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전통과 근대식 교육의 병행과 조선불교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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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 2023 년 5 월 [통권 제121호] / / 작성일23-05-05 12:02 / 조회2,103회 / 댓글0건본문
근대한국의 불교학자들 29 | 우정상
우정상禹貞相(1917∼1966)은 다카하시 도루에 이어 조선시대 불교 연구를 이끈 학자로서 경기대와 동국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는 일본에 유학할 때 조선시대를 획기하는 인물과 불서로서 청허휴정과 『선가귀감』에 주목하고 조선불교 연구의 길에 뛰어들었다. 또한 해방 후 처음 나온 한국불교 통사인 『한국불교사』를 공저로 남겨 한국불교의 전체상을 그렸고, 동시대의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통불교와 호국불교를 한국불교의 특징으로 꼽았다.
신식교육과 전통적 강원교육을 함께 받다
우정상은 1917년 2월 6일 경상남도 사천에서 태어났다. 1933년 사천보통학교를 졸업했고, 1934년에는 통도중학교에 들어간 뒤 1936년 양산 통도사에서 구암龜巖을 은사로 득도했다. 1938년 통도사의 불교전문강원에서 사교과를 수료함과 동시에 통도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상경하여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했다. 1941년에 졸업했는데, 이때는 학교명이 혜화전문학교로 개칭된 뒤였다. 그가 보통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전문강원을 거쳐 중앙불전에 들어간 이력에서 보듯 당시에는 신식교육과 전통적 강원교육이 공존하고 있었다.
우정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1941년부터 해방이 되던 1945년까지 일본 임제종 종립대학인 교토의 임제대학(지금의 하나조노대학)에서 근대불교학의 연구방법론과 선학을 배웠다. 당시 청허휴정의 『선가귀감』이 강의 교재로 쓰이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과 자극을 받아 휴정을 필두로 한 조선불교 연구에 뜻을 두게 되었다고 한다. 귀국한 뒤 1946년에 동국대학 불교학과에 들어가 두 번째 대학 생활을 했고, 1950년에 졸업했다. 이후 한국전쟁이 끝나가던 1953년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1956년에 과정을 마쳤다.
1954년에는 경기대학의 부교수가 되었고, 1960년에는 동국대학교로 옮겨서 1963년 정교수로 승진했다. 이듬해에는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소의 간사가 되었고, 1965년에는 동국대 중앙도서관장에 부임하는 등 교내의 주요 보직을 맡았다. 동국대 불교학과의 후배 교수인 김영태가 쓴 『교양불교』 머리말에 의하면, 우정상은 동국대 교지 《동대시보》(지금의 동대신문)의 보리수란을 처음부터 고정으로 맡아서 10여 년 이상 집필했고, 여기에 실린 글들을 모아 불교 교양서를 내기로 이미 계획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1966년 8월에 50세의 젊은 나이로 그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저서로는 우정상·김영태 공저로 나온 『한국불교사』(1969), 조선시대 불교 관련 논문들을 모아 유고집으로 엮은 『조선전기 불교사상 연구』(1985), 불교 용어와 교리 등을 쉽게 풀어서 쓴 『교양불교』(1987)가 있다.
우정상이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던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한국의 불교학계는 대학 내의 제도적 기반 미비와 인적 자원의 부족이라는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었고, 연구의 양적·질적 수준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더욱이 조선시대 불교는 ‘조선적 전통’이나 ‘지향의 근대’ 어느 쪽에서도 지분을 갖지 못했고 학계의 관심 또한 미약한 분야였다. 오히려 식민지 시기 연구에서 고착된 ‘억압과 쇠퇴’의 도식이 짙게 드리워져 있어서 부정적 자화상이 그대로 반복 재생산되고 있었다. 해방 후 1959년에야 승군과 호국사상, 추사 김정희의 불교관, 다산 정약용의 유불 교류를 다룬 학술논문이 나왔고, 1960년대 전반부터 승역을 중심으로 한 사원경제 연구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에 나온 호국사상과 남·북한산성 의승방번제에 관한 우정상의 연구는 조선불교 연구의 선구적 업적이었다.
