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선화 보유자 성각스님, 비움으로 불심을 채우는 선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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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3 년 10 월 [통권 제126호] / / 작성일23-10-05 11:11 / 조회2,496회 / 댓글0건본문
선가禪家에서 구도적 깨달음을 실천하는 마음자리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데, 글의 표현을 선서禪書라고 하고, 그림으로 그려지는 것을 선화禪畵라고 한다. 경계를 시詩로써 나타낸 게송偈頌 글씨나 수묵水墨으로 그린 감필체減筆體로 선적禪的 내용을 담아낸다. 선가에서 내려오는 자성진심自性眞心을 밝히는 구도의 방편으로써 일반적인 회화와는 결을 달리한다.
고도의 수행예술, 선서화禪書畵
예술적 재능, 독창적 감각, 대중성이 중요시되는 일반 예술 분야와는 성격이 다르고, 화려한 장엄으로 표현되는 불화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 불교의 특별한 수행 예술세계이다. 때로는 점 하나에서, 혹은 한 획의 선에서 마음이 평온하게 비워지거나 불심佛心의 환희로 가득차기도 한다. 이는 한 폭의 선서화를 그려내는 수행자도, 완상玩賞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선서화는 선 수양과 선법으로부터 발현된다. 자기 수행과 돈오견성頓悟見性의 경험과 통찰을 기반으로 한다. 선서화의 출발은 선가의 정신세계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 즉 견성見性에 대한 통찰, 그리고 이로 인해 발현되는 시화선詩畵禪 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잡다한 잡념이 생기면 수행의 근간을 세우기가 어렵다. 굳건한 정신, 견고한 마음을 통해 결기를 세워야 최종 목적지인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선서화를 그려가는 여정은 깨달음을 향해가는 수행의 과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서예가 김생金生(711~791)이 서성書聖으로 추앙받았으며, 그 명성은 중국에서도 알려졌다. 당시 선장禪匠은 선화를 선법의 도구로 삼았으니 불교 선서화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고려시대 최고의 문인 이규보는 많은 선시를 남겼고, 공민왕도 선화를 즐겨 그렸다. 조선의 고승 휴정선사는 선필禪筆의 진수라 하여 이름났으니, 선서화는 통일신라시대 이래로 지금까지 꾸준하게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선화의 축을 이루는 구성요소는 단순해 보이지만 이루기에는 지극히 어려운 양면성을 가진다. 가로로 획을 긋는 한 일(一), 세로로 내려긋는 뚫을 곤(丨), 선의 끝과 끝이 만나는 옴(○)은 선화 구성의 근본이다. 일(一)은 수평의 연장을, 곤(丨)은 수직의 연장이며, 옴(○)은 분리되지 않는 자아를 상징한다. 수평이나 수직은 무한을 의미하며 원은 순환을 의미하여 선 세계와 연결되고 있다. 획을 그어 내리고 연결하는 방식은 단순해 보일지언정 그것을 통해 정신세계를 넘나들고 선각先覺에 이르는 경지에 도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나의 선을 긋기 위해서 일상과 평생을 통한 집중과 성찰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선화의 근본도량 남해 망운사
망운사는 고려 1213년 진각국사(1178~1234)가 창건한 암자에 기원한 천년 고찰이다. 조계종의 중흥조이며 송대 대해보각 선사의 간화선을 도입하여 한국불교의 수행근간으로 삼고, 성공적인 결사운동을 전개한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선사의 수제자인 진각국사는 이곳에서 깊은 수행을 이루었다.
사진 4. 망운사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해 풍경.
구름을 바라본다는 망운산望雲山은 푸른 남해와 운해雲海가 서로 어울려 시시각각 펼쳐지는 풍광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넘어 선계仙界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들게 한다. 진각국사가 왜 이곳을 수행처로 삼았는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선대의 수행의 역사를 이어 지금은 성각스님께서 41년째 한결같은 모습으로 이곳을 지키고 계신다.
화선지와 붓을 도반으로 평생을 선화와 함께하였고, 이로써 남해 망운산 망운사는 선화의 근본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성각스님은 국내 유일의 선화 부문 무형문화재다. 부산시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고, 선화보존회를 설립하여 유지하고 있다.
