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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스스로 믿을 뿐 밖에서 찾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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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3 년 4 월 [통권 제120호]  /     /  작성일23-04-05 12:02  /   조회5,21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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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28 | 임제종 ③  

 

임제종을 창립한 의현은 무위진인無位眞人과 무의도인無依道人을 불성으로 설정하고, 그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인혹人惑을 받지 않음’을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설정하였다. 수행 

자가 ‘인혹’을 받는 까닭에 대해서 임제는 “병은 스스로 믿지 못하는 곳에 있음”으로 귀결함을 앞에서 논했다. 그렇다면 ‘스스로 믿음’, 즉 ‘자신自信’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하고 있는가?

 


스스로 믿어라!

 

『임제어록』에는 ‘스스로 믿음[自信]’과 관련된 문구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먼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볼 수 있다.

 

사진 1. 임제의현 선사.

 

“고인古人이 말하기를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고 하였다. 대덕大德들이여! 어떤 것을 찾는가? 현재 눈앞에서 법을 듣는 무의도인無依道人은 뚜렷하게 분명하며, 스스로 믿을 뿐 밖에서 찾지 말라 일찍이 부족한 적이 없었다. 너희가 만약 조사와 부처[祖佛]와 차별이 없음을 얻고자 한다면 다만 이렇게 보고, 의심하여 미혹하지 말고, 너희들의 마음과 마음에 다름이 없다면 살아있는 조사[活祖]라고 칭한다. 마음에 만약 다름이 있다면 바로 성상性相에 차별이 있지만 마음에 다름이 없는 까닭에 성상에 차별이 없다.”(주1)

 

여기에서 말하는 고인은 당연히 마조馬祖를 의미한다. 마조가 설한 평상심시도는 절대로 무상無常의 변역법變易法이 지배하는 일상의 마음이 아니며 돈오頓悟한 상태에서의 이른바 평상平常의 마음임을 앞에서 언급했다. 이로부터 의현이 설하는 무의도인도 역시 이 평상심과 연계하여 해석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마음에 다름이 있는 까닭에 ‘성상에 차별이 있음’이라는 구절은 명확하게 돈오를 전제한 것이라고 하겠다. 돈오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마음에 이견異見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당연히 ‘성상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심하여 미혹하지 말라.”는 구절로부터 의현은 무엇보다도 믿음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그 믿음은 바로 학인들에게 돈오할 수 있음을 대상으로 한다고 하겠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네가 만약 스스로 믿지 못하면 곧 망망한 대지에서 일체의 경계를 돌아서 바뀌게[回換] 되며, 다른 모든 경계에 회환되어 버리기 때문에 자유를 얻지 못하게된다.”(주2)라는 구절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체의 경계에 회환된다는 것은 바로 돈오에 이르지 못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自信은 두 가지의 함의를 갖는데, 하나는 아직 돈오에 이르지 못했다면 반드시 돈오에 이를 것이라고 확신하라는 의미이고, 돈오에 이르렀다면 더 의심하지 말고 굳게 믿으라는 것이다.

 

이러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임제어록』의 도처에서 다음과 같이 설해지고 있다.

 

“지금 도를 배우는 너희들은 또한 스스로 믿을 뿐 밖으로 향하여 찾지 말라[莫向外覓]. 모두 다른 한가한 진경塵境에서 결코 삿됨과 바름을 변별하지 말라.”(주3)

 

“너희들이 조사와 부처를 알고 싶은가? 다만 그대들이 앞에서 법을 듣고 있는 이것일 뿐이다. 학인이 믿지 못하고 밖을 향하여 치달아 구한다. 설령 구하여 얻었다 하더라도 모두 문자상文字相이며 끝내 살아 있는 조사의 뜻을 얻지 못할 것이다.”(주4)

 

사진 2. 송판宋板 『임제어록』.

