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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간절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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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4 년 1 월 [통권 제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07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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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앙앙 우는 아이를 보면 ‘저 아이는 뭐가 저렇게 간절한가?’하고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살면서 무엇에도 간절함이 없다면 아마도 팔자 좋은 사람일 것이다. 간절한 소망은 대개 결핍에서 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갖지 못한 것을 갖기 위해, 되지 못한 것이 되기 위해 간절한 소망을 품고 평생을 노력한다.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면 잠시 그것을 누리다가 이내 다른 것, 혹은 더 센 것을 찾는다. 이렇게 계속되는 허기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중생이다.

 

허기와 채움 사이를 끝없이 왕복하는 데 염증을 느끼고 떠나는 것이 출가이다. 불교를 염세적인 종교로 보는 시각이 그래서 일면 타당하다. 출가자는 이런 지긋지긋한 삶을 청산하겠다는 소망에 인생을 걸고 도를 향해 출발한다. 도 닦는 데 인생을 건다는 건, 일종의 투기(投機)를 하는 셈이다. 투기에는 ‘자신을 던진다’는 뜻과 ‘큰 이익을 노리고 투자를 한다’는 뜻과 ‘스승과 제자의 마음이 일치한다’는 뜻이 있는데 『전등록』을 읽어보면 선사들은 대개 뛰어난 투기꾼들이다.

 

인생을 걸고 자신을 던질 수 있으려면 그 소망이 크고 간절해야 할 것이다. 간절한 마음이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데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선사들 중에 이 점을 매우 강조한 분이 고봉(高峰) 화상이다. 『선요』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일을 논하자면 무엇보다도 당사자에게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의심이 일어난다. 의심이 일어나면 … 한 생각도 생겨나지 않아서 앞 찰나, 뒤 찰나가 끊어진다. 이것이 염(念)이다. 이 염에 간절하지 않으면 참된 의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면 아무리 방석이 뚫어질 만큼 앉아있어도 한낮에 삼경(三更) 종이 울릴 것이다.

고봉 화상은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자신이 살던 절에서 3년 기한을 정해놓고 화두를 타파하기 전에는 죽어도 산문 밖을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을 사관(死關)이라 한다. 죽기를 각오한 간절함을 몸소 겪었기에 납자들에게 위와 같은 조언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절절한 각오에도 불구하고 고봉 화상의 수행이력은 평탄치가 않았다. 스무 살부터 참선을 시작해 이 화두에서 저 화두로 몇 차례 화두를 바꿔 들었다. ‘태어날 때는 어디서 왔으며 죽을 때는 어디로 가는가?’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등의 화두를 붙들고 씨름했지만 의심이 제대로 붙지 않아서 혼침과 산란에 시달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스승에게도 늘 시달렸다. 처음 만나 법을 물었더니 스승이 주먹을 한 방 날리고 문 밖으로 쫒아냈다. 매일같이 공부를 점검받기 위해 찾아뵈면 “오늘 공부는 어떤가?” 다그쳐 묻고, 문에 들어가자마자 “누가 너에게 이 시체를 끌고 오게 했느냐?”라면서 주먹을 날리고 쫒아냈다고 한다. 덕분에 그는 “스승의 이런 다그침에 쫒기다 보니 근처까지 갔다.”고 술회한다. 선가의 단련은 ‘힐링’이 아니라 ‘킬링’에 있나 보다.

 

근처까지 갔다는 것은 공부에 좀 진척이 있었다는 뜻이다. 공부가 좀 되는 김에 끝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로 부모님한테 갔다가 짐을 빼앗기고 붙잡히기도 하고 결제일이 지나 선방에 들어가지 못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밤 꿈에 ‘만법귀일’ 화두가 떠올랐고 그 뒤로는 화두와 한 덩이가 되었다.

 

이 상태를 유지하며 지내던 어느 날 오조 화상의 탑에 절을 하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초상화에 적힌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백년 삼만 육십일, 반복하는 이것이 바로 이놈이로다.” 이 구절을 보는 순간 “누가 너에게 이 시체를 끌고 오게 했느냐?”는 화두가 타파되었다. 그 순간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듯 했다고 표현하였다. 송장이 살아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다. 화두는 이렇게 생각지 않게, 우연한 기회에 타파되는 것인가 보다. 고봉 화상만 그런 게 아니고 많은 선사들이 그렇다. 향엄 스님이 대나무에 돌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듯이.

 

향엄도 위산에게 “엄마 뱃속에서 나오기 전, 아직 동서도 분간 못하던 때 너의 모습은 어땠는지 말해보아라.”라는 질문을 받고 당황했었다. 처음에는 대답도 못했다. 얼마 후 이런저런 궁리 끝에 자신의 견해를 몇 차례 고해바쳤으나 위산은 그 어느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향엄이 제발 말씀 좀 해달라고 졸랐으나 위산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향엄은 위산에게 하직을 고하고 남양으로 가서 혜충 국사의 탑에 머물렀다.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소식을 들고 끙끙거리던 어느 날 풀을 베다가 밭에 있던 기와 조각을 던졌는데 그것이 대나무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그리고는 위산을 향해 절을 했다. 그때 매몰차게 안 알려 준 스승의 자비가 부모님 은혜만큼 크다면서. 선가의 자비는 역시 힐링 보다는 킬링에 있다.

 

고봉 화상은 화두 들고 참선하는 사람에게 세 가지 마음이 중요하다고 한다. 신심과 의심과 분심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의심인데, 그것은 간절함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향엄에게도 고봉에게도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에 그 힘으로 난행고행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고로 수행자에게는 간절함이 곧 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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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불교학을 전공하였고, 봉선사 월운 스님에게 경전을 배웠다. <선림고경총서>편집위원을 역임했고 『승만경』, 『금강경오가해설의』, 『송고백칙』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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