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녹색환경운동의 메카가 된 라다크 레(L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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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3 년 2 월 [통권 제118호] / / 작성일23-02-03 14:57 / 조회3,050회 / 댓글0건본문
힌두어권에서의 보편적인 인사말은 ‘나마스떼’이지만, 티베트권에서는 ‘따시델레’를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라다키’라고 부르는 라다크 사람들은 다른 인사말을 건넨다.
라다키의 인사말 줄레(Jullay)!
해발 3,250m의 고산지대에 자리 잡은 라다크는 ‘리틀 티베트’ 혹은 ‘하늘나라의 정거장’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곳이다. 주민의 대부분은 몽골로이드 혈통이기에 우리 한민족과 생김새가 비슷하고 언어도 유사한 것들이 많아서 흥미롭다. 인사법은 우리식의 ‘합장예배’와 같아서 흥미롭다.
그들은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을 향해 서서 두 손을 가슴 위에 합쳐서 허리를 조금 숙여 인사를 하며 입으로는 “줄레줄레”라고 한다. 이런 모양새는 대체로 비슷하지만, 그런 인사를 받는 이방인들의 마음은 이 인사 한마디로 인해서 금세 따듯해진다. 아마도 손님을 따듯하게 대하는 라다키들의 진심이 담겨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이방인들도 라다크에 머무는 동안에는 덩달아 “줄레줄레”를 입에 달고 다니기 마련이다.
에코 분야의 오래된 산실, 라다크 에콜로지 센터
힘겹게 라다크(Ladakh)의 레(Leh)에 도착한 다음 날은 그간의 강행군의 여파인지 약간의 두통증세가 나타났다. 하루 종일 쉬면서 그간 밀린 빨래와 일기를 정리하면서 꼬박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부터 달려간 곳이 있었다.
바로 ‘라다크 프로젝트’의 본부가 있는 ‘라다크 에콜로지 그룹(LEDeG)’의 사무실로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Ancient Futures: Learning from Ladakh)』(1992)라는 책의 고향집이다. 현재 3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녹생평론사를 통해 동명으로 번역되어 현재까지 스테디셀러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 바로 그 책의 산실이자 고향이다.
이 책의 저자 헬레나 호지(Helena Norberg Hodge)는 스웨덴의 인류언어학자로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1974년 라다크를 처음 방문했다. 그곳에서 자연에 순응해 살아가는 라다크 사람들의 문화에 매료되어 아예 그곳에 정착하였다. 그리고는 서구문명의 유입으로 인한 라다크의 전통적인 생활습관과 가치관이 붕괴되어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러다 마침내 ‘레’를 거점으로 이른바 녹색환경운동을 일으켜서 ‘라다크생태연구센타’를 설립하여 현재까지 지속가능한, 그리고 라다크에 어울리는 환경운동을 펼치고 있다.
더 요약하자면 호지 여사는 세계적으로 붐이 일어나고 있는 이른바 ‘녹색환경운동’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에 국제적 인물들(달라이 라마 성하, 영국의 찰스 왕세자, 인도의 인디라 간디 총리)로부터 관심과 지원을 받으며 1986년에는 대안적 노벨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권위 있는 ‘바른 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을 받기도 하였다.
나는 이 책의 저자인 헬레나 여사와는 오랜 인연이 있기에 보도를 통해 그녀가 요즘은 여기 레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사무실이라도 가서 그녀 대신 재단을 이끌어 간다는 살라치왕(Salachiwang)과 에시톤둡(Yeshtondup)이라도 만나서 조그만 후원금이라도 전달하려고 옛 기억을 되살려 골목길을 찾아갔다. 역시 국제적 명성에 걸맞게 사무실의 건물은 증축되었으나 거부감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고 현재의 스텝들도 먼 해동의 방문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모든 곳에 붙어 있는 환경포스터
나는 레 시내를 서성이다가 우연히 조그만 생태적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일본인을 만났다. 그는 내게 아주 요긴한 인도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릭젠 노르부 젠(Rigzen Norboo Zen)이란 이름의 티베트계 인도인이었다. 그는 환경 분야에 대한 굳은 사명감이 있는 실천가였다.
그래서 우리는 며칠 동안 몇 차례 만나며 녹색환경운동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에는 몇 명의 이론가나 실천가들에 의한 환경운동으로는 현대문명의 무차별적 공해로부터 지구촌을 되살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절망적인 결론에 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지구촌 곳곳에서 묵묵히 보람 있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을 수는 있었다.
나는 레 시가지 곳곳에 붙어 있는 예쁘고 화려한 색감으로 디자인된 환경보호포스터에 관심을 두고 여러 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역시 녹색환경도시의 선두주자답게 아이디어가 참신했기 때문이었다. 그 내용을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은데, 라다크 행정당국도 역시 쓰레기 무단소각으로 인한 공기오염에 가장 엄중한 벌금을 부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쓰레기 투척: 1,000루피 벌금
2. 건설자제 폐기: 20,000루피 벌금
3. 단순 쓰레기 투기: 금지
4. 쓰레기 소각: 25,000루피 벌금
5. 침 뱉기: 500루피 벌금
6. 공개된 장소에서 세차: 500루피 벌금
7. 공개된 청소: 1,000루피 벌금
불교적 녹색환경운동의 현재와 미래
과거 대부분의 종교들은 신앙의 문제뿐만 아니라 기타 사회적 당면문제에 대해서도 뭇 중생들에게 갈 길을 제시하고 나아가 앞장섰던 태도를 견지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대부분의 종교들, 특히 대승불교라는 모토를 내세우고 있는 한국불교의 경우, 시대적 화두를 놓아버림으로써 오히려 세속에 의해 끌려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하고 있다.
요즘 SNS에는 이른바 ‘종교무용론’ 또는 ‘종교의 역기능’을 주장하는 담론이 많이 떠돌고 있다. 인류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그 파급력은 적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에 대한 담론의 본격화나 실제로 탈종교화의 추세는 가속화되리라 예견되고 있다.
그런 불교계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후한 점수를 받을 만한 일이 있다면 녹색환경문제에 대하여 불교계의 적극적인 활동을 꼽을 수 있다. 비록 종단 차원의 큰 행보가 아니라 일부 의식 있는 인사들과 몇몇 단체에서 벌이는 운동이지만 그것은 대단히 바람직하며 박수받기에 충분하다.
녹색환경운동은 1992년 6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렸던 ‘지구환경회의(UNCED)’ 이후 환경문제가 범지구적으로 나타나는 총체적 위기라는 의식이 확산되면서 국내에서도 1995년에 6월 ‘환경의 날’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주된 동력이 불교계였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주1)
어느 환경론자의 정의대로 “불살생을 오계의 으뜸으로 하면서 불교의 사상, 전통과 청규, 그리고 모든 수행은 자연을 경외하며 생명을 모시고 살려온 역사였다. 불교의 일상적인 생명살림의 가르침과 전통이 오늘날 위기 시대에 각별히 사회운동에서 주목받는 이유도 그것이다.”(주2)
내가 라다크에서 힘들게 가져온 에코백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우리 모두 더 늦기 전에 곱씹어 보아야 할 화두이리라.
“오직 우리 인간만이 자연이 받아들일 수 없는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Only we humans make waste that nature can’t digest)”
<각주>
(주1) <정토회 에코붓다>, <공해추방불교인모임>, <두레생태기행>, <사찰생태연구소>, <맑고 향기롭게>,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불교환경연대>, <조계종 환경위원회>,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 <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 <세상과 함께> 등등.
(주2) 유정길, 「한국불교 환경운동의 역사와 미래」, 계간 『불교평론』 82호(202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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