉축위원회 직원들이 애를 쓰고 했지만 제 소임때까지는 주변이 썰렁함을 메울 수 없었습니다.

 


연등행렬 한글등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연등축제 제등행렬이 지나가는 연도에 환호하는 시민과 불자들이 차츰차츰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총무부장 소임을 놓은 지 몇 해 후에 봉축위원회로부터 초청이 왔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이제는 언론에서 연등축제에 10만명이 운집한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처음으로 종로3가 탑골공원 앞에 연단을 설치하여 종단협의회 소속 각 종단의 총무원장스님과 VIP를 초청합니다. 오셔서 참관해 주십시오.”

 

뜻밖의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축제에 참가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이라 그런지 마음 한 구석에서는 여전히 서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경기지역 주지스님들이 연등축제의 중요성을 깨닫고 동대문 사거리에서 종로 화신 앞까지 2~30만 신도들이 여법하게 운집하여 ‘석가모니불’을 염불하며 2~3시간만 동참하면 그것만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것이며 CNN 등 세계적 언론에 보도되면 이보다 더 큰 포교가 어디 있겠나?”

 

그 다음 해엔가는 김천 직지사에서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바로 연등축제에 올라왔다면서 각국의 한국대사 내외분들 2~30여명이 탑골공원 관람석에 참석하여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연등축제 제등행렬에 등장하는 여러 조형물들도 나날이 발전하여 축제의 열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한 열성은 천태종을 위시하여 타 종단에도 영향을 미치고 조계종에서는 한마음선원, 능인선원, 봉은사 등이 늘 앞서 왔습니다. 제등행렬이 오늘날처럼 T자등으로 환하게 밝아진 것은 15년 전의 봉은사가 제등행렬에 처음 들고 나와 지금은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년 색다른 등으로 감격을 주는 사찰로는 한마음선원이 오늘도 그 역사를 이어가고 능인선원도 연등축제의 역사를 썼습니다. 이제는 모든 종단에서, 모든 절에서 연등축제 참가에 혼신을 기울이는 정성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2년 4월 6일 연등축제도 ‘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 연등회’로 지정되면서 조계종의 봉축위원회 역시 연등회 보존위원회로 발전되었습니다.

 

언제가 연등 봉축행사가 이루어지는 종로 거리에 30만 이상의 불자가 정성스럽게 ‘석가모니불’을 염송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원택스님님의 모든글 보기

많이 본 뉴스

추천 0 비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 03150 서울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파빌리온 1232호

발행인 겸 편집인 : 벽해원택발행처: 성철사상연구원

편집자문위원 : 원해, 원행, 원영, 원소, 원천, 원당 스님 편집 : 성철사상연구원

편집부 : 02-2198-5100, 영업부 : 02-2198-5375FAX : 050-5116-5374

이메일 : whitelotus100@daum.net

Copyright © 2020 월간고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