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빛의 말씀]
우주를 삼키는 불길이 닥치면 자성도 무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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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2 년 12 월 [통권 제116호] / / 작성일22-12-05 14:36 / 조회3,381회 / 댓글0건본문
본칙
대수진大隨眞 스님(주1)에게 어떤 중이 물었다.
“겁화劫火가 크게 일어나서 대천세계가 다 무너지니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무너집니까, 무너지지 않습니까?”
“무너지느니라.”
“그러면 저를 따라가겠군요.”
“따라가느니라.”
또 수산주修山主 스님(주2)에게 앞 질문과 같이 물으니 “무너지지 않느니라.”고 대답했다.
“어째서 무너지지 않습니까?”
“대천세계와 같기 때문이니라.”(주3)
겁화가 우주를 불태울 때 자성은 어떻게 되나?
겁화劫火는 삼천대천세계가 다 파괴되어 공겁으로 돌아갈 때 일어나 온 우주를 다 태워버린다는 거대한 불길입니다. ‘이것[這箇]’이란 법성法性·본성本性·진여자성眞如自性을 말한 것입니다. 겁화가 천 번 만 번 일어나 삼천대천세계가 천 번 만 번 무너진들 진여자성이야 파괴될 일 있습니까?
그런데 대수법진 선사는 겁화가 일어나 삼천대천세계가 다 무너질 때 ‘이것’도 같이 무너진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 질문한 그 스님이 긍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 없다.” 그 말입니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을 천만 번 한들 진여자성 자체는 그럴 일이 절대로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같이 무너진다.”고 하니 긍정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다시 투자스님이란 분을 찾아갔습니다. 찾아가 “제가 대수스님을 찾아가 겁화가 크게 일어나 대천세계가 다 무너질 때 이것도 무너집니까 하고 물으니 대수스님이 무너진다고 대답하니 대수스님은 순 외도입니다. 삼천대천세계가 천만 번 무너진들 법신이야 무슨 변동이 있겠습니까?” 하고 대수스님을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투자스님이 대수스님이 머물고 계신 곳을 향해 절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대수산에 고불이 출현하신 줄을 내가 몰랐구나. 너는 얼른 가서 참회하고 다시 법을 청하거라.”
투자스님은 당대에 이름을 드날리던 유명한 대종사인데 거짓말하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듣고 그 스님이 다시 찾아갔으나 대수스님은 이미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그래, 다시 투자스님에게 물어야겠다 싶어 투자산으로 돌아왔으나 투자스님 역시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고 합니다.
그 뒤에 수산주라는 스님에게 누가 찾아와 이와 똑같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수산주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전에 대수스님과 투자스님 같은 고명한 어른들이 분명 “무너진다.”고 하셨는데 수산주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니 둘 중 하나는 틀린 것 아닙니까? 그래 “왜 무너지지 않습니까?” 하고 재차 물었습니다. 그러자 “대천세계와 같기 때문이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대천세계와 같다면 겁화가 타올라 대천세계가 무너질 때 그것도 무너져야 되는데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니 이 말도 모순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기에 아주 깊은 뜻이 있습니다. 말만 좇아서는 누구도 그 뜻을 모릅니다. 분명히 깨쳐야만 합니다. 그럼 이 법문의 뜻에 대해 내 한마디 하겠습니다.
착어
물은 시냇가를 향해 푸른빛을 흘러내고[水向溪邊流出綠]
바람은 꽃 속에서 향기를 묻혀 오네[風從花裏過來香].
이 뜻을 바로 알면 대수스님이 “무너진다.”고 하고 수산주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 그 뜻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두 분이 정반대로 하신 말씀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 법문에 대해 대각스님이 게송을 지은 것이 있습니다.
송
대각연 선사가 송하였다.
저를 따라가야 함에 문득 저를 따라감이여[要隨他去便隨他]
일천 성인이 머리를 맞대어도 어떻게 할 수 없다[千聖攢頭不奈何].
겁화가 크게 일어나 한 물건도 없으니[劫火洞然無一物]
간밤에 차가운 달이 사바를 비추어 휘영청 밝구나[夜來寒月炤娑婆].
우주가 불타 사라져도 차가운 달은 훤히 밝다
왜 대천세계가 무너질 때 무너지는 대로 따라가는데 천 불 만 보살도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말했을까요? 보통의 정식情識으로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삼천대천세계가 전부 타버려 한 물건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는데 간밤에 차가운 달이 사바세계를 훤히 비춘다고 하니 이건 또 무슨 말입니까? 삼천대천세계가 다 타고 없어져 한 물건도 없는데 사바세계에 달이 비칠 리가 어디 있습니까? 이 뜻을 바로 알아야만 대수와 수산주 두 분 스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내 또 한마디 붙이겠습니다.
착어
영조靈鳥는 싹트지 않는 가지 위에서 꿈꾸고[靈鳥不萌枝上夢]
각화覺花는 그림자 없는 나무 위의 봄이로세[覺花無影樹頭春]
싹트지 않는 나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신령스러운 새는 싹트지 않는 나무 위에서만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또 그림자 없는 나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림자 없는 나무에 봄이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싹트지 않는 가지’와 ‘그림자 없는 나무’,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만 영조靈鳥도 알 수 있고, 각화覺花도 알 수 있고, 대각스님의 게송도 알 수 있습니다.
염
도오진道吾眞 선사(주4)가 이 법문을 들어 말하였다.
