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禪, 禪과 시]
음식남녀飮食男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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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3 년 7 월 [통권 제123호] / / 작성일23-07-04 10:38 / 조회3,536회 / 댓글0건본문
속세의 범부들은 사찰을 방문하면 그 사찰의 절밥이 어떤지 관심이 지대합니다. 절밥도 세월에 따라 뷔페식으로 발전했지만 근본은 역시 나물 밥상입니다. 식사는 절대로 하찮은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실제로 절제의 기본은 먹고 마시는 것을 자제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저항하기 어려운 쾌락이 먹는 쾌락일 것입니다.
음식남녀
공자(B.C.551~B.C.479)는 어느 해의 연말 제사에 빈객으로 참여했다가 나오면서 언언이라는 사람에게 탄식하며 이런 말을 했다고 『예기』에 적혀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남녀가 만나는 것, 인간의 큰 욕망은 거기에 있다. 죽는 것과 가난하고 고생스러운 것은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식남녀와 사망 빈고貧苦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시초이다.”(주1)
공자는 인생의 최고 경지를 알았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가 음식남녀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생존하고 발전하려면 음식남녀 네 글자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물조차도 먹이를 구하지 않을 수 없고, 짝을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음식남녀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바탕에 깊숙이 내재된 동기입니다. 이 때문에 인류 문화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공자는 문제를 정확히 짚었습니다만 해결책은 두루뭉술하게 예禮를 가지고 헤아릴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붓다(B.C.560?~B.C.480?)(주2)는 보다 구체적이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내가 깨달음을 이루기 전 아직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속의 삶은 번잡하고 먼지투성이다. 출가의 삶은 넓게 열려 있다. 세속에 살면서 잘 닦인 조개껍질처럼 지극히 완전하고 순수한 청정범행을 닦기는 쉽지 않다.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고 황색 가사를 입고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출가를 하면 어떨까?’ (…)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눈물 젖은 얼굴로 슬퍼하면서 반대했지만 나는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았다. 그리고 황색 가사를 입고 집을 떠나 출가했다.”(주3)
붓다는 출가를 함으로써 음식남녀 네 글자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출가를 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음식남녀 네 글자 때문입니다. 수행공부가 훌륭한 사람도 인연 하나로 끝장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법문이든 남녀 문제에 대해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음욕을 끊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참선 공부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욕념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그냥 허물어지고 맙니다.
봉암사의 공양
많은 사람들이 먹는 즐거움을 말하지만 건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나물 밥상에 불과한 절밥 한 그릇에도 불도의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비공개 사찰인 봉암사에서 첫날 저녁 공양과 이튿날 아침 공양, 두 끼를 먹었습니다. 종립 선원이 있는 봉암사에는 수좌들이 많기 때문에 공양에 각별히 신경을 씁니다.
종무소 앞, 선열당 1층이 공양간인데 그 앞에 늘어선 장독들이 경외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갈색 옹기 안에 담긴 것들은 모두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장아찌입니다. 산내 암자에 계시는 스님들도 공양은 선열당까지 걸어와서 해야 합니다. 봄과 가을이야 기분 좋게 오고 가겠지만 여름과 겨울에는 꽤 힘들겠습니다.
공양 시간이 상당히 빠릅니다. 스님 공양시간은 아침 공양은 5시 40분, 점심 공양은 11시 20분, 저녁 공양은 오후 4시 40분에 시작합니다. 불자님 공양시간은 이보다 20분 늦게 시작합니다.
공양은 깔끔하게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습니다. 밥, 나물 반찬 다섯 가지, 김, 콩나물·두부찌개입니다. 공양 시간을 잘 몰라서 4시 50분쯤 갔더니 스님들과 시간이 조금 겹쳤습니다. 비공개 사찰이라 스님들 외에는 우리 일행뿐이었습니다. 스무 명 가까운 스님들이 있었지만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음식 먹으며 쩝쩝거리는 소리나 젓가락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식탁 의자를 빼거나 당기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습니다. 눈인사는 하는지 몰라도 소리 내어 인사하는 스님은 없었습니다. 이 고요함이 봉암사 식당에서 느낀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공양이란 단순히 밥만 먹는 것만이 아니라 그 시공간을 즐긴다는 의미도 있으니까요.
커다란 대접에 밥과 나물들을 골고루 담고, 국은 국그릇에 따로 담습니다. 김치, 버섯, 두릅, 더덕, 양배추 생채, 김, 콩나물·두부찌개, 근대국입니다. 김치, 양배추, 콩나물·두부찌개가 다 맛있습니다. 특히 직접 재배하고 채취한 두릅과 더덕은 입에 착 감깁니다. 근대국의 식감과 향긋한 나물 향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습니다.
사진 3. 고추장, 두릅, 더덕이 입에 착 감긴다. 사진 4. 밥을 먹었으면 밥그릇은 씻었는가?
고추장 맛도 기가 막힙니다. 채식은 은근히 까다로운 음식입니다. 풋내도 나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이 다 살아 있어서 먹는 내내 기분이 상쾌하였습니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수좌들의 삽상한 기운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밥을 먹고 나면 불자들은 스스로 식기를 씻고 물기를 닦아 보관함에 담아두고 나옵니다. 이렇게 그릇을 씻는 데에는 심오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119세까지 산 조주(778~897)선사의 가르침입니다. 조주와 신입 승려와의 대화입니다.
