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교황의 야단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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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4 년 9 월 [통권 제1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638회 / 댓글0건본문
얼마 전 광화문 광장에서는 성대한 법회가 열렸다. 노천에 단을 마련하고 팔만사천 대중이 모인 가운데 교황이 강론을 하는, 문자 그대로 야단법석(野壇法席)이 차려진 것이다.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신자들과 상처입고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이 ‘비바! 파파!’를 연호하며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모습을 눈에 담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자기 가방 자기가 들고 다닌다는 이유로 화제가 되고 존경을 받는 걸 보면, 그 사람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교황이라는 지위를 젖혀놓고도 그가 가진 매력을 들자면 지면이 모자랄 판이다. 그중에 나의 눈에 띈 것은 이렇다.
그가 태어나기 전, 대공황의 여파로 집안이 폭삭 망했다. 그의 부모는 조상의 묏자리까지 팔고서 고향인 이탈리아를 떠나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 낯선 땅, 독재 치하, 가난한 부모 밑에서 초년고생은 맡아놓은 셈이다.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해서 돈을 벌었는데 그 중에 ‘나이트클럽 기도’로 일하기도 했다. 신부가 되기 전 그는 한 아가씨에게 반해서 청혼을 결심했는데, 그즈음 ‘그분’의 부르심을 받고 ‘오 마이 갓!’이라고 했단다. 신산(辛酸)한 사문유관으로는 부족했는지, 그는 청년 시절에 심한 폐렴으로 폐 절제 수술을 받았다. 그때 고통의 의미를 생각하고 힘을 얻어서 그 뒤로는 많은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인간을 고통의 존재로 보고 고통을 통찰하는 것으로 수행을 시작하는 불교의 기본 입장에서 본다면, 그도 고제(苦諦)를 깊이 통찰하는 데서 시작한 수행자라 할 것이다. 돈 고생, 몸 고생, 마음 고생을 겪을 대로 겪고 지금의 응공(應供)이 되기까지, 그의 이력은 마치 선재 동자의 구법과 닮았다. 고통을 통해 자기를 성찰하고 어려운 이들을 보듬어 오신 분, 자리와 이타를 실천하는 보살이 함께 하신 영광을 신자 비신자 할 것 없이 4박 5일 간 누렸다.
광화문의 성대한 법회를 보면서 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세존의 법회도 이랬을까 상상해 보았다. 잘 떠오르지 않는다. 먼 옛날에 세존의 법회를 상상해서 그려놓은 사람이 있어 소개한다.
세존께서 하루는 설법을 하시려고 자리에 올랐다.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사방이 조용한 가운데 대중이 세존의 법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식순에 따라서 삼귀의를 하고 청법가를 불러 법문을 청할 참이었다. 그런데 삼귀의도 부르기 전에 문수 보살이 나와서 법회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을 치고 사홍서원을 불렀다. 세존께서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선문염송』 제6칙.
법회는 그렇게 끝났다. 문수가 세존의 입을 막아 세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대중은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그런데 대중 가운데 재법문을 해달라느니 재재법문은 절대불가라느니 하는 뒷얘기는 없다. 후대의 평가(評家)에 의하면, 거기 모인 대중은 전주만 듣고도 무슨 곡인지 알아듣는 근기라서, 세존이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내려왔다는 그 대목에서 우레와 같은 법문을 듣고 무한한 법락을 누렸다고 한다.
『대집경』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하나 그대로 믿겨지지는 않는다. 이 이야기에서는 세존이나 문수보다 오히려 거기 모인 대중이 더 신통하다. 인간이 모인 자리가 그럴 리가 없겠기에 말이다. 초기 경전이나 율전을 보면 별의별 사람들이 다 등장한다. ‘부처님 재세시에는 제자들의 근기가 뛰어나…’라는 말이 거짓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문헌상에 나오는 어중이, 떠중이, 찌질이들은 다 어쩌고, 경의 편집자는 이렇게 멋진 법회를 그려냈는지. 그때도 지금의 광화문처럼,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주지 못하는 절망감에서 뇌내(腦內) 법회라도 그려본 것은 아닌지, 하는 망상을 피워 본다.
교황이 떠나고 4박 5일의 꿈이 지나간 지금, 뒤에 남겨진 상처받은 영혼들은 위로를 받았을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회의적이다. 상처는 어떻게 해서 아무는가. 내가 겪었던 상처 중에 가벼운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어렸을 때 엄마가 출타하신 뒤에 오빠와 싸움이 붙으면 내가 일방적으로 얻어 터졌다. 반격할 틈 없이 몇 대를 맞고 어쩌다 일격을 돌려주어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와 자초지종을 듣고 나를 안아 달래주면 좀 나아지긴 했지만 속이 다 풀리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엄마가 큰 소리로 야단치면서 오빠를 먼지 나게 때려줄 때 속이 후련했다. 그보다는 내가 싸움의 기술을 익혀서 독한 말로 오빠에게 정신적 살생을 퍼부을 때 진정한 힐링이 되었다(고통을 통해 성숙하는 인간도 있지만 고통을 통해 망가지는 인간도 있기 마련이다).
싸움의 자초지종을 듣고 오빠에게 혼을 내준 엄마를 둔 건 인생의 고해바다에 작은 뗏목이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주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지금의 정치인들 보다는 낫다고 하겠으나 완전한 인격은 아닌지라, 억울함을 100% 해결해주진 못했다. 그 뒤로 어른이 되고 늙어가면서, 이런 저런 사람에게 당하고도 갚지 못한 울분이 차곡차곡 쌓여서 울화병을 어쩌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정도 억울함은 명함도 못 꺼낼 만큼 기막힌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도 많다.
법회 기간 내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들에게 더 주목했다. 그리고 몇 마디 귀중한 가르침을 남겼는데, 가장 인상적인 말은 ‘경제적 살인’이다. 돈 때문에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인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이 말씀은 불살생계를 지금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틀이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연대하라’는 말씀이다. 동사섭이 생존전략임을 가르쳐준 것이다. 이런 가르침이 우이독경이 된다면 우리가 교황을 4박 5일짜리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셈이다. 불온한 말씀을 남기신 교황이 국가보안법에 걸리지 않기를 기도하며 그의 가르침을 이 세 마디로 요약해 본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연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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