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禪, 禪과 시]
낮이란 만년을 깜빡거려도 하루살이의 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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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3 년 6 월 [통권 제122호] / / 작성일23-06-05 11:27 / 조회3,508회 / 댓글0건본문
우리나라에 일반인은 물론 불자의 출입도 허용하지 않는 사찰이 있습니다. 문경에 있는 봉암사는 한국 유일의 비공개 사찰입니다. 일 년에 단 하루, 초파일에만 산문을 개방합니다. 공개하지 않으면 당연히 신비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신비감으로 깊은 맛을 더해 줍니다. 봉암사를 방문하려면 인연을 만나야 합니다. 나도 인연의 한 자락을 붙들고 봉암사를 찾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비공개 사찰, 봉암사의 보물들
봉암사 입구인 일주문은 1723년 이전에 세워진 문인데 참 아름답습니다. 두 기둥 양쪽으로 버팀 장치를 한 특이한 문입니다. 일주문 가운데 보물로 지정된 것은 범어사 조계문, 봉암사 봉황문, 동화사 봉황문, 선암사, 천은사 등 전국에 5개밖에 없는 귀중한 문화재입니다.
우리는 공양물을 싣고 갔으므로 차를 타고 종무소까지 올라가서 공양물을 접수합니다. 봉암사에서 1박을 할 예정이기 때문에 종무소 아래에 있는 희양원에 숙소를 배정받았습니다. 비공개 사찰 봉암사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특별한 행운입니다. 영묘한 지혜는 사물의 세계 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하는 방식에 의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주1)
봉암사에는 볼 것이 아주 많습니다. 국가에서 지정한 보물들이 9점이나 있습니다. 지증대사탑비는 국보이고, 지증대사적조탑, 삼층석탑, 극락전, 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腹藏遺物, 정진대사탑비, 정진대사탑, 최근에는 마애미륵여래좌상과 일주문이 보물로 추가 지정되었습니다.
대웅전에서 내려다보면 봉암사의 정문인 남훈루가 보입니다. 문루 겸 2층 누각 강당은 보기 드문 형태입니다. 종립선원이 있는 사찰답게 장엄하고 풍류가 있습니다. 마당 좌우에는 커다란 노주석이 2개 있습니다. 야간에 행사할 때 관솔불을 피우는 조명 시설인데, 이것 역시 보기 드문 시설입니다.
역사의 맨 아래층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역사가 있고, 맨 위층에는 출렁거림이 있습니다. 봉암사에서 한국 현대불교의 문화문법이 탄생했고 뿌리가 튼튼해졌습니다.
1947년 해방 직후 혼란기에 35세의 성철스님(1912~1993)이 주도한 봉암사결사는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는 게 원이었습니다. 참여한 사람은 우봉, 보문, 자운에서 청담, 향곡, 월산, 종수, 젊은 사람으로는 도우, 보경, 법전, 성수, 혜암, 의현 이렇게 20명으로 늘어나고, 나중에는 50명이 넘게 참여했습니다.(주2)
‘석존에게 돌아가라!’는 테제는 불교사에서 몇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혁신은 동시에 복고입니다. 봉암사결사에는 18개 조항의 엄격한 공주규약共住規約이 있었는데, 그에 따라 모든 사람이 매일 2시간 이상의 노동을 했습니다. 물 긷고 나무하고 밭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 사람, 한 사람 땀 흘리는 생활 속에서 면벽참선을 실천한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생활과 밀착한 가운데 수행했기에 현재에도 살아 있는 정신입니다. 결사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4명의 종정과 7명의 총무원장을 비롯한 고승이 계속 나온 것도 결사의 정신이 개인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웅전에서 태고선원으로 가는 길옆에 국보인 지증대사탑비가 있습니다. 이 비석은 너무나도 유명한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거대한 비석에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이 적혀 있어 대단히 귀중한 사료입니다. 비석 한 구절에서 논문 하나가 탄생할 정도로 귀중한 사료입니다.
