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여시오역(如是誤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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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4 년 8 월 [통권 제1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416회 / 댓글0건본문
1980년대 말쯤인가, 공산권과의 화해 분위기를 타고 시내 한 극장에서 소련 영화를 상영한 적이 있었다. 제목은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였다. 뭔가 문학적인 향기가 나긴 하는데 확실히 와 닿지는 않는 제목이었다. 그 즈음 풍문으로 들은 바에 의하면, 같은 영화가 평양에서도 개봉되었는데 제목이 ‘모스크바에서는 울어도 소용없다’였단다. 듣는 순간 눈앞을 가리고 있던 얇은 종이 막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직접 가서 영화를 보니 문학적으로 윤색한 제목보다는 실용적인 제목이 더 어울리는 내용이었다.
이 사소한 사건이 번역이 뭐하는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궁금증이 돋아서 북한에서 나온 고전번역물들을 보았더니 역시 리얼하고 생생한 맛이 있었다.
그 시절 남한의 고전 번역물들을 대하면 예스러운 맛은 있으나 고루하고 답답했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번역이 그때까지도 돌아다녔다.
반면 순 우리말로 바꾸려는 실험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끝에 ‘생사윤회’를 ‘죽살이 수레바퀴’라고 번역한 사례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학술적으로 수준 높은 번역을 하겠다고 원문보다 어려운 각주를 잔뜩 달아서 오히려 읽기 어렵게 만든 경우도 있었다. 요즘애들 표현을 빌자면, ‘번역병신체’ 혹은 ‘인문병신체’가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고전번역만 그런 건 아니었다. 주기도문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시오며”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로 바뀐 지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돈 많고 형제 많은 기독교계에서 짧은 주기도문 하나 바꾸는 데 100년이나 걸린 것이다. 성경은 그래도 한 권으로 끝나 다행이다. 부처님께서 장수하신 덕분에 팔만대장경은 두께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성경과는 비교할 수 없는 번역상의 난제를 안고 있다.
번역은 원래 불완전한 작업이어서 믿을 것이 못 된다. 2500년 전 인도에 살았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어떻게 지금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달될 수 있겠는가. 동시대 사람들, 가장 가깝다는 가족 간에도 말 안 통하는 일이 허다한데 말이다.
기본적으로 언어 자체가 갖는 한계도 있고 역자의 능력 문제도 있다. 구마라집이나 현장 같은 대가가 성숙할 만한 시대가 아니고 아쇼카왕이 통치하는 국토가 아닌 이상, 아무리 장인정신으로 무장하고 한 땀 한 땀 번역해낸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역자에게 완성도 높은 번역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런 시대에 짧은 공부로 번역을 하다 보니 거기서 생긴 몇 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처음 맡은 일이『선림고경총서』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선(禪)에 관해서는 어록 한 권 읽어본 적 없이 그저 불교에 관한 상식과 일천한 한문 지식만 가지고 덤벼들었으니 ‘무식이 용맹’이랄 수밖에. 당연히 불후의 오역을 많이 남겼다. 다행히 욕은 나를 대신하여 일 맡은 스님이 다 드셨다고 한다. 덕분에 그 경력을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쭉 번역 일을 할 수 있었다.
한번은 엄청 어려운 문헌을 맡은 적이 있었다. 위진남북조 시대 중국이 아닌 서역 출신 역승이 한역해 놓은 것이다 보니 한자로 쓰여 있으되 변칙, 무규칙 한문이었다. 난적을 만나 씨름하다가 스승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스승이 웃으면서 “나도 몰라. 그런 건 왜 병자호란이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지도 않고 남아서 너를 고생 시키냐?”하면서 기꺼이 도와주셨다.
또 한번은 같은 업에 종사하는 친구와 오역 사례를 이야기하다가 재밌는 오역, 역사에 길이 남을 오역, 심오한 오역 등이 끝없이 나오기에, 이걸로 시리즈를 만들어도 되겠다고 하니 그 친구가 책 체목을 ‘여시오역’으로 하자고 해서 깔깔 웃었다. 뒤에 스승에게 이 이야기를 해드리니 “어디 딴 데서 찾지 말고 내가 해 놓은 번역에서 찾으면 몇 권 거뜬히 나올 거야.”하셨다. 농담 섞인 말투였지만, 사전도 몇 개 없고 검색 시스템도 없던 시절에 평생 경을 읽고 번역하신 분의 말씀이라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경전은 마음에 관한 사용설명서이다. 전자기기를 사면 딸려오는 깨알 같은 사용설명서에는 그 기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쓰는지, 주의사항은 무엇인지 등이 적혀 있다. 그것을 대신 읽어주는 일이 번역인데 역자들 역시 설명서에 막혀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 도움 되라고 있는 물건이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역자들이 문자 감옥을 헤매는 동안에 벌써 포장 뜯고 버튼 몇 개 눌러 보고 바로 쓰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법안록』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한 스님이 마음에 집중하는 수행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사는 암자 문에다가 ‘마음 심(心)’자를 써 붙이고 창에도, 벽에도 다 ‘마음 심 자’를 써 붙였다. 법안 스님이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면서 “문에다가는 문, 창에다가는 창, 벽에다가는 벽이라고 쓰면 될 뿐”이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현각 스님이 한 마디 붙였다. “눈에 뻔히 보이는 걸 뭐하러 써붙이나.”
현각 스님은 번역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선의 종장들은 번역하지 않는다. 대신에 수백 년 쌓인 교학의 복잡한 개념어들을 일상적인 언어로 대치하였다. “어디서 오는 길이냐?”, “물이나 한 잔 마셔라.”하는 식으로.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불법을 한 몸에 소화해서 녹여낸 혁신적인 번역가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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