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스승과 제자, 의발전수 이전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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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3 년 9 월 [통권 제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8,291회 / 댓글0건본문
인간관계는 대체로 이해관계 아니면 애증관계로 요약된다. 나에게 이익이 되면 좋은 사람, 나에게 손해가 되면 나쁜 사람이다. 애증도 따지고 보면 이해를 바탕으로 하므로 이해관계가 더 근본적이라고 볼 수 있다. 피붙이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있는 집에서는 부모의 임종을 앞에 두고 누가 얼마를 더 받을 것인가 하는 재산분배의 문제로, 없는 집에서는 누가 얼마를 더 낼 것인가 하는 고통분담의 문제로 다툼이 벌어진다. 교양 있게 싸우느냐, 악을 쓰고 싸우느냐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이해를 따지는 속에서 애증이 교차하기는 마찬가지다. 각각 몸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 몸이 욕구를 부르기 때문에, 나의 욕구와 타인의 욕구가 부딪치기 때문에 이해와 애증이 따른다. 욕계는 애초부터 이런 업을 짓도록 설계라도 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자신의 업과 무명을 명확히 관찰하고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불교인들은 이해와 애증을 떠났을까. 예불 끝에 읽는, “원수 맺고 친한 이들, 모두 성불하여지이다”로 끝나는 발원문이 있다. 성철 스님은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에고를 버리기 전에는 결코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성을 가지고 불가능에 가까운 실험을 해온 것이 불교의 한 특성이기도 하다. 『전등록』에는 이해와 애증을 벗어난 비범한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 중에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당나라 때 고령산(古靈山) 신찬(神賛) 선사는 경을 읽던 계현(戒賢)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서 배우다가 행각을 떠났다. 백장(百丈) 선사를 만나 깨닫고 본사로 돌아왔다. 스승이 “그래, 나를 떠나 바깥에서 무얼 배워왔느냐?”하고 물으니 “아무 것도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스승이 그에게 잡일을 맡겼다. 하루는 스승이 목욕하면서 때를 밀어달라고 하니 신찬 선사가 스승의 등을 밀면서 “법당은 참 좋은데 부처님이 영험이 없습니다.”라고 슬쩍 던져 보았다. 스승이 고개를 돌려 째려보자 신찬 선사가 다시 “영험 없는 부처지만 그래도 방광(放光)은 할 줄 아시네요.”라고 한마디 더해 주었다.
스승이 하루는 경을 읽고 있는데 마침 들어왔던 벌이 밖으로 나가려고 온몸으로 창호지를 두드려대고 있었다. 그것을 본 신찬 선사가 경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스승을 빗대어 결정적인 한방을 날렸다. “넓은 세계로 나가지 않고 낡은 종이만 뚫고 계시니 그렇게 하다간 백년이 가도 나갈 수 없을 겁니다.” 스승은 여기서 경을 덮었다. 자기 제자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제자에게 그간의 행적을 물었다. 신찬 선사는 백장 밑에서 깨달은 이야기를 해 주면서 이제는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려 한다고 대답했다. 스승은 대중을 불러 모으고 법석을 마련하여 제자에게 설법을 청해 들었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이 사제지간의 이야기는 3대 0, 제자인 신찬 선사의 승리로 읽힌다. 많은 평자들이 교학승인 계현과 선승인 신찬을 대비시켜, 깨달은 선승이 깨닫지 못한 교학승을 깨우쳐 준 이야기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는 깨닫고 못 깨닫고를 떠나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어떻게 배려하는가를 볼 수 있다. 자기를 떠나 행각을 나서는 제자를 스승은 잡지 않고 바라보았다. ‘내가 못나서…’라는 생각에 서글펐을지도 모른다. 실컷 밖으로 돌다가 온 제자를 막지 않고 받아주었다. 그 제자에게 알몸을 보이고 등을 밀어달라고 맡겼다. 제자에게 날카로운 공격을 몇 차례나 받고서도, 깨닫고 온 제자를 십분 인정하고 법석을 열어주었다. 제자를 존경하고 제자에게 가르침을 받는 스승이 된 것이다.
한편 제자는, 스승께는 죄송하지만 더 큰 일을 위해 잠시 떠난다. 떠나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을 테지만, 스승을 믿고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드디어 백장이라는 큰 종장을 만나 단련을 받고 깨닫는다. 이제는 어디서 어떻게 보임하며 살든 그의 자유다. 그러나 스승에게 돌아온다. ‘누구랑 같이 살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만큼 인생의 행·불행을 좌우하는 문제다.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는 첫마디 대답에서 스승이 눈치를 채 주었으면 좋으련만 두 마디, 세 마디 하게 만드는 스승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고 등 때를 밀어준다.
보통은 아무한테나 알몸을 보이고 등을 대주지는 않는다. 몸의 찝찝함을, 가려움을 들켜도 되는 이 둘의 사이에서 의발을 전수하는 문제 이전에 부모자식지간의 친밀감이 느껴진다. 스승과 제자라는 엄연한 지위를 놓게 만드는 건, 누가 먼저 도를 깨달았느냐가 아니라 둘 사이에 놓여있던 친밀감과 신뢰가 아닐까 한다. 이런 스승이 먼저 세상을 뜨면 아무리 도인이라도 슬피 울 것 같다.
부처님이 아파서 몸이 쇠하여지는 것을 보고 와깔리라는 제자가 계속 울자 부처님께서는 “그만 해라, 와깔리야. 썩어질 이 몸을 가지고 무얼 그리 슬퍼하느냐”라고 꾸중 반, 달램 반 하셨다는데 애착을 경계하는 부처님의 마음보다 슬퍼하는 제자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간다. 그렇게나 멋진 인간의 몸이 사라진다니, 그렇게나 존경하고 사랑하던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라니…. 진정, 족적이라도 떠서 간직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등불과 등불이 전해지는 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너무나 인간적인 마음들이 있었음을 상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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