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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청마의 해를 보내고 푸른 양의 해를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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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5 년 1 월 [통권 제2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56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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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합니다. 새해의 계획을 잘 세우기 위해서 지난 새해에 어떤 각오를 세웠었나 하고 작년 「고경」 1월호를 참고삼아 펼쳐보았습니다. 사람의 일인지라 그 일을 잊고 있었는데 작년 1월은 서강대 종교학과 서명원 교수님이 당신의 책에 게재한 영어논문에서 “성철 수행법은 권위주의의 산물”이라고 한 것을 <조선일보>가 2012년 12월 18일자로 자세히 보도해 한참 시끄럽게 새해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서명원 교수님도 당신의 논문에 대한 주위의 반론이 만만치 않아 “내 영어논문을 잘못 이해하여 해석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인 듯싶습니다. 내 뜻에 오해가 없도록 한글 번역문을 발표할 것이니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 글 때문에 주위로부터 저 자신 역시 엄청난 질타를 받았던 기억입니다.

 


법전 큰스님 진영 

 

“논문은 논문으로 답해야 한다.”는 당연한 말씀을 주변의 박사님들이 말씀하시는데 마땅한 논자를 찾지 못해 애태웠습니다. 그런데 마침 「불교평론」 58호에 “돈점논쟁, 진리담론(法談)인가 권력담론인가-서명원의 ‘성철 읽기’에 대한 비판적 검토”라는 제목으로 울산대학교의 박태원 교수께서 논문을 발표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박사님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서명원의 글은 돈점논쟁에 연루된 다채로운 시선들을 유심히 재음미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에 유익했다. 성철의 돈점론과 한국불교의 돈점논쟁은 아직 탐구와 이해의 초기 단계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돈점논쟁은, 권력담론이기는커녕 강력한 진리담론이라는 생각을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진리담론은 한국불교뿐만 아니라 불교 자체의 미래 전망에도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 의미를 발굴하여 현실에 재귀시키는 것은 학인들의 몫으로 남는다.”

 

“큰스님 추모사업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나의 스승, 성철’의 인터뷰 기사가 같은 호에 실려 있어서 지난 1년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원택 스님은 그간의 일들을 뒤로하고 다른 ‘시봉’을 준비하고 있다. 먼저 2015년 완공을 목표로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 있는 겁외사에 ‘성철 스님 기념관’을 건립하는 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기념관에는 불자들이 직접 실참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할 예정이다. 또 2014년 상반기 중으로 『백일법문』 증보판을 발간하고 『선문정로』의 주석서를 출간하는 것도 큰스님께서 내리신 큰 숙제이다.”

 

약속한 바와 같이 ‘성철 스님 기념관’을 3월 1일 공식 개원하여 4월 24일에는 원만한 회향을 하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 11월에 개정증보판 『백일법문』(상·중·하)을 출간하여 불교출판계의 연말 베스트셀러 대열에 진입하는 결과를 얻어서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문정로』의 주석서 출간은 올 한해에도 쉽지 않은 일이 될 듯합니다. 또 불자들이 직접 실참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구성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어서 다양한 의견들을 아직도 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 해가 지나면서 <교수신문>에서 지난해를 총평하여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사자성어로 표현했습니다. 『한한대사전』을 찾아보니 “진나라 환관 조고(趙高)가 진시황의 뒤를 이은 아들 이세 황제에게 말을 바치고서는 사슴이라고 하였다. 여러 신하들 중에서 그것은 사슴이 아니고 말이라고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을 벌을 준 고사(古事)이다. 둘러서 윗사람을 농락하여 위세를 마음대로 부리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지난 한해 세월호 침몰사건을 필두로 땅에서 바다에서 안전사고가 일어나고 또 십상시니 뭐니 하는가 하면, KAL ‘땅콩 회항사건’으로 국민의 기대와는 어긋나게 청마의 해가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다시 청마의 해라고 들떴던 새해에는 <교수신문>에서 어떤 사자성어로 한해를 기대했었는가 하고 찾아보았습니다. 뜻밖에도 ‘전미개오(轉迷開悟)’로 새해의 부푼 기대를 표하고 있었습니다. 전미개오는 불교용어로 번뇌의 ‘미망을 벗어나서 마음을 깨친다’는 의미로써 중생의 고뇌에 찬 세상을 바꿔서 열반해탈의 깨달음의 세계를 실현한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러한 기대나 바람은 한 해를 보내면서 깨달음 세계의 실현이 아니라 온 국민의 마음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듯한 실망감을 느끼게 하였다는 비판으로 지록위마가 등장했나 봅니다.

