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읽는 법어]
The Middle Way Is Buddha(중도가 부처님)
페이지 정보
Brian Barry / 2013 년 8 월 [통권 제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12,055회 / 댓글0건본문
Translated by Brian Barry
(www.bbbudart.com)
The Middle Way is neither a central position nor moderation. The Middle Way is Buddha, and by coming to know The Middle Way you come to know Buddha.
중도(中道)가 부처님이니 중도를 바로 알면 부처님을 봅니다.
중도는 중간, 또는 중용(中庸)이 아닙니다.
Generally, people think in terms of relative dualities. Consequently, they see reality as a world filled with struggles and conflicts. But this is illusion based on false discriminations. The Middle Way is ridding yourself of “right” and “wrong,” “evil” and “good” and all other relative dualities. It is an absolute state where all contradictions and conflicts have been syncretized.
중도는 시비선악(是非善惡) 등과 같은 상대적 대립의 양쪽을 버리고 그의 모순, 갈등이 상통하여 융합하는 절대의 경지입니다. 시비선악 등의 상호 모순된 대립, 투쟁의 세계가 현실의 참모습으로 흔히 생각하지만 이는 허망한 분별로 착각된 거짓 모습입니다.
There are no dualities in universal reality. Right and wrong are syncretized so that right is wrong and wrong is right. Evil and good are syncretized so that evil is good and good is evil. They are one and the same, and this is the eternally accommodating truth of The Middle Way.
우주의 실상(實相)은 대립의 소멸과 그 융합에 있습니다.
시비(是非)가 융합하여 시(是)가 즉 비(非)요, 비가 즉 시이며, 선악이 융합하여 선이 즉 악이요, 악이 즉 선이니 이것이 원융무애한 중도의 진리입니다.
When we know about nature and the universe, we see things as separate units. But when we know the universe, we know it as One. There is no end to the world of struggle and conflict if we stubbornly insist on such foolish discriminations as relative dualities.
자연계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가 모를 때에는 제각각으로 보이지마는 알고 보면 일체입니다. 착각된 허망한 분별인 시비선악 등을 고집하여 버리지 않으면 상호투쟁은 늘 계속되어 끝이 없습니다.
If we come to see universal law, to see the reality of The Middle way’s perfect harmony, then contradictions and conflicts, dualities and struggles disappear. We see the great oneness of everything; and we can laugh wherever we go in this immense world of freedom, a world completely free from criticism and dissatisfaction.
만법이 혼연융합한 중도의 실상을 바로 보면, 모순과 갈등, 대립과 투쟁은 자연히 소멸되고 융합자재한 일대단원(一大團圓)이 있을 뿐입니다. 악한과 성인이 일체(一體)이며, 너는 틀리고 나는 옳다 함이 한 이치이니, 호호탕탕한 자유세계에서 어디로 가나 웃음뿐이요, 불평불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In this world beyond dualities, everything is The Middle Way and every place is a Buddhafield. The reality of The Middle Way is the world of Buddha, and it is the true reality of the universe.
대립이 영영 소멸된 이 세계에는 모두가 중도 아님이 없어서 부처님만으로 가득 차 있으니, 이 중도실상(中道實相)의 부처님 세계가 우주의 본모습입니다.
We live in a world which is fundamentally a vast paradise filled with blooming flowers of freedom. So let’s all perceive this world of The Middle Way, and return to our fundamental nature which is an eternal home of absolute peace. Let’s hold hands and walk together in this magnificent world which sings praise of Buddha, a world where everything in the universe sings of The Middle Way.
우리는 본래로 평화의 꽃이 만발한 크나큰 낙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비선악의 양쪽을 버리고 융합자재한 이 중도실상을 바로 봅시다.
여기에서 우리는 영원한 휴전을 하고 절대적 평화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삼라만상이 일제히 입을 열어 중도를 노래하며 부처님을 찬양하는 이 거룩한 장관 속에서 손에 손을 맞잡고 다같이 행진합시다.
(Buddha’s Birthday, May 1983)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현대불교가 잃어버린 사문 전통의 메아리
베트남의 거리 수행자 틱민뚜에[釋明慧]가 남긴 질문들 어느 종단에도 소속되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걷고, 탁발하는 모습을 통해 대중에게 발견된 한 수행자가 베트남 불교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
유권준 /
-
지리산 무쇠소 사찰음식 일기
지리산 무쇠소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입니다. 소처럼 묵묵히 땅을 일구는 성실함, 무쇠처럼 꺾이지 않는 의지, 지리산처럼 깊고 넉넉한 품이 그 안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수행자의 …
박성희 /
-
동안상찰 선사 『십현담』 강설⑥ - 환향곡還鄕曲
성철스님의 미공개 법문 10 환향곡還鄕曲이라. 불교에서는 대개 본래 자기의 근본 마음을 고향이라 합니다. 그래서 환향은 본 고향에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타향에서 타향살이 하고 …
성철스님 /
-
화엄학적 사유를 받아들여 일체현성의 선리 제창
중국선 이야기 55_ 법안종 ❷ 중국이 오대·십국으로 남방과 북방으로 분열된 시기에 조사선 오가五家 가운데 마지막인 법안종이 문익에 의하여 출현하였다. 법안종의 명칭…
김진무 /
-
성철스님, 인공지능 기술로 새롭게 나투시다
백련암에서조차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던 날도 잠깐, 어느새 가을을 품은 솔바람이 환적대를 넘어와 염화실 마루를 쓸고 지나갑니다. 며칠 전 끝난 백중 아비라기도의 열기도 아직은 백련암 뜨락을 넘어서지 …
원택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