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및 특별기고]
부디 이 땅의 업장 가운데 다시 오셔서 “잠자지 말라” 외쳐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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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 2013 년 9 월 [통권 제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10,390회 / 댓글0건본문
성철 큰스님의 열반으로 새삼 출가 승니(僧尼)의 본분을 생각한다.
세상이 당장 통쾌한 말을 듣고자 했을 적에 그 분은 『벽암록(碧巖錄)』 속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읊어 옛소리를 살려냈다. 이에 혹은 어리둥절했고 혹은 과시평상심저(果是平常心底)로구나 했으리라. 이 말의 파장이 있었던 바는 저 처참한 80년대 초가 아니었던가. 나야 그것을 들을 처지도 아니었다. 하지만 긴 안목이건대, 한 시절에 값하는 수작일 뿐이라면 그것은 출격장부(出格丈夫)의 소임이 아닐 터이다.

그 분은 비구승단 조계종의 종권 확보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같은 연배의 지난날 결사도반(結社道伴)들이 배를 가르고 손가락을 자르는 위법망구(爲法忘驅)에 여념 없을 때도 팔공산 성전 토굴에서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 일 하나로 보아도 스승 하동산(河東山) 스님까지 능히 저버리는 정진의 이판(理判)이었다. 하기야 그 옛날 금강산 선방에서 공부할 적에 거기까지 찾아온 어머니한테 돌팔매를 던진 데서 그 단호한 임제가풍(臨濟家風)의 의지는 비롯되고 있다. 말 그대로 한 번 산에 들면 그 산을 나가는 길을 없애 버린 것이다.
불법이 중생을 위한 온갖 방편을 다 발원하여 우리로 하여금 멀리는 원효(元曉)의 길이 있고 가까이는 경허(鏡虛)와 만해(萬海)의 길이 있건만 그 분은 그런 선사(先師)들도 한 방망이로 타파한 납자 그 자체였다. 이로써 생각건대, 한 번 집을 나간 중은 첫째 정진(精進)이 으뜸이라는 그것이다.
결연히 보살의 화현(化現)으로 나서서 세상만사에 동참하는 일이 쉬운 노릇이 아니건만 일단 축발(祝髮) 이후의 산중살림이라면 그 바탕에 공부가 먼저 있어야 마땅하다. 이것이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진면목이다.
성철 큰스님은 바로 이 점에서 작금의 불교계에 뇌성벽력을 내리친 권보살(權菩薩)이며, 다른 모든 종교계에도 말의 거짓, 말의 집착에 대한 경책을 보낸 이보살(理菩薩)이었다. 초조(初祖) 달마 9년 변멱(面壁) 정진과 어깨를 겨루어 오늘의 선지식 중에 8년 동안 눕는 일 걷어치운 그 치열한 용맹이 어찌 일대사인연 아니랴.
말을 하기로 하면 그 분만큼 현학적일 정도의 해박한 식견도 없거니와 그 분이 설한 성철오계(性徹五戒0의 으뜸이 ‘말 많이 하지 말라’는 것이었고, 이어서 ‘책의 문자에 다가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말의 생명을 살려내자는 것밖에는 다른바 아니라면 그 분의 원력으로 완간한 <선림고경총서(禪林古鏡叢書)>와 법어집은 그 분의 열반을 앞둔 선지(禪旨)의 결집(結集)이매 새삼 눈물겨운 일이다.
성철 큰스님은 자애롭다, 천진이다 하고 누가 말하지만 그 분의 특장(特長)은 엄혹 거기에 있다. 사람 하나 다루는 데도 금강산 1만 2천 봉을 다 써버리며 시자나 상좌 하나 길러내는 데도 향수해(香水海) 바닷물을 다 써서 그 파도에 실려보내는 것이다. 실로 자비문중(慈悲門中)의 무자비(無慈悲)였다. 그런 뼈 으스러지는 공부를 통한 뒤에라야 겨우 가야산 겨울 홍시 두어 개를 따먹으리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산중에 이런 스님이 또 나타나야 한다. 문이 없이 그냥 벌판의 무애(無碍)도 썩 좋으나 문 닫혀 꽉 막힌 그 오도가도 못할 궁처(窮處)가 있어야 한다. 거기에 백척간두진일보가 있음이라면.
성철 큰스님은 소금 없는 식단으로 한 평생을 다하였다. 그 분 자신이 소금이었기 때문인가. 이 세상 썩어 가는데 그 소금의 법(法)이 있어 아직 이 세상은 그 분의 열반에 옷깃을 여미는 것이다.
이제 연화대에 하화(下火)하면 그 연화대가 화중연화(火中蓮華) 아니랴. 부디 이 땅의 수고 많은 업장(業障) 가운데 다시 오셔서 잠자지 말라 외쳐 주소서. 부디부디 산이 물이요 물이 산이로다 하고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어긋나 새로운 법계에 주장자를 치소서. 喝
<경항신문> 1993년 11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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