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는 불상의 미학]
팔관재계와 참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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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련 / 2024 년 3 월 [통권 제131호] / / 작성일24-03-04 10:14 / 조회2,512회 / 댓글0건본문
지난 호에서 이불병좌불감과 과거칠불도상의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보현보살권발품」에 의하면 수행자가 21일 밤낮으로 『법화경』을 독송하고, 그 뜻을 이해하며 관불觀佛수행을 하면 선정[夢] 속에서 과거칠불을 볼 수 있다. 이때 수행자가 자신의 악업을 참회하면 그가 임종할 때 천불千佛이 손을 내밀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미륵보살이 상주하는 도솔천에 상생하게 된다.
필자는 이번 호부터 남악대사 혜사가 입적한 후 6세기 중국에서 유행한 말법사상을 다루고자 한다.(『고경』 제122호, 제123호 참조).
법화삼매와 참회
천태지의(538∼597)는 그의 나이 23세(560)에 남악대사 혜사(514∼577)의 제자가 된다. 혜사는 법화삼매를 강설하며, 매일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니 도솔천의 미륵을 친견하였다고 하였다. 혜사는 말법시대가 434년 시작되었으며, 그는 말법 82년(515년)에 태어났다고 하였다. 즉 그가 활동한 6세기 중국의 수행자들은 말법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당나라로 유학한 우리나라 승려들은 과연 이들의 행적을 인지하고 있었을까?
혜사는 수행자가 정계를 지키고 마하지관을 수행하는 선법을 강조하였다. 마하지관은 『법화경』의 수행법 중 가장 높은 법이다. 즉 부처님의 실상을 바로 관찰하는 관법을 말한다. 자기 안의 본성을 응시하고 악업을 소멸하는 참법을 닦는 수행이다.
천태지의의 『법화삼매참의法華三昧懺儀』에서 제시한 법화참법의 순서를 살펴보자. 1. 도량을 청정히 한다[嚴淨道場], 2. 몸을 청정히 한다[淨⾝], 3. 삼업으로 공양한다[三業供養], 4. 삼보를 청하고 받든다[奉請三寶], 5. 삼보를 찬탄한다[讚歎三寶], 6. 예불禮佛, 7. 참회懺悔(육근 참회·권청·수희·회향·발원), 8. 경행經行 혹은 탑돌이를 한다[⾏道旋遶], 9. 『법화경』을 독송한다[誦法華經], 10. 부처님이 설법한 대승경전 『법화경』을 사유한다[思惟⼀實境界]로 구성되어 있다.
당(618∼907)시기 둔황 103굴 남벽 벽화를 보자(사진 1). 탑을 중심으로 탑돌이를 하는 여덟 명의 불자들이 각양각색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1. 공손히 서서 합장한다, 2. 오른손을 높이 들어 공손히 탑을 받든다, 3. 양쪽 무릎을 꿇고 양손을 머리를 대며 오체투지를 한다, 4. 양쪽 무릎을 꿇고 합장한다, 5. 오른쪽 무릎만 꿇고 합장한다, 6. 공손히 서서 합장한다. 이와 같은 탑돌이 자세는 오른쪽으로 진행되며, 당나라 불교의식이라고 추측한다.
『고승전』 「담무참曇無讖」 조에 보면, 사문 도진道進이 수계 받기를 원하자, 담무참은 크게 화를 내며 먼저 참회하라고 하였다. 그 후 도진은 전심전력으로 3년 동안 좌선하고 참회하자, 참선수행 중 나타난 석가모니가 계법을 주었다.(주1)
이와 같이 수행자의 참법은 수계를 받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즉 악업을 소멸시키는 참법수행을 통해 과거의 업장을 소멸한 후 불자가 되는 수계의식을 받아야만 한다. 특히 육근 참회는 제불을 향하여 과거의 죄를 말하는 과정인데 참선수행 중 과거불을 인지하고 참회-회향-발원까지 끝내야 하는 길고 어려운 수행과정이다.(『고경』 제129호, 과거불사상 참조)
『미륵대성불경』에서 석가모니는 사리불에게 말한다. 과거칠불에게 예배하고 공양하여 모든 과거업장이 소멸된 후, 미래세에 이르러 미륵의 법문을 듣고 그에게 귀의할 수 있다고 하였다. 경전 종결부분에서 아난과 사리불이 세존께 경전의 이름을 묻자, “이 경전은 일체중생이 오역죄의 뿌리를 제거하고 모든 업장과 번뇌장애을 끊고 자비심을 닦아 미륵에게 귀의하는 경이다.”(주2)라고 하였다. 즉 세존은 경전 명에서 수행자가 모든 업장을 끊을 수 있는 경전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하지만 수행자는 미륵경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참회와 수계를 받아야만 하는 전제조건을 명심해야만 한다.