한국불교사와 조선불교를 조망하다
한국 불교사의 흐름을 개관하려는 우정상의 노력은 김영태가 공저로 펴낸 『한국불교사』에서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한국불교사』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나온 한국 불교사 개설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김영태는 머리말에서 우정상의 유고 일부와 강의안을 바탕으로 이 책을 펴내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우정상이 한국불교사를 낼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저술에 착수하지 못하다가 동국대에 함께 재직하면서 집필을 시작했다고 회고한다. 우정상이 책의 구성과 전체 체제를 가다듬고 고려와 조선의 원고를 썼으며, 자신이 삼국과 신라를 맡았다고 한다. 그러나 우정상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집필 원고가 없는 부분은 그의 강의 노트를 가져다가 대체했고 책의 통일성을 기하는 작업을 거쳐서 교양 개설서로 책이 나올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한국불교사』의 도입부인 서설에서는 한국불교사와 그 연구의 의의, 한국불교의 특질, 시기 구분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불교는 한국의 철학과 사상, 문화와 종교, 문학 등 여러 영역에서 고유성을 형성해 왔고 한민족의 정신이자 생활로서 희로애락을 함께해 왔다고 하며 그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특히 한국사의 한 부분으로 한국불교사를 정리하고 그 가치를 확인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불교는 민족의 자주와 긍지를 불러일으키며, 한국의 문화이자 민족의 생활이다. 한국불교사 연구는 우리 역사를 올바로 알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여 연구의 의의와 목적을 기술하고 있다.
한국불교의 특질에 대해서는 호국신앙과 현세 이익, 불국토와 현실 정토, 서민의 생활불교를 통해 민족문화를 창조해 왔다고 정리했다. 교학에서도 총화불교, 통불교를 건설하여 불타와 대승의 이상을 실현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조선시대의 경우에도 억불의 분위기 속에서 호국사상을 실천하며 국난 구제에 앞장섰음을 들었다. 구체적으로는 억불정책과 교단의 변화, 왕실의 숭불과 신앙, 문파와 선의 법맥, 조선 후기 불교계의 동향 등을 다루었다. 이처럼 이 책은 한국불교의 상을 다채롭게 그렸고, 이후 연구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우정상은 무엇보다 조선시대 불교 연구의 길을 개척한 선구적 학자였다. 『조선전기 불교사상 연구』는 청허휴정의 생애와 선과 교에 대한 인식, 주저인 『선가귀감』의 간행 유포,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의 활동에 초점을 둔 호국사상, 그리고 남·북한산성 승군의 운용 등에 관한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휴정이 선과 교가 다르지 않다는 선교관을 확립하고 이를 사상적으로 통일함으로써 불교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높이 평하였다. 그러면서 원효 이후 의천, 지눌 등을 거쳐 이어져 내려온 선과 교의 통합적 전개를 완성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선가귀감』의 간행과 유통에 관한 논문에서는 저술의 동기와 내용, 현존 판본을 중심으로 한 간행 문제, 언해본과 번역자, 일본으로의 전래 문제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조선전기 불교사상 연구』의 저자 서문은 우정상이 생전에 기획한 『조선불교사』의 서언을 가져다가 붙인 것으로 1966년 5월에 쓴 글이다. 그는 이 서문에서 교학사상에 대해서는 비교적 간략히 서술하고 미술, 문학 등 특수 분야는 다루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한 원래 구상했던 『조선불교사』의 목차가 왕대별 불교 정책, 종파 통합과 사원경제의 성쇠, 간경과 역경, 호국 활동, 대외교류, 국행 법회, 그리고 외래 종교와의 관계, 사원의 고유한 풍속과 일반사회에 미친 영향 등이었음을 볼 수 있다.
우정상은 조선을 ‘배불정책으로 일관된 법난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정치적 억불은 고려 말부터 유교를 높이면서 일어난 배불론의 결과이며, 당시 불교도들은 의욕을 잃고 특별한 대책이나 반항 없이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에도 불교의 근본 자세는 변하지 않았고 한국불교의 특징이 정립되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한 가지 더 주목되는 것은 조선시대 불교사를 임진왜란이 일어난 선조대를 분기점으로 하여 전기와 후기로 나누었고 그 근거로 통일불교와 호국불교를 든 점이다. 이러한 시기 구분은 선조대 청허휴정의 활동을 통해 불교사상과 문화의 복합적 전통이 계승되고 교단의 존립 기반이 구축된 점에 착안한 것이었다. 특히 선과 교, 염불을 함께 닦는 사상과 수행의 체계화와 통일성을 휴정의 업적으로 들었고, 또 의승군을 비롯한 호국불교의 전통을 한국불교의 특징으로 내세운 것은 이후 연구에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한국불교사 전체를 통관하는 그의 역사 인식과 조선시대 불교사를 새롭게 바라본 그의 안목은 높은 학술사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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