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샴발라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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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3 년 12 월 [통권 제128호] / / 작성일23-12-04 15:38 / 조회2,192회 / 댓글0건본문
인도 동북부의 관문인 바그도그라(Bagdogra)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세어 택시(Share Taxi)를 잡아탔다. 옆자리 앉은 시킴인에게 “몇 시에 도착하냐?”고 물어보니 그는 어깨만 으쓱하기만 할 뿐 말이 없다. 물어본 나도 으쓱할 수밖에….
공항에서 다르질링(Darjeeling)까지의 거리는 약 100km 남짓하다. 하지만 도로의 경사도가 심하고 지난 여름에 내린 폭우로 말미암아 길이 많이 유실되어 현재 보수 공사중이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는 뜻에서 나오는 인도식 답변이리라….
강첸중가 설산 기슭으로…
실로 오랜만에 인도 동북부에 도착했으니 가볼 곳도 많고 찍을 것도 많지만, 추워지는 날씨에 쫓겨서 ‘샴발라의 4개 후보지’ 중의 한 곳으로 추정되고 있는 칸첸중가 산기슭으로 우선 방향을 정했다. 이번 달의 ‘키워드’를 ‘싱가리라 VS 샹그리라 VS 샴발라’의 연결고리로 잡았기 때문이다. 이 세 단어들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모두 유토피아적 이상향을 가리키는 용어들이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역마살 핑계를 대고 반평생 동안 찾아 헤매던 화두는 ‘샴발라(Shambhala)’였다. 오래전 티베트 문헌에서 신비한 이상향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그 흡인력에 끌려 오랫동안 아니, 거의 반평생을 그곳을 찾아 헤맸지만 물론 결과는 ‘역시나’였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샴발라는 다차원의 블랙홀같이 이외에 공간에 감추어져 있어서 시절인연이 닿을 때만 열린다.”는 말을 곱씹어 가면서 또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떠나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하였다. 그러다가 최근 웹서핑을 하다가 비슷하지만 처음 보는 이름인 ‘싱가리라’를 접하고서는 나의 잠자던 역마살이 다시 도졌다. 급기야는 원고 집필을 핑계 삼아 다시 영혼의 순례자가 되어 이 캉첸중가 설산 기슭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캉첸중가 설산은 북으로는 티베트, 서쪽으로는 네팔, 동남쪽으로는 인도의 다르질링과 시킴 그리고 부탄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높이가 8,586m의 거봉으로 8천m가 넘는 봉우리가 5개나 된다고 하여 ‘5개(Junga) 눈의 보고寶庫’라고 불린다. 특히 남쪽 기슭은 드넓은 아열대 삼림지대가 펼쳐져 있는데, 인도 당국은 1986년 이 일대를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1992년에는 ‘싱가리라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이 일대의 자연생태계를 보호하고 있다. 그렇기에 개방은 하였지만 개별여행은 불가능하고 전문 트레킹회사를 통한 단체투어 허가를 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에 수속을 대행해 준다는 트레킹 회사를 수소문 끝에 찾아서 당일치기 트레킹 계약을 하고는 아침에 가이드가 몰고 온 대절 차에 몸을 실었다. 공원사무실에서 필요한 사항을 기입하고는 트레킹 코스(주1)의 시발점인 마네이 반장(Maney Bhanjyang)을 출발하여 이른바 ‘캉첸중가 릿지’를 타고 산닥푸(Sandakphu) 트레킹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에 올라섰다.
물론 대설산의 장엄한 모습을 바라보며 무아지경으로 걷는 환상적인 코스이기는 하나, 나의 목적이 설산의 장엄함을 즐기는 것보다 여기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라는 삼발라의 후보지에 신경이 쏠리는 것을 어쩔 수는 없었다.
이 ‘싱가리아’가 미지의 베일을 벗고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 것은 영국의 죠셉(Joseph Dalton Hooker, 1817~1911)에 의해서였다. 식물학자이자 탐험가인 그는 영국 동인도회사 대표 아치볼드 캠벨의 협조로 시킴 왕국의 통행을 허락받아 1949년 브리얀(Brian Houghton Hodgson)과 함께 이 지방을 탐험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국경지대에 자리 잡은 이 전인미답의 처녀지를 발견하고는, ‘샹그리라’를 세상에 알린 제임스 힐튼의 소설을 패러디하여, 비슷한 이름인 ‘싱가리라’로 명명했다고 한다. 이 추측의 당위성은 16년이란 시간차에 있다. 그 소설이 세상에 회자된 때가 1933년이니까.
싱가리라 > 샹그리라 > 샴발라
샴발라의 전설은 과거 천여 년 동안 설역 고원의 민초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유토피아였고, 과학문명이 신을 만들어 내는 현재에서도 진행형으로 영원히 풀지 못하는 상상속의 테마파크이다.(주2)
반면 ‘샹그리라(Shangri-La)’는 1933년 발행된 제임스 힐튼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이란 소설의 무대인데, 그 독특한 소재로 인해 대단한 인기를 얻으면서 샹그리라 열풍을 일으켰다. 소설에 이어 영화(주3)로까지 만들어지면서 인도, 네팔, 부탄, 시킴 그리고 중국 등이 저마다 ‘샹그리라 류類 테마파크’ 장사에 열을 올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샹그리라는 샴발라의 영어버전이다.”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고, 오늘의 ‘싱가리라’는 또 다른 패러디에 해당된다.
