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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교상판석과 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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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14 년 5 월 [통권 제1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61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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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상판석의 등장

 

팔만대장경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경과 교리는 매우 방대하다. 서기 67년 백마사로 불교가 처음 전래될 당시에는 『42장경』이라는 짤막한 경전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후 약 천년에 걸쳐 인도와 서역으로부터 수많은 불전들이 유입되면서 불전은 날이 갈수록 방대해지고, 교리적 내용도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 대승불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구마라집(344~413)에 의해 수많은 대승경전들이 번역되면서 불전의 방대함과 복잡함은 더욱 심화되었다. 게다가 부처님은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다양한 방편을 사용하셨다. 이에 따라 경전마다 서술내용과 교리가 다르게 설명되는 부분이 있는 것은 물론 각 경전들 사이에 상충되는 내용까지 존재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세기경에 이르면 당대까지 번역된 경전들을 치밀하게 연구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이를 통해 설해진 순서대로 경전을 분류하고, 교리적 내용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사상적 체계를 잡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렇게 경전을 분석하여 시기별로 내용을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교리를 정리하는 것을 ‘교판(敎判)’이라고 부른다. 

 

교판이란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는 말을 줄인 것으로, 달리 ‘판석(判釋)’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판(判)’은 ‘부판(剖判)’, 즉 내용을 ‘잘게 쪼개어 판단한다’는 뜻이고, ‘석(釋)’은 해석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교상판석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밀하게 분류하고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판이 가져온 성과는 경전을 시기별로 정리하고, 일목요연하게 교리적 체계를 세운 것이다. 나아가 불법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을 열어놓았던 것도 또 하나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불교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의 등장은 독립된 종파의 탄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경전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해석한 교판은 이미 남북조 시대 때부터 다양하게 시도되었다. 그들 중에서 가장 체계적인 교판으로 평가받는 것이 천태 대사와 현수법장이 정리한 교판이다. 이 두 스님이 정리한 교판에 의해 교리가 체계화되고, 천태종과 화엄종이 성립되었다.

 

천태교판과 오시팔교(五時八敎)

 

수나라 때 활동한 천태지의(538~597)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시팔교(五時八敎)로 분류했다. 천태 대사는 남북조시대에 도생(道生)과 혜관(慧觀) 등 소위 남삼북칠(南三北七)로 불리던 교판을 연구하여 독자적인 교판체계를 수립했다. 천태교판은 대소승의 모든 경전이 부처님께서 설하셨다는 것을 전제로 정리되었다. 오시는 모든 경전의 내용을 다섯 시기로 분류하고, 이를 부처님의 일생에 맞게 배대한 이론이다.

 


 

 

첫째, 화엄시(華嚴時)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이후 최초의 21일 동안인데, 이 기간 동안 『화엄경』을 설하셨다고 보았다. 

 

둘째, 녹야원시(鹿野園時)다. 부처님은 12년 동안 다섯 비구를 위해 소승교를 설하셨다. 이때 설한 경전이 <아함경>이므로 아함시라고도 한다. 

 

셋째, 방등시(方等時)다. 8년에 걸쳐 <유마경>, <사익경>, <능가경>, <능엄삼매경>, <금강명경>, <승만경> 등의 대승경전을 설하신 시기다. 

 

넷째, 반야시(般若時)다. 22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금강경』을 비롯해 반야부 경전을 설하신 기간이다. 

 

다섯째,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다. 8년 동안 <법화경>을 설하시고 입멸에 드시던 최후 하루 동안 <열반경>을 설하셨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팔교(八敎)란 경전의 내용을 교화방법적인 측면과 설법의 내용적인 측면으로 분석하여 여덟 가지로 분류한 것을 말한다. 첫째 중생의 근기에 따라 돈교(頓敎), 점교(漸敎), 비밀교(秘密敎), 부정교(不定敎)로 분류했다. 그리고 교화방법에 따라 장교(藏敎), 통교(通敎), 별교(別敎), 원교(圓敎)로 분류했다. 

 

오시설의 특징은 당대까지 번역된 모든 경전을 부처님의 삶에 배대하여 설법의 순서를 정리한 것이다. 물론 현재와 같은 문헌학적 고증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을 통해 도출된 결과로는 볼 수 없다. 일례로 『화엄경』은 불멸 후 약 5, 6백년이 경과한 뒤에 등장한 대승경전이지만 천태 대사는 부처님께서 가정 먼저 설한 경전이라고 보았다. 

 

오시설을 토대로 하면 45년에 걸친 부처님의 설법기간도 50년으로 늘어난다. 천태 대사는 부처님께서 29세에 성도하여 79세에 열반하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오시설은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객관적 사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지만 불교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화엄교판과 오교(五敎)

 

천태교판과 쌍벽을 이루는 교판이 바로 현수법장(643~712)이 체계화한 화엄교판이다. 법장 스님은 당대까지 전해진 경전을 종합적으로 연구하여 역시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는데 이를 ‘오교(五敎)’라고 한다. 소승교(小乘敎), 대승시교(大乘始敎), 대승종교(大乘終敎), 돈교(頓敎), 원교(圓敎)가 그것이다. 