필자는 대승경전에서 말하는 승려의 참회법과 일반 대중의 참회의식이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일반 대중은 과연 어떻게 참회의식에 참여했을까?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34권을 보면, 죽림원에서 빈생동자貧生童子가 비구에게 어떻게 하면 천상天上에 태어날 수 있는가 물었다. 비구는 답하였다. 첫째,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배울 수 있는 곳에서 출가하기, 둘째, 팔계와 오계를 받아서 하루 낮과 밤을 지키고 삼보를 공경하기, 셋째, 오백 금전을 써서 부처님과 승려에게 공양하면 그 업인業因으로 천상에 태어난다고 하였다.(주3)
그러나 첫 번째 항목 출가하기는 모든 중생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두 번째 항목은 역사적으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세 번째 항목은 가족 중 죽은 자와 병든 자를 위하여 불상을 조상하고 불사를 후원하는 활동이 이에 속한다.
팔관회와 참회법
다음의 『수팔계재문受八戒齋文』을 통하여 팔관회를 살펴보자(사진 2). 판본은 총 18장이며 크기는 24.4×15.8cm이다. 1247년 개인소장 목판본이다. 내용은 팔관회 의식이며, 1. 청육류성중, 2. 참회업장, 3. 참회멸죄인, 4. 발보리심, 5. 발보리심인, 6. 귀의삼보, 7. 팔계상, 8. 회향발원, 9. 회향윤시라니인, 10. 월등삼매경게운, 11. 화엄경게운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의식 중에 제2 참회업장의 절구를 보자.
“(나는) 헤아릴 수 없는 과거겁을 사유하였다. 윤회의 악취를 남기지 않고 작은 선업을 쌓은 인연으로 인간의 몸을 받았지만, 수없이 팔계를 어긴 것을 크게 부끄러워한다. (중략) 정진하여 빨리 무상보리심의 성취를 기원한다.”
팔관회의 역사는 신라 진흥왕 12년(551), 33년(572)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백 명의 고승을 초청하여 백고좌법회百高座法會를 열고 전쟁에서 전사한 군사를 위한 불교의식이었다는 기록만 존재하고, 의례 내용은 거의 전하지 않는다. 추측컨대 의식 순서는 위에서 언급한 고려시대 『수팔계재문』의 내용과 거의 상통할 것이다.
또한 궁예도 899년(효공왕 3년) 팔관회를 개최하였으며, 고려 건국 후 팔관재계와 연등회는 명실공히 불교국가 고려의 최고 행사였다.
다음의 『팔관재계비밀영생정토심요八關齋戒秘密永生淨土心要』를 보자(사진 3). 용흥사 소장이며 장흥 천관사 1631년 목판본이다. 그림은 21.6x19.4cm 크기이며 총 36장이다. 먼저 판본 상단의 제문을 살펴보자.
팔관재계 초팔일에 염라천자전에 엎드려 기원할 때, 만일 불자가 염라천자전 하계의 나무지장보살을 일천 번 염불하면 금생에 요설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제문 아래 그림을 보자. 면류관을 쓴 염라대왕은 홀을 들고 있다. 그의 관과 홀은 죄인의 업을 판단하는 신분과 권위를 상징한다. 그의 좌우와 앞에 관모를 쓴 관리 2인과 여인이 서 있다. 관리는 긴 두루마리 장권을 들고 염라대왕에게 죄인의 악업을 보고하고 있다.