숨겨진 공간의 타임게이트(Time Gate)
티베트 불교대장경 『텐규르』 속에 들어 있는 문헌들에 의하면 샴발라를 여는 키워드는 『깔라짜크라 딴트라(Kalachakra Taꠓntra, 時輪經軌)』인데, 사실 이 단어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기에 한 번 더 풀이해 보면 ‘시간의 수레바퀴’ 정도로 정리된다. 바꿔 말하자면, 혹 어떤 사람이 요행히 샴발라의 문턱에 도착하게 되었더라도 ‘시간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 그곳은 눈과 바위만 있는 삭막한 공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샴발라는 시간 속에 숨어 있을 것이다.”라는 대명제로 돌아가 볼 필요도 있다.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인데, 사실 “시간의 수레바퀴를 돌린다.”라는 난해함을 넘어 신비스러운 경지를 간략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첨단 과학적 이론을 동원하여 4차원, 11차원, ‘초끈이론(super string)’(주4)으로 설명하지만 여전히 난해하니 역마살의 나그네로서는 불감당이 아닐 수 없다.
‘바율 데모쫑’은 어디에?
삼발라로 가는 가이드북은 4종류가(주5) 있지만 난해하기 그지없다. 다행히 현대작가 애드윈(Edwin Bernbaum)이 15세기 빠드마 린바(Padma Linba)라는 굴장사가 발견한 기록을 편집하고 참고도록까지 집어넣어 『샴발라로 가는 길(The Way to Shambhala)』을 출판하여 우리도 샴발라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이에 의하면 삼발라의 후보지는 4곳으로 요약된다. 바로 켐바룽, 바율데모쫑, 페마코, 창데모쫑 등이다. 그 가운데 두 번째가 캉첸중가 산기슭에 있다는 ‘바율 데모쫑(Bayul Demojong)’으로 바로 우리들의 목적지이다.
‘쌀(과일)의 숨겨진 골짜기’라는 뜻이 의미하듯, 이 전설은 신비한 쌀이 모티브로 등장하는, ‘아라비안나이트 류’의 장황한 설화여서 이를 모두 전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실질적인 이 ‘바율 데모쫑’의 역사는 15세기 릭진괴뎀(Rigdzin Gödemེ,, 1337∼1409)이라는 숨겨진 경전과 보물을 찾아다니는 굴장사堀藏師, ‘테르퇸’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는 살기 좋은 골짜기를 발견하고는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고 대신 독수리의 목에다 편지를 써서 고향의 사원으로 보내왔다고 한다. 그 편지에는 그곳을 찾아오는 방법이 자세히 적혀 있기에 여러 명의 도전자들이 그곳을 찾아 나섰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그리고 다시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시절인연이 무르익을 때가 되었을 때 남캬르 직메(Namkha Jikmé, 1597∼1653)라는 수행승이 기록을 더듬어 그 골짜기를 찾아내어 딴트라 수행을 완성하였고, 그에 의해 선출된 인물인 ‘초걀(Chogyal)’ 대에 이르러 작은 왕조가 만들어졌다. 이름하여 시킴(Sikim) 왕국의 효시이다.
<각주>
1) 트랙킹 코스는 마네이 반장(Maney Bhanjyang)에서 시작하여 도트리(Dhotrey)까지로 통루(Tonlu, 3070m) - 텀링(Tumling, 2895m) - 메그마(Meghma, 2800m) 코스로 총 19km 일정이다.
2) 2000년도인가 일산 호수공원에서 <티베트 탕카전>이 열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필자는 그 전시회의 큐레이터로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 그림 중에 <시륜경사대종단성도時輪經四大種壇城圖>와 <천구절첩설도天球折疊設圖>란 제목을 본 순간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접철’이란 뜻은 ‘접다’, ‘개다’라는 의미이니, 이 말은 “우주를 접거나 갠다.”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이 일련의 그림들은 현대물리학에서 요즘 가설로 제기되는 다차원多次元의 개념이나 블랙홀(Black hole)이나 우주공간의 주름설 같은 가설과 상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신선한 충격은 그 뒤 내게 묵직한 화두로 남겨졌고, 그것이 나로 하여금 티베트 마니아로 만들게 하였다. 나아가 ‘샴발라’라는 곳이 시간이나 공간이 주름 잡혀 겹쳐진 곳에 정말로 존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긍정론으로 기울게 만들었다.
3) 그 뒤 같은 이름의 흑백영화로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상영되었는데, 1960년대에는 우리나라 TV에 방송된 바 있고 몇몇 출판사에서 같은 이름으로 번역판도 출간된 바 있다.
4) 이 가설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가진 이론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주의 최소 구성단위를 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과 같은 소립자나 쿼크보다 훨씬 작으면서도 끊임없이 진동하는 아주 가느다란 끈으로 보는데, 이 이론에 의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외에도 수많은 다른 공간이 있고 각 공간은 각각의 물리법칙에 따라 존재한다고 한다고 한다.
5) 린뿡(Rinpung Nawang Jigdag)의 『사명을 가진 사자使者』를 비롯하여 싸캬빠 시대에 무명 작가에 의해 저술된 것과 따라나타(Taranatha)의 『깔라파 죽파(Kalapa Jugpa)』와 3대 빤첸라마의 『람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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