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한국 선종에 유례없는 선화자 수련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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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23 년 8 월 [통권 제124호] / / 작성일23-08-04 23:15 / 조회2,457회 / 댓글0건본문
은암당 고우스님의 수행 이야기 22
고우스님은 50세가 되는 1987년 태백산 각화사 동암에서 ‘백척간두 진일보’의 뜻을 깨친 뒤 경전과 선어록 공부를 통한 정견의 중요성을 확인한다. 이에 수좌 도반들과 선화자禪和子(통상 참선하는 스님을 부르는 호칭으로 선禪은 양극단을 여읜 마음을, 화和는 그 마음을 조화롭게 하는 작용을, 자子는 이렇게 수행하는 수좌를 말한다) 수련법회를 추진하였다. 마침 조계종 종정이자 해인총림 방장 성철스님께서 각별한 관심과 지도를 해주시어 해인사에서 하안거 해제 뒤인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3박 4일 간 수련 법회가 여법하게 열렸다.
1987년 해인사에서 열린 선화자 수련법회
참선 수행자들이 해제 뒤에 한 도량에 모여 공부하는 수련법회는 통합 조계종 출범 이후 처음 있는 역사적인 불사였다. 당시 해인사에서 발간하던 『월간 해인』 1987년 9월호(67호)에는 이 수련법회 광경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선화자 수련법회가 해인사에서 있었다. 전국의 비구, 비구니 500여 수좌들이 운집하여 성공리에 회향하였다. 정치적 대회나 불사 따위가 아닌 순수히 법문만을 듣기 위하여 이와 같이 많은 대중들이 모인 것은 정화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3박 4일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500여 대중이 모인 법회는 고무적이고 희망적인 한국불교의 내일을 보는 느낌이었다.”
선화자 법회의 생생한 증언이다. 이 법회에는 무려 500여 대중이 참가하였다. 일주일 뒤에 이 법회를 보도한 중앙일보에는 참석 수좌가 800여명이라 하였다. 통합종단 출범 이후 이렇게 많은 수좌 대중이 참가한 수련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중앙일보> 1987년 8월 28일자에는 선화자 수련법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세히 보도했다.
“지난해 10월 창립된 선납회는 지난주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8백여 명의 전국 선방·선원 수좌들이 참가한 제1차 선화자수련법회를 열고 중국 선종의 중흥조인 육조혜능 조사의 법문을 담은 『육조단경』 강의를 수강했다. 또 수행방법상 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갖는 납자들이 모임을 만들어 ‘조직화’를 이룬 것도 한국 선종에 유례가 없는 새로운 징표다. 이번 수련회 『단경』 강의는 성철종정이 특강을, 서암스님(봉암사 조실)과 일타스님(해인사)이 『단경』 강론, 선과 율을 각각 강의했다. ... ”
<중앙일보>의 보도는 수련회가 끝난 지 열흘 뒤 나왔지만, 보도 그대로 이 법회는 ‘한국 선종에 유례가 없는 새로운 징표’였다.
고우스님의 주도면밀한 준비
사람이 많이 모이는 큰 행사를 준비할 때는 늘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고우스님은 이 선화자 수련법회를 준비하면서 치밀하게 준비했다. 스님이 직접 현수막까지도 만들었다. 수좌들이 몇 명이나 올지 알 수 없었지만, 그때 해인사 주지 법전스님과 총무가 원택스님으로 사중에서 공양 준비를 해주니 큰 도움이 되었다. 숙소는 넓은 보경당과 선원채를 그대로 공부도 하고 잠도 자는 곳으로 했다. 그리고 건장한 체격의 수좌 몇 명을 모아 규찰대를 조직하여 야심한 밤에 마을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길목을 지키게 하였다.
8월 15일 아침부터 수련법회가 열리는 해인사로 수좌 스님들이 몰려왔다. 수좌 아닌 스님들도 많이 왔다. 듣기 어려운 선지식들의 법문을 듣고 공부하러 온 것이다. 드디어 보경당에서 입재식이 열렸다. 종정이자 해인총림 방장 성철스님의 ‘육조단경 지침’ 법문으로 법회가 시작되었다.
성철스님의 고구정녕한 법문
그런데 성철스님께서 당초 건강이 좋지 않아 당신이 할 수 없으니 『단경』 강설은 서옹스님께 부탁하라 하셨는데, 막상 법회가 열렸을 때 성철스님은 입재 법문을 비롯하여 매일 한 시간 가까이 법문을 하셨다(음성법문은 유튜브에서 ‘성철스님 단경지침 법문’으로 들을 수 있다). 이를 미루어 보면 성철스님께서 선화자 법회와 동참 수좌들에 대해 얼마나 고귀하게 생각했는지 짐작할 수가 있다.
