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일본 임제종의 종조 에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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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상 / 2024 년 2 월 [통권 제130호] / / 작성일24-02-05 09:30 / 조회1,819회 / 댓글0건본문
일본선 이야기 2
일본 고대 후반의 불교는 사이초最澄의 천태종과 쿠카이空海의 진언종으로 양분된다. 두 종단 모두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대교단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중세에 이르러 무사계급의 등장과 왕권에 의한 중앙집권체제의 몰락으로 이들 교단도 쇠퇴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내우외환, 즉 내란과 함께 갖은 자연재해는 민중들에게 희망보다는 절망의 벽을 더욱 높여갔다. 여기에 말법의 원년을 1052년으로 보고, 법멸 만년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심리적 좌절감은 일본 열도를 구원으로부터 배제된 변토의식을 더욱 깊게 했다.
에사이의 구법과 임제교단의 창건
일본 첫 임제종의 조사 묘안 에사이明菴榮西(1141~1215)가 활약한 시기는 이처럼 몰락하는 고대에서 약육강식의 중세로 진입하는 바로 그 시대와 맞물린다. 불법은 오히려 암흑에서 더욱 빛나는 법, 에사이의 구법과 임제교단의 창건 또한 불법 스스로의 영능靈能에 의한 것이다.
에사이에 대해서는 천태의 그늘에서 활약한 밀교승으로서의 이미지와 독립된 선종 교단을 확립했다는 선사로서의 이미지가 겹친다. 전자는 11세에 출가, 오카야마현 안양사安養寺의 조신靜心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학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13세에 비예산比叡山에서 천태종의 정식 승려가 되었다.
17세에 스승이 열반하며 센묘千命를 따르도록 유언했다. 그는 에사이에게 천태밀교와 허공장구문지법虛空蔵求聞持法를 가르쳤다. 후자는 허공장보살의 진언을 외는 것으로 두뇌가 명석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태 본산에서는 밀교 관정도 받았다. 당시 천태종은 권력과의 밀착으로 부패가 극에 달했으며, 억압된 사령寺領의 농민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현실에 좌절한 에사이는 송나라에 가서 본격적인 불법을 배우고자 뜻을 세웠다.
1168년 하카타에서 출발, 드디어 명주에 도착, 마침 동대사의 승려 초겐重源을 만나 함께 천태산에 올랐다. 두 사람은 아육왕산에서 함께 선을 배웠다. 장시간 수행에 차를 마시면 졸음이 가시는 것을 느끼고, 훗날 『끽다양생기喫茶養生記』를 저술하는 기연이 되었다. 이 덕분에 일본의 다조茶祖로도 널리 알려졌다. 6개월 뒤에 귀국, 천태좌주 묘운明雲에게 천태장소天台章疏 60권을 증정했다. 고향에서 포교활동을 하면서 밀교의 수행에도 노력했다. 고토바왕後鳥羽王은 에사이를 불러 기우제를 지내도록 했다. 밀교의 수법으로 비를 내리게 하자 요조葉上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비가 내리는 나뭇잎마다 에사이의 얼굴을 비추었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이는 천태밀교인 태밀의 한 파인 요조파를 형성한다. 시조는 물론 에사이다.
두 번째 중국 구법은 비로소 선승의 면모를 갖추는 계기가 되었다. 원래는 인도로 가서 불타의 사리가 분배되어 모셔진 여덟 개의 탑을 순례하며 멸죄의 요체를 터득하기 위해서였다. 1187년 송나라로 건너간 그는 조정에 인도로 갈 수 있도록 간청했다. 그러나 당시 인도행 루트는 몽고군의 세력이 강해 도움을 받지 못했다. 다시 천태산에 올라 만년사의 허암회창虛庵懐敞을 만나 사사했다. 회창은 황룡혜남黃龍慧南의 8세손이다. 『원형석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회창이 “전해 들으니 일본은 밀교가 매우 왕성하다고 하는데, 그 종지의 처음과 끝을 한마디로 말하면 어떠한가?”라고 묻자, 에사이는 “초발심을 내면 그것이 정각을 이룸이요, 삶과 죽음에 흔들리지 않으면 곧 열반에 이릅니다.”라고 응했다. 이에 회창은 “그대의 말과 같다면, 우리 선종과 한가지로다.”라고 화답했다.