지증대사 비석과 같은 지붕 아래 지증대사적조탑(부도)이 있습니다. 팔각원당형 승탑인데 정말 아름다운 부도입니다. 탑의 높이는 3.41m, 지대석 너비는 2.28m며 옥개석이 넓어 아주 당당합니다. 하대석의 사자상도 8면 모두 자세가 다르며 조각이 두툼해서 마치 사자가 꿈틀거리는 듯합니다. 중대석 괴임에는 구름을 새겼으니 이곳에서부터는 천상의 모습입니다. 새의 몸에 사람의 형상을 한 가릉빈가(극락조)가 조각되어 있고, 그 위로는 선녀의 합장공양상, 사리함, 주악상 등을 배치하였습니다.
이런 아름답고 장중한 부도 앞에 서면 누구나 찬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천 년도 전에 희양산 깊은 산속에 이렇게 아름다운 탑을 세운 지방 호족은 그 세력과 신앙심이 얼마나 대단했던 걸까요.
대웅전 오른쪽에 극락전이 있습니다. 조선 중·후기에 만들어진 건물로 봉암사의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외관상 2층으로 보이는 목탑 구조물로 작은 건물이지만 내부와 외부가 지극히 화려하고 장엄합니다. 조선조 왕실에서 건립한 원당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봉암사 정문인 남훈루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산길을 10분 정도 올라가면 유명한 마애미륵여래좌상이 나옵니다. 옥석대(백운대)에 위치한 널찍한 바위 옆에 새겨진 마애불은 자연 암반을 깎아 만들었습니다. 환적대사가 1663년에 조성했습니다. 너럭바위 중 일부분은 두드리면 목탁소리가 난다고 하여 신비성을 더해 줍니다. 아마도 절리 과정에서 빈 공간이 생겨서 나는 소리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봉암사 산문이 열리면 신도들이 기도하고 싶어하는 곳입니다.
마애불에서 다시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 더 올라가면 산내 암자인 백련암이 있습니다. 인위가 더해지지 않은 그 길을 걸으면서 고요함을 가슴 가득 담았습니다. 고요함과 침묵이야말로 종교적인 것으로 진입하는 문이 아닐까요.
저녁을 먹고 절 아래에 있는 원로선원을 지나 연못까지 산책합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비공개 사찰 봉암사에서 뜻밖의 호사를 누립니다. 산책을 하면서 봉암사의 거대한 문화적 흐름과 종교적 기운에 흠뻑 젖어보았습니다.
새벽 예불
산을 알려면 산속에서 자다가 한밤중에 일어나 산의 숨소리를 들어보아야 합니다. 봉암사의 기운을 제대로 느껴보려면 역시 새벽에 일어나 새벽 예불에 참여해 봐야 합니다.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대웅전에 3시에 도착합니다.
보통 대웅전의 석가모니 불상 뒤에는 『법화경』, 『화엄경』 장면의 후불탱화가 있습니다. 봉암사 대웅전은 불상 뒤에 목조 보살 부조상을 조각해 놓아 생동감이 대단합니다. 새벽 3시 예불 참석은 난생처음인데 그것도 봉암사의 새벽 예불입니닷!
스무 명 남짓한 스님들이 들어오고 예불은 3시 30분에 끝납니다. 새벽 예불의 분위기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청정함이 있습니다. 잠시나마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이 자리에 앉아 보려고 봉암사에 오고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저 흉내만 내고 앉아 본 것이지만, 강렬한 현존의 감각을 느꼈습니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주지실 앞의 동방장 입구 계단 위에 캄캄한 어둠이 내려와 있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캄캄한 어둠이 여기에 있군요. 나는 평생 이런 어둠을 평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들여다볼수록 더 깊어지는 어둠 속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적막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어둠을 두려워합니다. 어둠이 두려워서 밤에도 대낮같이 불을 밝히고 흥청망청 살아갑니다. 하지만 삶에서 어둠을 몰아내는 것은 점점 더 어두운 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류영모 선생(1890~1981)은 이렇게 일깨워 줍니다.