그림 하단을 보면 세 명의 죄인이 나무 기둥에 묶여 있으며, 염라대왕의 옥졸이 그중 한 죄인의 혀를 뽑고 있다. 이는 생전에 쌓은 구업의 대가를 받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두 자료(사진 2와 사진 3)는 국가행사인 팔관회의 사회적 역할을 제시하고 일반 대중에게 과거의 죄업을 참회하고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팔관재계는 승려가 주관하며 육재일이나 삼장재월인 1월, 5월, 9월에 행한다. 육재일은 매월 6일, 14일, 15일, 23일, 29일, 30일에 수행자들이 선을 닦고 악을 피할 수 있도록 스스로 근신하며 포살布薩하는 날이다. 신라의 자장율사에 의해서 확립된 승려의 포살의식은 매월 15일과 30일에 모여 그동안 지은 죄를 참회하는 불교의례이다. 팔관재계를 행하면 그 공덕으로 죽은 뒤에 욕계의 육천六天에 태어나고 삼악도三惡道(지옥도, 축생도, 아귀도)와 팔난八難(어려움, 배고픔, 추위, 더위, 물, 불, 칼, 전쟁)에 떨어지지 않게 되며, 오역죄를 없애고 모든 죄의 업장을 소멸할 수 있다.
자장慈藏(590∼658) 율사는 636년(선덕여왕 5년) 제자들을 데리고 7년 동안 당나라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오대산에서 수행하던 중 문수보살의 계법을 받고 귀국하여 황룡사 9층탑의 건립(645년경)과 불국토佛國土 신라를 구현하려 하였다. 또한 자장 이전까지 구축하지 못한 신라불교의 교단 조직을 확립하고 승려의 계율을 체계화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자장율사는 말법시대를 인지하고 있었을까? 말법시대는 다음 호에서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다음은 2018년부터 경주 황룡사지 서편지구에서 발굴된 토제등잔(사진 4)을 살펴보자. 등잔은 약 10cm 지름이며 모두 1712점이 출토되었다. 이와 같은 등잔은 현재까지 그 사용처가 분분하지만 경주 황룡사에서 개최된 연등의례에서 사용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오대(907∼960)시기 둔황 146굴 북벽 벽화(사진 5)를 보자. 벽화 중앙을 차지하는 연등륜대는 5층이며 두 사람이 각 층의 등잔을 장식하고 있다. 벽화의 등잔은 위의 황룡사에서 발굴된 토제 등잔의 용도와 크기를 가늠하게 한다. 이와 같은 연등대는 『성취묘법연화경왕유가관지의궤』 1권 경전에서 언급하고 있다. 법화삼매의 연등은 단의 네 모서리에 구리 등대를 놓고 등잔을 소유(버터)로 밝힌다. 등대의 네 모서리 밖은 거다라나무(Khadira의 음역으로 콩과 아카시아 나무) 막대기를 꽂는다. 육근이 청정하기를 바라는 수행자는 연등 공양을 포함한 갖가지 공양을 하고 육천 겁의 공덕을 채워야 법화삼매를 성취할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팔관회와 연등회는 역사적으로 그 성격이 변하였지만 불교의례의 참모습에서 다시 복원되어야 할 것이다.
<각주>
(주1) T50/2059/335c.
(주2) T456/434a26-27, “名一切衆生斷五逆種淨除業障報障煩惱障修習慈心與彌勒共行.”
(주3)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 卷第三十四, “聖者,我作何業,生彼天中?’ 答曰:‘汝若能於佛正敎中,善說法律,而出家者,於現世中,策勵修習,斷諸煩惱,盡苦邊際.若不獲果,有餘煩惱,而命終者,當生天上.’‘聖者,若出家者,當作何業?’ 答曰:‘乃至命終,無虧梵行.’ 曰:‘我不能作,更有何業,得生天上?’‘若受八支及五學處,爲近住,近事.’曰:‘此作何事?’ 答曰:‘若一日夜,或至盡形,不殺,盜,婬,不妄語等.’曰:‘此亦不能,更作何業,當得生天?’問曰:‘若以飮食,供佛及僧,由此福因,當生天上.”(ABC, K0891 v22, p.282b09-b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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