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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로 엮는 현대불교사]
한글대장경 완역이 갖는 역경사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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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순  /  2022 년 12 월 [통권 제116호]  /     /  작성일22-12-05 13:13  /   조회2,68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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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로 엮는 현대불교사 4 | 봉선사 조실 월운스님 ④

  

▶ 역경에 소요되는 예산에 대한 화주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게 여러 가지 형태가 있어요. 역경원장인 나를 법사로 초청하기도 하고 또 어디 큰 법회가 있다고 하면 그 법회 끝에 내가 얘기를 좀 할 수 있게 시간을 좀 달라고 하지요. 그 법회에서 한문 불경을 번역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지요. 역경원장이라는 소임을 맡겨놓으니 이게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돼 버려요. 그렇지만 역경이라는 명분은 상당히 크잖아요. 그리고 그 시주금을 모두 역경원으로 보내니까요.

 

불경 번역을 위한 예산 조성

 

남들이 볼 때 미쳤다고 했어요. 병원으로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내가 열심히 했어요. 그랬더니 상당히 많은 돈이 걷혔어요. 말하자면, 역경을 하기 위해 동대 측에 돈을 보내달라고 손 벌리는 것도 많은데, 그걸 요청하지 않고 역경원이 대부분 해결했어요. 정부에서 보조금을 타오는데도 그게 상당한 돈이 들어요. 예를 들면 정부에서 3억 원을 지원해 주지만 그 돈을 그냥 주는 것이 아니고 유형이 있어요. 3억을 백 퍼센트로 주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실체가 살아있는 단체이기 때문에 우리 측에서 5분의 1을 대야 돼요.  

 

사진 1. 역경원후원회 삼장법회 북한산 산행. 

 

사업비 총금액이 25억 원이라면 5억 원은 우리가 충당하고 나머지 20억은 정부에서 댑니다. 그래서 25억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서 그 금액을 국가가 직접 관리해요. 그러니까 우리 돈도 국가에다 맡기고 쓰는 것이지요. 그런데 동대에서 그것을 만들 돈이 나오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역경원 후원회인 삼장법회에서 만드는 돈이 컸었죠. 사실은 그 돈을 동대에서 내야 하는 거예요. 그것을 우리가 내주면 그 경비 쓰면서 월급도 학교에서 줬지요. 그렇게 바짝 죄어 가며 하다 보니까 1999년이 왔지요.

 

▶ 한글대장경 완역대법회를 여셨는데 그 배경은 무엇입니까? 

 

사진 2. 동국역경원 개원 37주년 기념법회 및 회향법회 준비모임. 

 

중점적으로 번역을 다 하지 못한 것들, 그것을 번역하다 보니 2001년도가 되었어요. 이제 종착역이 보인단 말이지요. 역경원 정기후원회원들도 모두 들뜨고 좋아했어요.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잘 회향을 해야겠더라구요. 그래서 동국대학교 총장을 한번 만났어요. 그때 총장이 송석구 교수였는데 참으로 이해가 깊은 분이에요. 만나서 “한글대장경 번역의 끝이 보이는데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어요. 1964년도 역경을 시작할 때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되어 떠들었어요. 그때 봤던 지식인들이 남아 있을 수가 있는데 조용히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총장님께 “그 분들이 보더라도 불교계에서 대장경 번역을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끝났다는 소리를 못 들었을 겁니다. 사실 스님들도 무엇을 시작하면 끝을 내는구나, 그걸 우리가 한번 보여줘야 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장충체육관에서 한글대장경완역법회를 개최한 배경

 

내가 그 얘기를 어떻게 했냐면 “힘이 들더라도 장충체육관을 빌려서 와당탕 한번 하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총장님이 “무슨 돈으로 그렇게 큰 행사를 하려고 그럽니까?”라고 그래요. 그래서 나는 “지금 학교에서 최소한 그냥 봐 주셔도 되고, 안 봐주셔도 우리가 알아 할테니 그저 동국대학교에서 하는 행사로 총장님이 안아만 주시면 봉행위원회를 짜서 갖다 드리겠습니다. 총장님이 그 위원들을 지배하시면 됩니다.”라고 했어요.  

 

사진 3. 제14대 동국대학교 총장 송석구 총장. 

