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삼천배와 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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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4 년 5 월 [통권 제1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997회 / 댓글0건본문
얼마 전 <불교신문>의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4월 초에 <불교신문> 3000호 발간을 기념하여 특집을 만들기로 하였는데 ‘성철 스님과 3000배’란 주제로 특집면 구성을 계획하였습니다. 스님을 찾아뵙고 성철 스님과 3000배에 대한 인연과 일화들을 정리할까 합니다.”
“그럽시다.”고 대답을 하고 나서 문득 주간지가 3000호를 내자면 몇 년이나 걸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몇 년 전부터 주2회 발행으로 바뀌긴 했지만 그간 휴간도 있었고 대충 1년에 50회 발행한다고 생각해봐도 50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나중에 자세한 소개를 보니 2003년 1월 1일 지령 1984호부터 종교계 신문 최초로 주 2회를 발간하게 되어서 3000호는 54년 만에 달성한 쾌거이자 종교 신문 최초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동안 휴식을 취하는 순례자들
3월 21일 백련불교문화재단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조계사 대웅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불교신문>과 인터뷰를 한 다음날 <조선일보>의 ‘Premium Chosun’에 실린 ‘스페인 800Km 산티아고 길 찾는 한국인 해마다 늘어’라는 기사가 눈에 크게 들어왔습니다.
그 기사를 단숨에 다 읽고 나니 문득 머릿속에 3000배 하는 사람과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는 사람들의 ‘자기 성찰의 경험’을 비교해 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3000배 하시는 분들은 ‘돈오돈수’의 경험이고, 산티아고 순례 길을 다녀오는 분들은 ‘돈오점수’의 경험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는 관념을 떠나 자기를 잊고 앞만 보고 살아오던 인생길에서 ‘멈추면 보이는 것들’의 순간을 가져보는 자기 성찰의 모습을 비교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알게 된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한 서적을 찾으니 꽤 많은 책들이 출간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산티아고 가는 길’을 소개하는 것은 여기서 줄이고 관심 있는 독자들께서 일독하시길 권합니다.
산티아고 길은 원래 2000년 전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 사도가 복음을 전하려고 걸었던 길인데 이후 산티아고에서 9세기 무렵 예수의 제자였던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된 후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유럽의 3대 성지로 꼽히는 곳이 되었다고 합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에서 ‘카미노’는 길, ‘산티아고’는 야고보를 뜻하는 말로 ‘야고보의 길’, 말하자면 성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걸었던 길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 길은 여러 경로가 있지만 프랑스의 국경도시 생장 피드포르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자치구인 갈라시아 등을 거쳐 산티아고로 들어가는 길이 가장 널리 알려진 코스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합니다.
성철 스님 사리탑에서 삼천배를 하고 있는 불자들
원래는 종교적 목적으로 가톨릭 성지 순례자들이 주로 찾는 길이었으나 1000년 남짓한 세월이 흐르면서 요즈음은 종교와 상관없이 ‘인생의 순례길’이 되고 있다 합니다.
걷기는 긴 시간을 자신에게 집중하여 두 발을 움직이는 규칙적인 물리적 행동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는 정신적 수행입니다. 틱낫한 스님도 한국을 방문하면 걷기명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800Km 길을 하루 20Km, 50리씩 걷는다면 40일, 30Km, 7~80리를 걷는다면 26,7일이 걸린다는 계산입니다.
한 달 넘게 걷다보면 발바닥의 물집은 물론 팔, 다리, 허리, 어깨 등의 근육통, 뼈마디 마디의 관절통을 달고 다녀야 한다고 합니다. 그 고난을 감내하고 산티아고의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하는 것으로 여행은 끝이 나고, 성당 사무실에서 순례자 여권을 제시한 뒤 간단한 절차를 통해 800Km 구간 중 100Km 이상 걸은 것이 확인되면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었다는 증명서를 발급받는 것으로 순례길 행사는 끝을 맺습니다. 산티아고 2000리 순례길을 힘겹게 느끼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이유를 신문과 책에서 종합해봅니다.
‘말없이 묵묵하게 한 발 한 발 천천히 발걸음을 한 달 가까이 걸음으로써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길, 밀려오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인내해 가다보면 정신의 찌꺼기가 물빨래 하듯 세탁되는 길, 자신을 극한까지 몰고 갔다 놓아주는 긴 고생길의 해방감, 자기 확신과 긍정을 선물로 받는 길’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3000배를 통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짧으면 8시간, 길면 12시간 이내에 끝내야 하는 3000배를 하는 분들은 과연 어떤 고통을 경험할까를 생각해 봅니다.
“백련암에 가면 삼천배를 해야 된다”는 말을 듣고 처음부터 마음을 다 잡고 오는 분, 생면부지로 백련암에 아무런 준비 없이 들렀다가 도전하는 분 등 3000배를 하는 분들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3000배를 시작하고부터 누구라도 절이 만만치 않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계절 따라 사람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갈수록 온 몸을 압박해오는 고통과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주체하지 못하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견딜 수밖에 없습니다. 한순간에 닥치는 고통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순례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격렬함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3000배를 다 마친 분들은 “내가 해냈구나!”하는 다행함과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성취감으로 자신을 충만케 한다는 사실입니다.
3000배를 성취한 분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백련암에서 그 힘든 3000배도 했다는 생각으로 난관들을 무난히 돌파할 수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합니다. 큰스님의 3000배 하기는 처음 하는 당사자들에게 온정적이지 않고 격정적이며 짧은 시간에 마음과 육신의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쉽지 않은 고행이지만, 성취하고 나면 자기 확신과 삶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철 큰스님의 3000배는 돈오돈수적 자기성찰을 경험케 하는 수행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3000호 발간에 즈음하여 ‘성철 큰스님과 3000배’의 의미를 살펴보는 특집을 꾸며주신 <불교신문>의 융창을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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