어둠이 빛보다 크며, 낮이란 만년을 깜빡거려도 하루살이의 빛이다.(주3)
류영모 선생은 이 세상과의 연결이 아니라 자기 내면과의 연결, 자신 너머와의 연결을 위한 길은 어둠 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어둠을 죽음으로 인식하고 한 줄기 빛을 찾기 위해 어둠을 응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근이영양증환자로 위 경관 영양과 인공호흡기로 살아가는 일본의 시인 이와사키 와타루(1976~ )는 「빛」이라는 시에서 어둠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아무리
미세한 빛일지라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안목을 기르기 위한
어둠(주4)
분명 우리는 어둠 속에서 가장 예민하게 빛을 감지합니다. 마찬가지로 죽음이 눈앞에 있을 때 삶을 절실하게 갈구하는 것입니다. 이와사키는 점적点滴 폴대에 의지해서 살아가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절망 끝에서 한 줄기 빛을 찾기 위해서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둠 가운데 가장 깊은 것은 무명無明의 어둠입니다. 지혜가 없어서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 무명입니다. 무명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 무지입니다. 야보도천(12세기)은 무명에 대해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가 너무나 울림이 커서 많은 사람이 애송하는 게송입니다. 나도 밤에는 이 시를 한 번씩 외우곤 합니다.
깊은 밤 절집에 말없이 앉았으니
적막하고 쓸쓸함은 본래 그런 걸세
무슨 일로 서풍은 숲을 흔들고
찬 기러기는 하늘 끝까지 울며
가는가(주5)
깊은 밤, 산사山寺에 말없이 앉아 있으면 얼마나 적막하고 쓸쓸할까요. 하지만 그 적막하고 쓸쓸함은 고요한 적멸일 뿐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생존을 향한 욕망이 일어나자마자 근심 걱정이 적멸을 흔들어 놓습니다. 이 시는 바로 그러한 근본 무지로 말미암은 어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람’과 ‘기러기’는 아집과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무명은 잠재의식의 암흑이고 카르마의 암흑이라 살아 있는 한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천층千層 만첩萬疊 희양산
아침 6시에 식사하고 봉암사 경내 부도들을 볼 겸 산길을 걸어봅니다. 화장실과 종무소 사이로 난 산길을 올라가면 동암이 나옵니다. 동암의 우측 길로 가면 각종 부도와 탑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봉암사 명예의 전당과 같은 곳입니다.
나는 부도보다는 이 인적 없는 길, 끊임없이 들리는 새소리가 훨씬 더 좋았습니다. 굳이 말한다면 아무 생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언어를 떠나서 고스란히 자연만 느껴지는 무념의 산길이었습니다. 사람이 만들지 않은 아름다운 대자연이야말로 정토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새소리 가득한 산길을 걷다가 내려오니 날씨가 맑아졌습니다. 날씨가 맑아지자 그동안 모습을 감췄던 희양산 봉우리가 자태를 드러냅니다. 천층 만첩으로 된 바위산이 절집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보림당 처마 위로 하얗게 빛나는 희양산 정상(999m)이 보입니다. 산세가 드러나자 봉암사는 한층 더 신성한 기운에 휩싸입니다.
산문을 벗어나자 다시 소리가 들려오고 사람들이 나타나고 자동차가 지나갑니다. 깊은 침묵 속에서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각주>
(주1) 僧肇, 『肇論』, 「涅槃無明論」, “妙智存乎物外 故不知以知之.”
(주2) 서재영, 「봉암사결사의 정신과 퇴옹 성철의 역할」, 『봉암사결사와 현대 한국불교』 (2009).
(주3) 박영호, 『다석 류영모』(두레, 2009).
(주4) 岩崎航, 『点滴ポール 生き抜くという旗印』(ナナロク社, 2013).
(주5) 冶父道川, 「金剛經註」, 莊嚴淨土分 偈頌, 『金剛經五家解』, “山堂靜夜坐無言 寂寂寥寥本自然 何事西風動林野 一聲寒雁淚長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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