“이 두 노스님이 한 사람은 무너진다 하고[道壞], 한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다 하였다[道不壞]. 말해 보라, 무너지는 것이 옳은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옳은가? 알겠는가, 무너짐과 무너지지 않음이 다 안팎이 아니니, 털끝만큼도 간격이 없어서 항상 얼굴을 마주 대한다.”
도오진 선사는 이 법문을 어떻게 평했는가?
대수와 수산주 두 분 다 천하의 대 선지식이니 절대 거짓말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 말씀이 잘못될 리가 없단 말입니다. 그런데 왜 그 말이 서로 상반될까요?
“무너진다고 하든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든지 이것이 실지에 있어서 안팎이 아니고, 털끝만큼의 간격도 없어서 항상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더라.”고 도오스님은 평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도오스님의 평이 의리義理에 흐른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절대 말을 좇아 이치를 따져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대수스님과 수산주의 법문을 깨쳐야만 도오스님의 법문도 바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도오스님의 평에 내 또 한마디 붙이겠습니다.
착어
만약 한 자리에서 자지 않으면[若不同床睡]
어찌 이불에 구멍 났음을 알리오[焉知被底穿]
한 이불 밑에서 같이 자 본 사람만이 그 이불 속에 난 구멍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이불 밑에서 자 보지 않았다면 그 속에 구멍 난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나의 이 말이 앞의 법문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도오스님의 법문 전체를 거두어 표현한 말입니다. 그 뒤 백운병 선사는 대수와 수산주의 법문을 어떻게 평했는가?
염
백운병 선사가 염하였다.
“일천 성인의 영기靈機와 많은 중생의 성명性命이 무너질 ‘괴壞’자를 벗어나지 못하니, 말을 따라 알음알이를 내어 정식情識의 소굴에 들어가면 끝내 어떻게 할 수 없으리니, 알겠는가?”
학은 높은 하늘에서 더 날아오르기 어렵고[鶴有九臯難翥翼]
말은 천리 길에 부질없이 바람을 쫓지 않는다[馬無千里謾追風]”
일체중생의 근본자성, 무너질 ‘괴壞’ 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영기靈機는 대기대용大機大用을, 성명性命은 근본자성根本自性을 말합니다.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의 대기대용과 일체중생의 근본자성이 이 무너질 ‘괴壞’ 자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말 밖의 격외현지格外玄旨 언외현지言外玄旨이니, 말을 따라 쓸데없는 알음알이를 내어 정식情識의 소굴에 들어가면 끝내 모르고 맙니다. “무너진다.”고 하면 무너지는 곳으로 따라가고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면 무너지지 않는 곳으로 따라가서는 이 뜻을 절대로 모르고 맙니다. 그러니 오직 깨치는 방법 이외에는 이를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리고선 “실지에 있어서 크고 깊은 못 속에서는 나래를 들기 어렵고, 말이 아무리 잘 달린다고 해도 바람을 따라잡는 그런 말은 없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이 대수스님과 수산주가 “무너진다.”,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신 법문의 뜻을 분명히 드러낸 말씀입니다. 그럼 백운스님의 법문에 내 또 한마디 붙이겠습니다.
착어
깊은 아비지옥에서 백호광을 놓으니[阿鼻深獄放毫光]
고통 받는 중생들이 금대金臺에 앉는구나[受苦含靈坐金臺]
저 무간지옥은 죄 많은 중생들이 죗값을 치루는 곳인데, 어떻게 그곳에서 방광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백호광을 놓는다고 했습니다. 또 그러자 고통 받던 일체 그 지옥중생들이 다 부처님이나 앉는 금대에 올라앉더라고 했습니다.
결어
대중들이여, 두 개의 칠통漆桶이 눈이 멀어서 무너진다 안 무너진다 하여 마을의 남녀를 어지럽혀 지옥에 들어가기 화살같이 하니 알겠는가?
청룡도를 높이 들어 몸을 두 동강내니[高提靑龍分兩身]
공자와 도척이 삼대三臺에서 춤춘다[孔丘盜坧舞三臺]
(크게 할을 한 번 하고 내려오시다.)
대중 여러분, “무너진다.”고 한 법진스님이나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 수산주나 아무것도 모르는 멍텅구리라 하겠습니다. 새까만 칠통漆桶 같은 두 멍텅구리가 눈이 멀어서 “무너진다.”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여 스님들뿐 아니라 세속의 온갖 남녀들까지 온통 어지럽혔습니다. 그러니 일체중생을 미혹케 한 죄로 그들은 화살처럼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럼, 필경 이것이 무슨 도리입니까? 알겠습니까?
청룡도를 높이 들어 몸을 두 동강 내니
공자와 도척이 삼대三臺에서 춤춘다.
억!
기유년(1969년) 하안거 해제일, 해인사 해인총림 대적광전
- 성철스님의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2020)에서 발췌
각주>
(주1) 대수법진大隨法眞(824∼919). 장경대안長慶大安의 법제자로 남악南岳 스님의 4세손. 『대수개산신조선사어록大隨開山神照禪師語錄』 1권이 있다.
(주2) 수산소수修山紹修. 나한계침羅漢桂琛의 법제자로 청원靑原 스님의 8세손. 수산주修山主로 알려져 있다.
(주3) 『선문염송』 제846칙(한국불교전서5, 617쪽).
(주4) 도오오진道吾悟眞. 송宋대 임제종 스님으로 석상초원石霜楚圓의 법제자. 남악南岳 스님의 11세손. 『담주도오선사어요潭州道吾禪師語要』 1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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