4년 동안 회창의 가르침을 받고 임제종 황룡파의 법맥을 계승했다. 1191년 작별을 고하자 회창은 “옛날 석가모니께서는 입적하실 즈음에 ‘정법안장 열반묘심’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하셨다. 스물여덟 분에게 차례로 전해져서 달마에 이르렀고, 다시 여섯 분에게 전해져서 조계혜능에 이르렀으며, 또 여섯 분을 내려와 임제에 이르렀고, 다시 여덟 분을 내려와 황룡선사께 이어졌다. 거기서 다시 여덟을 이어 내려와 그대에게 이르렀노라. 지금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잘 받아 지녀라.”라며, 발우·좌구·보병·주장자·백불白拂 등을 주었다고 한다. 귀국 후에는 후쿠오카에 보국사報國寺를 창건하며 주로 큐슈지방을 중심으로 포교활동을 했다.
일본 최초의 선종 사찰 성복사 창건
당시 천태종은 노닌의 달마종과 함께 신흥불교의 대두에 제동을 걸었다. 조정을 움직여 에사이의 활동을 금지시키는 바람에 수도인 교토에서의 포교는 난관에 봉착했다. 그럼에도 일본 최초의 선종사찰로 부르는 성복사聖福寺를 세웠다. 마침내 1199년 실권을 쥔 무사들의 본거지인 막부가 있는 가마쿠라鎌倉에서 환영을 받았다.
다음해, 막부를 연 초대 장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1주기 법요식 집전을 맡기도 했다. 부인 호조 마사코北条政子가 세운 수복사壽福寺의 개산조가 되었다. 아직은 불안했던 막부 정권에 천태 밀교승인 동시에 선사로서의 에사이는 무사들의 심리적 안정을 꾀하는 데에 부합한 인물이었다. 막부의 지원을 받은 그는 교토 건인사建仁寺의 개산조로 명성을 날렸다. 선·천태·진언의 종합도량으로 후에 관사가 되었다. 이로써 왕권가와 무가 양쪽의 협력으로 에사이의 선종은 중세 이래 번영을 구가했다.
그렇다면 에사이는 왜 밀교승의 이미지를 갖추지 않을 수 없었을까. 어릴 때부터의 영향과 시대적 상황, 그리고 천태교단과의 연속성을 유지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한계 때문이었다. 후쿠오카의 료벤良辯이 천태종의 승려들과 더불어 참소하자 에사이는 공개적인 변론을 하게 되었다. 그는 선문이 이전부터 있었다고 하며, “옛날 비예산의 덴교대사傳敎大師(最澄)께서 『내증불법상승혈맥보內證佛法相承血脈譜』 1권을 저술하셨는데, 그 서두는 곧 달마가 서쪽으로 와서 선법을 전한 일이었습니다. 저 료벤은 어리석어 알지 못하고 천태의 무리들을 끌어들여 나를 무고했습니다. 만약 선종이 그릇되다고 하면, 저 덴교대사 또한 그릇되다 할 것이며, 덴교대사가 그릇되다고 하면 우리 천태의 교학 역시 설 자리가 없게 됩니다. 천태의 교학이 서지 못하는데, 천태의 무리들이 어찌 나를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내증불법상승혈맥보』 또한 사이초가 나라를 중심으로 한 당시의 구세력인 남도南都 불교로부터의 공격에 대해 천태종의 정통성을 밝힌 것이다. 인도·중국·일본의 불법의 상승 계보를 제시한 것으로 달마대사 부법付法, 천태 법화종, 천태 원교보살계, 태장금강계 양만다라, 잡만다라의 5종류의 혈맥보를 글과 그림으로써 기록했다. 원밀선계圓密禪戒의 4종법문이 사이초에게 계승되었음을 증명하고자 한 것이다.
이로써 천태종은 에사이의 선종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포교에 대한 방해는 없어지게 되었다. 밀교는 천태지의의 종합불교의 뜻을 받들고자 한 사이초가 평생을 통해 습득하고자 한 마지막 관문이었다. 1204년에는 『일본불법중흥원문日本佛法中興願文』을 지어 사이초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천태산에서 불사를 올리기도 했으며, 귀국 후에도 지자대사의 탑과 사원, 천동산의 천불각 수리에 힘을 보탰다. 당시 밀교는 여전히 천태종과 더불어 강력한 세력을 이루고 있기도 했다. 기성 세력인 천태와 밀교로부터 배척받지 않으면서도 독자적인 선종 수립을 위한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선종 수립을 위한 『흥선호국론興禪護國論』
에사이는 선종의 수립을 위해 『흥선호국론興禪護國論』을 저술했다. 이는 막부의 환영을 받기 직전인 1198년에 나왔다.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영법구주문令法久住門’으로 불법의 생명의 원천은 계율이며, 계율로써 청정해지면 불법은 오랫동안 존속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2장은 ‘진호국가문鎭護國家門’으로 『인왕반야경』에서 반야, 즉 선종을 국왕에게 부촉한 이유는 계율을 지키는 선 수행자가 있는 곳은 국가 또한 영원하기 때문이다. 선종을 봉대하면 제천도 국가를 수호한다고 한다.