 

총장님과 그렇게 의논하고 나왔어요. 그 회향법회가 왜 필요하냐면 다른 뜻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불교단체도나 조계종은 유시무종有始無終이 아니라 유시유종有始有終이 되어야 합니다. 유시무종이라는 얘기는 좋지 않아요. 세속에서도 ‘세간광여치世間狂與痴 유시다무종有始多無終’이라고 합니다. ‘세간에 미친놈과 어리석은 놈들은 시작만 해 놓고 끝을 내지 않는다,’ 그런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 종단은 유시유종, 비록 시간이 많이 갔을지언정 끝은 낸다는 것이지요. 내 생각에는 이것을 돌아가신 어른들께 고하고 싶은 거였습니다. 그래서 조계종 총무원에 가서 역경원 법회의 당위성을 얘기했지요. 그렇게 해서 봉행위원회가 짜여진 것입니다. 

 

사진 4. 장충체육관 한글대장경완역대법회(2001년 9월 5일). 

 

봉행위원들을 참석하라고 했는데, 그때 생각을 잘못했어요. 장충체육관에서 법회를 하지 말고 잠실 야외 경기장에서 하자고 그랬어요. 그런데 모두들 간이 작아서 거기를 안 가겠다고 해요. 하지만 정작 장충체육관 본 행사 때 참석한 신도님들 중 3분의 1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어요. 그렇게 행사를 마쳤는데,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고려대장경> 번역이 완전히 끝난 것으로 알아요. 그래서 그걸 뭐라고 하냐면 ‘한글대장경완역법회’라고 그랬거든요. 완간이 아니예요. 완간이라고 하면 번역을 다하고 책 출판을 다 마치면 완간인데, 완역이란 ‘번역이 끝나고 간행을 못했다’는 것이지요. 왜 그런가 하면 번역이란 참 지루한 일이거든요.

 

역경원장 일방적 해임과 그 아쉬움

 

내가 역경원장을 했지만 우리 종단 일이라는 것은 공공사업입니다. 한 사람이 오래 가는 게 맞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역경원장을 내놔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역경원장을 너무 오래하면 말들은 안 해도 뒤에 나보다 더 잘 할 사람이 나의 흠을 잡고 달려들 게 아니겠어요? 그러면 이 좋은 불사가 깨지니까 여법하게 회향법회를 하고 역경원장직을 내놔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회향했어요. 그런데 내가 사표를 내기도 전에 동국대에서 역경원장을 그만두라고 그래요. 거기 동대 재단 안에 내 마음을 읽는 귀신이 있는지 신기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잘 됐다고 생각했지요. 다만 아직도 해야 될 일이 많이 남아 있었어요. 뭐가 남았느냐. 그동안 번역을 하고 원고를 다시 심사해서 완전판을 만드는 거예요. 

 

사진 5. 역경원장(월운스님) 일방해임 진상조사 발기인대회. 

 

▶ 역경원장 해임되고 나서 아쉬움이 컸을 것 같습니다.

 

윤전기를 돌리기만 하면 책이 나오도록 그렇게 준비해 놨어요. 내 생각에는 뒷사람들이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갑자기 동국대에서 나를 그만두라는 겁니다. 그래서 끝난 거죠. 내가 심약한 사람인데 불보살님의 원력으로 10년 동안 병 안 나고 역경원을 이끌었는데 마냥 쉽지만은 않았어요. 또 한 가지 있다면 번역 분야에 평생을 매달릴 생각을 했기 때문에 망설임이 없이 그냥 묵은 길 가는 것처럼 척척 내 생각대로 갔어요. 다행히 걸어간 게 딱딱 들어맞았어요. 그랬는데 아쉬운 것은 한 1년이나 이태만 더 했더라면 그 윤전기 확 돌려서 책을 내서 완간하면 좋았지요. 지금 나온 것들은 그동안 원고가 나온 순서대로 책을 묶은 거예요.

 

흔히 <한글대장경>은 318권으로 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된 사연은 <한글대장경>을 만들고 나서 원고 나오는 대로 맞춰서 책을 한 권, 두 권 만들어 내다 보니까 318권이 됐어요. 하지만 번역 순서대로 출간했기 때문에 마치 화투장을 뒤섞어 놓은 거 같이 됐습니다. 예를 들자면 4장의 화투 묶음 속에 솔도 있고, 매조도 있고, 비도 들어 있는 것처럼 됐어요. 이걸 제대로 체계를 잡으려면 솔은 솔대로 묶어서 출간해야 하는 거지요.