 

이로부터 의현은 스스로 믿음을 지극히 강조함을 볼 수 있으며, 이를 결코 밖에서 찾지 말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는 『육조단경』의 “부처는 자성이 지은 것이니 자신 밖에서 구하지 말라.”(주5), “보리菩提는 단지 마음에서 찾을 것인데 어찌 밖에서 오묘함을 구하는가?”(주6)라는 구절로부터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은 송대 육구연陸九淵의 심학心學에서 강조하는 ‘도막외구道莫外求’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하겠다.

 

대장부의 기개

 

한편 의현은 스스로 믿음을 바로 대장부大丈夫의 기개氣槪와 연계하여 다음과 같이 설한다.

 

“대장부가 장부의 기개氣槪를 갖지 않는다면 자기 집안에 있는 물건을 믿지 않고서 단지 밖에서 찾게 된다. 다른 고인古人의 한가로운 명구名句 위에서 음陰에 의지하여 양陽을 넓힌다면 특달特達할 수 없다. 경계를 만나면 바로 반연攀緣하고, 속진俗塵을 만나도 바로 집착하고, 부딪치는 곳마다 의혹이 일어나 스스로 올바른 기준이 없게 되는 것이다.”(주7)

 

“대장부라면 오늘 본래 아무 일이 없음[本來無事]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만 너희들이 믿음이 부족하여 염념念念에 치달려 구하면서 (자기의)머리를 버리고 (또 다른) 머리를 찾으며 스스로 쉬지 못할 것이다.”(주8)

 

“대장부가 다시 무엇을 의심하는가? 눈앞에서 작용하는 이가 다시 또 누구인가? 잡히는 대로 쓰며 명자名字에 집착하지 않음을 현지玄旨라고 한다. 이렇게 볼 수 있다면 싫어할 것이 없는 법이다.”(주9)

 

이러한 문구로부터 대장부의 기개를 상당히 중요시하고 있으며, 또한 믿음과 연계하여 논하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대에 임제종을 평하는 ‘임장군臨將軍’의 호칭은 바로 이러한 대장부의 기개로부터 나왔다고 하겠다. 이처럼 『임제어록』에서는 여러 곳에서 ‘대장부’의 호칭을 많이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무수무증無修無證

 

조사선의 출발을 알리는 『육조단경』이나 마조와 백장, 그리고 의현의 스승인 황벽에 이르기까지 모두 무수무증의 수증론修證論을 제창하고 있음은 앞에서 언급하였다. 따라서 이를 계승한 의현도 명확하게 무수무증을 제창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산승의 견처見處를 요약한다면 부처도 중생도 없고 고금도 없다. 얻은 자는 바로 얻어 시절을 거치지 않는다. 닦음도 증득도 없고[無修無證], 득실得失도 없어 모든 때 가운데 다시 다른 법이 없다.”(주10)

 

“제방諸方에서는 ‘도道가 있어 닦을 수 있고, 법이 있어 증득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네가 어떤 법을 증득하고 어떤 도를 닦는다고 말하는가? 네가 지금 사용하는 곳은 어떠한 점이 부족한가? 어느 곳을 보수補修할 것인가?”(주11)

 

이로부터 명확하게 의현도 무수무증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사실상 이러한 입장은 『임제어록』의 여러 곳에 언급되고 있는데 돈오의 견지에서 본래현성을 인정한다면 당연한 사상적 귀결이라 하겠다.

 

가불매조呵佛罵祖의 선풍

 

의현의 선풍 가운데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하는 이른바 ‘가불매조’의 경향이 보인다. 『임제어록』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십지보살十地菩薩의 만심滿心은 마치 객작아客作兒[천한 하인을 의미하며, 욕할 때 쓰는 용어]와 같고, 등묘等妙 이각二覺의 보살들은 칼과 고랑을 찬 작자들이며, 나한羅漢, 벽지辟支는 뒷간의 똥과 같고, 보리菩提와 열반涅槃은 나무에 매달린 풍뎅이와 같다.”(주12)

 

“대선지식이라야 비로소 감히 부처를 헐뜯고 조사를 헐뜯으며, 하를 시비하고 삼장三藏의 경교經敎를 배척하며, 여러 어린애를 꾸짖을 수 있으며, 순역順逆 가운데 인人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12년 동안 업성業性을 찾았지만 겨자씨와 같이 작은 것도 찾을 수 없었다.”(주13)

 

사진 3. 조박초趙樸初가 쓴 임제사 현판. 

