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화두 공부에서 경계와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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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16 년 1 월 [통권 제3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751회 / 댓글0건본문
참선할 때 화두가 일념이 되어 순일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순풍에 돛 단 듯이 광활한 바다를 편안하게 건너갈 수가 있습니다. 화두가 또렷또렷하게 지속되면 번뇌망상이 저절로 사라져 마음이 밝아지고 편안하게 되어 일상생활을 활기차게 해나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화두 일념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화두가 쉬웠으면 우리 주변에 도인이 숱하게 나왔겠지요. 그만큼 도인 보기가 어려운 것은 이 공부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두가 어렵다는 것은 공부 길을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화두 공부는 정견과 직결됩니다. 지금부터 화두 공부에 장애가 되는 몇 가지 문제를 살펴보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혼침과 도거의 대처
먼저, 화두 참선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경험하는 것이 혼침과 도거입니다. 혼침(昏沈)이란 마음이 흐리멍덩하거나 몽롱한 상태를 말합니다. 좌선하는데, 화두가 되지 않고 의식이 몽롱해지면 잠이 바로 옵니다. 화두 공부가 안 되고 마냥 졸립기만 합니다. 그럼 시간이 잘 갑니다. 참선을 처음 시작하는 초심자들이 이 혼침에 빠지면 앉기만 하면 졸거나 잡니다. 안거 기간에 선방에서 혼침에 익숙해지면 한 철 자다가 시간을 다 보낼 수도 있습니다. 아무런 공부가 되지 않은 채 시간만 허비하는 겁니다. 이렇게 10년을 선방에서 보낸들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옛날 선지식이 계실 때는 졸면 죽비로 경책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죽비로 경책하는 선방도 많지 않습니다. 어쨌든 혼침은 무서운 것입니다.
혼침은 몸이 피곤하거나 약할 때 쉽게 옵니다. 몸이 많이 피로한 상태에서 좌선하는 경우 화두를 놓고 잠깐 자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합니다. 5분 이상 졸면 안 되지만, 잠깐 피로를 풀고 의식을 맑게 해서 화두를 또렷또렷하게 챙겨 가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합니다. 이것도 습관이 되면 안 됩니다. 혼침과 졸음을 예방하려면 평소 잠을 적당히 자야 합니다. 물론 용맹정진 기간이나 화두 일념이 되어 밀어 붙일 때는 잠도 자지 않아야 하지만, 평상시에는 적정한 수면 시간을 유지해야 합니다. 또, 과식해서 배가 부르거나 탁한 음식을 먹어 소화가 더디게 되면 혈액 순환이 안 되어 뇌에 산소 공급이 줄어 혼침이 옵니다. 그래서 식사량을 적절하게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초심자들은 반드시 처음 참선할 때 졸지 않도록 화두를 또렷또렷하게 챙겨 나가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도거(掉擧)는 번뇌망상이 죽 끓듯이 올라오는 것을 말합니다. 좌선하거나 움직일 때 화두를 잡으려 해도 번뇌망상이 계속 일어나 도저히 화두가 잡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의 현상을 도거라 합니다. 신심과 발심이 미약한 초심자들이 화두할 때 이 번뇌가 치성해서 공부를 방해합니다. 번뇌망상은 늘 일어납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보통 하루에 5만 가지 이상의 생각을 한답니다. 그런데 대부분 쓸데없는 망상이랍니다. 이렇듯 번뇌망상은 늘 일어났다 사라지고 일어나고 사라지고를 끝없이 반복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화두에 집중하지 못하고 번뇌망상에 시달리는 것은 뭔가 우리 마음이 번뇌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급한 일이 있거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 화두를 하려고 한다면 잘 안될 것입니다. 그 문제에 마음이 자꾸 가서 집착하니 화두는 안중에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참선하려는 분들은 이런 심각한 문제나 급한 일을 먼저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중도 정견을 세워 화두에 대한 신심과 발심이 확고하다면 또 무방합니다. 화두에 대한 가치와 신심이 확고하다면 번뇌망상도 가벼이 보고 화두에 몰입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도거가 일어날 때는 정견으로 보십시오. 그 어떤 번뇌망상이 일어나더라도 일체가 다 연기고 실체가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바닷가에서 파도를 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파도가 밀려옵니다. 