“저는 총림에 처음 들어왔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아침은 먹었는가?”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밥그릇은 씻었는가?”(주4)
이렇게 간단한 몇 마디 대화가 『무문관』에 실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짧은 말 속에 가르치고 배우는 지극한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일을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특히 가정이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이 이치를 제대로 가르친다면 말할 수 없는 깨우침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색함에 있어서 저 너머의 높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면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것, 지금 여기서, 우리와 관련된 개별적인 것에 대해 숙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가르침입니다.
공양게供養偈
새벽예불을 마치고 잠깐 눈 붙였다가 6시에 아침 공양하러 선열당으로 갑니다. 비록 하룻밤이지만 봉암사에서 자고 일어나니 몸도 마음도 개운합니다. 절에는 공양게라는 것이 있어서 절밥을 받으면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고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나물 반찬 다섯 가지, 찌개의 구성은 같지만 아침 공양에는 죽, 식혜, 사과가 더 있습니다. 다섯 가지 나물 반찬도 나물 종류를 조금씩 달리해서 변화를 주었습니다. 스님들은 평생 채식만 했으니 나물 맛에 민감할 것입니다. 공양주 보살님들도 수십 년 동안 나물 반찬만 만들었으니 전문가가 다 됐습니다.
김치, 양배추 생채, 우엉조림, 나박백김치, 엄나무순, 김치·두부찌개입니다. 직접 재배하고 채취한 나물들이라 신선도와 청결함은 최고입니다. 엄나무순(개두릅) 무침 맛이 일품입니다. 채소 반찬만으로 맛있다고 느낄 수 있는 반찬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박백김치 맛이 담백하면서도 소금 맛이 은근히 기분을 좋게 합니다. 봉암사 공양주 보살님들의 간 맞추는 솜씨가 절묘합니다. 따끈한 죽도 속을 따뜻하게 데워줍니다. 후식으로 나온 사과도 맛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식당의 모든 의자 밑에는 테니스공을 잘라 덧대어 놓았습니다. 오, 그래서 의자 빼고 당기는 소리가 일체 나지 않았군요. 지금까지 절은 좀 다녔지만, 절밥을 먹어본 사찰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절밥이 맛있지 않은 곳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절밥을 먹기 위해서는 상당 시간 산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맛있었을 겁니다.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밥값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바쇼(1644~1694)는 아침밥을 먹으면서 이런 하이쿠를 남겼습니다.
나팔꽃을 바라보면서
밥을 먹어치웁니다
나는 그런 사람입니다(주5)
바쇼는 스스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나팔꽃을 바라보면서 조촐한 아침밥을 먹는 보통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시에는 아무것도 숨긴 것이 없습니다. 자신의 일상생활을 소박하게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랑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깨달음이란 이처럼 평범한 것으로 깨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대놓고 자랑할 것 없는 아침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 이런 시를 읊을 수 있다면 깊은 내재성에 도달했다 하겠습니다.
먹는 것, 무엇을 먹는가, 어떻게 먹는가는 심원한 문제입니다. 붓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괴로움은 음식으로 인해서 생긴다.
음식에 대한 집착이 소멸되면 괴로움도 생기지 않는다.(주6)
붓다는 인간의 모든 괴로움은 음식으로 인해서 생긴다고 통찰합니다. 이때 음식은 넓게는 재물, 돈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입니다. 음식에 대한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 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는 말씀은 범부로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까마득한 경지이지만, 또한 가야 할 곳을 알려주는 등대와도 같습니다.
<각주>
(주1) 『禮記』, 禮運, “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 死亡貧苦, 人之大惡存焉. 故欲惡者, 心之大端也.”
(주2) 붓다의 생존 연대를 가늠하는 유일한 지표인 아소카 왕은 B.C.268~B.C.232 동안 재위하였다. 아소카 왕 즉위에 대한 기록이 그리스 문헌에 남아 있어 인도의 연대를 결정하는 열쇠가 된다. 후대의 스리랑카 전승 남전 자료에 따르면 아소카 왕이 즉위했을 때는 불멸로부터 218년 이후가 된다. 통용되는 불멸은 남전 자료에 근거하여 B.C.483~B.C.485년이다. 북전에 의하면 아소카 왕이 즉위했을 때는 불멸로부터 약 100년, 혹은 116년이 경과했으며 붓다의 생애는 B.C.463~B.C.383년이 된다. 현재 일본 학계에서는 북전 기록 쪽이 신뢰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주3) 『맛지마 니카야』 36.
(주4) 『無門關』, 第七則 趙州洗鉢, “趙州因僧問 某甲乍入叢林 乞師指示 州云 喫粥了也未 僧云 喫粥了也 州云 洗鉢盂去 其僧有省.”
(주5) 宝井其角 編, 『虛栗』, 1683, “朝顔(あさがお)に我(われ)は飯(めし)食う男かな.”
(주6) 『숫타니파타』 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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