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돈오돈수의 길을 다시금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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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4 년 1 월 [통권 제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260회 / 댓글0건본문
겁외사에 신축하고 있는 ‘성철 스님 추모관’ 3층에 올라 흰 눈이 내려앉은 우뚝 솟은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게 되니 또 다른 감격이 밀려왔습니다. 새해에 대한 기대와 함께 준비한 계획들을 꼭 이루어보리라는 각오를 새롭게 하게 됩니다.
며칠 전 아침에 석남사에 계신 불필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침 <조선일보>에 큰스님 기사가 났다면서요? 서명원 교수님이 그동안 큰스님의 ‘돈오돈수’ 사상을 연구하고 있어서 원택 스님도 늘 좋은 말씀을 하셨잖습니까? 큰스님께서 돈오돈수 사상을 말씀하신 것은 1950년대 성전에 계실 때부터입니다. 그 사상이 어째서 박정희, 전두환 정권과 연결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신도님들이 격앙된 목소리로 ‘어째서 성철 수행법이 권위주의의 산물입니까? 말이나 됩니까?’ 하고 전화를 걸어오니 나도 할 수 없어서 원택 스님께 전화했습니다.”
불필 스님의 전화가 아니어도 저도 적잖이 당황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난 12월 17일 아침 <한국일보>에 서명원 교수가 신간 『가야산 호랑이의 체취를 맡았다』를 냈다는 기사를 보고 오전 11시쯤에 서 교수님에게 전화를 걸어 “수고하셨습니다.”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모처럼 한담을 즐겁게 나누고 책 100권을 사서 주변에 나누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성철 스님이 부처님 밥값을 했다고 말했던 <선문정로>는 돈오돈수의 정수를 밝힌 책이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조선일보> 종교담당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원택 스님! 서명원 교수님 책 보셨습니까?” “신간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서 교수님과 통화를 하고 격려를 드렸지만 아직 책 내용을 보지 못했습니다.” “원택 스님! 그 책에는 6편의 논문이 실려 있습니다. 마지막에 실린 것은 영어로 된 논문입니다. 보도자료에 의하면 그 논문이 가장 애정이 가는 논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밤새 읽어보니 보통 내용이 아닙니다. 이 논문에 대해서 문도들의 입장을 밝혀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책 내용을 모르고 있으니 자료를 보내주시면 답변 드리지요.”
그런 과정을 거쳐 12월 18일 <조선일보>에 ‘성철 수행법은 권위주의 산물’이라는 제목이 붙어 서명원 교수님 얼굴 사진과 함께 기사가 났습니다. 부산 고심정사로도 “원택 스님은 뭐하는 분입니까? 서 교수님은 또 어떻게 이런 논문을 쓸 수 있습니까?”하는 항의가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19일에 서 교수님이 연구원을 통해 책을 보내주셨습니다. 영문 논문은 다 읽을 수 없어 책 끝의 결론 부분만 읽게 되었습니다.
‘후론 - 퇴옹성철과 간화선 세계화 연구를 단장하고 보수 관리하는 기폭제’라는 글을 읽고서는 저도 흥분하여 서 교수님에게 항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글 쓰신 분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겠습니다만 돈오돈수를 주장하는 성철 스님의 연구서를 발표하시면서 어떻게 돈오점수를 주장하는 분에게 결론의 글을 맡길 수 있습니까? 그리고 큰스님의 열반송에 사족을 붙여 번역한 것은 도저히 불교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후론 부분은 돈오돈수를 연구한 서 교수님이 새로 쓰십시오.”
영어 논문을 읽은 하남 정심사 주지 원영 스님은 “1980년 10․27법난이나 1987년 6월 항쟁 때 큰스님께서 침묵한 것에 대해 비판한 부분이 많은데, 큰스님 활동이나 불교쪽 자료에 대한 조사가 미흡하고 큰스님의 역할에 대해서 소홀히 다루었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책을 받아 보고서 그 동안 서 교수님이 발표한 논문들을 훑어보니 제가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도 2~3편 있었습니다.
‘한국 간화선의 전통과 해석에 관한 비판적 고찰-대한불교조계종의 간화선 세계화 캠페인에 부쳐’라는 논문을 읽어보면서 저는 더 깜짝 놀랐습니다. 2010년 8월 12일 ~ 13일 양일간 동국대에서 ‘간화선, 세계를 비추다’는 대규모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되었고 그 자리에 참석하고서 후일에 이 논문을 쓴 듯합니다.
서명원 교수님이 논문에서 지적한 조계종의 선맥(禪脈) 등에 관한 사항들에 대해서 한국불교학계나 조계종에서 어떤 답을 내놓았는지는 미처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서 교수님의 신간을 접하고서 상념에 젖었습니다. 서 교수님은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 사상과 보조국사 스님의 돈오점수 사상을 학문적으로 순수하게 연구하고 다가가려 애쓰는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서 교수님은 책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가야산의 호랑이를 학문적 대상으로 삼아 탐구하고 닦아 온 필자는 그동안 정신적으로 주요한 세 단계의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단계는 박사 과정 중, 즉 보조지눌(普照知訥,1158-1210)의 사상을 연구하기 전의 시간으로 이때에는 성철 스님께 완전히 심취해 있었다. 둘째 단계는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서 대학원생들과 함께 여러 해 동안 『보조전서(普照全書)』를 숙독하고 난 다음 성철 스님에게 크게 실망했던 것이고, 셋째 단계는 정교수로 진급할 때가 되어 성철 스님의 장단점을 훨씬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시기이다.”
돈오돈수는 마치 장작이 한꺼번에 갈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돈점논쟁을 학문적 측면에서가 아닌 그 정치적 배경을 해명하려고 하는 것은 서 교수님의 전문분야도 아니고 도움을 주었다는 분들도 돈오점수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면 서 교수님이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 사상을 연구하고 그 장단점을 지적하고 있으면서 점수적 입장이고, 서 교수님 주변도 돈오점수를 주장하는 분들이 울타리를 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짐을 내려놓았는가 싶었는데 서 교수 덕에 한 짐 잔뜩 짊어지게 된 새해가 되나 봅니다. 긍정과 부정의 길에서 융합을 찾아가는 것이 중도(中道)의 길 아니겠습니까? 돈오돈수 수행의 세계화를 위한 큰 길을 개척해서 모든 중생 성불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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