3장은 ‘세인결의문世人決疑門’으로 선종에 대한 비난이나 무지, 의혹에 대한 반론이다. 선정만을 강조하거나 공에 빠진다는 잘못된 견해를 비판한다. 4장은 ‘고덕성증문古德誠証門’으로 고래 일본 선승의 유래와 수행의 역사를 제시하고 있다. 5장은 ‘종파혈맥문宗派血脈門’으로 석존의 심인心印이 인도와 중국에서 끊이지 않고 계승되어 자신에게 임제종의 정법이 전해졌음을 설한 것이다.
6장은 ‘전거증진문典據增進門’으로 선종의 교외별전·불립문자의 가르침을 설한다. 7장은 ‘대강권참문大綱勸参門’으로 선은 불법의 총체이며, 제종의 근본임을 설파하고, 이심전심의 진의와 선종의 대요를 제시한다. 8장은 ‘건립지목문建立支目門’으로 『선원청규』를 통해 선종의 시설·규범·규식을 제시하며, 불교계의 혁신을 강조한다. 9장은 ‘대국설화문大國說話門’으로 인도와 중국의 선문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10장 ‘회향발원문回向發願門’은 공덕을 돌림으로써 발심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설한다. 그는 여래선·염불선·최상승선도 소개하고 있으며, 선교일치도 중시한다.
일본의 다조茶祖로 추앙받다
또한 『끽다양생기』는 71세에 이른 말년의 저작으로 수행자들뿐만이 아니라 세인들에게 잘 알려졌다. ‘오장화합문五臟和合門’과 ‘견제귀매문遣除鬼魅門’의 상하 두 권으로 나누어져 있다. 상권은 차가 신체의 오장을 조화시켜, 건강을 유지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차의 재배법, 따는 법, 제조와 음용 방법 등을 기술하고 있다. 하권은 차가 마음과 정신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선 수행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와 함께 중풍이나 각기병 등에 뽕잎이나 차가 효과를 발휘하며, 가지기도와 함께 재액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차는 양생의 선약인 동시에 수명을 늘이는 묘술을 갖추고 있다.”라고 하며 심신의 건강과 수양에 도움이 됨을 역설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중국에서 차 씨앗을 가져와 여러 곳에 심어 재배했다. 이로써 일본의 선원다례의 문화와 다선일미의 선풍이 일기 시작했다.
에사이는 『미래기未来記』에서 그의 사후 50년 뒤에는 일본에서 선이 융성하리라고 전망한다. 그의 예언대로 29인의 제자가 건인사를 비롯하여 각지에서 활약한다. 훗날 조동종의 종조 도겐道元은 입송 전에 건인사에서 에사이의 제자인 묘젠明全으로부터 선을 배웠다. 도겐은 에사이의 손제자가 되는 셈이다. 도겐의 설법집인 『정법안장수문기正法眼蔵随聞記』에서 에사이를 매우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에 관한 여러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묘젠은 천동산에서 수행하다가 요연당了然堂에서 입적했다. 그의 유해는 도겐이 귀국할 때 모시고 왔다.
에사이는 『흥선호국론』의 대미인 ‘회향발원문’에서 『대반야경』의 ‘회향품’을 인용하고, “우리는 지금 이처럼 회향하고, 이처럼 발원하며, 세세생생 반야를 만나 최상 여래의 선을 수행하고, 모든 중생과 함께 대비 방편을 수습하여 미래세상이 다하도록 나태하거나 지치지 않아야 한다.”고 설한다. 말법의 시대에 선이야말로 석존의 정법안장을 얻는 일이며, 중생 구제 방편의 핵심임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시공을 초월한 불법이 스스로 살아 숨쉬며, 그 자신의 생명을 위해 명안종사明眼宗師를 부려쓰고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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