 

이로부터 의현은 십지보살로부터 등각과 묘각 보살, 사성제四聖諦를 증득한 나한, 십이연기十二緣起를 증득한 벽지불 등 이른바 불교에서 추앙하는 성인의 반열에 든 이들을 모두 욕하고 비난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선풍을 ‘가불매조’라고 하는데, 이는 앞에서 논한 회창법난會昌法難 이후 조사선의 노장화老莊化와 깊은 관련이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위진인이나 무의도인의 입장에서 불법조차도 인혹으로 보는 사상적 견지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논리라 하겠다. 실제로 『임제어록』에는 무위진인을 ‘마른 똥막대[幹屎橛]’로 표현하는 등 다양하게 부처를 욕하고 조사를 꾸짖는 구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상으로 의현의 선사상에서 스스로 믿음과 대장부의 기개, 그리고 무수무증과 가불매조의 선풍에 대하여 간략하게 고찰하였다. 이어서 의현의 선사상을 종합했다고 볼 수 있는 ‘임제삼구’와 ‘방할제시’, ‘사료간’ 등의 제접법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각주>

(주1) [唐]慧然集, 『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大正藏47, 499c), “古人云: 平常心是道. 大德! 覓什麽物? 現今現今目前聽法無依道人, 歷歷地分明, 未曾欠少. 爾若欲得與祖佛不別, 但如是見, 不用疑誤, 爾心心不異, 名之活祖. 心若有異, 則性相別; 心不異故, 卽性相不別.”

(주2) 앞의 책(大正藏47, 497b), “爾若自信不及, 卽便忙忙地徇一切境轉, 被他萬境回換, 不得自由.”

(주3) 앞의 책(大正藏47, 499a), “如今學道人且要自信, 莫向外覓. 總上他閑塵境, 都不辨邪正.”

(주4) 앞의 책(大正藏47, 497b), “爾欲得識祖佛麽? 秖爾面前聽法底. 是學人信不及, 便向外馳求. 設求得者, 皆是文字勝相, 終不得他活祖意.”

(주5)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41b), “佛是自性作, 莫向身外求.”

(주6)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52c), “菩提只向心覓, 何勞向外求玄?”

(주7) 앞의 책(大正藏47, 502c), “大丈夫漢不作丈夫氣息, 自家屋裏物不肯信, 秖麽向外覓. 上他古人閑名句, 倚陰博陽, 不能特達, 逢境便緣, 逢塵便執, 觸處惑起, 自無准定.”

(주8) [唐]慧然集, 『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大正藏47, 498b), “大丈夫兒, 今日方知本來無事. 祇爲儞信不及, 念念馳求, 捨頭覓頭, 自不能歇.”

(주9) 앞의 책(大正藏47, 500c), “大丈夫漢, 更疑箇什麽? 目前用處, 更是阿誰? 把得便用, 莫著名字, 號爲玄旨. 與麽見得, 勿嫌底法.”

(주10) 앞의 책(大正藏47, 498b), “約山僧見處, 無佛無衆生, 無古無今. 得者便得, 不歷時節. 無修無證, 無得無失, 一切時中, 更無別法.”

(주11) 앞의 책(大正藏47, 499c), “諸方說有道可修, 有法可證. 你說證何法, 修何道? 你今用處, 欠少什麽物? 修補何處?”

(주12) 앞의 책(大正藏47, 497c), “十地滿心猶如客作兒, 等妙二覺擔伽鎖漢, 羅漢辟支, 猶如厠穢, 菩提涅槃如繫蠦橛.”

(주13) 앞의 책(大正藏47, 499b) “大善知識, 始敢毁佛毁祖, 是非天下, 排斥三藏敎, 罵辱諸小兒, 向逆順中覓人. 所以我於十二年中求一箇業性, 如芥子許不可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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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 저서로 『중국불교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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