성철스님은 단경지침 법문을 이렇게 시작했다.
“『육조단경』이 선종의 종전宗典인데, 전해 오는 판본이 20여 종이 있어서 각기 조금씩 달라서 혼란이 있었다. 20세기에 와서 돈황 석굴에서 ‘돈황본’이 발견되어 최고본으로 확인되어 ‘돈황본’ 『육조단경』을 번역해서 원택(스님)이 책으로 만들어 낼 것이다.
『육조단경』은 견성성불이 핵심인데, 견성하면 일체 망상을 버리고 본래 밝은 자성을 보는 것이니 이것이 깨달음이다. 그런데 이 견성을 망상이 그대로 있는데 이치를 알았다고 견성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것은 선종에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삿된 견해이니 돈오한 다음에 점수해서 망상을 없애야 한다는 그런 잘못된 견해를 버리고 단박에 번뇌망상을 없애어 더 깨칠 것이 없는 돈오돈수가 선문의 바른 길이다.
이제 1천년 동안 잠자던 ‘돈황본’이 발견되어 선종의 종전인 『육조단경』에 돈오돈수가 정확히 설해져 있으니 이것을 떠나 딴소리하는 것은 선이 아니니 참선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정확히 알고 참선해야 한다. 그리고 이 『단경』 외에도 대주스님의 『돈오입도요문론』과 황벽스님의 『전심법요』 그리고 임제스님의 『임제록』을 기준으로 공부하고 참선해서 확철대오하라.”
성철스님은 본래 간단히 입재 법문을 하려고 했는데 40분 가까이 법문을 하고 내려왔다. 그런데 수좌들은 성철스님 법문을 더 듣고 싶어했다. 그래서 대중들이 성철스님에게 법문을 더 해 달라고 간청해서 성철스님의 법문은 3차례나 더 이어졌다. 성철스님은 법문에서 “보조스님이 『수심결』에서 ‘정혜쌍수定慧雙修’를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정과 혜를 둘로 보고 각각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육조단경』에서 말하는 ‘정혜등지定慧等持’, 곧 ‘정과혜가 하나다’, ‘정이 곧 혜고 혜가 곧 정’이라는 정견에 맞지 않는 말씀이다.”라고 하셨다. 스님께서는 이런 선리禪理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시며 선종의 정견에 대한 법문을 매일 간절하게 해주셨다.
성철스님의 입재 법문에 이어 봉암사 조실 서암스님이 『육조단경』 강의를 본격적으로 하였다. 그리고 해인총림 율주였던 일타스님이 ‘선과 율’을 주제로 특강을 하였고, 당시 떠오르는 선승 해운정사 조실 진제스님이 ‘마음 다스리는 법’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제1회 선화자 수련법회는 이렇게 3박 4일 동안 진행되었는데, 많게는 800여 명 적게는 500여 명의 수좌 대중이 동참하여 전례 없는 성황을 이루었다. 당시 해인사 강원 학인이었던 원철스님(전 해인사승가대학 학장)은 “그 넓은 보경당이 꽉 차서 문밖에서 서성거려야 했다.”라고 회상하였다.
『월간 해인』(1987년 9월호)은 편집자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이렇게 많은 대중이 모이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비구, 비구니를 포함한 대규모의 법회로 계획된 것도 아니다. 5하 이상의 선원 수좌들로 구성된 선납회에서 초참 수좌들의 교육을 위한 선 강화로 기획되었으나, 학인은 물론 비구니까지 참가하게 되어 대규모로 확대된 것이다. ... 이번 선화자 수련법회는 불교정화 운동에 획을 긋는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앞으로 이런 법회가 계속 열려야하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결사의 형식으로 발전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고우스님의 아쉬움
역사적 평가를 받는 선화자 수련법회는 매년 열리길 바라는 대중의 뜻과는 달리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2005년에야 다시 선화자 법회가 열렸다). 법회를 주관한 고우스님은 뜻 깊은 행사였고 전례없이 많은 수좌들이 동참하여 겉으로는 성공하였지만, 내용적으로는 실패했다고 자평하였다. 생각과 달리 구참 수좌들이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우스님은 당초 매년 하려는 생각을 내려놓고 다시 태백산으로 돌아가 은둔하였다. 이후 고우스님과 적명스님이 주도한 선납회는 1994년 무렵 전국선원수좌회로 이어져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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