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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선문정로(禪門正路)』를 저술하신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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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3 년 6 월 [통권 제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10,01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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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古鏡)」을 발행하면서 제가 맡은 이 난을 무엇으로 채울지 많이 생각하였습니다. 다소 어려운 이론과 말씀들을 뒤로 하더라도 우리들을 위해 마음 닦는 참선수행을 해야 하는 간절한 말씀들을 큰스님의 여러 저서들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말이 겹치고 되풀이 설명되기도 하겠지만 바로 그 거듭되는 말씀들의 진의를 헤아리다 보면 선의 세계로 한걸음 한걸음씩 다가가는 우리들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다음 글은 1982년 1월 1일 법정 스님이 ‘『선문정로(禪門正路)』 출판 동기’를 큰스님께 여쭌 것에 대한 답변의 말씀입니다.

 

나의 이런 생각들이 기우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불교란 것이 그 근본은 깨달음에 있는 것이고, 그 깨달음은 선(禪)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깨달음 자체, 견성 자체에 대해서 그만 표준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누구든지 ‘견성했으면’, ‘성불했으면’ 하고 참선하는 것인데, 누구나 불교 공부한다고 해서 사흘만 지나면, 참선한다고 해서 한 사흘도 못 되어 모두 다 견성해 버리고 성불해 버립니다. 근본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불교계에 큰 혼란이 오고 있습니다. 아니 혼란이 와 있습니다. 남의 말 하기는 안됐습니다만, 미국에 가 있는 일본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불교를 포교하느냐 하면, 먼저 견성해서 참선시킨다고 합니다. 즉 ‘무(無)’자 화두를 가르쳐 주고서 ‘무(無)’라고 말할 줄 알면 견성했다고 하여 ‘견성단’이라고 따로 푯말을 세워 둔 곳에 앉힙니다. 견성하기 위해 참선하는 것인데, 견성을 해 가지고서 참선하는 식이니, 그 사람이 무슨 공부를 해서 무슨 견성을 하겠습니까.

 

이리 되어서 불교의 생명이 완전히 파멸될 지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날이 갈수록 그 피해가 심해져, 결국에는 견성이 없어져 버리고 성불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아서, 앞으로 불교 장래를 위해서 그 표준이 있어야 되겠다, 그렇다면 고불고조(古佛古祖)들은 어떻게 공부해서 어떻게 견성했는가, 어떻게 말씀했는가, 그 법문들을 여러 곳에서 모으고 구체적인 실례를 들었습니다. 견성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내 개인 생각만이 아니고 견성에 대한 표준인 고불고조의 기본사상을 소개해서, 앞으로 견성성불에 대해 혼란이 안 오고 파멸이 안 되도록 하는 데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그런 책을 내봤습니다. <선문정로>는 옛 조사스님들의 기본 사상체계를 소개한 것입니다.

 

견성에 대한 그릇된 견해와 망설은 자신만 그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선종의 종지를 흐리고 정맥을 끊는 심각한 병폐입니다. 『선문정로(禪門正路)』를 편찬하면서 첫머리에 ‘견성(見性)이 곧 성불(成佛)’임을 밝힌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견성하면 곧 부처임은 선종의 명백한 종지입니다.

 

‘견성해서 부지런히 갈고 닦아 부처가 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산에서 서울 가는 일로 비유를 들자면 삼랑진쯤이 견성이고 거기서 길을 바로 들어 부지런히 달려 서울에 도착하는 것을 성불로 생각합니다. ‘견성한 뒤에 닦아서 부처가 된다’는 것은 견성의 내용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서울 남대문 안에 두 발을 들이고 나서야 견성이지, 그 전에는 견성이 아닙니다. 견성하면 바로 그대로 부처이지, 견성하고 나서 닦아서 부처가 된다고 하는 이는 제대로 견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부처님께서 팔만대장경을 말씀하신 것은 중생들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약방문입니다. 환자야 약방문이 필요하지만 병의 뿌리까지 완전히 없앤 이에게 무슨 약방문이 필요하겠습니까? 진여자성을 확연히 깨달아 무심경이 된 사람 즉, 성불한 사람에게는 어떤 가르침도 어떤 수행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팔만대장경도 역대조사의 1700 공안도 모두 필요 없는 그런 사람이 견성한 사람입니다. 거꾸로 가르침이 필요하고 수행이 필요하다면 그는 견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더 이상 배우고 익힐 것이 없는 한가로운 도인, 해탈한 사람이 되기 전에는 견성이 아닙니다. 이것이 『선문정로(禪門正路)』의 근본 사상입니다.

 

이렇듯 큰스님께서는 『선문정로(禪門正路)』를 통해 선 공부의 바른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공부하는 이들 모두 성철 큰스님의 위와 같은 말씀을 바로 새겨 정진에 힘을 쏟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진 설명 - 성철 스님이 선수행의 바른 길을 제시한 『선문정로(禪門正路)』와 『선문정로(禪門正路)』의 ‘해설판’이라 할 수 있는 『옛 거울을 부수고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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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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