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생로병사, 그 비밀스럽지 않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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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3 년 7 월 [통권 제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8,105회 / 댓글0건본문
생로병사(生老病死)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문제다. 비밀이라니, 오히려 너무 뻔한 문제라서 평소에는 무감각한 채로 지내게 된다. 어쩌다 아프거나 가까운 이가 죽거나 하면 잠시 감상에 젖어 있다가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 툭툭 털고 일어나 바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 노멀(Normal)한 일상이 정신 나간 상태라는 건 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게 정신 나간 채로 살면서 죽지 않으려 기를 쓰고, 젊어 보이려 기를 쓰고, 몸뚱이 보살피다 보면 어느덧 인생 종착역이다. 이렇게 생로병사에 저항한 결과로 수명은 늘었지만 괴로움도 늘었다. 자기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지구의 다른 생명들에게 어마어마한 민폐를 끼치고 그 폐가 다시 인류를 위협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게 다 생로병사에 적응 못하는 인간의 열등함 때문이다. 생로병사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의학도 여기에 한 몫을 한다. 진통제의 은혜를 받아본 적이 있는 자라면 현대의학의 힘을 함부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이 가져다 준 편의 대신에 무엇을 잃어버리고 사는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생로병사의 비밀’에서도 생로병사에 대처하는 비밀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으니 말이다.
어떻게 하면 생로병사를 잘 대면할 수 있을까? 불교의 스승들은 이에 어떤 태도를 가졌을까? 우선 붓다는, 어린 시절 어느 날 문을 나가서 늙고 아프고 병들어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심한 충격을 받았다.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고 두려움이 많은 겁쟁이였나 보다. 붓다가 겁쟁이였기에 불교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로병사가 두렵다면 일단 붓다의 제자가 될 소질이 있다고 하겠다. 극복하려 하지 말고 겁부터 먹고 시작하자.
태어날 때부터 고생 좀 하자
“태어나지 말지어다, 죽기가 괴로우니. 죽지 말지어다, 태어나기 괴로우니.”라는 원효 스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그때의 기억을 까맣게 잊어서 그렇지, 세상 밖으로 나오려면 엄청 힘이 드나 보다. 힘이 드는 게 순리인데 요즘은 출생의 순간부터 의학의 도움으로 쉽게 꺼내진다. 엄마 뱃속에서 분리된 아이는 이제 자기 입으로 젖을 먹어야 하는데 이것도 무척 힘든 일이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라는 말이, 아기의 고생이 당연함을 말해준다. 그런데 고생을 덜 하려는 엄마와 이윤을 추구하는 분유회사가 착한 플라스틱 젖꼭지를 제공함으로써 또 아기에게서 고생할 기회를 빼앗는다. ‘사는 게 고생’이라는 게 붓다의 첫 번째 가르침이 아니던가.
아무리 저항해도 늙음은 오는 것
흰머리 몇 개 뽑다가 염색하는 가벼운 조치부터 몸에 좋다는 건 다 먹어보는 것까지, 늙어 보이지 않으려는 노력은 가히 필사적이다. 늙은이의 생존에 불리한 사회적 조건이 이런 풍조를 만들기도 하고 미디어의 부추김도 한 몫 한다. 늙음에 대해 불안에 떨면 떨수록 그것을 겨냥한 보험 광고나 약 광고가 판을 친다. “갱년기라는 말, 싫죠~ 그래서 저는 ○○○을 먹어요.” 갱년기라는 말, 그게 왜 싫은지? 나이 들면서 몸에 불편함이 없는 것은 아니나 통증이 심한 것도, 죽을 만큼 위험한 것도 아니거늘 갱년기에 ‘장애’ 혹은 ‘증상’이라는 말을 붙여서 중년의 여자들을 환자나 병신으로 만든다. 그리고는 약을 판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늙음을 막을 수는 없다.
아프면 아픈 대로
병은 무조건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사는 동안 작든 크든 병이 들게 마련이다. 고통을 덜어주는 것으로 의학이 인간에게 베푸는 혜택은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작은 증상만 나타나도 즉시 병원으로 달려갈 만큼 요즘 사람들은 병원 중독이다. 자기 몸을 병원에 위탁하면서 생로병사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끌고 갈 힘을 잃어 간다.
선사들이 병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서산 대사는 병들어 이렇게 살았다. 그는 인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문집에는 “보고 싶으니 한번 만나 달라.”고 청하는 편지가 꽤 많다. 그때마다 “나도 당신이 보고 싶소. 그런데 심화(心火)가 치받아서 그만 병이 났소. 다음 기회에…” 이런 식으로 답장을 보내고 나가지 않는다. 명색이 수행자 신분에 심화가 치받았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대놓고 공개하는 그 핑계에 살짝 여유가 보인다. 아픈 몸에 불편함을 견디면서 고독을 즐기지 않았다면 『선가귀감』도 없지 않겠는가. 병든 몸으로 살아가는 팁을 이분에게서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죽을 때는 집에서
아버지는 암으로 죽었는데 죽기 전에 소원이 집에서 죽겠다는 것이었다. 퇴원하고 닷새 만에 가셨는데 그 닷새 동안 친한 이들의 방문을 받고 직접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간간이 웃는 얼굴을 보여주셨다. 평생의 불효로 마음이 무거웠던 나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효도할 기회를 선물하고 가셨다. 생로병사의 단계마다 병원과 제도가 개입하는 지금의 삶에서 죽을 곳이라도 마음대로 정했으면 좋겠다.
엄마는 현재 요양병원에 계신다. 병원에서 얼마 후의 내 모습을 시뮬레이션하면서 인생 예습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우리나라 80대 여자들은 대부분 무쇠팔, 무쇠다리로 가족과 사회를 떠받치던 아주 유능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병원에 누워 있는 그분들을 보면 참 값어치가 없다. 병원비를 내는 대가로 얼마짜리 대접을 받기는 하지만, 병상에 누운 그분들이 처리되어야 할 폐기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엄마는 집에서 죽을 수 있을까. 슬픈 일이다.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동산 스님에게 “추위와 더위가 다가오면 어디로 피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대답했다. “그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추울 땐 춥고 더울 땐 더운 곳”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뭔가 깊은 뜻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화두 들고 참선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이야기에는 배울 점이 있다.
운문 스님이 하루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15일 전은 네게 묻지 않으마. 15일 후에 대해 한마디 해 보아라.” 대답이 없자 상대방을 대신해서 이런 대답을 남겼다고 한다. “날이면 날마다 좋은 날이지요.” 운문 스님, 아마도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에 계신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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