 

▶ 불경 번역의 순서가 뒤섞였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요. 어렵게 번역한 원고들을 체계 있게 정리하지 못해서 아쉽고, 그것을 누군가는 마저 해야겠지요. 그렇게 하다 보니 이제 80세가 넘어가고, 그야말로 이놈의 시간이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았지요. 그렇게 하나의 꿈결처럼 지나가 버렸어요. 그래서 옛사람의 말이 몽일장夢一場이라고 하죠. 지나고 보니 한바탕 꿈이었어요. 한바탕 드라마가 끝난 거지요. 

 

사진 6. 운허스님의 은관문화훈장을 월운스님이 대신 받다(2015년 10월 15일). 

 

사실은 내가 경기도 장산이라고 지금 북한인데, 조그마한 변두리에서 태어났어요. 어떻게 어떻게 출가해서 중노릇을 제대로 못했어요. 참 그야말로 도를 닦거나 열심히 계행을 닦거나 참선을 제대로 해야 되는데, 옛날 승려사회에서는 불경을 본다는 것이 고급이었어요. 그런데 요즘 조계종 풍토로 봐서 불경을 보는 것이 승려의 본분상이 아닌 걸로 쳐요. 이것은 가짜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나는 책이나 만들고 책장사나 했으니까 가짜 중에서도 가짜로 살아온 것이나 다름없지요.

 

『삼화행도집』의 발간과 불교의식의 중요성

 

▶ 참선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평생 학승으로 살아오셨군요?

 

첫째는 사주팔자가 그렇다고 그래야 되겠지요. 부처님 법도 다 인연이거든요. 내가 속가에서 글을 좀 읽고 왔다는 것이지요. 그게 ‘세월아 가라’하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화두를 즐기고 앉아 있기에는 부족해서 못할 것 같고요. 또 한 가지는 사실 우리 사회 여건도 있습니다. 다른 단체나 종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민생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데 불교에서는 ‘경을 봐서 뭐하냐’, ‘번역해서 뭐하냐’, ‘참선만 하면 되지’하는 풍토가 있었어요. 

 

사진 7. 역경에 몰두하던 시절의 월운스님. 사진 불교신문. 

 

물론 그 분들은 그런 취향대로 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업이 됐든 지혜가 됐든 내 길이 있었던 거지요. 욕을 먹으면 먹는 대로, 호법선신이 “너 잘했다.”고 점수를 주면 주는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늘그막에 대접을 좀 못 받습니다. 우리 종단은 문자승文字僧을 쳐주지

를 않으니까요. 

 

▶ 스님께서는 불교의례나 의식 분야에 관심이 계셨죠?

 

불교는 엄밀히 말하면 철학이지 종교라고 할 것은 없어요. 부처님이 사실 신격화하지 말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신격화하지 말라던 부처님을 신神처럼 모시고 귀의하는 의식儀式이 생긴 것은 교만한 마음을 없애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신처럼 생각한 그 순간에 의식을 해야 자기 마음이 변하죠. 그래서 내가 보는 것은 불교인이 공부를 하는데 3요소를 갖춰야 된다고 봐요. 그런 생각을 내가 생각을 했어요. 그게 뭐냐 하면 교리敎理, 역사歷史, 의식儀式이에요. 이 3가지를 꼭 가르쳐야 됩니다. 

 

사진 8. 불교의식집 『삼화행도집』 발간, 1980.

 

의식이라는 것은 목탁을 치는 것뿐만 아니라 걸음걸이 하나도 의식입니다. 의식이 그냥 무당집에 가서 “나를 도와주십사.”가 아니라 의식과 그 내용 전부가 “나의 어리석음을 참회하오니…” 이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지금 의식의 기본 취지를 불자들이 이해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서 “부처님 제가 또 잘못했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부처님은 스스로 신격화하지 말라고 하셨어도 신격화하지 않은 신격을 우리가 모셔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같이 앞생각과 뒷생각이 자주 바뀌는 무리들에게는 나의 이해관계와 연관 지어서 일상생활을 묶어놔야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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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순
동국대학교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역임. 현재 불교무형문화연구소(인도철학불교학연구소) 초빙교수. 저서로는 『원묘요세의 백련결사 연구』가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호암당 채인환 회고록의 구술사적 가치」, 「보운진조집의 성립과 그 위상 연구」 등 다수.
obuddh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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