 


 

 

첫째, 소승교란 <아함경>, <바사론>, <구사론> 등의 경론으로 이들 문헌에 대해 ‘우법소승(愚法小乘)’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즉 ‘법에 대해서 어리석은 소승의 가르침’이므로 대승보다 수준이 낮은 경론이라는 것이다. 

 

둘째, 대승시교란 대승불교 초기에 설해진 가르침으로 상시교(相始敎)와 공시교(空始敎)로 분류된다. 상시교는 <해심밀경>, <유가론>, <유식론> 등이 해당하고, 공시교는 <반야경>, <중론>, <백론>, <십이문론> 등이 해당한다. 

 

셋째, 대승종교는 대승불교의 종국적 가르침에 해당하는 것으로 <열반경>, <능가경>, <승만경>, <기신론>, <보성론> 등의 경론이 여기에 해당한다. 

 

넷째, 돈교는 수행의 계단을 세우지 않고 ‘한 생각 나지 않음이 곧 부처’임을 깨닫는 가르침을 말하는데, 여러 경론 가운데서 이와 같이 설한 부분을 돈교로 분류했다. 

 

다섯째, 원교는 불교의 핵심적 진리를 원만하게 구족한 최고의 가르침으로 화엄종의 교설을 원교로 분류했다. 

 

부처님의 최초설법이 『화엄경』이라고 보았던 천태와 달리 법장의 교판은 소승의 가르침이 가장 먼저 설해졌다고 보았다. 그 뒤로 대승시교와 대승종교를 배치하여 소승에서 대승으로 발전해 가는 불교사의 흐름과 일치하게 분류하는 진일보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법장은 『아함경』이 포함된 소승교를 ‘법에 무지한’ 낮은 차원의 가르침이라고 분류했다. 이는 부처님께서 직접 설법한 법문인 『아함경』을 폄하하는 결과를 낳는다. 동아시아에서 『법화경』과 『화엄경』이 최고의 경전으로 평가받으며 널리 읽힌 반면 부처님의 육성이 담긴 『아함경』이 경시되었던 것은 이상과 같은 교판의 영향이 적지 않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교판을 통해 얻은 결론

 

교판은 경전을 세밀하게 분류하고 심층적으로 연구하여 얻어진 결과물이다. 그런 점에서 교판은 불교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이자, 무엇이 불교의 핵심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이기도 하다. 천태와 법장은 그들의 교판을 통해 불교에서 가장 수승한 가르침은 ‘원교’라고 이름 붙였다. 천태는 『법화경』과 『화엄경』을, 법장은 『화엄경』을 각각 원교로 분류했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핵심이 원교라면 원교가 무엇인지 알아야 불법의 핵심을 알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원교란 무엇일까? 천태는 ‘원교란 곧 중도를 나타냄(圓敎者 此顯中道)’이라고 했다. 중도사상이 원교의 내용이며, 불교사상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화엄 역시 원교로 분류되는 경전은 천태와 달랐지만 원교의 내용이 중도라는 점에서는 입장을 같이 했다. 화엄사상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의상 스님의 법성게(法性偈)에는 ‘구경의 실제인 중도의 자리(窮坐實際中道床)’라는 표현이 나온다. 중도를 바로 깨친 그 자리가 궁극의 실제이며, 부처님의 경지라는 것이다. 결국 중도를 깨치면 불교의 최고 원리를 깨치게 되고, 부처님의 지위에 이른다는 것이 천태와 법장이 체계화환 교판의 결론인 셈이다. 

 

이처럼 중국의 교학승들은 교판이라는 방법을 통해 경전을 연구하고, 내용을 종합하여 교학체계를 확립했다. 이를테면 교판은 당대 불교사상을 가로지르는 ‘통섭(通攝)’을 통해 불교사상의 핵심 줄기를 잡아냈던 것이다. 따라서 중도사상은 모든 경전과 전체 불교사상에 대한 교학적 종합을 통해 도출해 낸 불교의 결론이다. 

 

성철 스님은 이와 같은 교판의 결론을 따라서 불교의 핵심적 가르침인 중도사상에 대해 치열하게 파고든다. 『백일법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도라는 불교의 핵심줄기를 움켜쥐고 불교를 이해하고 또 그것을 설명한다. 교판의 결론이 중도였듯이 『백일법문』의 귀결처 역시 중도사상이다. 따라서 『백일법문』을 읽는 것은 중도사상을 읽는 것이며, 『백일법문』을 이해하는 것은 중도사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잔가지와 잎을 따라가지 않고 오로지 핵심으로 파고드는 것이 『백일법문』이 가진 매력이자 힘이다. 『백일법문』의 그와 같은 힘으로부터 불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기게 된다. 표면을 겉돌던 피상적 이해를 뚫고 들어가 이글거리는 핵심을 보게 만드는 것이 『백일법문』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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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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