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세계 최대의 불탑 보우드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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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3 년 9 월 [통권 제125호] / / 작성일23-09-04 22:35 / 조회2,413회 / 댓글0건본문
지난 8년 동안 네팔에서 나의 발길이 가장 많이 머물던 도시는 수도 카트만두와 나의 학교가 자리 잡고 있는 안나푸르나의 거점도시인 포카라일 것이다. 나아가 한 곳을 더 꼽으라면 주저 없이 ‘보우드나트’ 라고 대답할 것이다.
대탑에서의 새벽맞이
잘 알려져 있듯이 정신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혼잡한 카트만두 방문은 가능한 피해 왔다. 물론 꼭 필요한 용건이 있을 때는 예외다. 예를 들면 포카라에는 없는 미술재료들을 구하는일이나 또는 후원자들이 네팔에 들어올 때에는 어쩔 수 없이 공항까지 마중을 나가게 된다. 이 경우에도 시간과 돈을 아끼기 위해서 포카라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카트만두 버스터미널에 이튿날 새벽 5시 정도 도착하는 일정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이때가 어중간한 시간이어서 카트만두 전역에서 새벽에 깨어 있는 유일한 장소인 보우드나트로 가게 마련이었다. 그리고는 수많은 탑돌이, ‘꼬라(Kora)’ 인파에 섞여서 3바퀴 정도 대탑 주위를 따라 돈다. 그리고 길가의 노점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소금 짜이’를 몇 잔 마시는 것으로 카트만두의 일과를 시작하곤 하였다.
우주의 경계를 여는 진언 ‘옴(ॐ,;Oṃ:唵)’
‘세계 최대의 탑’이라는 이름값을 하듯 대탑에서의 새벽맞이는 역시 늘 현란하고 장엄하였다. 내가 대탑에 도착하는 시간은 우리식으로는 ‘묘시卯時’이고 티베트식으로는 ‘시간의 수레바퀴[時輪]’인 ‘깔라짜크라’가 가속도가 붙어 지구의 운행이 활발해지는 시간이라 우주적 에너지 파동이 최고조를 이를 때여서 모든 것이 깨어나는 시간대이다.
거대하고 하얀 돔형 스투파에 얹힌 뾰족한 투구모양의 금빛 상륜부 위에서부터 점차 햇빛이 비쳐 내려오면서 이윽고 사각형 탑신부에 그려진 ‘지혜의 눈’ 또는 ‘쉬바의 눈(Lord Shiva’s eye)’에 햇빛이 닿으면 온 우주가 미세하게 진동을 하는 듯 하늘과 땅이 동시에 ‘옴(ॐ,;Oṃ:唵)’이란 소리를 토해낸다.
그러면 대탑 여기저기에 매달려 있는 수천수만의 오색깃발 ‘다르촉(Darchog: 經幡)’이 간밤의 이슬을 털어내듯 가볍게 휘날리고 이에 다시 화답하듯 수천수만 마리의 비들기가 새벽하늘로 날아올라 대탑을 선회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그러면 수천수만의 순례객들도 저절로 “옴 마니 반메 훔” 이란 만트라(Mantra)를 염송하면서 탑돌이를 계속한다. 바로 우주의 경계를 여는 진언이며 자비의 화신, 아발로끼테스바라(Avalokiteshvala)의 염원이 깃든 소원주이다. 이처럼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영혼의 모음이 울려 퍼지게 만드는 보우드나트의 새벽은 영성적 에너지의 충전소이다.
깨달음의 사원 보우드나트 스투파(Boudnath Stupa)
이 대탑은 카트만두 중심지에서 11km 떨어진 북동쪽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데, 스와얌브나트(Swayambhunath S.)와 함께 카트만두의 대표적인 불적지로 197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2015년 대지진으로 파손된 것을 국제적 후원의 손길에 의해 거의 원상태로 복원하였다.
원래 이름은 ‘보우다(Bodha)+나트(nath), 즉 ‘깨달음의 사원’이나 현지민들은 그냥 ’보우더‘라고 부른다. 택시나 버스를 탈 때 모든 명칭을 부르지 말고 그냥 간단하게 “보우더 보우더” 하면 알아서 데려다 준다.
전체적인 탑의 형태는 공을 반으로 자른 아쇼카식 돔형 스투파를 기본으로 하지만, 시대적 변천단계를 거치며 티베트불교적 우주관을 구현하는 ‘입체적 만다라’로 점차로 변천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순례객들이 4개의 대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가면 원형 순례도巡禮道에 설치된 ‘마니꼬르’를 돌리면서 대탑 주위를 한 바퀴 돌게끔 설계되어 있다. 앞사람을 따라, 또는 뒷사람에 밀려 그냥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계방향으로 돌게 된다. 한 세바퀴를 돌다 보면 이곳저곳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서 높이 38m나 되는 거대한 대탑의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 대탑의 조성 배경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로 힌두교적인 배경으로 기우제 성격의 ‘이슬의 탑(Khaasti Chaitya)’이라는 설이 있고, 두 번째로는 이곳의 원주민들인 티베트인들이 믿는 ‘거대한 탑(Chorten Chempo)’ 설이 있다. 이는 바로 옛 토번왕국의 영걸 송첸감뽀 왕의 조성설이다.