그때 그 파도 하나하나에 집착한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파도는 실체가 없습니다. 바닷물이 바람과 연기하여 일어났다 사라질 뿐 실체는 없습니다. 수많은 파도는 모두 바닷물일 뿐입니다. 그러니 파도가 밀려왔다 사라질 때 집착하거나 머무름은 허망한 일이듯이 우리 마음에 번뇌망상이 물밀 듯이 오고가고 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오직 화두에 집중해야 합니다. 『육조단경』에 ‘번뇌 즉 보리’라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앞생각에 번뇌망상이 일어나더라도 뒷생각에서 알아차리면 지혜로 바뀝니다. 번뇌망상조차 연기로 이루어져 있고 그대로 불성이니 사실은 비우고 버릴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보고 오직 화두가 나를 평화롭게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는 확고한 가치관과 믿음을 가지고 화두를 성성하게 챙겨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이 도거와 혼침은 화두 공부인이 흔히 겪는 문제입니다. 도거는 적적을 방해하고, 혼침은 성성을 방해합니다. 도거는 성성의 잘못이고, 혼침은 적적의 잘못입니다. 정견과 발심으로 오직 화두만 챙겨나가되 번뇌는 신경쓰지 않으면 곧 공부가 자리 잡힐 것입니다. 대혜 스님은 『서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앉을 때에 혼침(昏沈)하지 말며, 또한 도거(掉擧)하지 말아야 합니다. 혼침과 도거는 옛 성인이 꾸짖은 것입니다. 고요히 앉았을 때 이 두 가지 병이 앞에 나타나거든 단지 ‘개가 불성이 없다’는 화두만 드십시오. 그러면 두 가지 병은 힘써 물리치지 않아도 당장 고요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지면 조금 힘 덜림을 아는 것이 문득 힘을 얻는 곳이 될 것입니다.”
- 대혜, 『서장』, 「부추밀 계신에게 답함(3)」
고봉 스님도 『선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이 십 년, 이십 년이 되도록 풀을 헤치고 바람을 맞았으되 불성을 보지 못하고 가끔 혼침과 도거의 그물에 갇혔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 혼침과 도거 네 글자의 당체(當體)가 곧 불성인 것을 알지 못한다. 아! 혼미한 사람은 알지 못하고 자기가 법에 그릇 집착하여 병을 만들어, 병으로 병을 다스려 불성을 구하면 더욱 멀어지며, 점점 급하게 하면 점점 늦어지는 데에 이르렀도다!”
- 고봉, 『선요』, 「9. 대중에게 보임」
상기 다스리는 법
화두 참선을 할 때 정견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공부를 무리하게 밀고 나가다 상기 증상이 올 수 있습니다. 상기(上氣)란 머리로 열기가 오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보통 사람은 혈액순환이 원활하면 자연 이치대로 찬 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열은 내려가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됩니다. 그런데, 무리하게 화두를 하려고 용을 쓰면 열이 머리로 올라와 얼굴이 화끈거리고 두통이 생깁니다. 그런 증상이 지속되면 화두를 들려해도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납니다. 그래서 더 이상 화두 공부할 수가 없게 됩니다.
예전에는 선원에서 상기병이 걸린 수좌들이 많았습니다. 빨리 공부하려는 마음에 안거 중에 그냥 좌선만 밀어붙이고 포행이나 몸을 풀어주는 것을 소홀히 하면 이런 증상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기가 무섭다는 것을 알아 이것에 대처하는 방법이 널리 알려지면서 지금은 상기병이 거의 없어지고 있습니다. 상기는 오랜 시간 좌선할 때 나타나는 증상이니 하루 한두 시간 좌선하는 재가자들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이런 증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 두어 경계할 필요는 있습니다.
이 상기에 대처하는 방법으로는 정견을 갖추고 화두를 순일하게 드는 것이 좋습니다. 좌선 상태에서 허리는 세우되 몸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화두를 챙겨 나가야 합니다. 몸도 마음도 편안한 마음으로 화두를 자연스럽게 챙겨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아울러 좌선을 한 뒤에는 방선 시간이나 공양 시간에는 포행을 해서 허리와 다리를 충분히 풀어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야 합니다. 요즘 선원에서는 수좌들이 시간 나는 대로 걷거나 산행을 합니다. 화두는 앉아서 하는 정중 공부도 좋지만, 걷거나 일하면서 하는 동중 공부도 좋습니다. 그리고 108배 같이 절을 하는 것도 상기 예방에 좋습니다. 절은 전신운동이 되어 혈액순환을 돕습니다. 하루 108배를 하거나 규칙적으로 절을 하면 신심도 다지고 상기 예방에도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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