 

푸른 양의 해인 올해는 정말 주변사람들에게 활력을 주는 유쾌하고 넉넉함을 베푸는 한해이기를 바래봅니다. 아직은 일러서 그런지 <교수신문>에서 발표한 올해의 사자성어를 알지 못합니다만 저는 올해도 전미개오를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대한불교조계종 11대, 12대 종정을 역임하시고 해인총림 방장으로 계시던 도림 법전(道林法傳)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시는 소식을 접하고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법전 큰스님께서 남기신 ‘임종게’입니다.

 

산색수성연실상(山色水聲演實相)
만구동서서래의(曼求東西西來意)
약인문아서래의(若人問我西來意)
암전석녀포아면(巖前石女抱兒眠)

 

산빛과 물소리가 그대로 실상을 펼친 것인데
부질없이 사방으로 서래의를 구하려 하는구나.
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서래의를 묻는다면
바위 앞에 석녀가 아이를 안고 재우고 있구나.

 

큰스님께서는 또 주석하던 해인사 퇴설당 경상(經床) 서랍에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겨두시기도 했습니다.

 

해고종견저(海枯終見底)
인사부지심(人死不知心)

 

설령 바다가 마른다고 해도 그 바닥을 볼 수 있건만,

사람들은 죽도록 그 마음바닥을 알려고 하지 않는구나.

 

세속의 탐욕에만 집착한 채 자신의 마음자리를 찾는 공부에는 소홀히 하는 중생을 향한 호된 경책이기도 합니다.

 

1925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한 큰스님께서는 1939년 장성 백양사 청류암에서 출가하셨습니다. 1941년 영광 불갑사에서 설제 스님을 은사로 설호 스님을 계사로 수계 득도하시고 백양사 강원에서 수학한 후 해방 전 만암 스님의 고불총림결사에 동참하셨습니다.

 

봉암사결사를 통해 성철 큰스님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참선공부를 시작하셨고, 이후 통영 안정사 천제굴과 파계사 성전암 등에서 성철 큰스님을 모셨습니다. 1969년 김천 수도암으로 거처를 옮겨 가람중수와 선원복원을 통해 수많은 납자들을 제접하셨습니다.

 

이와 함께 원로회의의장을 비롯해 총무원장, 중앙종회의장, 해인총림 방장과 유나, 해인사 주지 등 종단 주요 소임을 두루 거쳤으며 2002년과 2007년 11대, 12대 종정으로 연이어 추대되셨습니다.

 

특히나 큰스님께서는 수좌들 사이에서 ‘절구통 수좌’로 불릴 만큼 엄청난 정진력을 보이셨습니다. 수마(睡魔)를 조복 받아 며칠째 한자리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용맹정진을 했고 한겨울을 찬밥 한 덩이에 김치 한 조각 물 한 모금으로 버티기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평생을 수행으로 일관하셨던 법전 큰스님께서 1947년 가을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아래 모였던 눈 푸른 수행납자 가운데서 이제 마지막으로 떠나셨으니 조계종 큰 역사의 구비가 세월 속에 나이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도의 길은 따지고 분석하는 데 있지 않다. 그저 온몸으로 부딪쳐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수행자의 생명은 화두다. 도의 길에는 많은 것이 필요 없다. 화두에 생명을 걸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남이 방일 할 때 방일하지 않고 남이 잠 잘 때 잠자지 않고, 쓸데없는 소리할 때 쓸데없는 소리 안하고, 누가 보더라도 저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할 정도로 노력해야 한다. 자성을 못 깨치고 죽으면 지옥이다. 그리고 절박해야 한다. 화두참선에 대해서 이러니저러니 말하지 말자. 덤벼들어 공부하지 않는 자들에게 허물이 있을 뿐이다.”


법전 큰스님의 체험 속 당부의 말씀을 따라 올 한 해는 불자들 모두가 꼭 전미개오의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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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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