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거사선]
수능엄삼매 증득 후 세간에서 대자대비 실천한 부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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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 2013 년 8 월 [통권 제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916회 / 댓글0건본문
지난 호에서는 양 무제와 동시대의 거사로서 불법을 널리 선양한 부(傅) 대사의 간단한 전기와 무언(無言)의 『금강경』 법문을 중심으로 그의 깨달음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부 대사가 깨달음을 얻은 후 어떻게 보림(保任)하며 작은 부처로서 불행수행(佛行修行)을 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4세에 인도 스님 숭두타의 감화를 입은 부 대사(497~569)는 송산(松山) 아래 쌍림수(雙林樹)가 있는 곳에 암자를 짓고 정진했는데,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참선을 하였다. 이렇게 열심히 수행한 때문인지 산 정상에 둥글고 누런 구름이 맴돌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송산을 운황산(雲黃山)으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용맹정진에 들어간 지 7년째 되던 어느 날, 선정 가운데서 석가여래ㆍ금속(金粟)여래ㆍ정광(定光)여래 세 분이 거사의 몸 위에 방광하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 勇健三昧 즉, 번뇌를 깨뜨려 지혜를 완성하는 용맹견고한 삼매)를 얻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이에 거사는 스스로 ‘선혜(善慧) 대사’라는 호를 짓고 법을 설하자, 사부대중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방의 군수가 요상한 말로 백성을 현혹시킨다며 감옥에 가두었는데, 옥중에서 수십일 동안 아무것도 마시거나 먹지 않은 이적을 보이자, 군수는 결국 방면하였다. 육체적, 정신적 시련에도 여여부동(如如不動)한 그의 모습은 더욱 세간의 존경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부대사
부 대사가 31세 되던 해(527), 지방에 큰 흉년이 들자 그는 모든 재산을 보시하며 구제에 나섰다. 심지어 그의 부인은 막노동을 하며 돈을 보태다가 드디어는 자신을 팔아 백성의 고통을 해소해달라고 호소한다. 그러자 부 대사는 부인을 5만 전(錢)에 팔아 그 돈으로 백성을 구호하는 대법회를 봉행했으며, 이에 감동한 부자들이 기꺼이 재산을 내놓기 시작했다. 한 달 후에는 부인을 사간 사람마저 소식을 전해 듣고 부인을 돌려보내기에 이른다. 이러한 일들이 알려지면서 부 대사는 미륵불의 화신으로 추앙받게 된다.
이후 거사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혜집(慧集) 스님이 제자가 되면서 부 대사의 명성은 더욱 높아지기 시작했고, 대통 6년(534)부터 3차에 걸쳐 양 무제의 초청을 받아 짧게는 2개월부터 길게는 1년 동안 수도에 머물며 황제에게 법문을 했다. 6년 뒤, 대사는 무제의 지원을 받아 중국에서 손꼽히는 대찰인 쌍림사를 창건하지만 절에 머물지 않고 운황산에 은거했다.
부 대사가 다시 세상에 나타난 것은 8년 뒤(548), 후경(侯景)의 난이 발생해 민생이 도탄에 빠진 직후다. 그는 모든 재산을 털어 백성의 고난을 해결하려 했지만 재산은 곧 바닥났기에, 법시(法施)로써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자 소신공양(燒身供養)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문도들이 몰려와 너도 나도 대신해서 소신하겠다면서 세간에서 법을 더 펼칠 것을 간청하자, 73세로 입적할 때까지 청빈하게 살면서 절에 들어오는 재물을 구호사업에 쓰도록 했다.
부인까지 팔아서 중생 구제 나서
부 대사의 일생을 돌아보면, 깨닫고 난 후 그의 삶은 중생에게 진리를 전하는 설법과 백성의 고통을 구제하는 보살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자기만의 깨달음에 안주해서 법락(法樂)을 즐기며 은둔하기 보다는 황제가 있는 수도로 들어가 몸소 법을 설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목격하고는 ‘법(法)’보다 ‘밥’을 먼저 주며 대자대비를 실천한 모습은 그가 진정한 일승(一乘)의 보살임을 나타낸다. 아울러 선(禪)의 이치를 크게 깨달아 진리 자체가 되어 저잣거리로 나아가 자비의 손을 드리우는 입전수수(入廛垂手)의 경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부 대사를 비롯해 원효 스님, 경허 대사와 같이 깨달은 도인들은 마지막 수행의 여정에서 왜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간 속으로 들어가 자비행을 펼치는 것일까. 그것은 몸과 생각의 덩어리인 에고(ego)의 아성을 허물고 무아(無我)ㆍ무심(無心)이 된 자는 우주와 하나 된 대아(大我)로 살아가기 때문이리라. ‘작은 나’가 아닌 ‘큰 나’는 인류는 물론 모든 유정(有情)을 하나의 생명으로 보기에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결국 도인이 체득한 무심은 무정물의 ‘생각 없음’이 아니라, 오로지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임을 알 수 있다. 대자대비란 크게 사랑하고 지극히 연민하는 마음이다. 아무 생각도 없는 무기(無記)에 빠진 의식 상태나 치성하는 중생의 애정이 아닌, 텅 비었으면서도 참사랑으로 가득 찬 ‘진공묘유(眞空妙有)의 마음’인 것이다.