성각스님의 선화는 화엄대선사의 화풍과 고산대선사의 선풍을 겸수한 특별한 선화풍을 지닌다. 그림의 스승은 김해 신어산 동림사에 주석하며 선승으로서 서예와 선화에 능통한 한산당 화엄선사(1921~2001)이다. 그러나 하동 삼신산 쌍계사 방장 고산대선사(1933~2021)를 만나 참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활로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세 번째 스승은 남해 망운산 망운사에서 펼쳐지는 산과 바다, 그리고 해와 달의 자연적 조화로움으로 선화의 세계를 펼쳐내는 안목과 바탕이 되었다.
스님의 방안에는 새하얀 화선지에 먹으로 그린 선화 작품들이 묵향을 품어내며 숨 쉬고 있다. 과연 일흔을 훌쩍 넘긴 큰스님의 그림일까 싶은 천진난만한 미소의 동자승의 모습에서부터 마음에 일침을 더하는 강렬한 눈빛의 달마선사까지 표현의 기폭이 무한하다. 미소 속에 평화로움이 있고, 달빛 안에 고요가 있다. ‘山’이라는 글자 하나 속에는 나무와 폭포, 바람과 구름, 바위가 넘나든다. 그 수많은 산을 담아내며 성각스님은 어느덧 스스로 산이 되었다.
“산은 언제나 나의 곁에 서 있습니다. 우뚝 솟은 산정山頂은 나의 희망이자 모두의 바람입니다. 작품 속의 산심은 잡다한 번뇌를 털어버린 텅 빈 고요이고 적멸寂滅입니다. 그야말로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解脫의 즐거움을 담고 있습니다. 어쩌면 산은 나의 친구이자 도반입니다. 또한 나의 어머니이자 스승의 참 그림자이기도 합니다.”
선화 <산심山心>에 대해 설명하면서 산에 대한 성각스님의 시선을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림뿐 아니라 스님의 선시에서도 더 구체적이고 농축된 선승의 산심을 알 수 있다.
산자락에 누웠더니
지는 해를 보았더니
어느덧 내 모습은 산이 되어
물 흐르는 소리
꽃 지는 소리를 듣네
진계와 속계를 가르는
망운산의 일주문 곁
철쭉꽃은 얼굴을 붉히고
고요는 산새의 울음소리를 데불고 와
저물녘의 종소리를 울리나니
그대 어느덧 선승이 되어버렸네
- 「어느덧 내 모습은 산이 되어」,
성각스님에게 있어 선화는 깨달음의 길로 통하는 수행의 방편이다. 무념무상無念無想으로 완성된 선화는 세속 저편의 고요의 경지이다. 일체의 분별을 벗어난 무심필無心筆, 선묵일여禪墨一如의 세계로 꾸밈이 없고 묘사가 없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화엄경약찬게」,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찬」 등 일만여 자로 채워진 선서 대작 병풍 10곡은 불심으로 가득하다. 세필 전서체篆書體로 불경 한 자 한 자 쓰며 3배의 예를 올리며 정성으로 완성한 작품들이다.
선정禪定 속에서 탄생하는 선서화
이렇듯 무형의 유산으로 가치를 지니는 선서화의 특징은 참선의 도구라는 점, 글씨와 그림, 형식과 내용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선서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반드시 준비해야 할 일이 있으니 바로 참선이다. 마음을 고요히 해서 선정에 들어야 한다. 선정에 들어 고요히 생각하다 보면 문득 어떤 깨달음의 경계가 마음에 나타난다. 그 마음자리를 붓으로 표현하는 것이 선화의 시작이라고 한다. 성각스님은 선서화를 보다 많은 대중, 특히 젊은이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하신다.
“선서화는 고요하게 생각하는 데서, 참선하는 데서 깨달음을 얻는 작업입니다. 점 하나 찍는 것이 마음의 점이고, 선 하나 긋는 것이 마음의 선입니다. 미소는 스스로 기쁘게 하고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죠. 젊은이도 선서화를 통해 밝고 환하게 생활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거울로 삼았으며 좋겠습니다. 선서화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즐길 수 있답니다.”
치열한 수행의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선서화를 함께하고 즐거이 하여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그런 세상이 그려지는 것이 성각스님의 바람이라 말씀하신다. 선화의 미감은 화폭의 여백에서 오는 비움의 간결함이 있듯, 우리 삶도 많이 비워낼수록 불심의 자리도 더욱 크고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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