그러고 세 번째가 옛 ‘리차비(Licchhavi)왕조 조성설’인데 나는 이 마지막설을 지지하는 편이다. 내가 『네팔의 역사 문화산책』(주1) 을 쓰기 위해서 오리무중의 네팔 고대사를 섭렵한 견해에 의하면 이 설이 가장 이성적이고 역사적이기 때문이다.
샤카모니 붓다 재세 시에 인도 북부 바이샬리(Vaisalia)를 근거로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리차비족이 있었다. 이들이 카트만두 계곡으로 이주하여 새 왕조를 열었고, 마나데바 1세(Mana Deva, 464~505)가 바이샬리에 있던 사리탑에서 분배된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서 이 대탑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바이샬리는 불자들이나 사회학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친근한 곳이다. 왜냐하면 샤카모니 붓다께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마을이었고 또한 아난다(Ananda)의 고향이기에 기념비적인 불교유적지(주2)가 많이 산재해 있다. 또한 바이샬리에 있던 붓다의 진신사리 스투파를 아소카 대왕이 직접 전 세계로 분배했다는 것은 불교사적으로 공인된 사실이고 나아가 붓다께서 열반에 드셨을 때 다비식이라든가 하는 뒤처리를 도맡아 한 부족이 바로 리차비족이었다는 사실도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그런데 그들이 고향에서 홀연히 사라졌다가 카트만두 분지까지 올라와 새 왕조를 열어 찬란한 문화를 이룩하였다니 선뜻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방계 자료들을 면밀히 섭렵하고 나니 납득이 갔었다.
티베트불교의 세계적인 랜드마크
보우드나트는 티베트어로는 ‘초르텐 쳄포(Chorten Chempo)’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이 대탑이 토번왕국의 영걸 송첸감뽀(581~649) 왕과 네팔 왕비 브리쿠티 데비(Bhrikuti Devi)가 조성하였다고 믿고 있다.
보우드 지역은 옛날부터 티베트와 네팔 사이 무역의 거점이었다. 내가 쓴 네팔 공주의 티베트 신혼 길에 관한 ‘니번고도尼蕃古道’(주3) 에서도 이 대목을 충분히 밝혔듯이, 근대에 이르러 붉은 중국의 티베트 본토의 점령으로 인해 1951년부터 발생한 수만 명의 난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사실상의 티베트 난민촌이다. 어느 민족보다도 불심이 강한 그들이 보우드에 정착한 이유는 붓다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이 대탑이 결정적 작용을 했으리라….
현재도 스투파 주위 넓은 보우드 구역에는 티베트의 크고 작은 사원들이 대략 30여 개나 들어서 있고, 그들이 필요한 용품들을 팔고 사는 크고 작은 바자르가 열리고 있고, 티베트적 취향을 그리워하는 마니아들을 위한 숙소들이 몰려 있다. 그러니까 이곳은 네팔도, 인도도, 중국도, 그렇다고 티베트도 아닌, 나라 잃은 유랑민들의 애달픈 영혼이 살아 숨 쉬는 그런 곳이다.
특히 나에게는 좋아하는 ‘라핑(Laphing)’을 종류별로 먹을 수 있는 전문식당들이 즐비해서 무엇보다 이곳을 좋아한다. 아! 갑자기 먹고 싶다. 매콤하고 짭짜름한 라핑을….
<각주>
(주1) 『네팔의 역사문화산책』 중 제4부 ‘히말라야를 넘는 <니번고도>’에서는 대설산 히말라야의 공땅라모(Gongtang Lamo) 고개를 넘는 옛길인 니번고도를 탐험한다. 이 길은 네팔에서 설역고원을 가로질러 중원대륙으로, 만주벌판으로, 해동으로, 일본으로 이어졌던 국제적인 소통로로 실크로드의 갈래길 중의 하나였다. 저자는 여러 문헌 속에서 언급된 이 길을 직접 따라 걸으며 그 길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살펴보고 다시금 현실로 불러온다.
(주2) 현재도 아소카 석주와 원형 스투파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주3) 니번고도는 대설산 히말라야의 ‘공땅라모(GONGTANG LAMO)’ 고개를 넘는 옛길로써 네팔에서 설역고원을 가로질러 만주벌판이나 일본 등으로 이어졌던 국제적인 소통로로 실크로드의 갈래길 중의 하나였다. 저자는 이 길을 직접 따라 걸으며 그 길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살펴본다. 출처: https://www.sedaily.com/NewsView/1VDWOALX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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