선정 속에서 석가. 금속. 정광여래를 친견하고 수능엄삼매를 증득한 부대사
부처님께서 열반에 앞서 최후에 설한 진실한 법문인 『대반열반경』 ‘범행품’에는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을 설명하면서 큰 사랑인 ‘자심(慈心)’이 보리심과 깨달음의 근본임을 강조하고 있다.
“선남자야, 사랑[慈]은 곧 여래며, 사랑이 곧 대승이니 대승은 곧 사랑이요, 사랑은 곧 여래니라. 선남자야, 사랑은 곧 보리의 도니, 보리의 도가 곧 여래요, 여래는 곧 사랑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자(慈)’는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사랑이나 중생과 소승인이 말하는 사랑을 넘어선 ‘완전한 사랑’ 즉, 불ㆍ보살의 ‘큰 사랑’인 대자(大慈)를 가리킨다. 그리고 불ㆍ보살의 네 가지 끝없는 이타심을 뜻하는 자비희사 사무량심의 근본인 이 ‘자심’에 대한 정의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대반열반경』에 따르면, 사랑[慈]은 곧 보살의 위없는 도이며, 모든 중생의 부모이며,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들의 경계이며, 중생의 불성이며, 대공(大空)이며, 열반의 네 가지 덕(德)인 상락아정(常樂我淨: 여기서의 我는 大我임)이기도 하다.
대자비행은 깨달은 자로서의 불행(佛行)수행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불심(佛心)이기에, 이런 위대한 사랑은 부 대사 한 사람에게서 비롯되었지만 마침내 많은 사람을 감동시켜 대중이 불사에 동참하게 하는 불가사의한 힘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대반열반경』에서 자심삼매(慈心三昧)의 힘으로 제바달다가 술을 먹여 취하게 한 코끼리들을 굴복시키고, 자이나교의 본산이었던 수파라성의 문이 저절로 열리게 하고, 큰 바위를 가루로 만들어 5백의 역사(力士)를 귀의케 하는 등의 신통력이 ‘자심 선근의 힘’[慈善根力]에 의해 비롯되었음을 반복해서 밝히고 있다.
부 대사의 대자비행은 깨달은 자로서의 부처행[佛行]이자 깨달은 마음을 자재하게 쓰는 보살수행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부 대사는 이러한 보살행을 하더라도 아상(我相)과 법상(法相)이 없는 무념행(無念行)을 해야 한다고 『금강경오가해』에서 주의를 주고 있다.
“보배 보시 모래알의 수효처럼 많아도 오직 유루(有漏)의 인연만을 이루니, 아상(我相) 없는 관(觀)으로 망념(妄念) 다한 진여(眞如)라 이름함만 같지 못하네.
생멸(生滅) 없는 법인(法印)을 증득하려면 우선 탐욕과 노여움에서 벗어나 사람[人]과 법(法)에 아상 없음을 안다면, 멀리 육진(六塵)에서 벗어나 세상 밖을 유유히 소요(逍遙)하게 되리라.”
우리는 가족이나 직장동료, 거래처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그들에게 화를 내거나 많은 것을 바라고나 있지는 않는가? 선지식이 부재한 말법시대에 경전과 내 본심에 의지해 ‘법등명 자등명(法燈明 自燈明)’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제 수행에 입문한 불자나, 화두를 타파하거나, 염불삼매를 증득해 득력한 이를 막론하고 대승의 구도자라면 보살의 사무량심을 실천하는 일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부대사상01 : 부 대사 상(像).
부대사상02 : 선정 속에서 석가ㆍ금속ㆍ정광여래를 친견하고 수능엄삼매를 증득한 부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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